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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연속 단편] 죽음 앞의 삶 - 전지은 (6/6)

2011.07.10 15:19

전지은#76 Views:4858

죽음 앞의 삶 - 전지은 단편 연재

죽음 앞의 삶 (6/6)
전지은


일러스트·조은명

중년의 사랑

토요일 밤, 응급실을 통해 들어온 환자는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다. 현장에서 의식을 잃지는 않았으나 정신이 혼미했고 상황 판단을 잘 하지 못했다. 출동한 경찰과 구급요원들에 의해 간단한 처치를 받고 응급실로 실려왔을 때는 바로 인공호흡기를 걸어야 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었다. 즉시 뇌 단층 촬영을 했고, 지망막하 출혈, 경막하혈종과 왼쪽 늑골 골절, 팔목 골절, 왼쪽 대퇴 골절 등이 발견되었다.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 응급실로 달려왔다. 한눈에도 임신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젊은 여자는 의식 없는 환자를 잡고 울다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잠시 후였다. 또 다른 여자가 도착해 본인이 환자의 부인이라고 소개했다. 무슨 소리냐고? 임신한 여자도 자기가 부인이라고 했는데….

후에 도착한 여자는 자신의 ID를 보여주며 환자와 같은 성을 쓰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주위에 있던 다른 가족들이 두 여자를 잡고 설명을 했다. 임신 중인 여자는 환자의 여자 친구였고 나중에 도착한 여자는 법적인 아내였다. 두 여자는 서로 알지 못했고 더구나 법적인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과 동거 중이었고,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환자의 사고보다 더 큰 충격인 것 같았다. 응급실 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고 청원경찰까지 동원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다른 환자 보호자들은 좋은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모여들었다. 환자의 큰아들이 나서서 겨우 진정시켰다.

환자는 다른 부분에 비해 뇌출혈이 심한 상태여서 즉시 수술실로 갔고 출혈된 부위를 절개하고 고여 있던 혈액을 제거했다. 그리고 중환자실로 이송돼 왔다. 동시에 법적 아내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방문자들을 제한했다. 그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므로 절대 이혼이 불가하단다. 환자가 집을 나간 것은 8년 전, 그러나 가족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고 서로 연락도 주고받았으며 ‘이혼’이라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중년의 위기가 끝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단다.

환자가 젊은 여자를 만나 2년 전부터 사실혼 관계였던 것을 가족들은 알면서도 지금까지 숨겨주었다며 상당히 노여워했다. 그래도 그녀는 절대 이혼 불가를 주장하며 자신이 환자를 돌볼 것이라고 선언했다. 임신 5개월인 여자 친구도 가만있지 않았다. 병원장을 찾아가 읍소하며 자신에게도 권리를 달라고 간청했지만 ‘법은 법’이었으므로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그들 중간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들과 나는 양쪽 주장을 끊임없이 들어주어야 했고, 환자 간호보다는 가족의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뺏겼다. 환자 상태는 많이 호전됐었으나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다. 환자를 뇌 손상 환자 재활 치료를 위한 전문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재활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내가 살고 있는 덴버와 여자 친구가 살고 있는 스프링스 두 곳에 다 있었다. 덴버와 스프링스는 차로 한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다. 아내는 환자를 덴버로 옮겨달라고 청해왔고, 여자 친구는 스프링스에 그냥 있게 해달라며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나에게만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 의사들과 병원장, 간호부장 등등 병원의 모든 채널을 동원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던 나는 모두 함께 모여 터놓고 이야기해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름 하여 ‘Family Care Conference(가족 간 대화의 장)’을 통해 환자를 어디로 옮길 것인지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병원의 간호부장과 병원 자문 변호사도 함께했다.

의사들과 병원 팀, 가족들, 그리고 환자의 아내와 여자 친구 등이 함께한 자리. 처음 환자가 응급실에 오게 된 상황부터 현재 중환자실 경과까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젠 중환자실을 벗어나 재활간호가 절실해 환자를 다음 단계로 옮길 때라고 했다. 옮길 곳을 결정해야만 환자가 제 시간에 재활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병원 팀은 가족들의 주장을 경청했고 여자 친구에게도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내는 잘 참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환자의 큰아들이 결정을 내렸다.

