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Essay [Essay] 줄리오

2012.09.16 15:56

노영일*68 Views:5341



줄리오


줄리오는 내가 삼십년동안 단골로 다니던 이발사다.

처음 이민와서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아내가 내 머리를 깎아줬다.이민 이사짐을 담아온 상자를 엎어놓고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는 아내에게 내 머리를 맏겼다.
처음에는 들쭉날쭉하게 잘라 역시 예술가는 예술적으로 머리를 깎는다고 놀리곤 했다.
그러나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그나마 퇴짜를 맞을것같아 더이상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아내의 자비심에만 맏겼다.
여러번 깎더니 아내도 아내대로의 요령이 생기고 기술도 늘어 제법 전문 이발사 못지않게 깎았다.

수련의 과정이 끝나고 직장을 잡고 나서는 아내도 아이들 뒷바라지에 바빠지고, 나도 체면상 그래도 머리는 이발소에가서 깎아야 할것같아 이곳저곳 두리번 거리며 적당한 곳을 찾았다.
내가 나가는 병원에서 멀지않은곳에 작은 상가가 있는데 그곳에 이발소가 하나 있었다.
병원을 오가며 들리기가 편할것 같아 그곳에 들어갔다.

이발사가 셋이 있느데 거울위에 쟌, 줄리오, 팀 이라고 이름이 적혀있고 이발의자앞에는 손님이 앉는 의자가 따로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이발사앞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 선착순으로 이발을 해주는 것이었다.
줄리오 앞의 의자에 제일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어 “아하 이친구가 제일 인기있는 이발사인가보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앞에 앉았다. 조금 더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잘깎는 사람한테 깎고 싶었다.

처음오는 손님이니까 어떻게 깎고싶으냐고 묻는다.
내 나름대로 아내에게 잔소리 하려다 꾹꾹 참고있던 나의 소원을 자세하게 읊어댔다.
그는 알겠다고 하더니 거울이 내 등뒤로 가도록 이발의자를 돌려놓고 묵묵히 깎기 시작했다.

한국이발소에서는 거울을 앞에 놓아 깎는과정을 다 볼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왜 돌려놓고 깎는지 알수가 없었다.
다 깎은후 깜작쇼라도 할려고 그러는가? 깎는 동안에 잔소리할가봐 그러는가? 앞에 앉아있는 손님들과 이야기라도 하라고 그러는가?
사실 이발소에서는 자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등 광범위한 화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곤 한다.

접는 긴 면도칼을 들더니 옆머리와 뒷머리 아래를 밀어낸다.

어렸을때는 이 면도칼이 무서워 이발소에 가기를 싫어했다. 부산 피난시절 이발사가 멍게껍질을 껌 씹듯 질겅질겅 씹으며 잡담하다가 내 살을 베어 피가난적도 있다. 가죽 벨트에 몇번 문지르고 내살에 갖다 댈때마다 닭살 소름이 끼치곤 했었다.

다 끝내고는 의자를 돌려놓고 깎은것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 본다.
구지 지적하여 불평할것은 없고 미국사람들은 다 이렇게 깎는가보다 하여 좋다고 하고 나왔다.

그후 계속 그 이발소에 다녔다. 줄리오가 휴가 중일때는 다른친구가 깍아주었다. 그러나 무언가 마음에 않들어 줄리오가 없을때는 아예 다음에 오겠다고 하며 그냥 이발소를 나왔다.그러다 보니 줄리오가 휴가중일때 내가 가면 아예 줄리오는 며칠날 돌아온다고 미리 말해준다.
이렇게 하여 단골이 되어버렸다.

줄리오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점이 좋기도 했다.
그래도 몇년이 지나니 내 이름, 내가 의사라는것, 어디서 일한다는것 정도는 알게됐다.

한번은 내 환자가 내가들어오는것을 보지 못하고 나한테 받은 치료를 과장하여 무용담처럼 떠벌려 대는데 10인치짜리 바늘을 목에 찔러 한쪽으로 들어갔다가 다른쪽으로 나왔는데도 자기는 꾹 참았다고 한다.
줄리오가 한눈을 찡긋 감으며 나를 쳐다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발이 끝나고 일어서면서 내가 앞에 앉아있는것을 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하이, 닥” 하고는 뺑소니쳐 버린다.

시간이 없어 점심시간이나 일과후에 가도 “집에가야 별 할일도 없다”며 나를 자리에 앉히곤 했다.

처음에는 갈때마다 어떻게 깎을가 물어보곤했다. 한번은 이렇게 깎아 달라고 하고 다음번에는 저렇게 깎아달라고 했지만 깎고나면 매번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무엇때문에 물어 보는지 알수가 없었다.
깎는 방법을 한가지 밖에 모르는듯 싶었다. 마치 자기 틀에 내머리를 넣고 매번 그대로 깎는것 같았다.
얼마 후 부터는 줄리오가 “다듬기만 할가요?” 하면 나도 고개만 까딱하고 백마디의 의사소통이 순식간에 이심전심으로 끝난다.
깎아논 모양은 항상 똑같았다. 더 이상의 기대도, 더 이상의 실망도 없었다.

나도 영화 배우나 정치가들처럼 멋있는 헤어 스타일을 해보고 싶었다.
아내에게 불평을 하니 요즘에는 남자도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는다고 한다.
이발소 근처 미장원을 들여다 보니 진짜 남자들도 앉아 머리를 깎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거북하기가 말할수 없다. 짤라논 머리도 배우들같이 멋있지도 않았다.

