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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에즈라 파운드의 파리 시절

2011.07.09 22:23

정유석*64 Views:6614

1916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현대 서구문명에 대한 파운드의 믿음을 크게 깨트린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1918년 '섹스터스 프로피시어스에 대한 송가'(Homage to Sextus Propertius)란 중요한 시를 발표한다. 서기 1세기 경에 살았던 로마 시인의 음률을 이용하여 개인의 존재와 애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풍미했던 제국주의적이며 맹목적인 국수주의를 비판한 작품이었다. 1921년에는 '휴 셀윈 모벌리' (Hugh Selwyn Mauberley)란 시를 발표했다. 이 시에서도 그는 역시 전쟁이란 야만적인 문화에서 태어난 “제 신들의 황혼”(Gotterdamering, 바그너의 4부로 된 거작 오페라의 마지막 편)같은 추물로 폄하했다.

1920년 런던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로 갔다. 당시 파리에는 소위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는 어네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거트루드 스타인 같은 작가들이 센느 강변 웨스트 뱅크에 진을 치고 있었다. 파운드는 그들과 어울리면서 신진 작가인 T. S. 엘리엇, e. e. 커밍스, 로버트 프로스트, 에이미 로월 등에게 조언해 주며 친교를 넓혔다. 그 시절 그는 헤밍웨이보다 14년이나 연상인데도 불구하고 자주 만나 술을 마시며 가깝게 지냈다. 자연스럽게 그는 자연히 일차대전 후 파리를 중심으로 형셩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주도적인 처지가 되었다.  한동안 헤밍웨이는 파운드에게 권투를 가르쳐 주면서 스파링 파트너 역할도 맡았다. 헤밍웨이는 당시의 에즈라 파운드를 상당히 호의적으로 묘사했다.

“파운드가 부인 도로시와 함께 살던 숙소는 노트르담-데-샹 거리에 있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스튜디오가 궁전같이 화려했다면 그들의 스튜디오는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그 좁은 스튜디오에는 많은 미술가들이 그린 파운드의 초상화나 조각으로 넘쳐흘렀다. 시인은 아주 만족해서 이들을 자랑했다.”

헤밍웨이가 보기에는 도로시 초상이 제일 나았다. 실제로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으며 신체가 놀랍게도 균형 잡혀 발달되었다. “파운드는 친구들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했다. 대부분은 출중했지만 그 중에는 형편없는 그림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논쟁을 벌인 적이 없다. 그가 그런 작품을 논할 때에는 나는 단순히 입을 꽉 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즈라는 나에 비해 남들에게 훨씬 친절했고 기독교인답게 행동했다. 그의 글 쓰기는 잘 풀릴 때면 너무나도 완벽했다. 그는 글에서 실수가 있어도 아주 진지했으며 자신의 오류까지도 사랑했다. 그는 남에게 너무 친절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항상 성자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가 화를 내기는 했다. 그러나 아마 성자들도 가끔씩 성질을 부릴 때가 있겠지.”

파리 시절부터 그는 여생을 통해 연작으로 지은 ‘칸토’(Canto)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역사를 포함한 시”라고 말했지만 시와 멜로디가 겹쳐 있어서 상당히 음악성이 가미되어 있다. “칸토”를 글자 그대로 하자면 ‘노래’(Song)로 번역할 수 있다. 34세가 되던 1919년 파운드는 드뷰시의 인상주의적 작품에 반감을 갖고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파리에 머무를 당시 그는 ‘la testament’와 ‘cavalcanti’라는 두 편의 오페라를 완성시켰는데 모두 중세기를 배경으로 했다. 또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작품 몇 곡도 작곡했다.

1921년에서 1924년 사이 파운드는 미국인 피아니스트면서 작곡가인 조지 안티일과 가깝게 지냈다. 이 피아니스트에게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올가 러지란 연주 동반자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다가 1922년 에즈라는 올가와 성적 관계를 갖는다. 파운드 부부와 올가 사이의 불편한 삼각 관계는 그의 말년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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