“우리 아버지의 법적인 아내는 내 친엄마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입니다. 그러나 현재, 그녀는 분명 아버지의 법적인 아내이고 임신 중인 여인은 죄송하지만, 법적인 권리가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내 동생을 임신 중인 여인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가능하다면 그녀도 아버지의 간호에 한몫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십시오. 예를 들어 환자 방문시간이나 날짜를 번갈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불편하겠지만 여자 친구도 조금 양보해 덴버까지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가족은 덴버에 살고 당신만 스프링스에 살고 있잖아요”하며 여자 친구를 쳐다본다.

그녀는 조금 생각하더니 이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법적인 아내도 여자 친구에게 방문 시간을 충분히 주겠단다. 한국과 달리 간통죄라는 것이 없는 미국. 이혼이 무척 쉽다는 이곳에서 드문 경우이지만, 복잡하기만 했던 ‘환자의 사랑타령’을 뒤로하고 환자는 덴버의 한 재활병원으로 옮겨갔다. 환자의 빠른 쾌유를 빌고, 언젠가 완전히 깨어났을 때 그의 올바른 선택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그의 이야기가 기억 어디쯤으로 사라질 무렵, 입구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누굴까? 약속한 사람은 없는데. 문밖에는 낯익은 얼굴이 서 있다. 여자 친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참으로 생소한 모습의 건장한 남자도 함께 있다. 여자는 가볍게 목례를 건네더니 얼른 다가와 포옹을 한다.

“정말 고마웠었어.”

“그래. 근데 옆에 있는 이가 그 환자? 네 남자 친구?”

각종 기구를 꽂고, 환자복을 입고, 수염을 자르지 못해 덥수룩했던 그때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아주 핸섬한 중년 남자가 돼 있었다.

여자 친구는 나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단다. 그 당시 법적인 아내와 다른 가족들과 함께 모이는 회의시간을 갖지 않았더라면 가족들은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뻔했다며 살며시 웃는다. 때론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속담처럼, ‘통 속에 들어 있는 벌레들을 모두 꺼내놓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법일 수도 있다. 보기 흉하고 만지기 싫은 더럽고 불편한 것이라도 통을 열어 오물을 꺼내지 않으면 막힌 통 속의 문제는 영영 볼 수가 없으니까.

옆에 있던 그에게 입원해 있던 방과 기구들을 보여 주며 설명해준다. 그도 만나는 의료팀 하나하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언제 그렇게 심하게 다쳤던 사람인가 싶게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몰라보게 달라진 그의 모습에서 ‘신의 부름을 받기엔 아직 이른’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그도 그럴 것이 옆에 서 있는 여자 친구의 배가 만삭이었다.

“언제가 예정일이지?”

“이번 주말이야.”

“준비는 다 되었어?”하고 다시 묻자, 물론이란다.

“아빠가 옆에 있잖아. 뭐가 더 필요하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고 둘을 배웅하러 중환자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녀가 고마움의 표시라며 가을색 완연한 국화 화분을 건넨다. 작은 소리로 귀엣말을 한다. “저이,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절차가 진행 중이야. 그쪽에서도 지난 몇 달 동안의 상황을 보면서 완전히 포기한 것 같아.”

나의 상식으로는 아내가 처해 있을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떠나간 사랑을 잡고 매달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내 의견이다. 두 사람 사랑의 증표인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 그들의 새 삶의 활력소가 되길 기도했다. 스쳐 지나는 것들은 모두 인연이라는데 중환자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만나는 이들도 내게는 참으로 깊은 인연인가 싶다. 그전에 한번 만난 적이 없어도 그들은 지난 이야기를 혹은 현재의 상황들을 술술 잘 풀어놓는다. 물론 그래야만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나면 시원한 기분이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능하면 좋은 경청자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퇴근길, 하늘이 무척 푸르고 높다. 가을 이야기가 옆에서 소곤소곤 말을 걸어온다. 주말 산행에서 만났던 숲은 아직 여름의 끝자락이었지만 이제 곧 색깔을 갈아입을 것이다. 더위 속에서 지쳤던 삶을 내려놓으며 색깔 아름다운 계절 속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참으로 고운 가을사랑을 전해 주고 싶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단풍 일면/ 그대 오고/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낙엽 지면/ 그대 가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파란 하늘/ 그대 얼굴/

유행가 한 가락을 흥얼거린다.

