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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선물

2012.01.01 15:54

노영일*68 Views:4239



선 물


내 뒤를 이어 신경내과 전문의로 개업을 하고있는 큰딸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내어 집에 왔다.

내 콤퓨터를 써보더니 너무 느리다고 하며 선물로 새 콤퓨터를 하나 사주고 갔다.
새 콤퓨터를 앞에놓고 무엇을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20년전 이맘때 있었던 일이 문득 기억에 떠올랐다.





큰딸이 마사츄세츠주에있는 앰허스트대학에 다닐때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되어 학기말시험이 끝나는대로 집에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시카고 인근에 폭설이 내릴지 모른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고 하루쯤 늦게 떠날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기숙사가 문을닫아 그럴수 없단다. 또 마침 시카고방향으로 가는 여자 동급생이 있어 태워주기로 약속을 하여 그약속도 깰수가 없단다.

마음이 찜찜하였으나 어찌 할수가 없었다. 아빠는 괜한 걱정을 하는게 병이라며 도리여 핀잔을 준다.

오는 도중 중간중간에서 전화를 하여 무사히 오고 있음을 알수있었다. 마지막으로 인디아나에 들어섰다고 전화가왔다. 이제 한 두어시간만 있으면 집에 도착하겠구나 생각하고 날씨는 어떠냐고 물어봤다. 좀 춥고 눈이 내리지만 별문제는 없을것 같다고 한다. 그것이 마지막 전화였다.

세시간 네시간이 흘렀는데 오지도 않고 아무런 전화도없다.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가 없을 때여서 딸이 휴게소나 음식점에 들어가 전화를 해야만했고 나는 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는한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벌컥 걱정이 되기시작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혹시 무슨 사고나 나지 않았나. 테레비를 켜보니 지금 인디아나에는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에서 수많은 차량들이 눈에 미끄러져 대형사고가 나고 여러군데 길이 막혔단다. 길가에 미끄러져 떨어진 차량들도 즐비하나 사고가 너무많아 고속도로 경찰들도 손을 쓸수가 없단다. 더욱이 기온이 급강하하여 영하 십여도로 내려갈 전망이란다.

점점 비관적인 생각이 엄습해 왔다.

인디아나 고속도로 순찰대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어린 두 여학생이 구조되지는 않았느냐? 사고자 명단에 없느냐? 그런이름은 구조자나 사고자명단에 없단다. 이름과 인적사항을 자세히 알려주고 확인이되면 즉시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일리노이 순찰대에도 전화를 했다. 같은대답이었다.

더이상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과 초조감이 엄습해 왔다. 같이오는 여학생 인적사항이라도 알아 둘걸 잘못했다는 후회감이 들었다. 그집에 전화하여 공동전선이라도 폈드라면 마음이 조금은 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일어났다 앉았다, 방안을 왔다 갔다 서성이기도 하며, 연신 창밖을 내다 보니 함박눈은 더욱더 실하게 퍼붇고 있었다. 낙천적인 아내도 처음에는 뭐 눈이 오니까 좀늦겠지 하며 좀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봐 하더니 다섯시간 여섯시간이 지나니 초조해하는 눈치가 분명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걱정은 그에 곱배기로 깊어갔다. 새벽두시가 되니 이제는 방정맞은 절망감마져 들었다. 차사고로 크게다치지는 않았는가? 눈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얼어 죽은것은 아닌가? 병원에 전화를 해보려고 해도 어디에 건단말인가? 그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지도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오라고 할걸. 첫번째 사립대학 등록금 수표를 쓰고나서는 눈앞이 캄캄했었다. 내평생 그렇게 큰 액수의 수표를 써본적이 없었고, 앞으로 4년동안 어떻게 계속 등록금을 낼것인가 계산을 해보니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았다. 더구나 그아래로 세아이가 연년생으로 있는데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할것인가? 절약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쓰던 헌차를 주어 태워 보냈다. 비행기값을 절약하려고 했다가 내가 이 천벌을 받는구나!.

일곱 여덟시간이 지나고나니 이제는 허탈감에 빠졌다. 할수있는 것이라고는 기도 밖에 없었다. 그때만해도 교회라고는 건성으로 일년에 한두번 나갈정도였다. 내 평생에 그렇게 진심으로 기도해본 기억이 없다.

아내나 나나 이제는 지쳐 비몽사몽간에 있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번개같이 전화를 받아보니 천진스러운 딸의 목소리였다.

너무나 반가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사연인즉, 인디아나 고속도로로 오는데 눈이 엄청 쏟아져 길이 않보였단다. 커다란 트럭뒤만 따라 왔는데 갑자기 트럭이 고속도로에서 나가버려 가이드를 잃어버렸단다. 대강짐작으로 오다가 그만 미끄러져 길옆 도랑에 쳐박혔단다. 허리가 넘는 눈을 헤치고 간신히 차에서 빠져나와 길옆에 오들오들 떨며 서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고속도로 순찰차가 그들을 발견하고 차에태워 인근 모텔에 데려다 줬단다.

폭설로 모텔전화가 끊어져 전화도 못하고, 우선 얼은몸을 녹힐려고 따뜻한 샤워를 하고 잠시 누었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단다. 잠에서 깨어나 그래도 집에서 걱정할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모텔인근 가게에 나와 전화를 하는 것이란다.

원망을 할수도 없고 화를낼수도 없었다. 다만 무사한것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서 모텔로 돌아가 푹쉬고 내가 낮에 좀 따뜻해지고 눈이 멎으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다음날 살을 에는듯한 추위를 뚫고 모텔로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길가에 수없이 쳐박힌 차들은 좋은 구경거리였고, 흣날리는 눈발이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었다.


시카고에서 노 영일


Photo & Text by Y. Ro. January 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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