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김구 1 부)
(2부)
장개석과 국민당 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사건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상해 임시정부를 돕 습니다. 이전의 임시정부는 쏘련의 레닌의 도움이 컸었는데
김립의 레닌 자금 횡령사건으로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이 모두 떠나고 레닌의 원조도
고갈 되었 습니다. 김구는 붕괴직전의 임시정부를 떠맡아서 구해 냅니다.
분열되었던 재중 독립운동가들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크게 고무되어 유례없는
단결을 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장개석의 입김이 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당 정부가 자금줄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방정국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사람들이 일본을 적으로 생각했던 반면에 미국은 남한을
일본의 일부로 취급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08.18 14:33
2020.08.18 15:02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3387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과 제2로군에는 한인대원이 많았기 때문에 동북항일연군은 사실상 중국인과 한국인의 항일연합전선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동북항일연군은 해방까지 군대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어려웠으며 실질적으로도 중국 측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 북한 정권 수립과정에 참여한 다수가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의 인적 유대는 강화되었고, 또한 중국 공산당의 실질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김일성을 포함한 최현, 최용건, 김책 등은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며, 이들은 1945년 해방 후 당과 군의 요직을 차지하며 북한 정권 창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 본문에서
*동북항일연군 출신들이 쏘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의 권력층이 되었다. 김일성도
별다른 사람이 아니다.
Koreans in the Northeast Anti-Japanese United Army
Kim Il-sung, later to become leader of North Korea, was a high-rank officer in this army, and attained a distinction that he cross the Manchurian-Korean border and attacked Japanese police station in Pochonbo at 1937. It was widely reported by Korean presses such as Donga Ilbo and he became famous in Korea as the most prominent leader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After the war, some of the Korean nationals in this army became the first generation of the leaders of North Korea. Besides Kim Il-sung, An Gil, Kim Chaek, Choe Yong-gonand Kang Kon were also Korean high-rank officers of NAJUA, later assumed high positions in North Korea.[6]
2020.08.20 06:47
이념으로 갈라진 한민족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않았다. 남한은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와 연계된 활동을
북한은 모택동과 쏘련의 도움으로 활동한 항일 투쟁 역사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애써서 외세의 영향을 부정 한다.
북한은 동북항일연군 출신이 쏘련의 지지를 받아서 북한을 만들고
국민이 원했던 대로 친일파를 모조리 제거 했다.
남한(미군정)은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한 모든 민족 단체를 부정하고 일제
강점기의 기득권 층을 대거 등용 했다. 국민이 증오하는 정책이었다.
2020.08.20 12:35
상해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연관성은 지극히 미약하다. 광복군과
국군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차라리 대한민국 건국과 미국의 관계,
미국에 의한 국군 창설을 솔직히 인정해야 현재의 분단 상태가 미완성
독립임을 자각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0.08.21 11:56
Apology on my ignorance, Dr. Ohn, but I don't get it clearly. Is there any legitimate needs/necessity to link 상해임시정부 and 대한민국 from the outset?
As long as my understanding goes, 대한민국 건국 is owed 100% solely to 미국 and has nothing to do with 상해임시정부 and 모든 민족 단체 as you correctly pointed out. In reality, when you look at Korean history, Yi Dynasty, for example, was actually NOT with 100% sovereignty when you should look at the reality although we were taught Korea as a totally independent country. Indeed, one senior Chinese colleague, ZhingGao Wang, my lifetime friend, told me that they were taught Korea is one of the autonomous provinces of China like Tibet, no more no less! Sadly, this claim is not 100% wrong, wasn't it?!
BB Lee
2020.08.21 13:14
1919년 4월 13일은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창립된 날이다. 9월 11일에 각 임시정부들이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궁극적인 정통성은 상해 정부에 있다는 시각이다.
국제법적 관점에서 법적 요건(국제법에 입각한 주권 주장, 망명정부 소재지 국가의 승인, 실질적인 국가행위)을 갖추었기에 합법적인 정부로 볼 수 있다. 임시정부는 중화민국의 승인을 받았고 교육, 문화, 군사, 외교 활동 등을 시도하였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1948년을 건국 기점으로 삼는 견해는 침략사를 시혜사로 왜곡하려는 일본 우익에게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라 본다.[14] 그리고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됐다면, 북한은 국가보안법과 관계없이 반역집단이 된다. 즉,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보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도 북한은 반역집단이 된다.[15]
1919년 4월 13일 건국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1919년 4월 11일 건국론 옹호 근거와 동일하다.
