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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편] 철새

2013.02.14 05:23

김일홍#Guest Views:4281


           철 새 

                                             김 일 홍

하늘이 꾸물거린다. 비가 오려나 하늘을 처다 보고 있는데 친구 한데서 전화가 왔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오늘 골프는 쉬자는 전갈 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몸살 기가 있어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이 참에 L A에 나가 미루었던 안경이나 마칠 가 하고 차비를 했다. 빗길에 차 조심 하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LA 나들이었다.
미국에 이민 온 이래 십 수년 LA 에서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태평양 바닷가 근처 Laguna Woods 라는 노인들이 살기 좋다는 곳으로 주거를 옮겼다. 앞으로의 삶도 얼마 남지 않은 터여서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다 한적한 곳에서 글이나 쓰며 조용히 지내고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먼 거리의 LA에는 거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올림픽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안경점에 들러 눈을 체크 했다. 젊은 여자 검 안 원이 강렬한 빛으로 눈을 들여다 보더니 눈이 많이 늙었 다고 한다. 노인들의 노화는 제일 먼저 눈으로 온다고 하면서 조심 하라고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 눈이 늙어 침침하고 잘 보이지 않으니 마음도 어두워 지는 것 같다. 가끔 가까이에서도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하기 어려워 실수를 할 때가 많다. 책을 읽을 때도 눈이 시원치 않으니 선명하게 글을 읽을 수가 없다. 이제는 안경 없이는 뭐 하나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속상한 것은 자주 안경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치매도 아닌데 말이다. 일주일 후에 안경을 찾기로 하고 안경 점을 나섰다.

너무 일찍 일을 끝냈나 갑자기 할 일이 없어 허망했다. 시간적으로 가장 애매한 오후 두 시경. 오랜 만에 LA 에 왔으니 집으로 돌아 가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친구를 불러 내 낮 부 터 술잔을 기울이기에는 너무 이르고 하여간 늦은 점심이나 할 가 망설이다 오래 전 한국의 대통령이 먹고 갔다는 설렁탕 집으로 갔다. LA 는 주차장 때문에 애를 먹는데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 갔다. 점심 시간이 지난 후라 식당은 한산했다. 식당 안쪽 모서리 테이불에 손님이 달랑 3 명 앉아 있다. 나는 설렁탕을 시켜 놓고 옆 자리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나의 뒤 목을 끌어 당기는 느낌이 었다. 무의식적으로 안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 쪽에서 한 사나이가 나를 유심이 처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시선과 눈길이 마주 쳤다. 나는 흉측한 것을 보기나 하듯 갑자기 눈길을 돌렸다. 안볼 것을 본 것 같아 게름 직 했다. 사나이는 나를 계속해서 힐끔힐끔 처다 보며 머리를 갸우뚱 하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 친구가 왜 그러나 하고 나도 슬쩍 처다 보기는 했으나 좀 두려웠다. L A 라는 곳이 하도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 조심을 해야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다민족이 사는 곳이라 별에 별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길을 가다가 눈길만 마주 처다 보아도 총알이 날아 온다는데 내가 자청해서 총알을 맞을리 없고 하여간 머리를 박고 신문만 보았다.

그 때 설렁탕이 나와 나는 설렁탕에 집중했다. 설렁탕을 거지반 먹고 있는데 이제는 안 쪽 테이불의 사나이가 일어 서더니 나에게 다가 오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 사나이를 보며 몸을 뒤로 제겼다. 그 사이 무엇인 가 확인을 했는지 사나이는 당당했다. 가까이 다가 와 내 앞에 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 비슷하게 하고 사나이는 나의 얼굴을 유심이 바라 보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왕 거미가 나의 얼굴로 기어오르는 듯 징그럽고 싸늘한 전율을 느꼈다. 사나이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한국 분 아니세요 ?"
사나이는 몸을 흔들며 말 했다.
"네 ! 그런데요."
나는 경계를 하면서 대답 했다.
"너무 같아서요. 흑 시 한국에서 무얼 하셨지요 ?"
분명 이 사나이는 나에게서 무얼 찾으려는 듯 했다. 그래서 과거 나의 직업을 묻는 것이다. 나는 불쾌 했다. 미국에 온 이래 이런 일은 처음 당 하는 일이다. 오랜 동안 미국에 살면서 나의 과거 직업을 묻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과거 나의 직업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이 사나이가 나의 과거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선생님, 죄송 합니다만, 혹시 서울 남산 밑 남청 빌딩에서 근무 하신 일 없으세요 ?"
사나이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닦아 오고 있었다. 나는 놀랬다. 어떻게 이 사나이가 남청빌딩을 알고 있을까. 사나이는 집요했다. 나를 물고 늘어지는 자세가 먹이 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하이에나 같았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호기심도 발 했다. 나의 얼굴에서 무엇인가 찾았는지 사나이는 화색이 돌았다."맞습니다. 맞아요. 조정관님. 맞아요."
사나이는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답 했다.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말은 안 했지만 뭐가 맞어 하는 의문의 반응을 얼굴로 표시했다. 난해한 퀴즈의 답을 풀었을 때 처럼 긴장 감이 풀리면서 나른해 지는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나도 오래 전 귀에 익은 사나이의 음성으로 희미 하게나마 사나이의 정체를 판독 할 수가 있었다.
"조정관님 정말 반 갑 습니다."
사나이는 와락 나의 손을 잡고 감격스러운 듯 손을 흔들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좀 위인 사나이는 힘이 넘쳤다. 사나이가 조정관 이라는 말에 순간 나는 사나이의 이름이 튀어 나왔다.
"최송식 ?"
나도 얼떨결에 맛 장구를 쳤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사나이의 이름이 튀어 나올 수가 있을까. 최송식이란 이름이 오랜 동안 뇌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나 보다. 이렇게 해서 30 여 년 만에 미국 땅 외지에서 친구 라기엔 뭐한 최송식이란 사나이를 만났다.

