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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벌꿀 촌지

2016.12.22 22:53

조중행*69 Views:255

 

잊을수 없는 환자;   "귀거래사 와 벌꿀 촌지,1970"

 

  

  기억이 좀 가물 가물하지만 매년 이맘때 쯤.늦 가을-초 겨울이면 생각나는

  환자가 있다.

  

  1970 년 늦은 가을 서울대 병원 수련 시절  3-4 개월된 남자아이가

  소아과에서 전과되었다. 잦은 호흡곤란으로 소아과에 입원한 아이로

  congenital lobar emphysema(선천성 폐엽 기종) 란 희귀한 선천성 폐 질환의

  진단을 받고 이영균 교수께 수술을 받으러 전과된 아기 환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CT 도 없고, MRI 도 없고, 초음파도 없던 그 원시시대에

  어떻게 그런 드문 병의 진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이다.

  아마도  lung scan(동위원소를 이용한 폐스캔)이 처음으로 동위원소실에

  도입되어 돌아가신 이장규 교수가 진단에 도움을 주었던것으로 기억된다.

 

  강원도 산골에서  온 이 아기 환자의 아빠는 한 30대후반의 남자분으로

  한여름 강원도 뙤약볕에 검게 탄 듯, 구리 빛 얼굴의 건강하고 순박한 분이었다.

  아기는 걸핏하면 호흡곤란으로 새파랗게 질리며 자지러지게 울어 대어

  경험없는 이 젊은 의사를 당황케 했다. 그럴 때면 옆에 있던 환아의

  아빠는 아기가 울 때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어주곤 했다.

     "歸去來兮(귀거래혜), 田園 將蕪胡 不歸(전원장무호불귀)

     "돌아가리로다. 전원이 황폐해지니,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 위형역), 奚惆悵而獨悲(해추창이 독비 아?)"---

     "이미 마음이 몸 위해 부림 받아 왔거늘,무엇 때문에 탄식하며 홀로 슬퍼하는가?"--

 

  서울에서 소위 엘리트교육만 받았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이 강원도 촌구석에서 온

  이 젊은 아빠가 나는 뜻도 모르는 도연명의 명시를 (그런 유명한시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아기를 품에 안은채 술술 읊어 내려가는모습을 보니

  놀랍고 부럽고 또 부끄러워 혼자 귀거래사를 찾아 읽어본 기억이 난다..

  더 놀라운것은 자지러질 듯 울던 아기가, 아빠가 귀거래사를 읊어주면 금방

  조용히 잠에 빠져들고 새액 새액 숨 소리가 고요해지고 얼굴에 화색이 돌곤

  하던 신기한 경험을 아직도 잊을 수없다.

 

  애기는 right thracotomy(우측 개흉)그리고 upper lobectomy(폐우엽 절제술)

  를 받고 무사히 퇴원하였다.

  의사노릇 50 년, 의사가 완치시킬수 있는 병을 본적이 거의 없지만,

  소아과 영역에서는 가끔 이렇게 수술로 완치시킬수 있는 선천성  질환이

  있어 의료인에게 진정한 기쁨을 선사한다. 아마도 이런 것이 어른 환자의 경우보다

  소아과 나 소아외과에서  좀 더 자주 맛 볼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이 병은 check valve(한쪽으로만 열리는) 기전으로 공기가 폐엽에서 배출이 안되어        

  팽창, 다른  폐엽을 압박해서 생기는 드문 선천성 질환으로, 병변이 있는 폐엽만

  수술로 절재해 주면 완치되는 병이었다.

 

  퇴원 몇 주후 겨울이 왔다.

  12 월에 강원도는 물론 전국에 폭설이 왔었다. 수술후의 외래 진료를 위해

  아기와 부모가 병원을 찾아왔다. 의국으로 들어오는 이들, 눈 덮인 강원도

  산골의 강렬한 햇볓에 새까맣게  탄 아빠와 엄마의 얼굴은 흑인보다 더 검게

  보였다.엄마는 애기를 업었고 아빠는 등에 통 나무통을 짊어지고 있었다.  

  통나무 속은 벌꿀 가득한 벌집이었고, 우리는 뜻하지 않은 년말 선물로

  최상의 벌꿀 선물을 받고, 나는 한겨울 벌꿀 호강을 하였다.

 

   다음해 봄 경주에서 있었던 흉부 외과학회에서 나는 이 아기를 생각하며

  선천성 폐질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The Korean Journal of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gery,대한 흉부 학회지:

  5:1-6,1972)

 

  46 년전 일이다.

  새까만 얼굴로 아기를 품에 안고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던 아빠는 살아 있을까?

  그 아기 환자는???

 

  요즈음엔 강원도 산골 구석 구석까지 막국수집, 소주집, 문명과 물질의 침입이

  있지만, 어쩐지 이제 청년이 되었을 그 아기는 강원도 어느 산 속 깊은 곳에서  

  늙은 아버지 모시고  신선같은 삶을 살고 있을것 같다.

  어쩌면 밤마다 자기 아기에게 귀거래사를 읊어주며.........

 

  _zpstqzib7u5.JPG    양봉.JPG

 

                           prepared  by J.H. Choh.,MD(class of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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