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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4 - 개가(改嫁)

2011.08.29 06:46

이기우*71문리대 Views:6471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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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개가(改嫁)


개가란 시집갔던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을 말한다.
이조의 유학숭상에서 여자의 재혼을 법으로 금했다니 최근 이라고 해도
지금으로 부터 반세기가 넘는 1950대 개가란 얼마나 어려운 일 이었을 가.
이것은 본인의 문제 보다는 집안 가문의 문제 이었다.
오죽하면 팔자를 고친다고 말 했을 가.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집으로 가니 팔자를 고친다는
표현이 맞는다.

내가 6.25 피난 갔던 경기도 여주 외갓집 작은댁 할아버지 이야기 이다.
작은댁 할아버지께서는 서둘러 아들 상청을 치우라고 하셨다.
앞세운 자식 상청을 오래 두고 볼 수 도 없었고 전쟁 중이라
많은 예절이 간소화 되고 생략 되었다.

홍천댁은 흰 상복을 입고 아침저녁 상식 올리고 초하루 보름
삭망(朔望)에는 곡(哭)을 하고 남편의 혼이라도 붙들고 싶었다.
막상 다 치우면 허전 하고 쓸쓸해 빈자리가 더 클 것 같았다.

작은 할아버지는 안방을 말끔히 치우라고 하시며 새 도배장판에
새 이부자리를 마련하게 하셨다.
그나마 웃 방의 작은 할머니를 아예 작은 사랑채로 내려 보내셨다.
그리고는 소실을 들인다고 하셨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지만 누구도 말할 사람이 없었다.
소시 적부터 소박이신 작은 할머니가 외동아들을 잃으니 더욱이
대접을 못 받으시고 뵙기도 송구할 뿐이었다.
나의 외조부께서도 살림을 따로 하시고 외할머니 생존 시에도
외증조모님이 첩며느리 선보러 다니셨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실
정도이니 집안에서 반대할 사람이 없다.
반대하기 보다는 언젠가 올 것이 지금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홍천댁이 작은 시어머니 오시는 날이니까 국수장국 준비 한다고
외갓집으로 연통을 보내왔다.
눈치를 보니 외갓집에서는 아무도 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작은 할머님 계신데 누가 할머니 소실 보는 잔치에 국수 먹으러 가겠는가.

여주읍과 시골 동네 소문에 십년수절 과부가 개가 한다고 하더란다.
십년수절하다 훼절(毁節) 하고 개가하는 과수는 친정도 시댁도 양반이라
했고 열 살 된 유복자도 있다고 했다.
나이는 삼십이라니 엄마 보다는 한 살 아래 이었다.

작은댁 할아버지께서 엄마를 급하게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다.
국수장국 먹으러 오라는 전갈에도 아무도 갈 생각이 없었으나
작은 할아버지께서 급하게 엄마를 찾으시니 아니 갈수가 없었다.
사연인즉 할아버지의 소실 되실 분이 물을 건너 왔는데
학동의 어느 댁에서 안 오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물을 건는다고 하는 것은 여주읍과 이 동네 사이에 있는
이포 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여주 강을 건너 왔거나 건너 갔다는 말이다.
여주읍에 사는 사람들을 “물 건너 사람들” 이라고 불렀다.

안 오고 계시는 이유는 정실 인줄 알고 개가를 하는 것인데
학동에 안면 있는 댁에 들려 쉬는 동안 작은 할아버지는 정실이
집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못 오시겠다는 내용 이었다.
엄마가 가서 모시고 오라는 심부름 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모시고 오라는 작은 할아버지의 명령 당부 간청 이었다.

학동은 백사장 강변에 있는 동네다.
백사장 모래가 학의 날개처럼 희어서 이었을 가 아니면 동네 모양이
학처럼 생겨서 이었을 가.
그도 아니면 신선 같은 학들이 노닐던 강변 이어서 생긴 동네 이름 이었나.

엄마는 학동의 아무개 집이라는 곳으로 갔다.
사람 찾고 집 찾는데 주소도 이름도 없이 잘도 찾았다.
시골 작은 동네는 물론 서울에서 살 때 우리 여고 시절까지도
종종 집 찾을 때 아무개 아이 이름 아무동네 어디어디쯤에 가서
찾으면 주소 이름 전화번호 없이도 잘 찾았다.