남청 빌딩은 정보부의 안가( 安家)다. 남산 바로 밑 아스토리아 호텔 근처 5 층 빌딩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골목에 숨어 있어 뭘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들이 별반 없다. 나는 그 당시 정보부 직원으로 남청빌딩에서 종사하는 일반 사람들을 관리하는 조정관이었다. 빌딩 안에 는 층마다 내외 통신, 북한 연구소, 극동문제 연구소, 자유 평론사. 북한 자료실 등 북한을 연구하는 단체가 속해 있었다. 당시 북한의 정보를 통제했던 시기에 어느 정도 북한을 알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맨 아래층 자료실엔 북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 터부시 되어왔던 북한에 관한 자료인 노동신문, 등대 잡지를 생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선 북한의 정보를 알리는데 일조를 한 곳이기도 했다. 그 중 5 층의 자유 평론사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반공 교재를 만들어 전국 초.중.고 등 학교에 공급을 했다. 반공 교재를 만드는 데는 북한 실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대개 북한에서 남으로 내려온 사람이거나 간첩으로 남파됐다가 자수를 한 사람들이 집필자였다. 사무실 안에는 북한 각지의 짙은 사투리가 오고 가 여기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착각 할 정도로 북한 냄새가 풍겼다.

내가 최송식을 처음 만나기는 8 월 초 어느 날 찌는 듯 더위에 모든 사람들이 지쳐 나른 해 있을 오후였다. 인터폰이 울렸다. 수위실에서 누른 신호였다. 오수에 취해 있던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조정관 님을 찾아 온 분이 여기에 와 있는데요."
수위가 보고 했다.
"누군데 ?"
"강 국장님이 보내서 왔다는데요."
강국장은 나의 직속 상관이다. 강국장은 나에게 아무런 열락 없이 업무를 마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당황했다.
"올라 오라 구 해."
나의 사무실은 6 층 옥상이다. 창고를 리 모델링을 해서 옥탑방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은 무척이나 더웠다. 잠시 후 사나이가 나타났다.
"최송식 이라 합니다."
목소리의 톤이 굵었다.
"앉으시죠. 무슨 일입니까 ?"
나는 자리를 권하고 그자가 내미는 봉투를 받았다. 봉투 속에는 이력서가 들어 있었다.
이름은 최송식. 나이는 35 세. 고향은 황해도 신천. 학력 난은 비어 있었다.
나는 간첩으로 자수를 했거나 북에서 온 사람이라는걸 알았다.
"글은 좀 써 보았습니까 ."
반공 교재를 쓴다면 글을 좀 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렇게 오는 자들은 그저 자리를 하나 주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의 질문은 건성으로 넘어 갔다.
"글은 잘 못 쓰고 연설은 좀 합니다."
사나이는 긴장을 하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고 느껴 수위에게 북한 교재 편집실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 했다.

이렇게 해서 최송식이란 사나이가 교재 편찬위원으로 임명되어 남청 빌딩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송식은 글을 쓰기 보다는 밖으로 나다니며 반공 강연을 주로 하고 있었다. 북한 실정을 알리는 반공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중.고등학교를 비롯, 국가 공공단체를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 북한에서 연설을 많이 했는지 말 자체가 연설 스타일이라 강연을 곧잘 하는 것 같았다. 반공 연설을 하러 나갈 때는 담당 경찰이 차로 데리러 왔다. 최송식은 사무실을 나갈 때나 들어 올 때는 꼭 나에게 보고를 했다. 편집실에 근무하는 교재 편집위원들은 대부분이 간첩으로 남파 되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이라 항상 주시를 해야만 했다. 당시 이수근 사건도 있고 해서 나는 이들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최송식을 간첩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좀 특이한 인물이었다. 나는 점차 최송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송식은 이수근 때문에 망했다고 푸념을 늘어 놓곤 했다. 북에서 남으로 탈출해서 얼마 안되어 이수근이가 판문점에서 남으로 넘어 오는 바람에 자신의 북으로 부 터 의거 탈출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묵살 되었다는 것이다.

장마가 꽤나 오래 지속 될 것 같았다. 사무실 창 넘어 쏟아 지는 장대 비를 바라보다 나는 인터폰 키를 눌렀다. 비도 오고 최송식을 불러 차나 한잔 할 가 해서였다. 실은 그에 대한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있고 해서였다. 인터폰을 받고 최송식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 발에 나의 사무실로 달려 왔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 하명을 하라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비도 오고 하니 커피나 한잔 하자며 아무렇지 않게 말 했다. 그랬더니 그러지 않아도 조정관님을 모시고 저녁을 한번 먹으려고 했는데 비도 오고 속도 출출 한데 충무로 복국집 에서 한잔하자고 달려들었다. 나는 남청 빌딩 일반 직원들하고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남청빌딩에서 근무하는 직원 들은 조정관인 나에게 잘 보이려고 접근을 시도 하곤 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나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의 문을 여니 얼씨구나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최송식은 저녁 약속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와 최송식은 충무로 복국집을 찾았고, 보글보글 끓는 복국 냄비를 가운데 두고 처음 마주 앉았다. 몇 잔의 소주가 오간 뒤 최송식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계속해서 양철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조정관님 . 이거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최송식은 한숨을 푹 내 뿜으며 말 했다. 간첩의 본성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긴장 했다.
"그게 아니 구요,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그러면 ?"
간첩이 아니면 나는 의아 했다.
"나를 이수근이와 동급으로 취급하면 안되지요 . 나는 엄연히 의거 탈북자 입니다."
"의거 탈북자."
나는 아리송한 눈으로 최송식을 바라 보았다.
"조정관님 내 말을 좀 들어 보시라 구요."

최송식의 고향은 북한 지역인 황해도 신천이다. 일제강점기에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살에 해방을 맞았는데 아버지가 소작인 출신이라 북한 공산치하에선 출신 성분이 좋았다. 당에 충성심만 발휘하면 출세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최송식은 활달하고 같은 또래들에게 앞장 서기를 좋아했다. 싸움도 잘 했다. 신천의 건달패들 하고도 어깨를 견줄 만했다. 웅변을 잘해서 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최송식은 신천 학교를 졸업하고 신천 전기 사업소에서 근무를 했는데 성실한 면이 있어 전기 사업소 지도원 동무한테 신임도 얻었다. 잘하면 대학에도 갈 수 있고 노동당에 들어가 출세 길도 열려 있었다.

