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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금발의 제니

2012.10.10 01:25

노영일*68 Views:4773


금발의 제니


나는 어렸을때 무료하면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곤 했다.

특히 스티븐 포스터의 노래들을 좋아했는데, 오수잔나. 올드 블랙 죠, 올드 켄터키 홈, 뷰티플 드리머, 이런것들이었다.
금발의 제니를 부를때면 미지의 세계, 아름다운 나라의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하곤 하였다.

그때 미국은 나에게는 천국과도 같은나라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부친이 재미당시 가까이 지냈던 마음씨 좋은 노부부가 “아이디알”이라는 잡지를 매달 빠짐없이 보내주었다.
이 잡지에는 아름다운 사진, 파스텔 그림, 시나 성경구절들이 실려있었는데 이것은 나의 상상의 세계를 더욱 충실하게 메꾸어 주었다.

나는 노래를 하며 환상의 세계에서 제니와 만나고 이야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이민할 무렵 아내가 그린 그림.



미국에 첫발을 디디면서부터 나는 제니를 만나보고 싶었다.

처음 내린곳이 씨아틀 이었는데, 정말로 나무가 울창하고 맑고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와 닫는것이 내가 드디어 천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서울거리에서 사람들의 홍수속에 서로 밀치며 다니다가 이곳에 오니 사람들을 별로 구경할수도 없었다.
차소리나 시끄러운 소음도 전혀 않들리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교외의 풍경은 정말로 “아이디알” 책에서 보던 바로 그런 분위기였다.

누이집 마당의 잔디도 아름다웠고 정원한구석에 서있는 배나무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배들은 아무도 따먹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서 물탄 우유만 먹다가 이곳에 와서 종이포장에 들어있는 우유를 먹어 보니 그 맛이 하늘과 땅사이였다. 처음보는 컬러 TV도 신기했다.


음악을 들으시려면 글자가 없는 빈공간을 클릭하세요.

며칠후 쎄인트 루이스로 이사를 했다.
내가 미국에서 정착한 첫번째 고장이었다.

서부개척의 관문이었음을 기념하는 게이트웨이 아치에는 손님이 올때마다 수도없이 올라갔다.

미시시피 강가에나가 톰 쏘이어나 허클베리 핀이 모험하던 발자취를 찾아보기도 하고 제씨 제임스가 숨어 살며 신출귀몰하게 열차 강도를 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던 현장에도 가보았다.
정말 미조리에는 동굴들도 많았다.

레지덴트수련을 마치고는 알라바마로 이사갔다.

민권운동의 발상지고 인종차별이 가장심하다는 딕시랜드의 심장부였기에 처음에는 상당히 긴장했다.

그당시만 해도 중국인 청년이 백인여자와 데이트를 하다가 길에서 총에맞아 죽었다고 신문에 났었다.

그러나 내가 의사여서 그랬는지 의외로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Southern Hospitality”가 무엇인지 느낄수 있었다.

병원에서도 오늘하다 못하면 내일하면 그만이고, 서두르거나 핏대를 내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느긋하고 그런것이 당연한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학교에만 갔다오면 남쪽 사투리를 흉내내며 깔깔대고 웃었다.



올드 블랙 죠의 후예들



메모리알 데이에 미국습관에 따라 바비큐를 하러 공원에 갔다.

낯선 고장이라 지도를 펴보고 가장 가까운 공원을 찾아 갔는데,
그 곳에는 100% 흑인들만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흑인들이 모이는 공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자기들끼리 떠들고 웃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민권운동은 다 외부 사람들이 와서 하는것이고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만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이 방해를 받지 않기를 원하는듯 싶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드리고 불평없이 사는듯 보였다.



Southern Hospitality. 벤조를 치며 환영하고 있다.



알라바마에서 살던동안 딕시랜드 (미국 남부주들) 를 이곳저곳 둘러 볼수 있었다.
미시시피에서는 변소에도 가지 말라고 하여 억지로 참고 운전하며 루이지아나 까지 멈추지 않고 직행했던 생각이 난다.



피즈버그에 있는 포스터 동상



스티븐 포스터는 펜실바니아가 고향이고 신시나티에 잠깐 살다가 뉴욕에서 3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남쪽으로는 그의 형이 경영하던 증기유람선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가본일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딕시의 흑인들의 생활을 모델로 한것이 많다.



스와니강.



조지아에서 후로리다로 가다가 스와니강을 보았다.

노래에서 생각하던 만큼 그렇게 아름답거나 큰강은 아니였다.
그러나 나의 상상의 세계에서만 여러번 오르내리던 강을 실제로 본다는 감격이 있었다.





농장 (Plantation) 에 있는 장원



흑인 노예들이 살던 집.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루이지아나에서는 노래에 나오는 옛 농장 (Plantation) 들을 구경하고 올드 블랙 죠가 살았음직한 곳들도 보았다.

모든 수련이 끝나고 시카고에 직장을 잡아 이사를 했다.

알라바마친구들은 너 정말 시카고에 가고싶으냐고 정색을하고 묻는다.
그들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라고 알라바마 밖으로는 나가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미지의 세계 시카고는 그들에게는 사뭇 공포의 대상인듯도 싶었다.



시카고에 산지 30여년. 이제는 나의 제2의 고향이되었다.

나는 거리에서, 마천루에서, 호수가에서, 내가 일하는 병원 진료실에서, 또는 미국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제니 비슷한 여인들을 여러번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제니가 아니었다.

여름 안개처럼 부드럽게 떠다니는, 들꽃처럼 행복하게 물가를 거니는 그런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제니를 한번 만나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국에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다.
늙고 쉬어가는 목소리로 금발의 제니를 다시한번 불러본다.


2012년 10월 10일 시카고에서 노 영일.

Text & Web Page by Y. 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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