임시정부는 정부의 요건(영토 확보, 주권적 지배권, 법률 제정 및 집행이 가능한 물리적 강제력)을 갖추지 못했다. 또한 임시정부는 미래에 주권을 행사할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요건(제한된 영역의 실효적 통치, 국제사회의 승인)을 갖추지 못했으며, 정확한 임시정부 창립일에 대해서도 관점에 따라 날짜가 분분한데다 1923년 국민대표대회 실패로 사실상 일개 독립운동단체로 전락하여 국가차원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는 1948년 7월 새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으며,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임시 정부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의미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1919년의 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이다. 만약 1919년에 건국이 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른 것은 다름아닌 임시정부 인사들 자신이었다. 따라서 1919년에 건국이 되었다는 견해는 임시정부 인사들 본인들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한 새 민주국가의 건설을 위한 강령인 대한민국 건국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에도 국가 건설과정은 '독립 선포 - 정부 수립 - 국토 수복 - 건국'이라는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임시정부가 건국을 위한 과정임을 나타낸다고 1948년 8월 15일 건국론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
또한, 한 나라가 국민 국가인지 여부는 자국민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의해 판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임시정부가 펼쳤던 승인외교는 실패했다.[18] 1919년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19][20] 하지만,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새로운 독립 국가가 탄생했음을 전세계에 선포한 후에, 다른 나라와 수교함으로써 국가승인을 받았고, 제3차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출처 필요][21][22][23]
이 견해를 가진 자들은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마련하고 향후 실질적 건국을 예비하는 과도기적 시스템으로 볼 수 있으며, 1948년의 정부는 그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엄밀한 의미에서의 국가를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서 1998년을 '대한민국 50년(제2의 건국)'으로 기념하고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주화 발행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8월 15일 광복절에 '대한민국 50년 경축사(제2의 건국에 동참합시다)' 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고[24], '제2건국운동' 을 추진하면서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또한, 애초에 '임시정부는 법통성, 정통성이 없다' 고 주장한 쪽은 여운형, 박헌영, 허헌 등 좌익이었다. 김구 등 우익은 '임시정부는 법통성, 정통성이 있다' 고 주장했다.[25] 여운형이 통일 국가의 지도자가 됐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건국일은 언제가 되는지, 건국일이 1945년 8월 15일 이전이 되는지, 이후가 되는지에 대해 언급을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훈령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는 1948년을 건국 기점으로 보는 견해에 따른 것이다.
*위키피디아, 건국절 논쟁
2020.08.21 13:23
https://news.joins.com/article/23497458
[출처: 중앙일보] "광복군 창설일을 국군의 날로" 김원봉이 부른 국군뿌리 논쟁
2020.08.21 13:48
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이
원하던 결과물이 아니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기위한것이 아니고
해방후에 새로생긴 두나라는 외세에의해서 만들어 진 나라들이다.
이것을 구태여 독립운동 단체들과 연계하여 한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부처럼 하려는 것은 결코 민족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500년동안 사대라는 원죄의 대가는 그리 쉽사리 치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강한 한나라가 될때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외세에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사대에서 비롯된 버릇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2020.08.21 21:45
만일 상해정부가 남한이나 북한의 정부를 세웠었다면
It would have been, "Koreans established Korea."
Unfortunately, both south and north Korea were established by the puppets of
Societ Union and the U.S.A. in 1945 after WWII.
We should be grateful that we got our ROK regardless of who were behind both Koreas.
Anyway, I like to say that Korea started in 1919 by a group of Koreans in Shanghai.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193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348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924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840 |
1703 | Filtering Facepiece Respirators(FFR:N-95 etc) [1] | 2020.08.10 | 이한중*65 | 2020.08.11 | 1742 |
1702 | Sex is dangerous [1] | 2020.08.10 | 온기철*71 | 2020.08.11 | 106 |
1701 | Dr. Mona Hanna-Attisha [1] | 2020.08.11 | 이한중*65 | 2020.08.11 | 116 |
1700 | 미, 나가라, 중, 오지마라, 한, 괜찮다 [2] | 2020.08.11 | 온기철*71 | 2020.08.12 | 73 |
1699 | 6.25 이야기 | 2020.08.12 | 최광택*70 | 2020.08.12 | 89 |
1698 | 미국 & 박정희대통령!! 삼성.현대.중공업 탄생비화!! [1] | 2020.08.13 | 손기용*61 | 2020.08.13 | 75 |
1697 | [EPL] 손흥민 79m 원더골, BBC 선정 '올 시즌 최고 골' [3] | 2020.07.27 | 황규정*65 | 2020.08.14 | 766 |
1696 | 이름 표기 유감 [4] | 2020.08.14 | 최광택*70 | 2020.08.15 | 234 |
» | 백범 김구 [9] | 2020.08.17 | 온기철*71 | 2020.08.21 | 92 |
1694 | 반일제 일본인들 [1] | 2020.08.22 | 온기철*71 | 2020.08.23 | 741 |
1693 | Tokyo Black Hole [1] | 2020.08.23 | 온기철*71 | 2020.08.23 | 66 |
1692 | Steve Bannon charged with fraud [6] | 2020.08.20 | 온기철*71 | 2020.08.23 | 103 |
1691 | Coronavirus Reinfection [3] | 2020.08.24 | 이병붕*63 | 2020.08.25 | 102 |
1690 | How does Trump’s sister regard Trump? [4] | 2020.08.23 | 온기철*71 | 2020.08.25 | 227 |
1689 | 김정은 in Coma, SK diplomat says [5] | 2020.08.23 | 운영자 | 2020.08.25 | 220 |
1688 | Here are Trump and His Republicans !! [1] | 2020.08.25 | 운영자 | 2020.08.26 | 101 |
1687 | 92세 할머니의 뼈있는 인생 조언 [2] | 2020.08.26 | 운영자 | 2020.08.26 | 86 |
1686 | You have been trumped [5] | 2020.08.26 | 온기철*71 | 2020.08.29 | 81 |
1685 | Akira Kurosawa's Dersu Uzala [9] | 2020.08.27 | 이병붕*63 | 2020.08.29 | 47025 |
1684 | 최경주가 말하는 그의 인생과 그의 Golf [4] | 2020.08.30 | 운영자 | 2020.08.31 | 79 |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430
임시정부·광복군과 OSS의 ‘독수리 작전’ 계획
1945년 3월 현재 광복군의 수는 총사령부 108명, 1지대 89명, 2지대 185명, 3지대 119명, 기타 13명 등을 합쳐 514명으로 확인된다. 이 가운데 중국인의 수는 65명으로 광복군의 실제 인원은 449명이었다.
*참고로 대대 병력이 평균 500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