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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나무를 태우면서

2012.02.20 12:35

김창현#70 Views:4534

    나무를 태우면서

김창현 

벽난로에 나무를 태우다 보니 나무마다 특징이 있다. 가장 화끈한 소리를 내며 타는 나무는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나무 줄기가 단단해서 도장 재료로 쓰는 나무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 속에서 따발총 쏘는 소리가 난다. 콩알처럼 작은 잎 속에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타타타타 하는 소리 그 참 한번 시원하다. 화력이 강한 것은 백송이다. 중국 사람들은 백송을 아주 아낀다. 정원에 아무리 귀한 나무들이 있어도 백송이 없으면 쳐주지를 않는다. 년전에 조계사 뜰의 천년기념물 백송이 병들었다고 매스컴에서 난리가 난 적 있다. 어렵게 구해 심은 백송이 너무 무성해서 전지한 것이다. 백송은 소나무 계통이라 송진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싸르륵 싸르륵 탁탁 소릴 내고 불똥을 튀기면서 윙윙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내품는다. 향기를 풍기는 것은 향나무다. 향나무는 향수를 몸에 바른 여인처럼 곁에 가면 좋은 냄새가 난다. 일단 불 붙어 타들어가는 기세는 정열적인 여인이다. 마른 섶에 불 붙인 것 같다. 화르르 화르르 빨간 불꽃이 숨가쁘게 타들어가서는 이윽고 재로 변한다.

  정원에서 나온 땔감들이라, 장미, 매화, 감나무, 자두, 앵두, 왕보리수, 목련, 철쭉같은 것 들이다. 이들을 태우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도 이런 것이었다 싶다.

 장미와 매화는 얼마나 그 용모가 곱고 향기롭던가. 시인묵객이 가장 사랑하던 것이다. 그러나 화목으로는 완전 낙제다. 매화는 그런대로 속이라도 단단해서 불이라도 오래 간다. 하지만 장미줄기는 속 빈 강정이다. 종이처럼 금방 훨훨 쉽게 타버리고 만다. 장미 줄기가 타서 재가 되는 것을 보면 살아생전 화려하고 농염한 향기 풍기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나 싶다. 화려함도 일장춘몽, 남긴 것은 미인처럼 가시로 사람을 찌르는 그 성질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감나무 자두나무는 타는 모습이 듬직하다. 평범하지만 불길은 오래 간다. 먹감나무로 만든 장농은 장농으론 최고품으로 친다. 아름다운 초겨울 운치를 보여주는 홍시는 한 편의 시였다. 자두도 그렇다. 7월의 붉은 자두 한 알은 소녀의 입에 물렸을 때, 그냥 한 폭 그림이다. 앵두나무와 왕보리수는 어떤가. 빨간 앵두는 홍보석이다. 비온 뒤 떨어지는 앵두꽃은 차마 애초로워 볼 수 없다. 왕보리수 열매는 남쪽 바다 외로운 섬을 생각나게 한다. 아무도 모르는 섬에서 혼자 익는 붉은 열매다. 목련과 철쭉도 그렇다. 나무에 피는 연꽃같다는 목련이다. 봄에 만산첩첩 비단옷 입히는 산속 미인이 철쭉이다.

 한결같이 꽃과 열매 아름답던 나무들이고, 나의 사랑을 받던 친구였다. 그래 그런지 나무를 불구덩이에 던져넣고, 타서 재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인간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사람도  벽제 화장터 불구덩이에 들어가면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장미처럼 요염한 용모의 여인도, 매화처럼 고결한 지조를 지닌 고사(高士)도 마찬가지다. 홍시처럼 달콤한 성품도, 자두처럼 새콤달콤한 성품도 마찬가지다. 앵두의 입술, 왕보리수의 외로움도 마찬가지고, 목련의 순결, 철쭉의 순박함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사랑하고  가치를 매기던 이 세상  모든 것이 한결같이 마찬가지였다. 나무와 섞어 같이 태워버린 반쯤 썩은 하얀 페인트칠 된 판자쪽이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은 불속에서는 동일하였다. 재와 연기였던 것이다. 

 모닥불은 뭔가 사람을 빨아드리고, 사색을 하게하는 마력이 있다. 나는 불을 숭배한 배화교(拜火敎)가 어떤 종교인지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불을 응시하면서, 배화교를 생각해보았다. 배화교의 창시자 <짜라투스트라>를 본인 저서의 제목으로 채택했던 니체를 생각해보았다. <불이 만물의 근원이다>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를 생각해보았다. 나무를 태우면서, 나는 적어도 하나의 교훈은 얻는다. 세상의 학식이나 지조, 용모나 성품, 외로움, 순결, 순박함같은, 그 모든 가치가 전부가 아니란 것을. 그 모두가 우리 곁을  지나간 바람이었다는 것을. 그 모두가 집착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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