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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연평도 의무관 님

2010.12.02 19:39

추재옥*63 Views:8261

Korea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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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의무관님’

입력일자: 2010-12-01 (수) - 추 재 옥 (의사)


연평도 해병대 초임 발령을 받은 젊은 군의관에게 섬사람들은 ‘의무관님’이라는 황해도 존칭어로 나를 불러주며 깍듯하게 대해주었다. 주민들 대부분은 육지에서 피난나와 건너편 보이는 고향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가보지는 못하는 망향의 설움을 달래며 살고 있었다.

백령호 똑딱선은 인천까지 가는데 13시간 이상 걸리고 그나마 풍랑 일고 바람부는 날에는 배가 갯벌에 비스듬히 누워 자빠져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응급환자가 생기면 밤낮없이 천주교 수녀들이 호롱등잔불을 들고 와서 나를 깨우곤 했다. 자궁외 임신, 맹장염이 터져 복막염이 되버린 환자, 출산 때 머리가 먼저 나오는 대신 손이 먼저 달랑 나왔던 산모, 포탄을 주우러 갔다가 불발탄이 터져 배창자가 튀어나왔던 소년, 미국 신부가 종부성사를 끝낸 환자가 소생했던 등등 예수님의 기적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갑자기 서울 본부에서 나오라는 급전을 받고 해병대 군복차림으로 해군본부에 도착해보니 빽이 든든했던 내 군의관 동기들은 정장을 하고 본부실 책상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그들은 마치 청동오리새끼들처럼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는 초창기라 박정희대통령이 모든 것을 일급기밀로 했기 때문에 파병얘기는 전화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연평도로 되돌아갈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당시 내 모든 재산 해군 제복 구두 의학 서적등 모두를 섬에 그대로 남겨둔채 전쟁터로 향해야 했다.
서울갔다 3일이면 되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내 첫사랑 연인 섬마을 여선생을 다시는 못 볼거라는 생각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종로길을 걸으면서 밤새도록 소리내어 울었다.

저 지난밤 북한이 연평도에 퍼부었던 무차별 포격은 전쟁을 방불케하고 평화스런 섬마을 전체가 시커먼 포염으로 가득 차있다. 내가 잠자던 해병대 막사도 화염 속에 타들어간다. 침통하고 착잡한 심정이다. 우리는 북한 반대쪽 산기슭 아래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주둔하고 있었는데도 장병 2명이 희생당했고 민간 사망자들까지 포함해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분명히 치밀하게 계획된 정조준 포격임에 틀림없다. 부둣가 평지에있던 면사무소와 민가도 쑥대밭이 되었다. 공개처형, 인간방패, 입에 담기조차 더러운 용어들은 삼국지나 동물세계에서 쓰는 말들이다.

너무나 큰 충격이고 분노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천안함 침몰사건의 상흔이 아직도 아물기도 전에 어떻게 차마 이런 끔찍한 만행을 또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북과 중국은 이 생지옥같은 와중에도 싱글벙글 서로 만나서 경협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동족살생 피의 댓가인가. 사람 죽이고 아직도 피가 마르기도 전에 희생자들 앞에서 잔치를 벌리는 인면수심, 금수강산을 잿더미로 초토화하려는 짐승만도 못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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