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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8 - 진오기굿

2011.08.17 02:11

이기우*71문리대 Views:6047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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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오기굿


진오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진오기 진옥이 진오귀 누구 이름인가.
동네 사람들이 전부 진오기라고 말은 해도 정확한 이름은 헷갈렸다.
엄마는 진오기 굿은 돌아가신 분이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비는 굿이라고 했다.
작은댁 아저씨께서 너무도 황망히 돌아가셔서 넋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작은댁 아주머니 홍천댁은 갑자기 당한 일에 남편상을 당했는지
초상을 치렀는지 남의 일인지 내 일인지 얼이 빠져 있었다.
작은댁 할머니는 점점 더 소박대기가 되어가고 있다.
작은댁 할아버지는 아예 본가가 아닌 정터의 집에서 기거를 하신다.
원래 굿하는데 남자들은 거의 안 보인다.
작은댁 할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건 아니었건 굿을 하는 것이다.

진오기 굿은 통례(通例)처럼 하는 것이었나 보다.
동네 사람들 전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한마디씩 거들었다.
굿을 해서 망자를 위로하고 그보다 산자를 더욱 위로 하겠지.
홍천댁은 남편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굿이라도 해서 홍천댁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홍천댁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 모두가 굿이라도 해서
마음을 진정하고 편안해지고 싶었다.
나는 굿한다니까 굿구경 할 기대가 앞섰다.
이러나 저러나 심드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작은댁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셨다.

동네 근처에는 무당도 없어서 먼데서 무당을 모셔 온다고 했다.
떡쌀도 담그고 진설(陳設)할 음식도 장만했다.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 같은 무당이 도착했다.
일돕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오며 가며 서로 인사말로 한마디씩 불쌍하게
돌아가신 삼대독자 아저씨가 얼마나 착하셨는지 얼마나 효자였는지
얼마나 인정 많고 똑똑했었는지 묻지 않아도 술술 나왔다.

한국식 넓은 집 구조에는 여자용인 안뒷간은 뒷마당인 부엌 뒤쪽에 있고
음식창고 같은 광도 있고 장독대도 있고 우물이 있는 집도 있다.
발빠른 무당은 벌써 뒷간에 들리고 부엌에서 우물 광 장독대를
돌아보고 대청의 뒤주속이며 안방의 다락까지 답사를 끝낸 듯 했다.

이모가 항상 웃기느라 들려주던 배뱅이굿 이야기도 눈치 빠른
무당이 어떻게 배뱅이의 집안 내력과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지
풍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6.25 전에 서울에서 굿 구경을 몇 번했다.
우리 동네나 옆동네에서 가끔 굿을 하는데 굿하는 소리가 안 들려도
소문이 나고 며칠씩 하는 굿이면 두 세번 가서 볼 수가 있었다.

엄마는 굿 구경을 못 가게 하지만 동네 아이들과 밖에서 하루 종일 놀면서
돌아다니는 나는 일일이 알리지 않고 굿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굿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애들도 누가 죽었거나 아파서 하는 굿은 안 간다.
우리집에서 청계천을 건너 삼각동에서 남자 박수무당이 하는 굿도 보았다.
그 집은 대청이 별로 넓지 않아서 여러 사람들과 끼어서 구경 하는데
옹색하고 별로 재미가 없었다.

하루는 동네 가까이 아주 크고 좋은 기와집에서 징을 치는지 칭칭칭칭
챙챙챙챙 굿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도 열어놓고 며칠씩 하던 굿은 첫날부터 아주 재미있었다.
여러 명의 무당들이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옷도 휘황찬란하고 남자
악사들도 서너 명이나 되었다.
상위에 창(槍)으로 찔러 세워 논 돼지머리와 높이 고인 음식과 촛대하며
깨끗하고 반지르르한 넓은 대청마루에서 하얀 오이씨 같은 버선발로
마루청이 흔들리도록 돌아가면서 펄펄 뛰는 무당들이 신비스러웠다.
젊고 예쁜 주인 여자는 부잣집 소실인데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굿이었다고 한다.
무당은 부채를 흔들고 쩔렁쩔렁 방울을 울리며 주인 여자를 호령호령
야단치기도 하고 복을 부어준다고 치마를 벌리라고도 하고
돼지머리에 절하라고도 했다.
잘못 걸리면 옆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무당한테 혼이 난다.

