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2 15:05
I Am A Thousand Winds 본인(WM, 운영자)의 상상은 이 詩에서 보이는 구절; a thousand winds, the glint on snow, sunlight on the ripened grain, gentle autumn rain, the morning’s hush,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같은 자연현상과 그 표현은 문명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이거나 느끼지기 어려운것으로, 자연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었던 American Indian들의 생활의 일부로서 그들의 추모사에서 시작되지 않었나 싶군요. A Thousand Winds (천의 바람이 되어) When you awake in the morning’s hush, These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아래, 아래의 일본어 가사를 참고하십시요 金楨勳, John Hoon, 1980년 경상도 진주 출신으로, 서울대 치대 중퇴, 중앙대학 연예과 졸업, 그후 2006년부터 일본에서 활약시작 (윗구절은 漢字문장 번역으로 정확한지 모릅니다)
일본인이 일본가시로 부르는 천의 바람 千の風になって - 秋川雅史(Masafumi Akikawa) 千の風になって - 岩崎宏美 千の風になって(Senno Kazeni natte) 森麻季(Maki Mori)
千の風になって (台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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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16:45
2011.09.22 17:53
한국가사로, 혹은 일본가사로 들으셨나요?
Rose Jang이 부른 노래는 전혀 다른 작곡으로 별로 이더군요.
Arai Mann이 한국어 가사를 쓰지 못하게 한후에 Popera 가수 "임형주"의 한국가사 노래가
완전히 없어졌죠. (노무현 과 김수환추기경의 장례식에서 부른)
물론 처음 만든 임형주의 CD는 아직도 존재하겠지요 (?).
지금도 Internet 에서 이 노래는 찾을수 없고, 찾어도 Play가 않되지요.
다행히도 여기 Crossover Duet의 노래를 찾었는데, 이노래는 한국 가사인데도 살아있으니,
Arai Mann이 나중에 심뽀를 바꿨는지?? 하여간 다행입니다.
우리가 한국어로 부르게 되었으니... (일본어로는 I ain't gonna do it.)
한가지 섭섭한것은 원 영문시에는 "I am not there (but) I did not die"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의 한국어 번역에서 빠져있다는것,
즉 "나는 죽어서 (영원히) 사라진게 아닙니다" 라는 구절을 넣었으면 더 좋았을걸 합니다.
하긴 그나마 한국version노래가 있다는것도 감지덕지하지만....
영어 가사 version을 찾는중입니다. 아직 없네요.
2011.09.22 19:01
2011.09.22 19:24
제 고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나온 글을 통채로 올립니다. 음악은 전에는 나왔는데, 지금은 안 나오는군요.
千の風になって- 秋川雅史
日本語詞 作曲 新井満
一
私のお墓の前で 泣かないでください 나의 무덤앞에서 울지마세요
そこに私はいません 그 곳에 나는 없습니다.
眠ってなんかいません 자고 있지도 않습니다.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천의 바람이 되어 천의 바람이 되어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저 크다란 하늘을 날아 다닐겁니다.
二
秋には光になって 畑にふりそそぐ 가을에는 햇빛이 되어 비추고
冬はダイヤのように 겨울에는 다이아몬드처럼
きらめく雪になる 반짝이는 눈이 되고
朝は鳥になって あなたを目覚めさせる 아침에는 새가되어 당신을 깨우고
夜は星になって あなたを見守る 밤에는 별이되어 당신을 지켜보렵니다.
三
私のお墓の前で 泣かないでください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마세요
そこに私はいません 그곳에 나는 없습니다.
死んでなんかいません 나는 죽지도 않았습니다.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천의 바람이 되어 천의 바람이 되어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저 크다란 하늘을 날아다닐겁니다.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あの大きな空を 吹きわたっています
歌の背景
芥川龍之介(あくたがわりゅうのすけ) 賞을 받은 作家 新井満(あらい まん)이 노래한 作品입니다 曲을 만든 契機는 그의 親舊 아내가 急逝하여 그 女 死後 同僚들에 依해 編輯된 追悼文集 안에 作者不詳의 “A Thousand Winds”란 詩가 있어 그것에 깊은 感動을 느끼고 原詩(下記)를 찾아내 独自的으로 日本語 歌詞를 부쳐 스스로 노래 불렀습니다 그것을 個人으로 CD 30余枚를 만들어 親한 親舊에게 膳物하였는데 그때가 2001年의 일이 였습니다
A Thousand Winds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s rain.
