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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망진산

2012.03.16 12:07

김창현#70 Views:4365


     망진산
 


  누구나 마음 속에 그리운 산 하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진주 망진산이 그런 산이다. 
망진산은 외유내강의 산이다. 밖은 절벽이고, 안은 호수와 부드러운 능선을 품은 산이다.

 병풍처럼 깍아지른 절벽에선, 발 아래 남강 물줄기와 신안리 들판이 손금 들여다보듯 보인다. 멀리 100리 밖에 있는 토끼 귀처럼 생긴 지리산 두 봉우리도 보인다. 강 건너 절벽은 서장대다. 두 절벽 사이에 비단띠마냥 휘돌아 흐르는 강이 남강이다. 신안리 들판은 밟아도 밟아도 부드러운 모래흙이다. 지리산 눈 녹은 물 흐르는 봄이면 버들강에 은어가 올라오고, 가을이면 만장같은 황금 들판 나락을 안고 메뚜기가 톡톡 튀었다. 나는 모험한다고 진도개를 데리고 그 절벽을 오르내리곤 했다. 절벽 가운데서 흙에 반쯤 묻혔던 도자기를 발견한 적 있다. 절벽 중간에 굴을 파서 혼자 살 궁리를 한 적 있다. 아무도 못가는 절벽의 산나리꽃, 패랭이꽃 찾아다닌 적 있다. 어떤 소녀를 위해 암벽에 시를 새긴 적 있다.

 

 서장대서 바라본 망진산과 남강

 내가 살던 망경남동서 바라보는 망진산은 여성처럼 부드러운 산이다. 절이 있고, 과수원이 있다. 산그늘이 숨긴 거울같은 못이 있고, 나지막하게 층을 이룬 계단식 밭이 있다. 어머니 따라 절에 가곤 했다. 절엔 '해탈이'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절 올라가는 길 옆 복숭아꽃은 시골 새댁처럼 항시 순결하고 고왔다. 습천못은 빨간 고추잠자리와 고동을 잡던 곳이다. 대를 쳐서 붕어를 낚던 곳이다. 망진산은 봄이면 오리나무 가지끝에 움트는 새잎이 신비로웠다. 여름이면 언덕 위의 흰구름이 좋았다. 가을이면 빨간 홍시가 탐스러웠다. 겨울이면 계곡에 얼어붙은 고드름이 신비로웠다. 지지배배 아지랑이 속의 종달새, 인적 없는 골짜기 메아리, 대밭의 산비둘기소리, 비온 뒤 졸졸거리던 또랑 물소리는 전원교향악이었다. 절벽 틈에 핀 노란 원추리, 바위 틈에 핀 붉은 석죽화, 무덤 옆 할미꽃, 보리밭 가 하얀 찔레꽃, 대밭의 보라색 칡꽃, 언덕을 수놓던 벚꽃, 과수원집 담에 얼굴 붉히고 선 석류나무는 아름다운 색의 향연을 내게 가르킨 미술선생님들 이다. 보라빛 고구마꽃, 하얀 도라지꽃, 민들레, 크로바, 진달래, 개나리는 보조선생님 이다. 산은 나에게 덤으로 비밀 선물을 준 적 있다. 비 갠 산의 황홀한 무지개. 면사포처럼 하얀 남강의 신비한 새벽 안개가 그것이다.  

 나는 매일 산에 올랐다. 산을 내려와 강에 몸 씻고, 아침 먹고 다리를 건너 학교엘 갔다. 나는 단석산에 들어가 무예를 딱은 김유신 장군을 생각했다. 망경산을 한번도 쉬지않고, 뛰어서 오르내리는 단련을 했다. 왕복 한시간 걸리던 산을 30분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능선 잔솔밭은 높이뛰기 대상이다. 일미터 남짓한 잔솔을 매일 뛰어넘으면, 나중에는 그 나무의 키가 수십장 되어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 계단식 밭은 넓이뛰기 대상이다. 새처럼 활공하여 밭둑을 뛰어내렸다. 축지법 책을  읽기도 했다. 그 덕택일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백미터, 높이뛰기, 넓이뛰기, 3단조 등 전 육상종목 선수를 지냈다.  

  산은 소년의 신체를 단련시키고, 담력과 정서를 키워준 스승이었다. 누구에게 말못할 이야기를 경청해준 친구였다. 열 다섯 사춘기 감성을 받아준 애인이었다. 

 그리고 떠나온지 50년 세월이 흘렀다.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었다. 머리에 백설을 이고 진주에 가면 노인을 알아보는 사람 드물다. 부모님도 안 계시고, 소년 때 친구들 소식도 아득하다. 노인은 이제 고향에서도 나그네인 것이다. 그럴 때 노인은 망진산에서 위로를 받는다. 살갑던 그 시절 동무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산이 남아있어 안도감을 느낀다. 산은 자기 품에서 헷세와 투루게네프의 작품을 즐겨 읽던 그 소년을 아마 알아볼 것이다. 이제 습천못은 메워져 새 동네로 변했다. 정상에 돌로 축조한 웬 낮선 봉수대가 새로 섰다. 그러나 '강산이 다섯번 변하는 세월에 그 정도 변화야 없을손가.'  '세월 속에 사람도 얼마나 많이 변하던가.' 노인은 속으로 망진산 편을 든다.  과연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말이 옳다. 노인은 속으로 몇번씩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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