주인 여자는 언제나 잘못했다고 두 손을 비비며 돈을 얹고 절을 했다.
무당이 칼춤 출 때는 번쩍번쩍하며 철꺽철꺽 칼 부딪히는 소리가 무서웠다.
마지막 굿이었는지 무당중 제일 용한 무당이 버선을 벗고 작두에
올라서려고 벼르고 있었다.
예쁘고 조그만 맨발을 만지고 벼르고 쉽게 작두에 올라서지를 않았다.
얼마나 벼르기를 했는지 나의 굿 구경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내가 용변을 볼일이 있었는지 배가 고파 집에 갔는지 집식구들이
나를 데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작두에 올라서는 굿 구경은 못했다.

서울에서 보았던 굿 구경에 비하면 지금 하는 진오기굿은 상차림이나
무당 규모나 옷차림새가 내가 보기에 푸닥거리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아저씨의 진오기굿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무당이 죽은 사람의 넋을 받아 하고 싶은 말을 들려준다는 것과
죽은 사람이 환생한 흔적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원래 남의 굿이란 구경이나 하고 떡이나 먹으라고 한다지만
이것은 다름 아닌 아저씨의 말씀과 아저씨의 환생이 아닌가.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당을 자세히 관찰 하였다.

무당은 곡식 까부르는 키에 고운 밀가루를 채우라고 하고 한지를 덮었다.
시골에서 고운 흰 밀가루 만들기는 입쌀 만들기보다 어렵다.
보리처럼 통밀을 수확해서 빻아서 대부분 누룩을 만드는데 쓰고
밀가루를 만들려면 방아를 여러 번 찧어 가면서 빨간 껍질을 분리해내는
과정을 체로 치고 키로 까불고 몇 번을 반복해야 껍질을 제거하고
흰색에 가까운 밀가루를 얻을 수가 있다.

키에 소복이 담은 밀가루에 한지를 덮고 무당이 두 손으로 쓸어서
반반하게 다져서 키를 밥상위에 얹어 건너방 한가운데 놓고
방에는 아무도 있지 못하게 사람들을 다 내보냈다.
그러면 혼이 왔다가 갈 적에 밀가루위에 자국을 남긴다고 했다.

무당은 대청에서 죽은 사람의 혼을 받아 여러 말을 했고
이사람 저 사람에게 대를 잡으라고 나뭇가지를 주기도 했는데
제대로 대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나 외숙모는 이런 일에는 솜방이라 하며 대가 내리지를 않았다.
동네 아주머니 몇몇도 대가 신나게 내리지를 않았다.
대가 내리는데도 신이 많은 사람에게 잘 내린다고 했다.

나는 건너방 밀가루위에 찍힐 환생한 아저씨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무당이 몇 차례 건너방으로 들어가 혼이 찾아와 환생한 흔적을
남겼나 한지를 들추고 보았다.
아무 흔적도 없었다.
나는 무당이 자기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지 아닌지 지켜보려고 대청에서
건너방으로 왔다 가는대로 바짝 따라다니며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건너방으로 들어가 한지를 들춰본 무당이
혼이 다녀갔다고 알렸다.
모두들 와서 들여다보게 하였다.
무당은 나비로 환생한 흔적이라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신기해서 자꾸만 들여다 보았다.
무당에게 틈을 안주고 줄곧 지켜보았으니 정말 혼백이 다녀간 모양이다.
손마디 만큼한 크기의 손마디 비슷하게 눌린 자국이었다.
무당은 나비가 내려 앉아 생긴 나비 몸통의 자국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식구들이나 동네 아무도 아저씨가 환생하셨다는
나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럭저럭 끝난 굿이었고 또 그럭저럭 잊혀져 가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도 몇 번 물어 보았다.
정말 혼백이 내려와 흔적을 남기는 것인가를.
엄마는 그럴 수도 있고 안그럴 수도 있다는 답도 아닌 답을 했다.
솜씨좋고 착하지만 정말 불쌍한 영길아재가 보여주는 요술도 서너명의
동네아이들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도 속임수를 찾을 수 없었는데
직업적인 무당이 요술정도야 부릴 수가 있겠지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때는 아저씨가 좀 더 훌륭한 장군이나 크고 힘세고 용맹스럽고
신령한 동물로 환생 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 나비라는 것이 얼마나 친근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가
새롭게 깨달을 수가 있었고 그때 무당도 지혜로웠다고 생각한다.

나하고 관계라는 것이 훌륭하고 크고 힘세고 용맹스럽고 신령한 것이
귀하고 자랑스럽고 좋겠지만 또한 얼마나 힘들고 무겁고 고독 하겠는가.
오늘도 팔랑팔랑 어느 결에 왔다가 또 어느 결에 사라지는 바람 같은
나비를 보면 저절로 아름답다 감탄이 나오며 반갑게 미소를 짓게 되고
아련한 그리움도 흘러가는 평화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저 나비는 먼저 가신 아저씨의 환생일가 아니면 얼마 전에 가버린
친구는 아닐가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2010.8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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