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0 22:07
여기에 민공기 교수님의 글을 잘 보았고, 이에 따른 동문 여러분의 글을 잘 읽었다. 그런데 본인이 여기에 또 글을 올릴까 말까 하고 한동안 생각하다가 올리기로 한 연유가 있다.. 본인은 그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으며, 그 삼개월 동안 공산치하의 서울에서 살아 남았기에 그 생생한 기억이 지금도 거의 다 보존되며, 또 공산당의 흉악한 행위를 알려야 되겠다고 믿어서 이글을 쓴다. 7월초 어느날 나는 옆집 동급생과 함께 보성중학교에 갔다. 그가 우리모두 학교에서 오라고 하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North America F-86 Boeing B-29 Superfortress Cottage 1 Cottage 2 제3화. 9.28 이후 다 알다시피 연합군은 처음 서울 수복직후 파죽지세로 북진하였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후퇴에 후퇴를 계속하고 있었다. 서울시민은 지난 3개월동안 놀란 가슴으로 거의 모두 기차나 truck을 타고 남행하였다. 그러나 선친께서는 괜찮을거라고 생각하시고, 꼼짝을 하지 않으시다가 결국 우리 모두가 1.4 후퇴의 피란민의 도보 행렬과 함께 내려가는 고난을 당하였다. 서울수복후 3개월 남짓한 기간의 일이었다. 아마 전황이 아주 나빴던 11월경으로 생각한다. Kwan Ho CHUNG - July 11, 2016 |
Note:
This is a prose poem that is written by an official of Tang Emperor, for the purpose of stopping war.
Judging from his writing, I know his is a talented official that can really helps his nation, not only his nation, but his neighbor nations should trust him also.
I wonder if nation picks her officials like Mr. Li Hua, then all people will live in a peaceful life, and nation with nation work in friendship not thru power or wars, maybe I am just dreaming.
Anyway, this prose poem is for officials and politicians, anyone may use it and memorize it free of charge, so I could feel I’ve done something for world peace.
2016.07.10 22:16
2016.07.11 11:47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 간것과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도망간것 하고 아주 흡사 합니다.
선조는 도망 가놓고 아직 한양에 있는 것 처럼 왜적과 싸우라고 독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만약 둘다 도망가지 않았으면 적의 포로가 됐거나 적의 손에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단지 후퇴하는 과정이 비겁하게, 백성(국민)들을 돌보지 않고 자기 목숨을 부지할려고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후세들의 지탄을 받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과 6.25는 공통점이 너무나 많은 우리민족이 격은 비극적인 참혹한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nuaa.org/main/?p=1955(작전권: 징비록을 보고나서, SNU 미주동창회 칼럼)
2016.07.12 02:01
선친께서는 소년, 청년시절에 이승만박사와 미국에서 친분이 있으셨지만, 해방 후 이박사께서 친일파를 거느리게 되어, (예컨대 친일파 윤 치영) 그를 찾지 않으셨고, 또 그의 행정을 많이 비판하셨어요. 구 이팔 수복이래 다시 귀경하여 첫 성명을 할 때, 그는 서울 시민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미안했다는 사과나 위로의 말은 전혀 없었고, 오로지 북한을 욕하는 말만 하였다고 선친은 비판하였으며, 예컨대 선조대왕은 임진왜란이후에 의주에서 한양으로 돌아 올 때, 백성들이 길에 엎드려서 임금님을 맞이하였답니다. 그때 선조께서는 엎드린 백성에게 일어나라고 한 후, "과인이 부덕해서 너희들에게 이런 고생을 시켜서 참으로 미안하다."하고 여러번 백성에게 사과하셨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옛날의 군주보다 더 높다는 듯 행동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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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내 경험에 의거하여 어찌 의용군보다 어린 나이의 소년이 인민군의 총알받이로
끌려 가게 되었는지, 또 그 두 대의 Saberjet Pilots가 얼마나 고마운 생명의 은인인지,
또 이승만 대통령과 그 수하의 관료들이 얼마나 서울시민과 국민에 배려를 아니 하였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단지 내가 6월 초부터 7월 10일까지 두 아들 집에 가 있었기에 이 글을 싣는게 늦었다.
만일 나의 경험담에 문의가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