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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1 - 접붙이기

2011.08.23 12:01

이기우*71문리대 Views:6700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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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접붙이기


봄이 왔다.
아직 쌀쌀해도 봄은 봄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벽살이 일찍 퍼지면서 골짜기의 아른한 안개들을
걷어 가면 갑자기 어제와는 다른 오늘 하루가 시작 되는 것 같다.

보리밭 두렁에 냉이가 나오고 논 웅덩이에 미나리가 입맛을 돋군다.
강가의 모래 시세(細沙)가 많은 땅콩 심을 빈 밭에는 꽃다지가 키를
길게 세우고 노란꽃을 내밀려 하고 있다.

여기저기 헤치고 나오는 들풀이 파랗고 애들이 처마 밑 황토벽
양지쪽에서 재잘대며 따듯한 햇살을 때 묻은 겨울 솜옷에 바르고 있다.

암탉이 닭장에서 알을 품고 두 눈을 부릅뜨고 훼방꾼이 없는가
살피고 목덜미가 새카맣고 꼬리 긴 갈색의 장닭이 머리에 빨간
벼슬을 고추 세우고 턱밑에는 늘어진 벼슬을 흔들며 마당에서
파수를 보고 있다.

아낙네들은 해묵은 빨래를 방망이로 두둘겨 빨아 가마솥에 삶아 풀 멕여
널어 말리고 뜯어온 봄나물을 데쳐 먹고 한 웅큼이라도 남겨 말리고 있다.

햇볕이 밝아지니 그늘진 외양간이나 돼지우리가 더 침침해 보인다.
바쁜 주인 따라 소들은 일찌감치 들로 나갔고 새카만 털이 숭숭한 돼지들은
깔아놓은 짚 속을 파고들어 게으른 늦잠을 자다가 아침 설거지 구정물에
쌀겨 바가지를 들고 먹이 주러 오는 것을 알면 꿀꿀 대면서 다가온다.

아침나절 작은댁 앞마당에서 홍천댁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같이 갈 데가
있으니 들어오라고 하신다.
나는 어디든지 가는 것이 좋아서 얼른 따라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돼지 우리 앞에서 자그마한 암퇘지를 몰고 나오시며
동네 앞 언덕에 있는 과수원 집으로 돼지 접붙이러 가자고 하셨다.

앞 언덕배기에 있는 과수원은 해방 전에 일본 사람이 하던 포도
과수원 이었는데 지금도 받쳐 논 나무기둥에 넝쿨진 포도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데 포도 농사는 안하고 해방 후 타곳에서 일반
농사짓는 사람이 와서 사는 집이다.

나는 하얀 모래사장과 시시때때로 다른 빛깔의 강물이 반짝이는 것이
보이고 멀리 그냥 떠 있는 것만 같아 보이는 나룻배가 와서 개미같은
사람들을 내려주고 개미같은 사람들을 싣고 가는 것이 보이는 과수원
집을 무척 부러워 했다.
그리고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도는 맛있는 포도를 실컷 먹을 수 있는
포도원이 왜 포도 농사를 안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포도를 내다 팔수 있는 판로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고 포도 농사도 무성한 가지를 치고 거름을 주고 포도송이를 관리해야
제대로 수확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아주머니와 같이 동네 앞 논두렁 길을 따라 무 잘라 놓은 것 같이
뭉뚝한 주둥이에 크게 뚫린 두 코구멍이 반짝이며 눈이 게슴츠레
귀여운 어린 암퇘지를 몰면서 과수원 집으로 갔다.
아주머니는 돼지를 새끼줄로 매지도 않고 부지깽이 하나 들고 몰고 갔다.
시골에서 개나 닭이나 돼지를 기르면서 끈으로 묶어 기르는 것을 못 보았다.
가축이란 놈들이 자기 집을 아는 모양이고 멀리 도망가지 않고
집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집안으로 찾아 들어 가는 것 같았다.

과수원집에는 젊은 부부와 나보다 두 세살 어려 보이는 다섯 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있었다.
동네와 별로 왕래를 안 하고 외따로 살고 있어서 그랬는지 처음 보는
사내아이는 우리를 무척 반가와 하였다.
아주머니와 과수원집 아저씨가 미리 약속이 되었는지 곧바로 돼지우리
앞에 수퇘지 한 마리를 풀어 내놓으며 우리가 몰고 간 작은 암퇘지와
어울리기를 바랬다.
홍천댁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빼꼼이 아는 척만 했던 주인 여자를
찾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돼지들은 꿀꿀 꽥꽥대며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낯가림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 같은 예닐곱 살짜리 애들도 접붙이가 무엇인가는 알았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일찍 깨인다고 하지만 나는 농촌에 사는 아이들이
더 많은 자연환경에 접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고 가축들의 생식기나
번식하는데 대한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 또래의 시골 동네 애들과 놀면서 그들의 경험이 다양하고
일반 상식이 모두 나보다 앞서 있는 것을 알았다.
서울 사는 사람들 빼고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서울 구경하기가
소원이었으니까 서울의 4 대문 궁궐들 중앙청 화신 백화점 등이나
전차가 다니는 전기불이 있는 서울에 대한 상식을 제외 하고 말이다.