그녀의 선택

그녀가 중환자실로 내려온 것은 벌써 3일째. 상당히 진행된 유방암 진단을 받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양쪽 가슴 적출은 물론 가슴 주위와 겨드랑이 임파절까지 모두 제거해냈다. 곧 이어 항암요법을 시작해 5번째 투약을 마쳤다. 독한 주사약 때문에 탈모가 심해 머리에는 터번을 쓰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했으며 너무 깡말라 쇄골과 광대뼈도 두드러졌다. 항암 요법을 할 때 흔히 동반되는 부작용인 구토가 심해 탈수증상이 있었고 수액과 전해질 보충을 위해 암 병동에 입원한 참이었다. 입원 중 흉부 가슴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종양이 발견되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 계획을 잡았고 수술실로 내려가기 직전 심한 호흡 곤란이 생겨 중환자실로 급하게 옮겨왔다.

그녀는 다행히 의식이 분명했고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만큼 상태가 나쁘지 않아 코를 통해 공급하는 산소량만 최대한 올려놓았다. 그날 아침 라운딩이 끝나자 그녀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단다. 그녀는 병이 점점 나빠져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면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의사 결정권을 일임한다는 뜻을 전했다.

콜로라도 주법은 의식이 있는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면 의사 결정권을 누구에게 주겠느냐고 반드시 묻는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에서는 배우자, 자녀, 부모의 순서로 하지만 콜로라도 주는 환자가 지정한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꼭 가족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친구나 회사동료, 심지어는 룸메이트를 지정할 때도 있다. 일정 양식에 사인을 하고 인증을 받아놓으면 된다.

그녀는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도 인공호흡기를 달지 말고, 심장에 이상이 있어도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지 말라는 의사도 명확히 밝혀왔다. 함께 일하는 의료팀들에게 그녀가 원하는 사실들을 알리고 카피를 만들어 환자차트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자였다. 작은 컨퍼런스 룸에서 마주 앉았다.

“아는 것처럼 우리 엄마는 66세, 유방암 말기 환자야. 그런데 남자 친구는 49세로 나보다 겨우 다섯 살 많아. 우리 엄만 재력이 좀 있어. 내가 볼 때 저 남잔 엄마의 돈을 노리며 엄마가 치료받는 것을 자꾸만 방해하는 것 같아. 그리고 엄마는 어떻게 날 두고 저 남자한테 의사 결정권을 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돼. 난 엄마의 유일한 피붙이거든. 네가 어떻게 좀 도와줘.”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남자 친구가 돌아가고 딸이 그녀의 침상가를 떠난 틈을 타 그녀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넌 정말 네 남자 친구에게 모든 결정을 하게 할 거야?”

“물론”이라고 딱 잘라말했다. 그리고 한참 생각하더니 호흡이 가쁜데도 불구하고 긴 설명을 이어갔다.

“네가 보기엔 내가 미쳤단 생각이 들지도 몰라. 젊은 남자에게 정신을 빼앗겨 모든 결정권을 그에게 주었다고 말이야. 그러나 너는 내 사정을 몰라. 그는 내가 부를 때면 언제든지 달려와. 어떤 일을 부탁해도 ‘No’라고 대답한 적이 없어. 특히 병이 심해지고, 몸이 힘들어 꼼짝할 수 없을 때 그는 날 업고 의사를 찾아갔고, 그 독한 약들 때문에 먹은 것을 다 토해낼 때도 그 더러운 분비물을 닦아내면서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지.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만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왔어. 누워 있는 상태에서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도 감겨줘. 절대 남의 손에 나를 맡기지 않아. 그거면 되지 뭘 더 바라겠어.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나를 사랑해. 그는 최선을 다해 나를 간호해주었지. 지금 내가 더 이상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희망이 없기 때문이야.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해볼 만큼 해보았잖아. 이젠 그만 편해지고 싶어. 그의 품 안에서 잠들고 싶은 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야.”

“그러면 딸은?”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인 성인이잖아.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어 내 재산을 바라지는 않을 거야. 그 아인 날 이해해주리라고 믿어.”

차마 딸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는 말도 못하고 말았다. 확고한 그녀의 선택 앞에 그것이 최선이다라고 밀어놓는다.

내가 만약 그녀의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다. 머리로는 이해되다가도 막상 어떤 사실에 부딪히면 한국식 사고방식이 앞선다. 근본적으로 뿌리가 다른 생각은 스스로가 갖는 편견의 덫이 되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아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라면 남은 딸에게 모든 것을 주었을 것이다. 함께 지낸 남자 친구에게는 ‘고마웠고, 사랑했어’정도로 끝낼 것 같았다. 젊은 남자는 그녀가 죽은 뒤에도 그녀만 기억하고 살 수 있을까. 생각에 생각은 꼬리를 물고 답이 없는 것들은 헛바퀴를 돌 뿐이다.

