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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전 오늘, 우리는 파독(派獨) 광부가 되었습니다

                         권이종 수필, Source: Chosun.com

2010122002050_0.jpg공사판에서 대학생이 내게 한마디…
'권형, 나하고 독일 갈 생각 없수?'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나…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실업자가 250만명이던 시절 하루 16시간씩 악착같이 일하며
'광부와 간호사'로 결혼식 치른 나는 '교수 광부'가 되었다.

매년 찬바람이 부는 겨울, 12월이 되면 아득한 옛일이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63년 12월 21일, 그날은 120명의 한국 광부가 외화벌이를 위해 이역만리 독일 땅을 처음 밟은 날이었다. 1977년까지 독일에 간 광부가 7968명.

파독광부(派獨鑛夫)! 지금의 젊은이들에겐 낯선 단어겠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자원은 물론 수출할 만한 기술력도 없었기에 인력(人力), 사람도 수출했다. 광부뿐이 아니라 간호사 그리고 군인까지.

나는 1940년 오지 중의 오지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또한 춘궁기 보릿고개를 ‘제대로’ 겪은 빈농의 자손이다. 날마다 1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녀야 했고, 하루 두 끼 밥 먹기가 힘들어 칡뿌리·소나무 껍질·진달래꽃을 캐 먹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릴 적부터 간직해 온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북 전주로 가서 중학교 시험을 쳤다. 그러나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쌀 한 가마니를 빌리려 동네 부잣집 앞마당에서 하루를 꼬박 버티셨다. 자식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으셨으면 그러셨을까? 돌아가시기 전 40여일이나 물 한 모금 못 넘기시면서도, 막내아들의 사진과 박사학위증을 품에서 안 놓으셨던 어머니였다.

간신히 고교를 졸업했지만 나이가 차 군입대 영장이 나왔고, 군복무를 마친 뒤 고향에 내려왔으나 가난의 그림자는 여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전 국민 2400만명에 실업자가 250만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공사판에서 일하던 중 함께 일하던 한양대 공대생이 내게 한마디 던졌다. “권형, 나하고 독일 갈 생각 없수?” 파독 광부로 가자는 얘기였다.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해방되고 싶어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0122002050_1.jpg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하지만 광산 일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헬멧과 안전화를 착용한 뒤, 4L 이상의 물통, 무릎보호대, 충전배터리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소위 ‘막장’이라는 지하 800m 이상의 갱도로 내려간다. 숨이 콱콱 막히는 지하갱도에서 땀이 밴 속옷은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장화 안에 가득 고인 땀을 몇 번이나 쏟아내야 했다.
아무리 안전모를 쓰고 있지만 돌이 떨어지면서 팔과 얼굴, 등에 난 상처에 석탄가루가 박히면서 그 자리가 곪고 아물면서 석탄은 그대로 있었다. 광부 문신이다. 나는 몸에 박힌 석탄가루를 일일이 파내고 타월로 빡빡 문지르기도 했지만 지울 수 없었다. 지금도 내 얼굴에는 검은 점들이 검버섯처럼 남아있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희미한 헬멧의 램프에 의존해 하루 16시간씩 연장근무를 하며 탄을 캐냈다. 막장일은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글뤽 아우프(Gl?jck auf)”라고 인사를 했을까. ‘죽지 말고 살아서 지상에 올라오라’는 뜻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서 국내로 보낸 돈이 당시 우리나라 외화수입의 3분의 1이 됐다니….

이렇게 힘든 3년이 지나 귀국을 앞둔 내게 독일 친구들 덕분에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다. 인생의 두 번째 기회였다. 독일 국립사범대인 아헨교원대에 입학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했고,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어 강제 출국당할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파독간호사 출신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에서 같은 고향사람을 만났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그녀를 보기 위해 40km나 떨어진 곳을 자전거로 왕복하면서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다. 2년 만에 우리는 황금커플이라는 ‘광부와 간호사’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주말이면 함께 된장국·청국장·김치찌개 등의 음식을 해 먹었다.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둘 다 아직 학생 신분인지라 집을 얻을 돈이 없어 처음에는 따로 살아야 했고, 간신히 합친 후에도 서로 학업과 생활에 바빠 아이를 독일인 가정에 맡겼다. 그러나 그만 사고로 생후 5개월 된 첫딸은 하늘나라로 갔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사랑을 제대로 베풀지 못한 죄책감에 서로 부둥켜안고 피눈물을 쏟았다. 나는 12년 만에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 귀국했다.

‘교수가 된 광부.’ 파란만장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의 삶이지만 어느덧 고희(古稀)가 됐다. 지금도 나를 일깨워주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이었다.

함보른 탄광에 1964년 12월 대통령 부부가 찾아왔고 식순에 따라 애국가가 시작되자, 감격에 찬 광부와 간호사들이 흐느끼기 시작했고 곧이어 울음바다가 됐다. “가난 때문에 이역만리 지하 수천 미터에서 일하는 새까만 여러분 얼굴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까지 이렇게 못살지만, 후손들에게는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대통령의 연설에 우리는 울고 또 울었다. 육영수 여사도 한 사람 한 사람 껴안고 함께 울었다. 그날 흘렸던 뜨거운 눈물의 기억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나를 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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