최송식은 신천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는데 그 중 마음에 담아 든 여자기 있었다. 학교 때 점 찍어 놓은 차분하고 얌전한 여학생이었다. 나약하게 보였지만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마음이 쏠려 사랑을 했다. 첫 눈에 반했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사랑을 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랑을 얻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인이 북한에서 배척하는 목사의 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최송식은 실의에 빠졌다. 예수쟁이 딸하고 결혼하면 안된 다고 주위에 반대가 심했다. 최송식은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렸다. 당보다 사랑하는 여자를 택했다. 얼마 후 사랑 하는 여인과 결혼을 했다. 당에서 허락하지 않는 결혼으로 인해 최송식은 전기 사업 소를 떠나야만 했다. 신천 집단 협동 농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난 날 찌들게 가난했던 농사 꾼의 아들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반대를 해도 어머니는 아들의 편이었다. 저녁 해가 기울어 농사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끌고 돌아 오는 아들을 어머니 는 동네 언덕 위 느티나무 아래서 항상 기다렸다. 두 손을 들고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마음은 애틋했다. 느티나무에 걸린 저녁 노을이 어머니의 얼굴에서 빛 났다. 어머니의 얼굴은 천사 같았다고 최송식은 말 하곤 했다.

협동농장의 농사꾼이라도 최송식은 행복했다. 어머니가 있고 아내가 있어서였다. 아내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아내는 영양 실조로 쓸어 졌다. 먹을 것이 없어서였다. 아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최송식은 비참한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어머니가 연 못 과 논 두렁에 나가 개구리를 잡아 며느리에게 삶아 먹였다. 아내는 개구리를 먹고 첫 째 와 둘째를 낳았다. 개구리의 효과로 아내는 건강을 찾았다. 그 후로 최송식 은 협동 농장 일을 마치고 나면 나무 꼬챙이를 들고 논과 연못으로 가서 개구리 사냥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개구리 잡는 귀신이 되었다. 그 때 개구리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내 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리라.

최송식은 도저히 살길이 막연해 원산 시 당비서로 있는 집안 형님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당비서의 권력이면 최송식의 지난 날의 과오도 숨길 수 있었다. 형님의 도움을 받아 최송식 가족은 원산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형님이 최송식의 손재주를 알고 있어 원산 선박 수리사업소 선반 수리공으로 일터를 알선 해 주었다. 최송식은 살길은 오로지 당에 충성하며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 했다. 그 사이 두 아들도 성장해서 인민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최송식은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행복에 겨웠다.

어느 날 원 산 시 당 간부가 최송식을 호출했다. 긴장했다. 과거의 전력이 들통나지 않을까. 아내가 목사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항상 머리 속에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당간부는 최송식에게 새로운 사업을 지시했다. 당에서는 새 사업은 가족 같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기 때문에 최송식을 추천한다고 했다. 최송식은 가슴이 벅 찼다. 자신이 인정 받았다는 데에 대한 희열이었다. 새로운 사업은 다름아닌 원산 시 당간부들의 낚시 배를 관리 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틈틈이 배를 타고 원산 앞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며 즐겼다. 인민들의 눈을 피해 낚시 배를 비밀리 운영하고 있었다. 가끔 평양서 고급 당원이 오면 접대용으로 낚시 배를 항상 대기해 놓고 있었다.

최송식은 당 간부들에게 충성하면 노동당에 입당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북한 사회에서 출세의 길은 오로지 노동당에 입당하는 길 밖에 없다. 북에서 노동당 입당은 제일 먼저 출신 성분이다. 친일을 했거나, 5정보 이상의 지주였거나, 예수교 신자였다면 그것은 입당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것들을 숨기고 입당을 하려고 애를 쓴다. 목사의 딸인 아내를 소작인 출신으로 둔갑시켜 노동당 입당원서를 제출 했다. 그리고 오늘 내일 당에서 소식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최송식의 가정에 뜻하지 않은 절망의 사건이 일어 났다. 아이들이 다니는 인민 학교에서였다.

큰 아들 형준이는 인민학교 4 학년 졸업 반이고 둘 째 인준이는 2 학년이다. 대부분의 인민학교 아이들은 빨간 마 후 라를 목에 거는 것을 갈망한다. 소년단에 입단 하는 것이다. 경쟁이 대단했다. 당간부 자식들이 우선권이 있었다. 소년단원이 되면 중학교에 올라 가서 사로청에 쉽게 들어 갈 수 있고. 이런 과정을 거처 김일성 대학에 들어가 졸업을 하면 북한 사회에서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은 우선 소년단 입단을 열망하지 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공산주의 국가들은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숨은 영웅 만들기 작업을 해왔다. 이 작업은 스타린 시대의 유물인데 무지한 인민들과 어린 이이들을 선동 해 누구나 당을 위해 앞장 서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런 방법으로 소련 공산당은 순진한 학생들이나 무지한 농민 들을 세뇌 시켜 영웅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한 시골의 소년 파블릭 모로조프는 아버지가 반 혁명세력인 부농 쿨라크 와 친밀 하다는 사실을 공산당에 밀고한다. 소련 공산당은 아버지를 반 혁명 분자로 몰라 가차 없이 처형한다. 이 에 분노한 친척들은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 모로조프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 진다. 그러나 공산당은 이 소년의 죽음은 혁명을 위한 죽음이라고 높이 떠 바쳐 사회주의 소년 영웅으로 만들어 칭송하는 계기를 만든다.

모로조프가 다니던 학교 광장에 모로조프의 동상을 세우고 소련의 모든 소년. 소녀들에게 숨은 영웅 모로조프를 따라 배우라고 강요한다. 숨은 영웅 만들기는 소련에서 다른 공산국가로 확산 되었다. 이런 숨은 영웅 만들기 작업은 사람과 사람간에 불신을 조장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그로 인해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는 공포의 사회를 만들었다.

