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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esota Project Professors: Personal recollections(2)

Story of 이영균, George Schimert, Walton Lillehei  for Korean heart surgery

at its early stage

조중행

 
 

Minnesota project 로 부터 가장 뚜렷한 영향을 받은 분야가 흉부외과, 특히 심장수술분야

라고 생각된다. 1953 Philadelphia John Gibbon이 인공 심폐기를써서 Atrial

Septal Defect repair 에 성공했으나, 추후 10 여명의 환자의 심장수술을 모두 실패

함으로써 그 이상의 수술 시도를 포기할 즈음, 심장수술의 중심은 Minnesota 대학 외과

로 옮겨가게 되었다. 

 

1950 년대 중반부터 저체온하에서 ASD 같은 간단한 선천성 심장 질환 수술은 성공했으나

수술에 더 시간이 걸리는 조금이라도 복잡한 수술을 위해서는 인공심폐기의 개선이나

다른 보조수단이 절실했다.  MInnesota대학 외과 팀에서 Wangensteen(외과 과장) 휘하의  교수들 특히 Walton Lillehei, Richard Varco, Dewall   특히 Lillehei  부모중 한사람을 심폐기 대신 연결하여 쓰는 Cross Circulation (사진 참조) 방법 그리고 곧 이어 좀 더 진전된 심폐기를 개발 (Sigma Motor Pump와Lillehei-Dewall  Bubble oxygenator), 복잡한 심장 수술도 성공-명실공히 심장수술이라는 의학의 신세계에서  메카가 되었다.

 

이때 마침  서울의대 와 Minnesota Project가 시작 되었다. Lillehei 의 전기를 읽어

보면 cross circulation 이나 Minnesota식 심폐기는  미네소타 목장에서 우유짜서

Container로 옮기는 pump tube system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다(본인의

: 인공심폐기  2015 년 12  월 24  posting  참조)(King of Hearts,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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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esota 연수시 Lillehei 교수(왼쪽 끝) 회진-이영균 교수 오른쪽 끝,  머리가 좀  벗겨진 분이  George Schimert(나중에 자문관으로 서울 근무 후에 Buffalo대학),  앞쪽 분이 Intern Vincent Gott (나중 Hopkins 과장)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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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lehei 교수가 Cross circulation으로 ,오른 쪽에  엄마나(아빠)혈관에 왼쪽의 환아를 연결- 심장수술을하는 모습

 
 

당시 이영균 교수는 30대 중반의 조교수로 학생때 해부학 실험후 심장을 본적이

없었고(본인 기술), 분과가 되기 전 외과에서 신경외과 환자를 주로 치료하셨던

분이다.  당시 학장이던 명주완 교수가 이영균교수를  차세대 흉부외과의로 지정

(본인의 의사 보다는)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한다.

 

당시 미네소타 외과에는 위에 말한 분들외에 John Lewis, Christiaan Barnard(남아

:최초심장이식),Norman Shumway(나중 Stanford 과장 심장이식 의 확립),

Dewall(나중 University of Chicago 과장), George Schimert(U of NY at Buffalo

과장), Vincent Gott(Johns Hopkins 외과과장)등이 Junior staff Resident ,

Fellow들로 있었다.

 

이중 George Schimert fellowship 을 마치자 마자 Wangensteen

Lillehei 명령으로 Minnesota Project의 한국 자문관으로 나가(이영균 교수 보다

먼저) 1년 반 동안 한국 의학 교육 외과 교육의 발전을 위해 진료 자문했고 실제

로 한국 에서 Open Heart Surgery 를 제일 먼저 시도 실패(ASD 6 시간 생존)

한 기록이 남아 있고, 나중에 미국에서(1978-1979)그의 밑에서 수련받으며 들은

이야기로는 한국 최초로 Constrictive Pericarditis(과거에는 모두 LIVER CIRRHOSIS

로 생각하고 치료 하던 병)를 진단하고 수술한 것 같다.

