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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Grimm brothers)의 동화책에 나오는 'Rumpelstiltskin'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옛날에 허풍쟁이 방앗간 주인이 자기 딸은 물레질로 지푸라기에서 금을 뽑아내는 재주가 있다며 떠들고 다녔다. 왕은 그녀를 불러 지푸라기를 주면서 밤새 금을 짜놓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노라 명한다.

골방에서 울고 있는 방앗간 딸 앞에 난쟁이 도깨비가 나타나서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 그 일을 해주겠다고 이른다. 그녀가 그에게 목걸이를 건네준 다음날 아침 방안에 번쩍이는 황금이 몇 점 놓인다. 왕이 더 많은 지푸라기를 가져오자 도깨비는 그녀가 끼고 있던 반지를 받고 다시 금을 만들었다. 세 째 날, 왕은 방에 지푸라기를 잔뜩 채워 놓고 이번에도 같은 일에 성공하면 그녀를 왕비로 삼겠다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도깨비에게 줄만한 귀중품이 없어서 어쩌나 싶다가 왕비가 되면 첫 아들을 달라는 그의 제안에 동의하고 대량의 황금을 산출한 후 왕비로 등극한다.

왕비가 첫 아들을 낳자 그녀를 찾아온 도깨비는 약속대로 왕자를 자기에게 달라고 채근한다. 울며 애원하는 왕비에게 도깨비가 내세운 해약조건은 사흘 안으로 그의 이름을 알아 맞추는 것이었다. 왕비는 전국에 신하들을 풀어 온갖 남자 이름들을 수집한다. 한 신하가 우연히 숲 속에서 토끼와 여우와 함께 있는 도깨비를 보았는데 그는 자기 이름이 럼펠스틸트스킨이라는 것도 왕비가 모른다고 노래하며 깡충깡충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흘이 지나 기대에 부푼 도깨비는 왕비가 자기 이름을 제대로 부르니까 크게 실망한 나머지 오른쪽 발로 마루를 쾅쾅 찍는 중 다리가 밑으로 깊숙이 빠져 헤어날 수 없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양손으로 왼쪽 다리를 잡아당겨 몸을 수직으로 찢어 두 동강이 난 채 죽었다. (1812년 원본에는 그가 화를 내면서 사라졌다 했으나 1857년 출판 최종 수정본은 이렇게 잔혹한 장면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1972년에 'The Mind Game: Witchdoctors and Psychiatrists' (마음 게임, 마법사와 정신과의사)라는 책을 쓴 E. F. Torrey는 사물의 이름이 창출하는 마술적인 결과를 자세하게 묘사했다. 의사들이 대개 그렇지만 특히 정신과에서는 사람의 정신상태에 명칭을 부여해서 환자를 무지의 공포에서 해방시킨다. 일단 병명이 밝혀지면 나머지는 거의 자동적인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다. 성명철학을 잘은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도 가장 달콤한 것도 이름이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통성명을 한다. 그런데 악수를 하는 도중에 한쪽이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고 우긴다면? 말도 안돼! 의심이 많은 당신은 초면에 이름과 성 중에서 어느 한쪽만 말하는 사람들의 습관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미국인은 이름만, 한국인은 성만 알려주는 보안위주의 사고방식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럼펠스틸트스킨은 일국의 왕자를 양자로 삼아 권력을 휘두르는 기대에 심취하여 자기 입으로 본명을 발설했다. 그에 있어서 본명이란 현대의'Social Security Number'만큼 일급비밀이었으나 저 자신의 보안대책이 허술했던 것이다.

고대영어에서 'name'은 단순히 이름이라는 뜻이었지만 13세기에 들어 명성이라는 의미도 첨가됐다. 우리의 도깨비는 레퓨테이션과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썼고 요컨대 본색을 들어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들통났다는 분노 때문에 럼펠스틸트스킨은 자살했다. 반면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방앗간 집 딸은 그놈의 본명을 밝혀내는 정신적 방어력 때문에 아무런 신경증상이 없는 왕비로서 행복한 여생을 지낸 것이다.


©
서 량 2015.11.01
-- 뉴욕중앙일보 2015년 11월 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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