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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2 - 방물장수

2011.08.07 03:30

이기우*71문리대 Views:7162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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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물장수


여주 읍에 닷새 장이 서지만 열흘이나 보름거리로 물 건너
촌 구석 구석까지 방물장수들이 물건을 팔러 다닌다.
나이 지긋한 여인네가 몸집 보다 넓고 큰 광주리에 물건을
담아 머리에 이고 혼자 다닌다.

농촌에서 가진 돈이 없는 아낙네들도 귀하게는 입쌀 한 되박 보통은
잡곡 한 되박 추렴해 두었다가 물물교환을 한다.

방물 광주리에 들어 있는 품목들은 성냥 양초 만수향 편지지 편지봉투
세수비누 빨래비누 세수수건 참빗 얼레빗 빗치개 귀이개 비녀 뒤꽂이
머리핀 옷핀 머릿기름 손거울 얼굴에 바르는 가루분 구리무
호호베니라는 연지 구찌베니라는 입술연지 눈썹 그리는 연필
고무줄 바늘쌈 재봉틀실 타래실 수틀 동양자수나 십자수 놓는 수본 각종
색깔의 수실 종이봉투에 들어있는 가루물감 저고리감 저고리에
붙이는 회장 등등 자잘한 생활 용품과 장식품 화장품 종류로
여자들이 즐겨 쓰는 물건들 이다.

먼 거리의 장에 갈수 없을 때에 한 두 가지 요긴하게
이용 할 수 있고 장에 나돌아 다니는 것을 금하는 집안의
여인들에게 바깥세상의 한가닥 통로이며 호기심의 표적이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방물장수는 단골의 주문을 받아서 다음
올 때에 주문한 물건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촌에서 견물생심 이라고 여인들의
소비 욕구를 부추기는 방물장수의 구수한 입담에 마음
설레이는 유혹을 피하느라 가난하고 가련한 여인들의
극기 단련 시간이 되기도 한다.

가까워도 십리 멀게는 삼십리 반경으로 떨어진 동네를 찾아
하루 온종일 걸어서 다녀야 하는 방물장수는 허기진 점심
끼니를 때우려면 요령껏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절에 가서도 눈치가 빨라야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뉘댁 어른의 큰 생신이 언제 이고 잔치집 돐집이 어디인지
어느 집에서 제사 준비를 하고 누구네가 고사를 드리고
시집 장가 보내자고 중신들만한 자녀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집에 잔치 전에 가서 물건도 팔고 장만하는 음식 맛도 본다.
방물장수가 막상 잔치날 잔치집에 들어서기는 좀 남사스럽다.

농사철엔 어느 집에서 “일” 하는 날인지 알고 다녀야 한다.
“일” 이란 농토를 소작을 내주지 않고 자작을 하지만 자기만의
일꾼이 부족한 농가들이 동네 전체 사람들과 돌아 가면서 교대로
밭일 논일을 해주는 것이고 일 하는 날 땅 임자 집에서
밥을 해서 일밥 한다고 한다.
땅이 전혀 없는 농민들은 따로 셈을 해서 추수때 곡식으로 받아간다.

점심은 물론 새참이라는 아침 곁두리 점심 곁두리 까지
세 번을 밭으로 들밥을 날라다 준다.
그때는 스텐은 없었고 양재기나 양은 냄비도 귀해서 놋그릇이나
사기로 만든 사발 대접 보시기 종재기에 바가지까지 썼다.
그나마 여주에는 토기 공장이 몇 개 있어서 사기나 뚝배기를
어렵지 않게 쓸수 있었을 것이다.
커다란 나무 함지박에 그릇도 담고 음식도 담고 서너명의 여인들이
앞서고 뒤에는 시원한 샘물을 가득 채워 바가지를 엎어
띄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처녀가 따라간다.
외갓집에는 몇 개의 주전자가 있어 내가 양손에 물주전자를
들고 따라 가기도 했다.
전쟁중이어서 그랬는지 이야기 처럼 막걸리 동이를 이고
가는것은 못 보았다.

들밥이 유난히 맛있었던 기억은 커다란 나무 함지박에 보리밥을 담아
햇나물과 갓무친 겉저리를 넣어 비벼서 바가지에 나누어 담아
먹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때에 맛들인 들깨 기름을 지금까지 유난히 좋아 한다.

들밥을 내보내고 난 부엌에는 여자들끼리 끼어 앉아
지나는 행상도 한자리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이러 저러 아무 꺼리도 없을 때에는 인심이라도 후한 집으로
들어가 광주리를 내려 놓고 주저 앉는다.
아무렴 덕담 받는 보상이 숟갈 하나 더 놓는 것 뿐이랴.
시집갈 큰 애기들이 있는 집이면 몇 시간 다리 쉬고 점심먹고
나올때는 허리에 곡식 자루 나누어 차고 다음에 올 기약까지
튼튼히 하며 나올수 있다.

외숙모와 언니들이 광주리를 들추고 머리핀도 만져보고
색색으로 수실도 찾아보다 도로 담아 놓으면 방물장수는
물건을 다시 꺼내들고 물건 칭찬 한마디 덕담 한마디
거져 주는것처럼 인심 후한 말을 한다.
동네에 방물장수가 와서 어느집에 있다 하면 몇몇의
아낙네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과수원 앞집 정자가 금박 찍힌 반회장을 가슴에 대보고
다시 내려 놓는다.
아직 바느질이 안된 저고리 회장 감을 빨간 실로 열십자로
찍어 매어 한 벌을 붙여 놓았다.
가을에 추수하면 적당한 총각 찾아서 시집 보내야겠다는
정자 엄마의 염불이 동네 사람들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이때를 놓칠새라 방물장사가 반회장을 정자 가슴에 들이대고
자주고름을 늘여뜨리며 정자의 인물이 좋다고 껌뻑 죽는 시늉을 한다.
부끄러움에 양볼이 붉게 물드는 정자는 내가 보기에도 예뻤다.

금박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여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할가.
혼수감 장만하려는 처녀들 수줍은 욕심이 무지개를 타고 나른다.

안방문 보다 더 넓은 광주리를 비스듬히 껴안고 나와서
댓돌 밑에서 작별 인사를 두 번이나 하던 방물장수가
엄마를 따라서 다시 마루위로 올라와 엄마의 등을 떠밀어
건너방으로 들어 간다.
나도 엄마와 방물장수를 따라 건너방으로 들어 갔다.

2010. 6.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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