 

이 분은 내가 본 Cardiac Surgeon중 가장 완벽한 Technitian 중의 한 분으로 심장수술에서

수술장 내의 기술 Mistake가 결국 환자에게  Mortality complication으로 이어지는 그

용서없는 폐해를 몸으로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정면 교사로써, 수술장에서 Unhurried

Technically Perfect Repair를 하도록  가르쳐 주신 분이다.  레지덴트마친 후 미국

학회에서 두번 아시아 학회에서 한번, 다시 만나 뵈웠고, 그리고 2000년 그의 장례식

에 갔었다.

몇 명의 자녀중 한 분은 한국 근무시 입양한 자녀였다. 

 

Avid Sailor 로 그가 소유했던  78 Feet 짜리 VIXEN 2 는 미국의 High Rolling Sailor 들이

군침 흘리던 Sail Boat로 수술 중에는 가끔 이 배를 유지하기 위해 일한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1983년 아시아 흉부외과 학회에서 도미후 처음 귀국, 내가 “Bentall Procedure”

에 대한 presentation을 한 자리에  Schimert, Lillehei 등이 있었는데, 같이 사진이

라도 찍어 두었으면 손자들에게 이야기 꺼리가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이영균 교수;(1921-1994)

6-25 전쟁후 1957-1959  36 세의 신참 외과의사로 본인 의사 보다는 학장과

외과 윗분들의 뜻에 따라 한국 서울 의대 심장외과 개척의 사명을 띠고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2년간 Lillehei하 수련 후 돌아와서, GDP 백불도 안되는 나라,한국에서

심장수술을 시작한다는 것이 어땠을런지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실패,시행착오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다시 수련을 받기 위해  Sweden Karolinska Institute Viking Bjork

밑에서 다시 1년동안 수련을(1965-1966)받고 돌아온  후 조금낳아 졌을까? .  

아마도 이영균 선생의 노력은 맨땅에 머리밖을 수 밖에  없는 여건이었을 듯---

 

당시 이영균 교수와 나이 서너살 차이 안나는 Lilehei 수와 나눈 39통의 편지는 당시

한국 의료 실정과, 한 외과의사, 교수 또 가장으로써의 욕망, 고민, 실망감 등이 편지 마다

절실하게 표현되어 있다.(참고 논문)

 

내가 인턴 레지덴트하던 1969-1970 년대의 SNUH 사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내가 미국 온 몇 년후 1977-8년 국민보험이 실시되고 나서야 심장수술은 제

궤도에 올랐고 1980 년대 전두환 대통령부인이 재벌의 지원으로 시작한 심장

재단의 협력으로 한국 의 심장 수술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나는 지금도 70 년 초  이영균 교수에게 수술받고 사망한 한 여아와 그 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당시 한국에 는 미국 이민 열풍이 불기 시작 했었고, 한 젊은 아빠

는 이민가기 전 VSD 진단을 받은 4-5 세 되 딸아이가 VSD 수술을 받아서 건강

한 몸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하였다. 당시 우리의 VSD 수술 실적은 한 40 %

mortality는 되었을 듯—--나는 수술 실패로 죽은 여아를 품에 꼭 안고 눈물 흘리

그 아빠의 처절한 회한의 울음소리를 잊을 수 없다. 아마도 이때부터 나의 도미의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었는지??  내가 겪었던 이교수의 수많은 실패와 한국의 실정은

현재 남아있는 이영균 교수와 Lillehei 사이의 많은 편지들에서  절절히 느껴지며

개업한 동료들의 처지를 부러워 하는데에 이르러서는 가슴 아련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어느날 저녁 쏘련 문학이야기가 나온 자리에서 톨스토이나 토스토에프스키 정도

아는 나에게 자신이 읽었던 Sholokhov “And Quiet Flows the Don” 이야기를

들려주며 경성제국대학 출신의 교양의 깊이로 젊은 제자의 감수성을 자극 하시기

도 했다.  1994   esophageal cancer 로 돌아가시기 몇 주전 나는 미국에서 병

실의 선생에게  전화---허공에 뜬 몇 마디로 이별의 인사를 대신하였다.