소년 영웅 모로조프를 따라 배우자는 모델은 북한의 노동당 산하의 모든 기관에서도 자행 되었다. 북한의 인민학교 소년단에서도 앞장섰다. 형준이가 다니는 인민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의 혁명은 완성되지 않았다. 낡은 사상을 뿌리 뽑자.’ 구호를 부르며 소년. 소녀 단원들이 앞장을 섰다.
당 간부의 아들인 한 학생이 자기 아버지가 일제시대 친일파였다고 고발을 해서 학교가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다. 이 사실은 곧 당에 보고되었고 당에서는 왜 여 짓 것 그런 반동 분자를 색출을 해내지 못했느냐고 숙청 바람이 불었다. 이런 일이 각 학급별로 번져 나갔다. 전 교 학생이 교단에 서서 자아 비판을 해야 했다. 한 학생이 한 건식 문제를 제기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아이들은 교단에 서서 할 이야기가 없었다. 아이들은 자기네들의 집 문제를 뒤집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다고 고발 하는가 하면, 어떤 여학생은 누가 누구와 부화 방탕을 한다고 고발을 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딸이 어머니를 고발하는 형국으로 치달았다. 부모 자식간 사랑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고 가정을 파괴 하고 불신의 사회를 만들었다.

오늘 형준이는 소년단 회의에서 자아비판을 해야 할 차례이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형준은 걱정이 되었다. 모든 아이들도 그렇듯이 말할 것이 없었다. 하여간 무엇이 던지 비판하라고 다그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거짓 말을 꾸미거나 흑 시나 자기 집에 이상한 것이 없나 찾아 보게 되는데 어린 아이들은 순진해서 집안의 비밀이 큰 재난을 불러 오게 될 것도 모르고 교단에 서서 자기네 집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다. 형준은 어머니가 가끔 낡은 가죽 책을 읽는 모습이 떠 올랐다. 숨겨가며 읽는 책이 성경책 이라는 것, 그러다 눈을 감고 중 얼 거리는 것은 기도를 하는 것을 형준은 알고 있었다. 형준이 생각으로는 이 자리에서 그것 밖에 이야기 할 것 이 없다 생각 했다.
"우리 집 어머니는 성경책을 읽으며 기도를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엄청난 일이었다. 최송식의 가정이 완전이 파괴되고 벼랑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동무 어머니는 예수교를 믿소 ?"
소년단 책임자 동무가 형준의 말을 받아 넘겼다.
"아닙니다."
"성경책하고 기도는 뭐요 당장 성경책을 가지고 오시요."
형준은 할말을 잃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를 느꼈다.
"우리 공화국에서 제국주의 잔재인 예수교가 없어 진지 오랜지 동무는 모르오."

그 날 저녁 식구가 다 모인 자리에서 형준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 했을 때 최송식은 할 말을 잃었다. 집은 침묵으로 캄캄했다. 아내는 울기만 했다.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던 형준은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고, 동생 인준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손톱을 뜯고 있었다. 최송식은 틀림없이 당에서 어떤 조치가 내려 질것 이라고 생각했다. 노동당 입당은 커녕 낚시 배를 관리하는 자리도 떨어져 나가리라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당을 기만했으니 아오지 탄광으로 쫓겨 갈련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는 북한에서의 살길이 막연해 졌다.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노동당에 보고 되기 까지는 시간이 있으리라. 최송식은 마음이 다급해 졌다.
몇 일전 평양에서 고위 당원이 낚시 하러 원산으로 내려 온다고 해서 낚시 배를 깨끗이 청소하라는 지시를 받고 청소를 해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높게 일어 배가 바다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최송식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끌면 아오지 탄광 행이다. 그 곳으로 가면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그래 떠나자 우리가 살 곳은 남으로 가는 것이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 했다. 오늘 거행하리라 마음을 다짐하고 최송식은 비를 맞으며 부두가 낚시 배로 나갔다. 최송식이 집을 나서며 아내 에게 남으로 떠날 차비를 하고 10시경 좀 지나서 아이들과 같이 부두가 배로 나오라고 일렀다.

바다는 험악했다. 산 같은 파도가 제방을 넘어 촘촘이 모여있는 배들을 한 입에 삼킬 듯 덮첬다. 검은 물체들이 파도에 놀라 춤을 추었다. 최송식 은 몸의 중심을 잡아가며 조심스레 배 갑판위로 올라 갔다. 조타실에서 희미한 불 빛이 흘러 나왔다. 기관 실을 맡아 일하는 허 동진 일거라고 생각했다. 동진이는 금년 초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실 담당 원으로 들어왔다. 동진이는 집 보다 배가 편하다며 배에서 살다 싶이 했다. 오늘은 동진이를 집으로 들여 보내리라 아니면 설득을 해 보리라. 조타실 가까이 닦아 갔다. 창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흐릿한 불 빛 이지만 눈 앞에 선장 동무의 얼굴이 들어왔다. 가슴이 섬뜩 했다. 선장 동무가 이 시간에 웬 일일까. 태풍이 몰아치는 시간에 왜 나와 있을까. 불안했다. 동진이와 선장 둘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주거니 받거니 다정하게 보였다.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선장 동무는 한 손은 술잔을 들고 한 손은 옆 벽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동진은 술 병을 들고 선장 동무한테 술을 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배가 기우뚱 할 때 마다 쓸어질 듯 하다 일어나곤 했다. 오뚝이 같았다. 최송식은 난감했다. 어쩌나 생각을 하다 하여간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섰다. 물 보라와 바람이 조타실 안으로 처 들어 왔다. 선장과 동진은 술잔과 술병을 들고 있다가 무슨 비밀이 들통 난 듯이 최송식의 출현에 놀란다.
"아니, 최 동무가 웬일이요."
선장 동무가 갑자기 나타난 최송식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배가 이상이 있나 해서 나왔습니다. 동진이도 나왔군 ?"
최송식은 흔들 거리는 조타실 키를 잡고 몸을 가누며 허세를 부렸다.
"여기는 괜찮으니 동무는 들어 가시요."
선장이 말 했다.
"선장 동무가 들어가시고 내가 배를 지키겠소."
최송식은 선장을 돌려 보내야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리라 생각 했다. 얼마 있으면 아내와 아이들이 나오고 그러면 문제가 더 커질 것 이다. 동진은 자신의 하라는 대로 할 것이라고 믿었다.
"최 동무 ! 집에 들어 가라니깐."
선장은 신경질 적으로 눈꼬리를 치 겨 세우며 최송식을 처다 보았다. 최송식은 언뜻 이들이 자신을 빼돌리는 느낌이 들었다. 당에서 선장한테 무슨 열락이 갔나, 배를 지키라는 지시가 있었는가, 전에 없던 선장의 행동에 최송식은 의아 했다. 난감했다.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는데 파도가 벼락 같이 배를 쳤다. 배가 뒤집힐 것 같이 출렁거렸다. 최송식은 조타실의 키를 꽉 잡고 있었다. 조타실 키 옆 벽에 걸어 놓은 쇠 갈퀴가 눈에 들어왔다. 고기를 낚아 올릴 때 사용하는 쇠 갈퀴다.