나는 엄마의 그림자처럼 따라 나섰다.
따라 다닐 자리 아닐 자리 할 것 없이 따라 다녔고 엄마는 어리지만
말썽 없이 넘어가는 전례로 보아서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덜 어색할 것
같아서인지 묵인해 주었다.
내가 항상 어른들 틈에서 핀잔 안 받고 낄 수 있었던 비결은 내 생각에도
보고 듣는 대로 말을 옮기지 않고 듣고 만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엄마와 새할머니 되실 분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엄마의 설명은 측실(側室)이라도 본실과 다를 바 없고 작은 할아버지의
연세도 앞이 창창한 사십 중반이시니 새장가를 가셔야 한다.
새할머니 되실 분의 결론은 이왕 내디딘 발 가기는 가지만
여차하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 나리다.

여차하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 나리다.
나는 오늘 이 소리를 열 번도 더 듣게 된다.

지금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보아온 어떤 미녀 보다도 더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있다.
다시 생각해도 우리 여고 시절에 가장 아름답다는 어느 여배우 보다도
더 아름다웠고 외국 영화에서 보는 여러 여배우들 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사슴보다 더 서글서글한 검고 맑은 눈 백조 같이 우아한 자태 학 같은 기품.
미녀는 속 눈섭도 길고 머리털 하나하나도 예쁘게 피어나는 것 같았다.
음성도 낭낭 했고 맵씨 말씨 무엇 하나 격에 빠지는 것이 없었다.
조목 조목 따져도 흠 잡을데 없이 아침 안개 속에 피어나는 연꽃 봉오리
같았다.

작은 할아버지께서 무슨 수로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 내셨나.
나는 작은 할아버지의 재주가 경이로웠다.
데리고 온다는 아들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새할머니 삼십의 두 여자와 나는 학동 - 학같이 흰 동네 - 를
뒤로하고 걸어서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 붉은 언덕 잔등으로 올라선다.
여기서 부터는 잣나무가 있는 외갓집이 보이고 대추나무들 뒤로 작은댁이
숨어 보이고 점차로 동네집들이 보인다.
지금 같으면 웨딩마취라도 울려 퍼지고 내가 장미꽃 이파리를 뿌리면서
빨간 카펫을 걸었어야 할 그 빨간 황토 언덕을 새할머니는 가마도 못 타고
신부 꽃부케 마냥 속곳 서답 보따리를 가슴에 끼고 엄마를 의지하고 눈물
한발짝 한숨 한발짝 걷는다.

낮은 길고 해는 중천에 오르니 논틀 밭틀 뛰어노는 애들은 언제나 배가
고프다.
마음에 점이나 찍었을가 말가한 점심을 먹고 놀이삼아 땅속의 메도
찾아보고 풀속에서 삠비기 속대를 뽑아 달큰한 풀 속잎을 자근자근
씹어 먹기도 하고 옥수수대 속살을 씹어 뱉기도 하고 목화밭의 덜 영글어
아삭하고 깨물면 톡 터지는 목화송이를 훔쳐 먹기도 한다.
동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제일 먼저 보는 것도 아이들이다.
동네 사람들의 나가는것 들어오는것 안보는 것 같아도 다 알아차리고
타곳 사람이 지나 가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쳐다보며
그러다 못해 저만치서라도 졸졸 따라 가기도 한다.

뜻밖의 신부 입장을 동네 애들이 먼저 기립으로 맞은듯하다.
새색시의 걸음걸이와 맵씨는 흔들림이 없고 당당함이 있다.
오늘 일은 새할머니를 우리쪽에서 모셔오는 상황이 되었다.
작은 할아버지는 무척 기뻐 하셨고 국수장국 먹은 손님은 엄마와
나뿐이었다.

새할머니는 동네에서 가장 양반다운 몸가짐을 했다.
작은 마누라의 신분이라고 어느 누구도 감히 얕볼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시대라면 그 할머니는 개가도 좋지만 탤런트로 나갔으면
크게 성공 하셨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물과 기품 카리스마가 보통은 아니었으니까.

여차하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 나리다.
사람살이가 여자의 사는게 이렇게 말같이 쉽게 될 수 있는 것인가.

2011.3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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