얼른 수퇘지가 암퇘지를 올라타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수퇘지가 올라타려고 하면 암퇘지가 꽥꽥대며 비껴 나고는 했다.
어쩌다 수퇘지가 제대로 올라타는 것 같으면 우리 둘이는 좋아서
큰소리로 부엌 쪽을 향해 뛰어 가면서
“아주머니~~아주머니~~ 되요~~ 올라탔어요~~”
하며 알렸다.
그러다가 암퇘지가 다시 삐그러져 나가면
큰소리로 “아주머니~~ 아직 안됐어요~~” 하고 둘이 목청을 다해서
보고를 하고 되돌아서 돼지우리 쪽으로 뛰었다.

또다시 수퇘지가 올라타는 것 같으면 이제야말로 제대로 일이 되는 가
보려고 고개를 땅바닥까지 구부리고는 수놈의 그것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돼지란 놈들은 다리가 짧아서 인지 원래 그것이 잘 안 보이는
것인지 수놈의 그 것을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황소나 숫말은 애들의 눈높이로 쳐다보면 그놈들의
얼굴보다 배 가운데 붙어 있는 수놈의 그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가끔은 개들이 올라타고 있는 것이나 뒤로 맞붙어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서로 붙어 있는 개들을 안 보려고 애쓰는 것
같으면서도 애들은 킬킬거리며 어른들은 애들한테 보지 말라고
야단치면서 힐끔힐끔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과수원집 아들과 내가 숫하게 사방팔방 뛰면서 돼지들의 접붙이를
중계 보고를 했어도 일이 성사가 될랑 말랑 하는 것 같았다.

야속 하게도 부엌에서 우리들의 보고에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던
홍천댁이 나오면서 그냥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일이 성사가 안 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와서 조금 더 해보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다음에 다시 하자며 과수원집 주인남자에게 암퇘지를
그냥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과수원집 아저씨도 빙그레 웃으시며 숫퇘지를 우리로 집어 넣었다.
과수원집 아이도 나처럼 무척 안타까와 했다.

아주머니와 나는 혼자 꿀꿀대며 짧은 다리로 논두렁을 걸어가는 돼지를
앞세우고 부지깽이로 돼지를 채근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머니는 돼지를 우리에 가두고 곧바로 외갓집으로 가서 외숙모가
계신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빠와 언니들한테 오늘의 일들을 떠벌리고 싶어 찾아 보았지만
방안에 없는 것 같아 부엌에 가서 물 한 바가지 마시고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외숙모와 홍천댁이 하는 말을 무심결에 들었다.
홍천댁의 말은 돼지 접붙이려는데 내가 하도 수선을 떠는 통에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는 말이고 외숙모님은 내가 아직 철부지 이니까
그렇다는 이야기 이고 다음에 그런 일은 큰외숙께 맡기라고 하셨다.
나는 부엌문에서 안 들어 갈 수도 없고 해서 아무 것도 못 들은 척 하고
물 몇 모금 마시고 뒷 뜰 감나무 밑으로 나갔다.
외숙모와 홍천댁도 나보고는 아무일 없은 듯 물만 바가지에 담아주었다.

외갓집은 뒷 마당 집 모퉁이에 그 시대의 신식으로 목욕탕을 붙여 놓았다.
밑에서 불을 때는 커다란 목욕통 무쇠솥을 세멘트로 발라 놓고 나무 발판을 깔고
나무 뚜껑을 덮어 놓고 밖에서 밟고 올라가는 세멘트 계단 세층을
만들어 놓았다.
이 목욕탕은 제사 때 외삼촌이 목욕 하시는 것 이외에 애들은 일년에
한번 쓸가 말가 이다.
여름에는 아무데서나 목욕하고 겨울에는 어른들이 추운데 물 긷고 장작
때고 일하기 힘들고 애들은 목욕하기 싫고 해서이다.
일년에 한번 쓸가 말가 하는 목욕탕이 애들한테는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숨바꼭질 할 때는 물론 화가 나서 숨을 때도 제일 먼저 간다.
애들이 숨기에 알맞게 큰 빈 무쇠 통속에 들어가 나무 판대기를 깔고 앉아
머리 위로 나무 뚜껑까지 덮으면 완전히 세상과 격리된 느낌이다.
어른들이 없어진 애들을 찾을 때도 제일 먼저 찾아보는 곳도 이곳이다.

나는 아무소리도 못들은 척 하고 목욕통 속에 들어가서 뚜껑을
덮고 앉아 깊은 생각을 했다.
나는 그동안 듣는 대로 배운 대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잘 하는 줄 알았다.
엄마말도 잘 듣고 남도 돕고 모르는 것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철부지라니.
접붙이 하면서 과부된 아주머니를 민망하게 만들었다니.
나로서는 충격적 이었다.

나는
일곱 살 때 듣는 대로 다 아는 줄 알았다.
열일곱 살 때는 배우는 대로 다 아는 줄 알았다.
스무 일곱 살 때는 세상을 다 아는 줄 알았다.
내가 서른일곱 살 때는 얼마나 기고만장 했을가.
........

이제부터 10년 후에 나를 돌아본다면 또 얼마나 부끄러울가.
무쇠솥 목욕탕 속에서 뚜껑을 덮고 앉아 혼자 생각하기보다
내 앞의 사람과 옆의 사람과 함께하는 매순간 이 자리에서
남을 배려하는 생각을 하여야 겠다.

2010.12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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