다음번에는 다시 줄리오에게 갔다.

줄리오는 자기 아내가 신경증세가 있을때 나에게 데리고와 치료도 받았다.
어쩌다 병원근처 이태리 음식점에 들어가면 여러명의 이태리 사람들과 이태리 말로 왁자지껄하며 식사를 하다가도 나를보고 “하이, 닥” 하며 손을 흔들곤 했다.
이렇게 30년이 지났다.

이들도 세월의 풍상은 이겨내지를 못했다. 쟌이 제일 먼저 은퇴를하여 훌로리다로 이사를 갔다. 폴이란 친구가 쟌자리에 들어섰다.
줄리오는 쟌이 은퇴한곳에 몇번 다녀오드니 거기는 너무 더워서 못살겠다고 한다. 자기도 은퇴할 자리를 보러 다니는듯 했다. 이태리에 자기 친척들이 있어 그곳에 갈 생각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팀도 은퇴를 했다.
이제는 그자리를 메꿀생각도 않고 아예 팀의 의자를 떼어내고 폴과 둘이서만 했다.

아내를 잃고 나서 줄리오는 꾀죄죄하게 외모부터 변하더니 손도 무뎌지고 쇠빗으로 머리를 빗을때는 머리가 아프기까지 했다. 기계를 제대로 소독이나 하는지도 의심이 갔다.
휴가가는 날도 점점많아져 내머리는 복술강아지 처럼 보일때가 많았다.
자기도 이제는 은퇴를 해야겠다고 몇번 말하더니 한번은 이발소에가니 줄리오는 이제 못나올것 같다고 한다.

당장 머리 깎는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나이에 다시 아내더러 머리를 깎으라고 할수도 없었다.



이리 저리 찾던중 이웃에 새로 생긴 이발소가 있어 들여다보니 손님이 많은것 같았다. 들어가 보니 손님은 다 남자들인데 이발사들이 모두 20대의 젊은 아가씨들이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물어보더니 콤퓨터에 찍어 넣는다.
새로 소독한 이발기구를 흰타올에 싸서 차곡차곡 벽장안에 쌓아 놓고 손님마다 새것으로 깎아준다. 너무나 깨끗하고 위생적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깎으라고 지시를 하니까 능숙한 솜씨로 깎아대는데 손놀림도 빠르고 부드럽다. 센스있는 대화도 즐겁고 우선 젊은 여인의 손길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깎고 나서는 어떠냐고 물어보고 또 콤퓨터에 찍어 넣는다.
다음 이발사는 이것을 보고 참고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왜 진작 이곳에 오지를 않았나 후회가 됬다.
젊음이 좋긴좋구나. 역시 세대교체는 필요하구나.
갈때마다 다른 이발사가 깎아주는데 아마도 대형 체인으로 계속 로테이션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한번은 내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 놓았다.
내 얼굴의 불만을 읽었는지 이발사 아가씨가 어쩔줄을 몰라한다.
마치 딸아이가 잘못을 해놓고 야단을 맞았을때 짓는 그런 표정이었다.
“내머리는 빨리 자라니까 걱정말라”고 도리혀 내가 위로의 말을 해주고 문을 나섰다.

줄리오...


2012년 9월 16일.   시카고에서    노 영일.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2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0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15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35
165 금발의 제니 [6] 2012.10.10 노영일*68 2012.10.10 4773
164 [Essay] 나는 심부름 왕 [1] 2012.09.21 석동율#Guest 2012.09.21 3872
» [Essay] 줄리오 [11] 2012.09.16 노영일*68 2012.09.16 5341
162 손녀 [12] 2012.08.28 노영일*68 2012.08.28 5467
161 이명박대통령의 일본천황 사과요구에 일본이 발끈하는 이유 [3] 2012.08.16 김이영*66 2012.08.16 4972
160 무궁화에 대한 斷想 [6] 2012.08.12 김창현#70 2012.08.12 7535
159 구름 [7] 2012.08.04 김창현#70 2012.08.04 4462
158 강변에 살자더니... [7] 2012.07.31 운영자 2012.07.31 4763
157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3] 2012.07.31 장원호#guest 2012.07.31 4229
156 그리운 나무 [12] 2012.07.13 김창현#70 2012.07.13 4982
155 Health care in Canada (Excerpt from Wikipedia) 2012.07.08 이상열*65 2012.07.08 2068
154 An experience with British Medical System [6] 2012.07.07 이상열*65 2012.07.07 1991
153 고엽(枯葉) [2] 2012.06.24 김창현#70 2012.06.24 4073
152 금강경을 읽으면서 [4] 2012.06.18 김창현#70 2012.06.18 4327
151 나의 성당, 나의 법당 [3] 2012.05.23 김창현#70 2012.05.23 5389
150 모란 [7] 2012.05.20 노영일*68 2012.05.20 5957
149 망진산 [10] 2012.03.16 김창현#70 2012.03.16 4365
148 Anton Schnack, his life <k. Minn> [4] 2012.03.07 민경탁*65 2012.03.07 18135
147 친구들아! [17] 2012.03.04 황규정*65 2012.03.04 5754
146 [re]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 [6] 2012.03.03 황규정*65 2012.03.03 6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