"형님 ! 술 한 잔 하시라요."
분위기가 이상 했는지 동진이가 흔들 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술 한잔 하라고 최송식에게 술 잔을 건 낸다.
"그래, 한 잔 하지 ."
최송식은 술잔을 받아 들고 비틀거리며 술을 마셨다.
"자, 선장 동무도 한잔 하시 구래."
최송식은 술잔을 선장에게 넘겼다. 파도 소리와 함께 옆의 배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해 치워야지, 최송식은 선장을 해치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조타실 안은 냉 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선장도 어떤 느낌이 오는지 몸을 사라고 있었다. 동진도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 폈다. 최송식의 얼굴에 살기가 품어 있는 듯 보였으리라. 술은 바닥이 나고 빈 병이었다. 선장이 문고리를 잡고 일어 서려는데 또 한 차례의 파도가 배를 덮쳤다. 선장과 동진이가 한 몸으로 나 동구라 떨어졌다.

"아버지 우리 왔어요."
그 때 조타실 문이 열리며 비 바람과 함께 큰 놈 형준이가 들어 섰다. 선장과 동진이가 놀라며 최송식을 올려다 보았다. 최송식은 손에 갈퀴를 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간으로 이루어 졌다. 하늘이 두 갈래로 찢어 지듯 천둥이 번쩍 치는 순간 최송식의 갈퀴는 선장의 목에 박혔다. 아들 형준이를 보자 이상한 용기가 솟았던 것이다. 삽시간의 일이었다. 선장의 목에서 피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믿었던 동진이가 최송식을 덮치는 것이다. 최송식은 매사에 동진을 친 동생 처럼 대했다. 동진은 최송식 보다 아내를 형수님 이라고 부르며 더 따랐다. 그런데 결정전인 순간에 동진은 적으로 돌변했다.
그렇다면 당에서 최송식을 감시하라고 동진이를 배에 밖아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새끼가 ."
최송식은 당황하고 겁이 벌컥 났다. 동진의 힘 이 보통 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무,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래 선장 동무를 죽에요."
말부터 달랐다. 매사에 형 형 하더니 동무로 변했다.
"너 와 이러니, 할 수 없다.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돼."
최송식은 답답했다. 믿었던 동진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차분이 말을 해서 남으로 같이 가자고 설득할 참이었다.
"동무는 반동분자야, 선장 동무를 죽이다니."
동진은 최송식의 다리를 잡아 당겨 쓸어 틀이고 가슴 위에 올라 타 목을 졸랐다. 동진은 힘이 넘쳤다. 최송식은 숨이 칵칵 막혔다. 눈이 가물가물 거리고 힘이 죽 빠지며 모든 것이 아련했다. 생각 치도 않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만 가늘게 들렸다. 그런데 위에서 목을 조이던 동진의 몸뚱어리가 힘없이 옆으로 푹 꼬꾸라지는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위를 처다 보는데 아내가 도끼를 들고 멍청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내가 도끼로 동진의 뒤 머리를 내려친 것이다. 그것도 머리 정수리를 후려쳤다. 작살에 잡아 올린 고기가 피를 토하듯 선실 안에는 피가 헝건이 고이기 시작 했다. 기진해진 최송식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우선 아내와 두 아들을 안전하다고 생각한 배 밑창 고기를 넣는 밀폐된 공간에 밀어 넣었다. 바다 물이나 빗물이 새어 들지 않는 곳이다.

