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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장애 병동을 맡아 일하면서 시시때때로 환자들에게 성격장애에 대하여 강의를 하다 보니 정신과 의사로서가 아니라 일반인으로서 그리고 심지어는 정신병 환자의 각도에서 사람의 성격에 대하여 자주 생각한다.

'personality'는 성격(性格)이 아니라 인격(人格)이라 번역해야 마땅할 것 같다. 'person'이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누가 인격이 있다, 없다 하면서도 성격이 있다, 없다 하지 않는 우리말 습관을 보면 인격에는 어떤 프리미엄이 붙지만 성격이란 눈이나 코처럼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한.

'person'은 본래 옛날 로마 극장에서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假面)'을 뜻하던 라틴어'persona'에서 유래한 말이다. 서구인들은 가면을 쓰고 남들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을 솔직하게 인정했던 것이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보이기를 꺼려하는 심성이 있는 법이다.

인격도 성격도 격식에 불과하다. 건물의 골격이나 사람 몸의 뼈대처럼 딱딱한 형식이다. 세 살 때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격언도 사람의 근본적인 틀이 얼마나 요지부동인가를 증명한다. 천둥번개가 치는 한밤중에도 외눈 하나 깜빡 하지 않은 채 웃고 있는 봉산탈춤의 탈바가지처럼.

'personality'를 '사람 됨됨이'라고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인격이나 성격처럼 묵직한 한자어가 풍기는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이 아닌 싱싱하고 나긋나긋한 뉘앙스를 품은 낱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 두 단어에는 누가 '인격'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의 목이 뻣뻣해지는 존경심과 누구의 '사람 됨됨이'에 호감이 간다는 말을 들으며 가볍게 끄덕이는 고갯짓만큼이나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되다'의 명사형인 '됨'이 두 번이나 반복되는 '됨됨이'라는 말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이를테면 '밥이 다 됐다'고 당신이 무심코 말할 때의 어떤 상태의 완성도가 반복적으로 명시되는 표현이다.

누가 마음에 들 때 '사람이 됐다'고 기분 좋게 칭찬하는 그 '됐다'가 거듭되는 양상이 바로 '됨됨이'랄 수 있고 이상하게도 됨됨이라는 명사 앞에는 늘 사람이라는 단어가 먼저 들어가는 것도 우리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사전도 됨됨이를 '사람으로서' 지니고 있는 품성이나 인격이라 풀이한다. 당신은 '개 됨됨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전혀 없을 것이다.

강물은 쉴 새 없이 흘러간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기원전 535-475)는 아무도 결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넣을 수 없다는 소름 끼치는 진리를 설파했다. -- No man ever steps in the same river twice. 플라톤보다 100여년을 앞서 살았던 그는 또 정신과 의사도 아니면서 한 사람의 성격은 그 사람의 운명이라는 심각한 말을 남겨서 니체뿐만 아니라 토마스 하디 그리고 루이제 린제 같은 예민한 글쟁이들로 하여금 똑같은 명언을 되풀이하게 했다. -- A man's character is his fate.

헤라클리투스는 'being'이라는 존재(存在)의 격식보다 꾸준히 변모하는 'becoming', 즉 생성(生成)의 유동성을 존재론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에 있어서 사람의 성격과 운명은 봉산탈춤의 가면 같은 붙박이 그림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모하는 동영상이었으며 기원 전 500년에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석가모니의 열반경에 나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사상과 대동소이한 개념이었다.

'become' 'be'와 'come'을 합친 말이다. 'becoming'은 현재진행이면서 미래지향적이다. 나는 오늘도 정상인이건 입원환자건 큰 구별 없이 우리 모두의 사람 됨됨이에 온 정신이 팔린다.

©서 량 2015.09.20
-- 뉴욕중앙일보 2015년 9월 2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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