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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20.10.24
부모 찬스 따위는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부모의 명예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힘들고 위험한 임무를 자원했다. 70년 전인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서 한국민의 자유와 자신들의 명예를 함께 지킨 유엔군 장군들의 아들 이야기다. 당시 국군과 미군, 영국군을 비롯한 유엔군은 비상한 각오로 북한군과 중공군의 공세를 필사적으로 막아 정전을 이뤘다.
'전차군단'으로 유명한 조지 패튼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미국이 6.25 전쟁 기간인 1953년 발행한 기념우표.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불굴의 의지와 추진력, 그리고 해박한 전쟁사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적인 작전으로 파시스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패튼의 아들인 조지 패튼 4세도 전차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중국과 북한이 10월 25일 중공군의 첫 전투 70주년 행사를 열면서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당시 사망한 것을 내세우지만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 장군의 자식은 모두 4명이나 된다. 사진=미국 우편박물관
2020.10.23 18:38
2020.10.2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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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20.10.25 21:16 수정 2020.10.2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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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오병상의 코멘터리]시진핑 '한국전 승리,중국역사 분수령'
인민군은 국군을 괴멸 시켰다. 미군이 부산 주위 지역에 방위망을
구축할 무렵 국군의 70%이상이 없어지고 겨우 어디있는 지 확인한
인원이 25%였다. 요지음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국민이 북한과
공산주의가 확실하게 남한의 적이라고 생각 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군 장성들은 국군을 "hauling ass"라고 했다. 대부분은 싸울줄을 몰랐다.
적을 보면 도망가기에 바빴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군인도 많았다.
한국전쟁은 미군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orean War, Bruce Cummings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