뚜껑을 닫아 버리고 잽싸게 기관실로 내려가 엔진을 걸었다. 파도 소리가 엔진 소리를 잠재웠다. 묶어 놓은 밧줄을 칼로 끊었다. 배가 밀렸다 쏠리는 파도에 배들 틈새로 빠져 나갔다.
최송식은 조타실에 올라가 키를 잡고 뱃머리를 돌렸다. 일단 항구를 빠져 나가야 한다. 배는 파도와 같이 춤 추며 살금살금 물결 따라 떠 내려 갔다. 배가 뜻 대로 움직여 지지 않았다. 안간힘을 쓰며 키를 감고 풀었다. 앞에 불 빛 이 보이는 막사가 인민군 초소다. 발각 되면 끝장이라는 긴장 속에 인민군 초소를 비껴 갔다. 멀리서 헫라이트가 빙빙 돌며 주변을 내리 비쳤다. 헫라이트의 위력은 약했다. 불 빛은 파도 속으로 파 뭍 혀 빛을 잃었다. 파도와 함께 떠내려가는 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배가 원산 앞 바다 까지 흘러 나왔다. 몰아치는 태풍에 조각 배는 파도에 휩쓸려 낙 옆 같이 어디로 인지 떠 내려가고 있었다. 최송식은 조타실 키만 잡고 꼼작 않고 있었다. 발 밑이 끈적거렸다. 시체가 토해 놓은 피였다. 그제서야 좀 전의 일들이 되 살아 났다. 이들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사자들을 끌고 바다로 떨쳐 버렸다. 별 볼일 없는 고기를 낚았다가 다시 바다로 내 던지 듯 바다 속으로 수장 시켰다. 모든 일은 끝났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것만 남았다. 파도와의 싸움 한계상황 속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하늘이 부게 밝아 왔다. 빗 발이 약해 지면서 태풍이 잠잠해 졌다. 멀리 지평선도 눈에 들어 왔다. 가물가물 하는 의식 속에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그 후 일어난 일들을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최송식의 배가 북방 한계선을 넘어 남 쪽 지역으로 들어 오자 남한 해경 함정이 배의 소속을 응답 하라고 확성기로 소리를 지른 것이다. 최송식은 점점 의식이 꺼져 가고 있었다. 응답이 없자 한국 해군 함정은 표류하는 배로 인정 배를 속초 항으로 예인 했다. 배가 끌려 갈 때 최송식은 조타실에 쓸어져 있었다. 배 밑창에 들어간 아내와 두 아들은 서로 꼭 껴 않고 죽어 있었다. 얼마나 심하게 배가 롤링을 했는지 이들은 의식을 잃은 채 시체로 변해 있었다. 구급차가 이들을 싫고 병원으로 떠났다. 최송식은 얼마 후 깨어 났지만 아내와 두 아들은 심한 상태였다. 일 주일 후에야 아내와 두 아들이 깨어 날 수가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고 했는데 이들은 환생을 한 것이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최송식은 귀순동기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선장과 기관원을 살해 하고 귀순했다는 말이 애매 했지만 나중 아내와 아들의 증언에서 사실이 밝혀져 일단 귀순자로 판정을 받고 귀순자 보상법에 의해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시기 이수근의 판문점 탈출로 최송식의 탈출은 빛을 보지 못했다. 최송식은 배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조정관님 지금 그 배가 속초의 반공 전시관에 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최송식이 간첩이 아니라 북에서 어떻게 되었던 간에 의거 탈출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어떻게 되었소?"
나는 최송식의 아내가 궁금 했다.
"거의 죽었다 살아 났지요. 회복기가 꽤 오래 걸렸습니다. 원래 그 사람은 약했습니다. 깜짝깜짝 놀라고, 심장병도 있고."
"아이들은 건강해요 ?"
"네, 아이들이라 회복이 빨랐어요. 큰 놈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작은 놈은 중학교에 다닙니다."
"큰 놈이 북에서 소년단 자아비판에서 어머니를 고발한 놈이요."
"예, 그렇지요."
"그 놈이 남으로 오는 길을 텃 군요."
"그렇게 됐지요."

우리는 서로 처다 보며 웃었다. 비는 계속 양철 지붕을 때렸고 술도 먹을 만큼 먹었다.

그러고 일 년이 지났다.
어느 날 최송식은 나를 찾아와 교재편찬위원을 그만 두겠다고 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나는 좀 의아 했지만 그 진의를 물었다.
"딴 뜻은 없고요, 사업을 좀 해 볼 가 합니다."
남한에서 자본주의 물을 먹다 보니 돈 맛을 알았는지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요."
나는 잘라 말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업을 한답시고 사표를 내고 뒤로는 브라질로 이민을 가기 위한 수속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 친구가 위장 간첩이란 말인가 의심이 부쩍 생겼다. 이수근도 그랬지 않나, 여지 것 북과 접촉을 했다는 것 인가. 이미 반공 교재 편찬위원 직을 퇴 했으니 나와는 관계는 없는 일이지만 최송식은 이미 관계기관의 허락을 받고 이민 수속을 하고 있었다. 최송식은 솔직한 면이 있었다. 성격이 직선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민의 정이라 할까 하여간 그런 최송식이가 밉지가 않았다.

이민을 가기 전에 만나 술이라도 하고 보내리라 하고 수소문을 해서 그를 만났다. 나는 자리에 앉기 바쁘게 입을 열었다.
"최송식 씨, 이민을 간다는 게 사실이요."
최송식은 당황 한 듯 하더니 금새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말 했다.
"네 이민을 가려고요. 미리 말씀 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이민을 가는 최송식 씨의 진의가 무엇이요."
최송식은 갑자기 굳은 얼굴을 하며 우울했다.
"간첩이라는 소문도 있어요. 솔직이 말해봐요."
나는 최송식의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며 다그쳤다.
최송식은 머뭇거리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나는 당황 했지만 냉정했다. 최송식의 말인 즉 죽기로 하고 남으로 내려 왔는데 남에서 살기가 힘이 더 들 다고 했다. 남한 땅이 낯설고 체제가 달라 적응이 쉽게 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리를 잡고 살려고 무척 노력을 했단다. 여기 저기 나다니며 반공 강연을 수 없이 했다. 강연비가 꽤나 들어 왔다. 그래서 돈도 좀 모았다. 유명세도 붙었다.

그러나 문제가 또 일어 났다. 두 아이들로 인해서였다. 학교에 열심이던 큰 놈 형준이와 둘째 인준이가 어느 날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최송식은 화가 났다. 아이들이 학교에 잘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루는 경찰서에서 최송식을 불렀다. 경찰서에 달려간 최송식은 아들들이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기가 막히고 참담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
순경은 익히 최송식을 잘 아는 경찰이었다.
"그래서 내가 최선생님을 부른 겁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단 패 싸움을 한 것이었다. 패 싸움이라기 보다 최송식 아들 형제와 반 아이들과의 싸움이었다. 처음 부터 아이들이 형준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야 ! 너 아버지 간첩이지."
"밤이면 A3 방송으로 이북에 암호를 보낸다지."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말을 했다. 아무렇게나 하는 말이 형준의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그렇다고 간첩이 아니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다. 학교 아이들은 형준이를 간첩의 자식이라고 왕따를 시켰다. 이 날도 아이들이 형준이를 가운데 놓고 간첩의 자식이라고 야유를 퍼 부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형준은 교실에 있는 야구 방망이를 들었다.
"너 들, 더 이상 나 보고 간첩 자식이라 하면 죽여 버릴 거야"
형준이의 울음 장에 한 아이가 코웃음 쳤다.
"웃기네 ! 그럼 간첩이 간첩이라고 하겠어. "
형준이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 아이에게 달려가 방망이로 머리를 찍었다. 머리에 피가 터지며 아이는 넘어졌다. 순간 아이들이 형준 에게 몰려 들었다. 난투극이 벌어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동생 인준이도 달려왔다. 선생들이 달려와 말리고 경찰이 오고 방망이로 맞은 아이들이 병원으로 실려가고 야단 법석이었다. 결국 두 아들은 경찰에 끌려갔다. 다행이 병원에 실려간 아이들의 상처는 대단하지 않았다. 경찰이 나서서 합의를 주도했다. 최송식이 손이 닳도록 사과를 해서 아이들 부모와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최송식이 치료비만 지불하고 끝내는 것으로 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최송식에게 두 아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권유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예 학교에 가질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최송식 부부에겐 고민이 쌓였다. 잘 살아 보자고 남으로 내려 왔는데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아이들의 장내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었다. 북한에서 보다 더 어렵게 살아야 하니 그래서 생각한 것이 멀리 이민을 떠나기로 작정을 했다는 것이다.
최송식에게는 두 번 째 탈출이었다.

