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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옛집에 돌아와서

2011.10.21 15:16

김창현#70 Views:5858


옛집에 돌아와서


 10년 전원생활 하고 옛집으로 돌아왔다.
한강 상류 토평서 5년,수지 광교산 아래서 5년 살았다.

강과 산 옆에 살다가 옛집에 돌아오니 마당의 나무들이 나를 반긴다.
앞마당 뒷마당 감나무는 이제 고목이다. 아침엔 홍시가 떨어진다.
자두나무는 전지를 좀 했더니, 비스듬히 굽은 모습이 계단 위에 잘 어울인다.
내년 7월엔  자두가 열릴 것이다.

백목련은 거목이 되어 하늘을 가렸고, 담 넘어로 비스듬히 선 자목련도 마찬가지다.
우리 목련꽃 내려다보고 웟집 안주인이 시를 써 주변에 칭찬 받았다고 한다.
홍매는 바위 옆에 잘 자리 잡았고, 백매는 멋없이 덩치만 커서 필요없는 부분을 톱으로 잘라내느라 땀 좀 흘렸다.

거실 앞 백송은 솔방울을 달았다. 이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아침 새소리다.
또 탱자나무다. 노란 잎 사이에 탱자 몇개가 달려있다. 누가 서울에다 하필 탱자나무를 심냐고, 주변에서 반대했지만, 나는 다르다. 초등학교 시절을 탱자나무 울타리 둘러싼 전원 속 학교에 다녔으니까. 하얀 탱자꽃처럼 순결하던 소녀를 좋아했으니까.

진나라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머슴 아이가 길에 나와 나를 맞고, 어린 자식은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은 온통 잡초에 덮이어 황폐했으나,
아직도 소나무와 국화는 시들지 않고 남아 있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술단지에는 아내가 담근 술이 있다.
 
술단지와 술잔을 끌어 당기어 혼자서 자작하며,
뜰의 나무 가지들을 보며 즐겁게 미소를 짓는다.

또 남쪽 창가에 몸을 기대어 들을 내다보며 의기양양한 기분이 되고, 
사람이 무릎을 쭉 펴고 기분좋게 앉을만한 좁은 내 집도
충분히 안빈낙도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그가 41세 때 평택 현령으로 있다가 벼슬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시다.
나는 이미 70 바라보는 나이다. 그보다 훨씬 년장자다.
전원에 살다가 병원 가까운 도시로 돌아온 점은 그와 반대다.
내가 전원으로 나갈 때도 그보다 나이가 많았었다.
다만 오래된 누추한 집이 비슷하고, 뜰의 나무를 바라보며 즐거운 낯으로 미소 짓는 것도 같고, 글을 쓰고 국화와 중국술을 즐기는 점에선 같다.

 어제 청담동 <우리들 병원>에 가서 MRI란 걸 찍고,컴퓨터유도 신경치료를 받고왔다. 좌골신경통 때문이다. 종규란 친구가 그 병원 이사장을 안다.
마산 장인을 내려가 모시고 올라와서 몇달 간호 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가 누군지 몰랐던 병원 이사장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육군 소장 선배님께서 이렇게 장인어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시는 것을 보니.' 라면서 병원장이 직접 집도를 하게하고 병원비는 실비만 받았다고 한다. 드믄 일이다. 이장군이 전화로 이사장 비서실로 연락해줄까 했지만. '말만으로도 고맙네.'고 대답했다.

 이젠 저승사자가 옆에 닥아와 니가 어디 아프냐, 데려갈 때가 언제냐고 가끔 물어보는 나이이다. 세속 일 모두 초월해야 할 나이이다.
사람이 천년만년 살 것 같아도 풀잎의 이슬이다. 초라한 인생에서 사려 깊은 친구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 할 사람에겐 꼭  그 말을 해두어야 한다.
죽음 앞에선 사랑도 원망도 다 허망한 것이지만,
아무리 바빠도 사랑한다는 말은 꼭 해두어야 한다.
하나 둘 낙엽 떨어지는 정원에 혼자 앉아 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에 잠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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