When you awake in the morning b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 that shines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2003年8月 이것이 朝日 新聞 天声人語에 紹介되었는데 問議가 殺到 하여 같은 해 11月에는 “千の風になって”라는 타이틀로 詩集과 single이 同時 市販되었습니다 single은 23週 連続 long hit를 記録하였습니다
2004年7月에는 이 曲을 主題歌로 한 映画“千の風になって”가 公開되어 더욱 人気를 끌었는데 現在는 新垣勉 スーザン・オズボーン 秋川雅史 等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A Thousand Winds”는 日本의 一部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습니다만 英語圏에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데 親한 사람이 죽으면 자주 朗読된답니다
最近에는 뉴욕 世界貿易센터가 2001年9月11日의 테러로 崩壊한 뒤 그 撤去地 Zero ground에서 열린 追悼集会에서 아버지를 잃은 11歳 少女가 朗読하여 많은 사람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이 노래가 有名해진 데는 原作者 찾기였는데 以下의 記述은 主로 英國의 제프・스티본스(Geoff Stephens)의 CD“To All My Loved Ones”에 붙여진 文章을 参考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詩에 魅了되어 1989年 以後 經路를 찾는 旅行을 繼續해 왔으며 1996年 英國国営放送 BBC는 “国民に愛される詩”에 對하여 앙케이트를 實施하였습니다 NHK도“21世紀に残したい心の歌”라고 하는 앙케이트를 하였는데“書籍に載ったことがある詩”가 그 対象이 었습니다
놀랍게도 主催者가 予想도 못했던 詩가 斷然 一等의 一位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作者不詳이란 것에 타이틀마저 없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로 始作되는 詩였습니다
企画이 発表되자 이 詩를 希望하는 要請이 殺到 하여 結局 3万 数千 通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当初의 条件에서 벗어나 랭킹에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 앙케이트 結果 이 詩가 英國 国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契機는 한 사람의 젊은 英國 兵士의 주검이었습니다
그 兵士 스티본•제프리•카민즈(Stephen Jeffrey Cummins)는 1989年3月9日 英國領 北아일랜드(Northern Ireland)의 런던데리(Londonderry) 市内를 랜드 로바로 走行 中 地雷에 依해 죽었습니다
北아일랜드는 오랜 歲月 英國에서 分離된 아일랜드共和国과의 統合을 追求하는 가톨릭 系 住民과 英國으로의 残留를 希望하는 프로테스탄트 系의 住民과 싸움이 反復되어 왔습니다 이때에 前者의 非合法軍事組織인 IRA(아일랜드共和国軍)이 激化시킨 無差別테러로 카민즈 가 그 犠牲物이 된 것이죠
그런데 그의 遺品 안에서 発見된 것이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로 始作되는 詩었습니다 카민즈 는 自身의 運命을 予感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事件이 그 詩와 함께 3月10日 字 데일리•메일紙에 報道되어 英國을 始作으로 英語圏에 큰 感動 일으켰습니다 当初에는 카민즈의 作品으로 생각 했습니다만 그 後의 調査로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고 原作者로의 関心은 더 높아져 原作者를 찾기에 힘이 실렸습니다 前述한 제프・스테판스도 그 中에 한 사람입니다
原作者를 찾는 過程에서 여러 가지 人物이나 伝承이 떠올라 検証 結果가 有力했던 것은 美國의 原住民 인디안 由来 説과 메리・플라이 説 두 個였는데 우선 前者에 對하여 이 詩가 가지는 汎神論的・애니미즘的 이미지를 생각하면 確實히 美國 原住民由来 説이 有力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例를 들면 美國 人生相談의 回答 者로서 알려진 앤•난 다스(Ann Landers)는 1986年10月19日字 “워싱턴•포스트”紙 칼럼에서 “この詩はマカ族(Makah Indian)の祈りだった”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美國 原住民由来 説은 바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原詩를 보면 “weep-sleep, blow-snow, grain-rain, bush-rush, flight-night, cry-die”라고 훌륭하게 脚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相当히 教養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울 수 없지요 美國 原住民에게도 教養이 있는 人物은 있겠습니다만 이 説의 可能性은 相當히 낮아지고 또 이 詩가 有名해 졌을 때 “わが部族の文化遺産だ”라고 主張하는 사람만이라도 있었다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사람이 한 名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난 다스의 마카族 説은 美國 議会図書館의 文献検索의 専門家 다비드•쿠레슈(David Kresh) 가 否定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카族의 親舊에게서 들은 바에 依하면 마카族의 居住地에는 눈이 내리지 않고 穀物 밭도 없고 상냥한 가을비도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보다 무엇보다도 美國 原住民은 죽은 者의 魂을 산 者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멀리 하고 싶다는 것이 通例인데 이 詩와 같이 죽은 者가 언제까지나 산 者의 곁에 있다고 하는 이미지는 생각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에 対하여 메리•플라이 説은 相当히 信憑性이 높다고 해서 좋은 것 같습니다 “A Thousand Winds”가 有名해지고 나서 그 經路를 찾던 몇 사람의 저널리스트나 詩의 研究者가 미국•메릴랜드주 발치모아에 사는 한 사람의 女性을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메리•플라이(Mary Frye)었습니다