마침 해외 개발 공사에 반공 강의를 초청 받아 나갔다가 브라질 농업 이민 프로젝트를 알게 되어 수속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한국을 떠날 수가 없었다. 북에서 탈출한 자에게는 제한이 있었다. 보안상 이민을 허가 해 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관계기관의 허락을 받고 이민을 가게 되었는지 그것도 최송식의 재주였다. 그간 아이들의 문제로 고통을 받는 것을 참작 했으리라 생각되었다.
"조정관님, 브라질의 농촌에 가서 모든 것을 잊고 농사나 짓고 살렵니다."
최송식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브라질로 떠났다.
오늘 브라질로 떠난 지 30년 만에 설렁탕 집에서 최송식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만나는 것도 기구한 운명의 인연 이리라.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길 건너 맥도날드에 가 커피나 마시며 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아들인듯한 건장한 청년과 곱상한 파란 눈의 젊은 여자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우리는 구석 지에 자리를 잡고 착석 했다. 아들이 커피를 가져왔다.
"아들인가요 ?"
나는 물었다.
"인사 드려라, 옛 날 서울에서 아버지가 모시던 상관이시다."
"상관은 무슨, 큰 아들인가요 ?“
아들이 인사를 끔뻑 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건 냈다. 명함을 보니 형준이라는 이름은 스테파노로 바뀌었고, 의류 회사 오너로 적혀 있었다. 주소는 한인들이 밀집 되어 있는 LA 자바 시장이었다. 잠시 후 아들은 어디 좀 다녀 올 때가 있다며 나갔다.
"저 놈이 보배입니다."
아들이 미국 까지 오게 된 원인 제공자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브라질로 그리고 미국으로 철새처럼 날았다.
"조 정 관 님, 두 아이들이 없었으면 저는 살아 남지 못 했을 겁니다."

최송식은 브라질 이민 배를 타고 50 여일 간 태평양을 건너 산 토스 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농촌으로 실려갔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항해 할 때 멀미로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보다 북한을 탈 출 할 때의 악몽이 살아나 더 괴로웠다고 했다. 브라질의 농촌에 도착하자 북한의 협동 농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단다. 이제 다시 시작을 해야 하니 두려웠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꿈 같은 계약 조건이 아니었다. 실망했다.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난감했다. 그럭저럭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두 해를 보냈다. 그런데 같이 이민 온 집들이 한 집 두 집 시골 을 떠나고 없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브라질 이민자들은 애초부터 농사를 짓고 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정착 후 얼마를 살다 계약을 무시하고 도시로 나가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상파울루에 한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한인들이 원래 손재주가 많아 가위와 바늘만 있으면 옷을 만들어 시장에 내 놓았다 하면 옷이 잘 팔렸다. 한인들이 너도 나도 몰려 들었고 점차 제품 수요가 늘어 도리여 한인들은 삯바느질 하는 사람들을 고용해 봉제 전문 공장을 세웠다.
최송식 가족은 농촌에서 대책 없이 지내다가 아들들이 먼저 농촌을 떠났다. 농촌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상파울루로 불러내 친구 집에서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노점 장사 부터 시작해 재미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아이들의 부름을 받고 아내가 도시로 나가 아이들과 같이 장사를 시작했다. 아내는 손재주가 남달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옷을 디자인해서 입힐 정도로 옷을 잘 만들었다. 처음에는 가위로 천을 짤라 옷을 만들어 아들들이 팔았다. 점차 아내는 횃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새롭게 디자인을 해서 만드는 옷 마다 히트를 쳤다. 아내는 타 제품 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디자인을 해 옷을 만들었다. 아내의 작품은 브라질 전역에 퍼졌다. 브라질의 바이어 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10여 년 의 긴 시간을 되풀이 하면서 돈을 벌었다. 돈을 갈퀴로 긁을 정도로 엄청 돈이 글러 들어 왔다. 도시 중심가에 빌딩도 구입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최송식은 우리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는 구나 흐뭇해 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어느 날 아내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원래 아내는 답답증이 있었다. 병원으로 가 진찰을 받았다. 폐암 말기였다. 손을 쓸 사이도 없이 6 개 월도 넘기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조정관님 하늘은 이놈한테 너무 과한 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최송식은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최송식의 아내가 세상을 떴다는 말에 인생 무상을 느꼈다. 서울에서 몇 번 만나 본적이 있는 여인이었다.
한 여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곤욕의 시간을 보냈는가. 목사 딸로서 태어나 질곡의 삶을 살았고. 원산 탈출시 조타실에서 친 동생 처럼 사랑하던 동진이를 도끼로 찍어 죽였을 때의 죄책감. 아이들이 학교에서 간첩의 자식이라고 왕따를 당했을 때의 자괴감 그리고 태평양을 넘어 브라질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슴이 타 들어가 언젠가 미라가 될 것 같은 숨막히는 순간들. 그나마 뒤 늦게 천재적인 디자인너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반짝 행복의 희열 앞에서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최송식 씨 , 많이 늙었구려. "
슬픈 이야기를 돌리려고 나는 엉뚱한 말을 했다.
"조정관 님도요."
우리는 서로 처다 보며 웃었다. 정말 우리는 늙었나. 비가 억세게 쏟아 지던 날 충무로 복 집이 생각났다. 그 때는 청춘이었다.

