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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4 - 장돌뱅이

2011.08.09 14:49

이기우*71문리대 Views:6102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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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돌뱅이


닷새 장에 나오는 물건들 중에 꼭 있어야 할 것 들은 제물이다.
촌에서 장에 가야할 이유도 대부분 제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어른들 생신은 일 년에 한 번씩 혼사야 10년에 한번 있을가 말가
하나 제사 차례는 집집마다 일 년에 몇 번 종가집 에서는 한 달에
몇 번 씩 있을 수도 있고 제사야 말로 배를 곯고라도 차려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가문의 체면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배우고 실천하던 시절 이었다.

가을에 밤 대추 은행 잣 호두 곶감 등을 추수하면 말려서 봉지에
넣어 다락 보꾹에 매달아 일년 쓸 준비를 하지만 사과 배 북어
조기 다시마등 신선한 과일과 어물은 장에 가서 사온다.

큰 제사나 잔치 때에는 옥춘 이라는 빨강 물감 칠한 사탕과
마른 문어를 사다가 가위로 썰고 오려서 학 같이 날아가는
새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애들은 밤늦게 자정이 지나야만 지내는 제사를 못 기다리고
잠들면 젯밥도 못 얻어먹을 때가 많아서 미리 맛보고 싶어
하는데 제물을 미리 먹으면 입 부르튼다는 어른들의 엄포에
겁이 나서 조르지도 못한다.

동네에 지 필 묵도 없는 집들도 있어서 어쩌다 편지를
받으면 읽어 달라고 오고 편지를 써달라고 오는
것처럼 제사 때 지방을 써 달라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제물 준비도 먹을 것 있는 집들 이야기이다.

제사 같은 집안일에 어른들이 모이면 애들을 놀리기를 잘
하시는데 사내애들 중에 말 안 듣고 꾀부리는 애들한테는
“너 어른 말씀 안 듣고 글공부도 잘 안하면 장돌뱅이나 된다“
하고 놀리셨다.
천하농사지대본(天下農者之大本)이라 하여 상업을 무시하던
유교사상에 젖은 사람들은 장돌뱅이를 무시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장돌뱅이라는 말이 나오면 미리 겁을 내고
장에 따라다니고 싶어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았다.

옛날 같이 오십리 백리 걸어 다니거나 나귀를 타는 시대는
아니니 장이 끝나고 시골 짐짝 버스에 사람보다 물건을 많이
챙겨 싣고 막차를 집어타면 털털털털 먼지를 뒤집어 쓰고
다음 장터를 찾아 갈수 있다.
여주 수원을 오가는 수려선이라는 기동차를 타고 수원에 가면
서울 다음으로 번화한 수원시에서 서울 못지않게 물건을
많이 접할수 있다.
여주 남한강을 끼고 서쪽으로 이천 동쪽으로 장호원 크게는
수원까지 장돌뱅이 한사람의 활동무대 이다.

외갓집에서 새경(私耕) 받고 일하던 총각 경이는 옛날 이야기를
무척 잘했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해도 재미있었다.
농사철 저녁 먹고 바깥 마당에 모깃불 켜놓고 동네 애들과 같이
멍석에 앉아 이야기를 들을 때는 경이가 오래오래 외갓집에서
일하기를 바랬다.
읍 나들이가 잦아지고 미군부대 소식도 잘 전하던 경이는
다음해에 다시 오지 않았다.
이천 장터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장호원가는 버스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털털거리는 버스의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툴툴툴툴 고정관념도
털어버리게 된다.
손바닥 만한 자기 농토도 없고 일년 새경(私耕) 받아보았자 식구들과
먹고 살기 힘들고 젊은 떡거머리 총각이라고 하면 몇 년을 모아야
처녀하나 데려 올 준비가 될런지 모르는 머슴살이 보다 마음
가는대로 발 가는대로 다니는 넓은 세상이 더 좋았을것이다.

오늘의 한국 지방 발전의 원동력은 장돌뱅이들 이었을 것이다.
장돌뱅이하다 보니 세상 견문이 넓어지고 장사속도 익히고 국군
미군 겪으면서 전쟁 통에 보던 자동차 탱크 총 수류탄 지식으로
트럭 운전수 노릇도 쉽고 보따리장사 운수업 물건을 조달하는
도매업을 땅 파는 것 만큼 힘들게 하다 보면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매일 농촌 구석구석까지 세상소식 신식 문명을 몸으로 전달했을 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경이의 이야기중 하나는
한 부자집이 밤이면 도적들에게 털림을 당했다.
인색하지 않고 후덕했던 부자집 영감은 도적들을 잡으려고
하인들을 풀어놓고 애를 썼지만 아무리 물샐틈없이 방비를 해도
도적들이 들어오고 증거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영감이 꾀를 내서 빨간 물감을 타서 솜방망이에
적셔 손에 쥐고 밤을 기다렸다.
깜깜한 밤중에 도적들이 나타나니 영감님은 젊잖게 도적들의 등을
솜방망이로 툭툭 치면서 하인에게 곡식을 골고루 퍼 주라고 했다.
새벽녘이 되자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도적들을 잡으려고
하니 하인과 동네 사람들의 절반은 등어리에 빨간 물감이 묻어
있더라고.
옛날이야기는 대부분 권선징악 지혜의 줄거리 이었다.
만석지기를 물려받았다 해도 너무 인색하거나 방탕하면 재산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다.
재산을 지키려면 지혜와 근면 경영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옛날에도 남자들이 못할 때 현명한 여자들이 더 지혜롭게
해내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여름에는 맨발로 황소와 황토길을 걸어와 황토를 발라 다져놓은
앞마당에서 황소를 대문안으로 몰아 외양간에 밀어넣고 빗장을
채우던 경이,
겨울에는 쇠죽이 끓는 작은 부엌에서 쇠죽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으며 어쩌다 이삭달린 지푸라기가 아궁이 불 속에서 밥풀 처럼
하얗게 튀면 얼른 꺼내 먹여주던 이야기 잘하던 경이가,
어떻게 살고 있을가

나는 오랫동안 궁금했다.

2010.7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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