英國“타임즈”에 依하면 그 女의 経歴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1905年11月13日 오하이오州 덴톤에서 클락夫妻의 아이로 태어나 메리•엘리자베스 라고 이름이 지어집니다 3歳 때 孤児가 되고 12歳 때 발치모아 로 移徙 갑니다
1927年 그곳에서 洋服店을 經營하는 쿠라우도•플라이 와 結婚하여 딸 하나를 낳지만 1964年에 男便과 死別합니다 그리고 2004年9月15日 99歳에 死亡합니다
메리는 높은 教育을 받지는 못했지만 記憶力이 좋은 読書家였습니다 “A Thousand Winds”말고도 몇 個의 詩를 썼지만 出版된 일은 없었습니다
캐나다의 CBC 放送局이“A Thousand Winds”에 對하여 그 女와의 인터뷰 한 放送테이프가 남아있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은 “A Poetic Jorney”로 放送된 것은 2000年5月로 인터뷰는 그 前年인 1999年에 이루어 진 것 같습니다 인터뷰가 行하여 졌을 때 메리는 94歲로 自身의 生日祝賀의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以下의 記述은 그 때의 그女와의 對談에 根據하고 있습니다
1932年 메리는 獨逸에서의 亡命者인 마가렛•슈왈쯔콧푸(Margaret Schwarzkopf)이라고 하는 女性과 親舊 사이었습니다 當時 獨逸에서는 第1次大戰의 敗戰 前 나치스의 主導에 유대인排斥이 激化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續續 國外로 脫出하였는데 마가렛도 도 그 中에 한 사람이 었습니다
그女의 어머니도 脫出하고 싶었습니다만 高齡으로 手足이 不便하여 脫出은 無理이었습니다 부득이 마가렛은 홀로 脫出했지만 어머니를 두고 온 것을 언제나 自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어머니의 消息은 끊어지고 八方으로 모든 手段을 動員하여 수소문하였으나 그녀에게 傳해진 것은 어머니의 死亡消息이 었습니다 그女는 神經衰弱에 빠지고 每日 울며 나날을 지네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쇼핑하러 갔습니다 歸家 後 茶褐色의 종이 封套로부터 꺼낸 쇼핑 物 안에 메리가 산 것을 보고, 마가렛은“それ、母が大好きだったの”라고 하며 쓰러져 흐느껴 울었습니다
메리가 慰勞해도 울음은 그치지 않고“何より辛いのは、母のお墓に行ってお別れを言えないことよ(…… I never had the chance to stand at my mother's grave and say goodbye)”이라고 말하고 울면서 2層의 自己 房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 때 메리의 손에는 쇼핑 체크를 爲해 鉛筆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突然 그女의 머리에 詩想이 떠올라 茶褐色의 종이 봉지를 찢어 그것에 써 두었습니다 그것이 메리가 처음으로 쓴 詩이었습니다
暫時 後 마가렛이 多少 沈着性을 되찾고 내려 와 메리가 막 쓴 詩를 내보이면서 그것을 읽은 마가렛은 메리를 끌어안고“この詩は一生大事にするわ” 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그女는 우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마가렛이 그 詩를 職場에서 同僚에게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본 同僚는 聯邦政府印刷所에 勤務하고 있는 親舊를 紹介해 주어 거기에서 몇 部를 複寫하여 周邊 知人들에게 나누어 준 것 같습니다
이 때부터 이 詩는 獨自的인 生命을 지니고 홀로 걷기 始作했습니다 아래는 CBC의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메리의 오리지널로 紹介된 詩입니다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in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softly falling snow.
I am the gentle showers of rain,
I am the fields of ripening grain.
I am in the morning hush,
I am in the graceful rush
Of beautiful birds in circling flight,
I am the starshine of the night.
I am in the flowers that bloom,
I am in a quiet room.
I am in the birds that sing,
I am in the each lovely thing.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o not die.
오늘 날에 傳해 지고 있는“A Thousand Winds”와 比較해 보면 最初의 두 줄과 最後의 두줄 밖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正確하게는 最後의 行의 do가 did로 變하고 있어 改變되지 않은 것은 세줄 뿐입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메리가 最初에 提示한 이미지는 조금도 損傷되어 않았습니다 이것은 詩의 中核으로 되어 있는 스피릿(Spirit)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高尙했는지를 如実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단지 CBC의 主張인데도 不拘하고 위의 詩는 메리의 完全한 오리지널이 아니고 몇 사람인가의 손을 거친 뒤의 完成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原作成者 黃圭源 ( 인터넷 카페 엔카즈키 회원)
2011.09.22 22:18
2011.09.23 04:47
계식 님;
자세한 해설의 글, 고맙습니다. 그런데 본인 의견으로는...