에필로그

나의 일상 속에는 늘 죽음이 있다. 백수를 넘긴 ‘호상’에도 남겨진 가족들에겐 슬픔과 아쉬움이 있다. 하물며 20대의 주부라든지 40대의 가장이면 그 고통의 정도는 상상하기 힘들다. 사연 없는 일생과 이유 없는 죽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환자실 간호사 15년과 케이스 매니저 4년. 촉각을 다투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일을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빠른 회복 후 일반 병동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지난 겨울은 그렇지 않았다. 신종 플루가 그 몫을 단단히 했던 때문인지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흰색 시트를 덮어쓴 들것이 연이어 자동 개폐문을 열고 나갔다. 긴 호흡을 하며 애써 외면했다.

어떤 죽음이 쉬울 수 있을까. 심장 모니터에 ‘삑~~~’하는 소리와 동시에 일직선이 그어지며 심박동도 호흡도 모두 멈추는 그 시간. 남겨진 사람들은 분노하거나 멍해지며 맞닥뜨린 사실을 부인하곤 한다. 혼돈과 공포의 순간들. 그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은 내 직업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객관적이고 싶어도 사람들의 아픔은 내 가슴속에서도 응어리가 되어 묻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같은 일을 여러 번 경험했다고 그 정도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수행 잘한 수도승이나 신실한 기도를 하는 수도자라도 죽음, 그 뒤란을 본 적은 없어 열반과 천국에 대한 기대가 두려움과 동시에 평안이 되어 다가오는 것 아닐까.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자세는 참 다르다. 직면할 때까지 자신에게는 전혀 오지 않을 일처럼 외면하는가 하면 불안해하며 질병과 맞서 싸우기보단 정신적인 황폐화로 먼저 지는 사람도 있다. 또한 나처럼 죽음을 자주 대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괜찮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잘 떠날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삶의 연속선상에서 죽음은 잠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포물선을 그으며 떠나는 일이다. 포물선이 둥그렇게 그어지며 돌아올 그 시간은 정말 있을까. 그곳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로 알아보기는 할까. 이어지는 의문들도 ‘생자필멸(生者必滅)’, 오면 가야 하는 우주의 법칙 안에서는 해답이 없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 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갱년기 증상처럼 뜨거운 열이 되어 가슴으로 올라온다. 창을 열고 얼음냉수를 소리 나게 들이켜지 않으면 열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오랫동안 열어놓지 못해 답답해 생긴 속병을 이젠 좀 내놓고 싶다. 그래야만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퇴근 후 남편과 마주 앉아 와인 한잔하며 뒷마당과 이어진 작은 동산을 바라본다. 지난 시간 젊음의 숨가쁜 오르막이었어도 열심히 올랐기에 지금 내려갈 시간을 준비할 수 있다. 아직 학생인 아들을 생각하면 엄마의 무게 때문에 힘겨워 피해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자책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몫으로 두고 싶다. 아직도 한국에 혼자 계시는 친정어머니는 영원한 나의 숙제다. 내 환자들을 위해서는 그럴듯한 입·퇴원 방법을 마련해주면서도 직접 만나는 나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커다란 벽이다. 언젠가는 모시고 살게 되겠지만 한국과 미국이라는 거리의 한계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너무 많은 사연을 만났다. 삶의 한순간에 함께했던 것들은 내려놓으며 염색을 해야 하는 머리카락과 눈가에 자글거리는 주름과 굽은 등 뒤로 이젠 조금씩 편해지고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의 필름이 빠르게 돈다는 것이다. 더 빨리 가는 ‘FF 단추’를 눌러 스쳐가는 영상들을 본다. 한 지점에서 스톱을 누른다. 머무르고 싶었던 시간이 화면 가득히 뜬다. 흑백이거나 유행이 지난 차림이다. 다시 플레이 단추를 누르면 화면은 움직인다. 또다시 앞으로 간다.

지난 사연들도, 앞으로 만날 이야기들도 나의 성긴 언어들로 짠 직조물이겠지만 부드러웠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본다. 와인 잔을 들어 살짝 부딪치고는 한 모금 천천히 넘긴다. 입 안에는 와인 향이 가득하다.


(연재 끝)
Source: 신동아 2010년 11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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