 

Walton Lillehei:

한국의 심장 수술 초기에  제자 이영균, George Schimert 를 통하여 심장수술

의 기술 전파는 물론 Pump ,Oxygenator,Heat exchanger 같은 심장수술 필수의

기계(아마도 쓰다가 수명이 거의 다해가는 기계는 아니였는지?)는 물론 Heparin

같은 약제제, Suture Material 도 미네소타에서 서울로 보낸온 기록/경험을 볼 때

그의 공헌은 서울대학의 입장에서 기억되어야 할것이다.

1970 년 이 교수께서 첫번째 Mitral Valve Replacement 할때  미네소타에서 갖어온

2-0 Silk Suture 쓴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인가 분당병원 개원후 1,000 case 째의 판막 수술을 기념하는자리에서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여 늙은이의 태를 보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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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20세기 외과의 중  임상의사로 최고의 영예인 Lasker Award 는 물론 실제

Nobel 상 후보로도 몇번 올랐었으나 세금 문제, Sybaritic Life style, Paper 

Work 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결국은 범죄자로 유죄 판결(Walter Mondale

등 미네소타의 많은 유지들이 변론) , Cornell 대학 과장 자리에서 해임,

여기에  백내장으로  젊은 나이에 수술을 그만두고 10 여년 실의의 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심장외과 관련 많은 특허,  idea 는 판막(St Jude),  Pacemaker 회사

(Medtronic)에서 쓰였고 말년에 한국도 몇번 방문 제자 이영균 교수의 업적을 눈으로

보았을것이다.  

지금도 놀라운 것은 1950년대 초-중반 부모를 인공 심폐기대신 써서(Cross Circulation) 수술들이 VSD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외에도  지금의 standard 로도 복잡한 수술들,

AV Canal, Tetralogy of Fallot 같은 환자가 많이 있었고(Mortality 35 % +/-),80 년대

이들 환자들의 30여년 follow up 결과를 들으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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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외과의사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룸과 동시에  거기에 못지않는 스캔들,

화려하면서도 무절제했던, 극적인 생애는 여러가지 전기, 후학들의 논문으로

알려져있다.

  

참고:1) Analysis of 39 letters concerned with the late Professor Lee YK &                    

             Dr.Lillehei(Apr. 1958-Dec.1961)WG Kim.,Korean J Thorac. & CV Surg. 2009:42:543

          2) A Cardiac Surgeon from USA who had worked in Korea a Half Century Ago

          ---Dr.George Schimert-  WG Kim., Korean J Thor. & CV Surg., 2008:41:189

         3) King of Hearts, the true Story of a Maverick; G Wayne Miller, 2000

  Excerpts from the letters

1)     from LeeYK to Wangensteen(1959);” I am sure that with your benevolent consideration and understanding of this situation you would grant help to me,so that this new field of surgery can be started in a far away country, Korea for the benefit of my country people,my school, and my sincere desire,sir”—asking the chief to extend the stay in Minn. For another year---

2)    from LeeYK to Lillehei(1961);”The dean and two professors provided me some money to buy blood for the pump(HL machine), enough for three cases---- Even by myself I

doubt the wisdom to tackle with such highly risky cases from the beginning. It is simply imposible to get open heart cases, none the less choosing out of stocks.—심폐기에 넣을 피를 미리 돈을 내고 사야했던  그 시절----

3)     from Lee YK to lillehei(1961 June):”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approval of the pump-oxygenator parts----I am running pump three times a week in the dog lab---“

4)    from Lillehei to Lee YK(1961 July):”Your April 11 letter asked us to supply you, no charge, a quantity of our Heparin solution for your use in the University. We will be pleased to cooperate by supply  4529, a 72X 500 ml bottles---“ heparin도 구하기 힘든 시절

5)     from Lillehei to Lee YK(1963,May);”I do hope,however, that you do not become discouraged because many times victory comes in the darkest hours.----- the ball valves(인조판막) are rather expensive coming to $225.00 each. If the funds do become available, I would be certainly happy to advise yoy as the minimum order---“

6)    from Lee YK to Lillehei(1965);”Even though some of my college alumni are making lots of money even by US standard by practicing, I have to hang on-----my desire is at least some steady results have to be established in open heart surgery before I quit for a better personal living for me and my family-----Your new article reprints have been my inspiration all the time------“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하신 듯---“

 

 

                                               prepared by JH Choh.,MD.,(class of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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