"例를 들면 美國 人生相談의 回答 者로서 알려진 앤•난 다스(Ann Landers)는 1986年10月19日字 “
워싱턴•포스트”紙 칼럼에서 “この詩はマカ族(Makah Indian)の祈りだった”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美國 原住民由来 説은 바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原詩를 보면 “weep-sleep, blow-snow, grain-rain, bush-rush, flight-night, cry-die”라고 훌륭하게
脚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相当히 教養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울 수 없지요
美國 原住民에게도 教養이 있는 人物은 있겠습니다만...
그것보다 무엇보다도 美國 原住民은 죽은 者의 魂을 산 者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멀리 하고
싶다는 것이 通例인데..."
윗 이론의 Indian origin의 부정은 상당히 "황당무계 (荒唐無稽)" 하다고 봅니다.
심지어는 American Indian들에 대한 차별적 모독 같습니다.
1. American Indian들은 영어는 고사하고 자기네 글도 없었지요 (언어는 있지만).
우리의 추측은 이 노래의 배경 Idea가 Indian culture (생활과 전설)와 그들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Unwritten story에서 유래한다는것이며, 어느 한 Indian이 몸소 pen을 들어 한자 한자 이 시를 썼다는
얘기가 아니지요.
(예를 들어서 단군 신화, 에밀레 종 등등의 얘기는 옛부터 口傳으로 내려 오는것을, 어느날 한사람이
글로 썼으며, 이 경우에 글로 쓴 사람은 창작한 사람이 아닌거지요.)
즉 이 idea가 옛날 미국동부에서 돌고있는것을 Mary가 Pen을 들어 영어 시로 바꾸어 썼다는 것이지요.
American Indian들은 한국사람의 Shamanism처럼 언제나 만사에는 "Spirit"이 있다고 믿고있으며,
그들은 Sacred burial ground의 예처럼 거기에 자기네 조상의 혼 (spirit)이 있다고 믿고 살고있읍니다.
이건 오늘 현재도 이들이 믿고 있으며 이들은 아직도 우리가 제사지내듯 거기에 예의를 베풀지요.
오히려 서구문명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요단강" 건너가 다시는 오지않고, 영혼은 남아서
우리주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이론을 편 사람이 분명히 Anti-Indian bias가 있어서
이론을 꺼꾸로 적용한것 같습니다. 즉 영혼이 바람이 되어 또 돌아 다닌다는것은 서구문명에서는
전혀 말이되지 않는 얘기이며 (Indian들에게는 당연한것이지만),
만일 누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건 Anti-Christian idea가 되는것이지요.
2. 또 미국에서 잘알려진 사실이지만,
Columnist Ann Landers는 그녀의 sister인 Abigail Van Buren과 사이가 좋지않어 서로 宿適인 경쟁자로
살었다합니다. 두 사람이 다 이 詩의 원저자에 대한 추적을 한것같은데, Ann Landers가 Indian설을
주장하니 Abigail은 그것을 뒤집어 엎은것이지요 (이때 Mary Frye설을 고집한 사람은 Abigail입니다.)
3. Mary Frye가 살던 시절에는 미국에도 심한 인종차별이 있던 시대로서, 이때의 미국인들은
아름다운 詩가 그들이 천하게 간주하던 Indian의 유래라는것을 전혀 용납할수 없었던 것이지요.
(기식 님은 모르실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없어진것은 불과 40-50년전입니다.
우리가 도착했을때도 인종차별이 있었지요.)
따라서 강짜로 Mary Frye에게 영광이 갔는지 모릅니다.
4. Mary Frye는 자신도 자기 詩의 근거를 창작이 아니고 몰랐었다는 얘기도 있지요.
5. 이 詩에 비치는 사상 자체가 서구적, 기독교적 사상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바람타고 날러다닌다는것은 우리 한국인, 몽골족, 미국 Indian들이나
믿는것이지요. 보세요. 우리가 제사 지낼때 촛불들고 혼을 마지하러 나가고 방문을 열어놓고
제사 지내는것을 아시지요? 우리는 혼이 날라다니는것을 믿는 (믿었던) 거지요.
미국에 그런 관습이 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본적이 없읍니다.
Thousand Winds는 Oriental shamanism (즉 Indian들과 같이)에서나 생길수있는 idea입니다.
6. 본인이 원문에서 얘기했지만, 이 詩에 나오는 관찰 (such as "a thousand winds, the glint on snow,
sunlight on the ripened grain, gentle autumn rain, the morning’s hush,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은 문명사회 사람들이 쉽게 볼수있는게 아닙니다.
Indian들은 늘상 보고 느끼는것이지요.
2011.09.23 10:39
좋아하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제 집사람도 이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고,
2년 전에 캐나다 갔을 때도, cd에 카피해 가지고 가서, 렌트카에서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