"그래 여기는 어떻게 ?"
브라질에서 사는 사람이 미국은 웬일이냐고 나는 의아해 물었다.
"말 하자면 길지요.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브라질이 싫어 졌어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지요."
브라질에서 어느 정도 돈을 벌면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철새가 되어 미국으로 날아온다. 철새들은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날기 마련이다. 미국은 노인과 아이들의 천국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 문제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큰 아들이 앞장 섰다고 한다. 최송식의 손자 손녀가 벌써 초등하교에 다니다 보니 공부는 미국에서 해야 한다고 아들이 고집을 세워 LA 자바 시장에 의류회사를 차려 미국으로 진출을 했다고 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부터 최송식은 한 밤중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다. 최송식은 아내의 죽음이 사실로 받아들여 지지가 않았다. 창 밖에서 흐릿하게 밀려오는 한밤중의 적요 속에서 정신 놓고 멍하니 앉아 있으면 아내 없는 집안이 새삼 적막 강산 같았다. 빌딩이 있으면 뭐하나, 돈이 많으면 뭐하나, 아내만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그저 지겨울 뿐 점점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부터 인가 꿈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환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향 집 앞 언덕 느티나무 밑에서 어머니가 손짓을 하며 아들을 부르는 모습이 40 년 전 처럼 떠 올랐다. 어머니는 입을 우물거리며 ‘아들아 내가 있는 곳으로 오려무나’ 하고 손짓을 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밤 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최송식은 죽기 전에 어머니를 만나보기로 결심 했다는 것이다.

"북에 가는 길을 알아 보니 LA에 ‘ 통협 ‘ 이라는 곳이 있어요. 이산 가족 상봉 추진을 하는 곳인데 찾아가서 신청을 했습니다."
최송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 했다.
"어머니는 이미 타계를 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는 살아 있을 겁니다."
지금 어머니의 생사 문제를 가지고 최송식 과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걱정 되는 것은 최송식 이 북한에 들어가서 어떻게 될 것 인가였다.
"북한에서 최송식 씨의 신분을 알고 있을 텐데 ?"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40 년이나 지났고, 제가 미국시민권 자 아닙니까?"
"시민권자라고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하면 곤란하지요."
"저는 지금 까지 극악의 상황 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말 같지 않는 말을 하는 최송식의 말에 나는 말을 아꼈다.
"언제쯤 떠날 예정입니까 ?"
"가을로 날 자를 잡았습니다."
그 때 잠간 다녀 온다던 아들이 돌아왔다.
나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북한에 가지 마시오 라고 말리기도 뭐해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럼 잘 다녀 오세요."
나는 아들이 준 명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정말 최송식이가 북한엘 갈까 의심을 하면서도 최송식은 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북한에 가서 어떻게 될 것인가. 선장 과 동준이를 죽이고 북한을 탈출한 사실이 들어나면 생각이 복잡해 졌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일상적인 생활로 다시 돌아가 최송식을 잊고 있었다.

이 한해도 끝 마무리에 닿았다.
해가 넘기 전에 나는 그 동안 다정했던 지인들에게 연하장이라도 보내려고 주소를 정리하다 최송식 의 아들이 준 명함이 눈에 들어 왔다. ‘스테파노 초이’ 명함을 들여다 보는 순간 무엇으로 머리를 한대 얻어 맞는 느낌이 들었다. 최송식 의 얼굴이 확 밀려 왔다. 북한을 잘 다녀 왔는지 급해졌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명함의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전화가 열렸다.
"스테파노 ?"
"네, 누구세요 ?"
"나 아버지 친구, 알겠어 ?"
"네, 알아요."
"아버지는 게신가 ?"
"아니요"
"그럼"
"북한에 있어요."
나는 수화기를 들고 멍청해졌다. 아들의 말 소리가 다시 들렸다.
"북한에 간지 3 개월이 됐는데 소식이 없어요."
"………"
"그래서 제가 북한에 가서 아버지를 모셔 와야겠어요."
아들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나는 갑자가 혼미해 졌다. 할 말이 없어 잘 다녀 오라고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북한에서 최송식을 쉽게 찾을 수가 있을 까. 최송식의 소식은 아들이 북한을 다녀온 후에나 알 일이다.

철새들의 비상은 수만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오랜 숙명을 단 한번 거슬린 적이 없이 그래서 이들의 날개는 삶의 신산 (辛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철새인지도 모른다. 최송식은 언제 쯤 철새가 되어 다시 날아 올까. ( 끝 )



고향의 노래, Violin: 강영모 - Piano: 권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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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수필] 명당 자리 [5] 2013.02.25 서윤석*68 2013.02.25 7037
179 Rambling(4) [6] 2013.02.21 이한중*65 2013.02.21 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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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기다림 [9] 2013.02.08 노영일*68 2013.02.08 4746
176 [Essay] A Rambling(2) [3] 2013.01.12 이한중*65 2013.01.12 4301
175 대선을 치르고! [8] 2012.12.20 김이영*66 2012.12.20 4376
174 눈이 내리면 [2] 2012.12.04 김창현#70 2012.12.04 5353
173 餘命의 생각이 들어서... [5] 2012.12.02 운영자 2012.12.02 5137
172 가을이 오는 거리에서 [11] 2012.11.28 김창현#70 2012.11.28 5205
171 Classic Music을 살릴려면.... [3] 2012.11.12 운영자 2012.11.12 3698
170 [Essay]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6] 2012.11.12 김성심*57 2012.11.12 3517
169 [Essay] 음악 [10] 2012.11.10 노영일*68 2012.11.10 3777
168 [Essay] On an Autumn Day (가을날에는) [8] 2012.11.01 김창현#70 2012.11.01 3553
167 신영옥의 한계령 [2] 2012.10.10 운영자 2012.10.10 5754
166 속초에 가신다면 [8] 2012.10.10 김창현#70 2012.10.10 7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