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7160
2021.10.22 08:15
2021.10.23 09:10
왕이 압록강 근처 의주까지 도망 갔을 무렵 명나라
이여송이 들어와 평양성을 탈환하고 전세를 역전
시켰습니다. 선조는 물론 조정대신들은 이여송 숭배에
열을 올립니다. 이후 명나라에 대한 사대는 극치에
달 합니다. 그러나 명과 조선은 임진전쟁으로 만주의
여진족 관리에 소홀 했 습니다. 그리고 명은 안으로 부패
했고 임진전쟁에 많은 전비를 써서 국력이 쇠약해졌
습니다. 여진족은 셋으로 갈라저 있던 부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금나라를 세웠 습니다.
임진전쟁과 정유재란으로 조선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철천지 원수로 생각 하기 시작 했 습니다. 이후 조선사람
의 일본에 대한 앙심은 지금까지도 변함이없다고 볼 수
있 습니다.
결국 명나라가 망하고 중국은 여진족이 지배하는 청나라
가 되었 습니다. 1등국가인 명나라가 망하자 2등국가를
자처 하던 조선은 대리 1등국가 노릇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명이 세상의 중심 "중화"였으니 조선은 "소중화"라는 이론이
었 습니다. 노론 총수 송시열의 "소중화주의" 입니다. 무시당한
청은 남한산성에서 저항하는 인조를 능멸 했 습니다.
그래도 골통 보수 노론의 명에 대한 의리는 조선이 망할 때 까지 계속 되
었 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개화 시켜 아시아 최초의 근대 서양국가를 만들어
주었 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놓고 러시아와 전쟁을 하자 다른 어떤 나라
보다도 많은 돈을 빌려 주어 일본을 도왔 습니다. 일본이 만주를 침략
하고 중국과 전쟁을 할때도 무기, 위발유, 비행기등등 아낌 없이 도와
주었 습니다.
의리에 죽고 산다던 일본은 미국을 공격 했 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시작 했 습니다.
순진한 Nerd(선비)와 무자비한 깡패(사무라이)의 차이 입니다.
2021.10.25 21:01
Dr. Ohn, according to someone in the previous webpage, there is a guy who claims that
"일본인은 조폭 이상으로 의리를 중시한다. 한 번 신세지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
And he even said Koreans should learn such loyalty from the Japanese.
How can you say that "의리에 죽고 산다던 일본은 미국을 공격 했 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시작 했 습니다. "
Who is making mistake here??
Is there some conflicting idea in some moron's imagination (in the previous webpage)
and your historical-fact-based idea?
Is that why the Japanese got killed by atomic bombs and Koreans should learn from it
and will get killed by hydrogen bombs someday?? LOL
PS: I was away from the Internet for about 60 hours in my seasonal movement to California.
Finally, I got connected to the Internet this after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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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북한)은 미국과 무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요지음
세상에 미국과 교역을 할 수 없으면 나라 살림이 말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에 중국과 교역을 할 수 없으면 나라
살림이 어려웠 습니다. 무역을 하려면 조공국이라는 특권
을 얻어야 했 습니다. 조공국 자격을 얻으려면 책봉이라는
조건이 붙었 습니다. 얼핏 조공이 손해보는 장사 처럼 보
이지만 그렇지 않 습니다. 조선이 하나를 가지고 가면 셋
을 주었으니 까요. 그러나 조선의 왕은 중국 황제의 인준을
받아야 했 습니다.
미국이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을 하지 않으면 교역 대상이
않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소위 미국 교역국가
의 대통령은 취임 하자 마자 미국을 방문 합니다. 만약 미국
에서 방문 초청을 하지 않으면 그를 국가 수반으로 인정 하지
않는 다는 신호 입니다.
조선은 명나라에게서 책봉과 조공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은 그렇지 않았 습니다. 그들에게 왜관은 중국 무역의
창구 이기도 했 습니다. 일본은 마카오를 통해서 중국과 조공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 했지만 몇년에 한번 씩 조공이 허락
되는 간헐적인 관계에 그칩니다. 그래서 조선은 항상 중국
일등 조선 이등 일본 삼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본을
대했 습니다.
조선 초기의 명신 신숙주는 일본을 2년동안 여행하고 해동
제국기라는 책을 발간 했 습니다. 그는 임종에서 성종에게
"일본과의 우호 관계를 깨트리지 마시옵소서" 라고 충고
했 습니다. 그러나 그 직 후 일본은 센코쿠 시대라는 100
년동안의 내란에 휩싸이게 되어 조선과 일본의 교류가
단절 되었 습니다. 1497에서 1590 동안 일본 열도를 대표
하는 나라가 없었다고 할 수 있 습니다.
그동안에 조선에 나타나는 일본사람들은 왜구라는 해적
이었 습니다. 왜구는 일본에서 활동 했고 조선은 물론 중국
에서도 약탈을 일 삼았 습니다. 물론 조선사람, 중국사람도
이들과 같이 해적 노릇을 했 습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내란의 승자로 군림하고
통일된 일본을 만든 것은 1590년 경 입니다. 물론 왜구를
토벌 했 습니다.
100여년 동안 일본을 전혀 몰랐던 조선은 임진전쟁이 터지
자 일본이라는 국가가 조선을 침략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해적떼 왜구가 또 귀찮게 한다고 믿었 습니다. 이는 명나라
도 마친가지 였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라고 했습니다.
요지음에는 임진전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책봉을 받아들이고 조공의 특권을 가진 조선은 일본과
특별히 무역을 할 필요도 일본을 구태여 알 필요를 느끼지
않았 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일본에 왜관 같은 것을 만들
지 않았 습니다.
대마도는 산이 많고 경작지가 적어서 먹을 양식이 부족
했 습니다. 조선과 무역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형국
이 었 습니다. 에도(도꾜) 막부는 조선과의 교역으로 중국
과 직접 교역 할 수 없는 부분을 메꾸어야 했 습니다. 조선
의 왜관은 필수 였 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편리 함은 대국에 의존하는 버릇을 영구화
시켰고 일본의 난관은 홀로 서려는 독립심을 키워 주웠
습니다. 16세기에 실패한 조선과 대륙 침략은 20 세기에
반복되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신숙주의 유언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