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5 09:01
한국 민주주의의 희망
by온기철 James Ohn Dec 25. 2021
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12191554001
김동연 ‘새로운물결’ 창당 “이재명, 윤석열 수신제가 없이 치국 논해"
제3지대 대선 주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19일 ‘새로운물결’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초대...
한국의 대선이 70여일 남았다. 이대로 가면 이재명 아니면 윤석열이 당선 될 것으로 예상 된다. 그러나 이 두 후보에 대한 뉴스는 그리 고무적이 아니다. 여당 후보인 이재명이 성남 시장 재임 시에 이루어 진 대장동 아파트 개발 사업 사건에 연루 된 것으로 의심 되는 인물 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재명이 조폭과 관련 되었던 경력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마당에 이러한 자살 소동은 자살 사주 내지 타살을 의심하게 한다. 야당 후보인 윤석열의 장모는 땅을 사기위해서 은행 잔고를 위조 했다는 협의로 1년 징역 선고를 빋았다는 소식이다. 4년전에 밝혀진 사실을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묻어 두었다가 최근에야 검찰이 수사에 나서서 재판이 끝났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재명 아들의 불법도박과 윤석열 부인의 허위 경력 조작 취업등을 고려 하면 이 두 사람 모두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결론에 쉽사리 도달 할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후보의 망언과 실언은 그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면 민심 파악을 할 능력이 없는 지도자라는 증거이다.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공약 했으나 오히려 적폐를 만든 정부가 되었다. 국민은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있다. 윤석열은 검찰 재직동안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정의의 투사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강하게 주었다. 그는 그 바람을 타고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그의 주위에 한자리 하려는 사람들이 구름 떼 처럼 모여 들었다. 윤석열은 이들을 걸러내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선거 운동에 참여 시키고 있다. 이들은 마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것처럼 본래 야당 지도자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 윤석열의 사람 관리 능력이 지극히 의심 된다.
그러나 두 후보의 지지율은 거의 대부분의 여론 조사에서 36-40% 이다. 두 사람 외에도 심상정, 안철수, 김동연등 소위 제 3지대 후보들이 있는 데도 유권자들은 이 두사람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과 제1야당 후보가 아니면 수권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일까?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일제강점에서 벗어나 만들어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해방과 냉전에서 시작한 나라이다. 새나라는 일제강점기에 교육받고 일제에 참여하여 일했던 사람들이 다시 등용되어 만들어 졌다. 좋게 보면 당시의 인재들이었고 오늘날 흔히 쓰는 말로 표현하면 친일파가 시작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 보수의 원조이다.
새나라는 북의 공산주의 국가와 대치하고 있는 반공국가가 되었다. 보수의 약점은 친일이었다. 친일은 역적이라는 국민정서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들은 좌파(공산주의자) 색출에 혈안이 되었다. 한국의 보수는 전통적으로 반대당을 좌파 또는 빨갱이라고 해왔다. 그들이 정권을 잡는 상투 수단은 상대당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씨우는 것이었다.
반대로 한국의 진보는 보수의 약점인 친일경력을 집요하게 공격 해왔다. 친일파 청산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위안부, 징집, 징용 문제를 부각 시켜 국민의 항일정서를 자극한다.
한국의 보수는 한때 군사독재로 변신 한다. 이 또한 반공과 안보가 대의명분이었다. 진보는 반독재, 민주화를 목표로 투쟁 했다. 이들을 운동권이라고 한다. 현정부는 바로 운동권 세력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는 자유(친미)-반공, 진보는 항일-민주화로 갈라져서 정치판을 형성 했다. 민생에 직접관련된 경제 정책, 교육 정책, 복지정책은 커다란 차이가 없었다. 지금 여당과 야당의 정책도 국민의 여론에 따라 갈팡질팡 한다.
반공과 항일속에서 성장한 세대는 70대 80대 노인 들이다. 이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들이 이루어 놓은 선진국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반공-친일파 청산-반독재 정국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당과 제1야당은 전통적인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유산이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물결 김동연의 출현은 적시 안타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미국의 그늘에서 자란 대한민국은 어느 덧 선진국이 되어 있다. 이제 홀로 서야 한다. 1945년에 해방정국에서 만들어 진 진보와 보수의 구조에서 벗어나 민생에 기초를 둔 새로운 정치판을 짜야 한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물결"을 일으켜야 한다!
만약 진정한 새로운 물결이 일어 난 다면 여당과 제1야당의 이합집산을 예고 할 수 있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스캔달을 대한민국의 기회로 만드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https://brunch.co.kr/@jamessunohn/26
https://brunch.co.kr/@jamessunohn/25
온기철 James Ohn은퇴 의사
온기철의 브런치입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본직은 의사이고 취미는 골프와 역사 공부입니다. 지루한 역사를 재미있게 이해시키기위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2021.12.26 17:55
2021.12.26 20:1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11050#home
“보수와 진보의 핵심은 무엇인가?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면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체화되고 투영돼 있나? 300~400년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개별 국가의 상황과 경제 상황에 따라서 자본주의 이념과 보수·진보의 가치가 사회에서 적용되는 부분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한민국은 발전과 개발 단계에서 국가개입주의와 시장주의가 결합되면서 엄청난 발전을 했지만, 자본주의 역사에서 발전한 자유방임주의·수정자본주의·시장주의·복지주의 등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접목돼 매우 혼란스럽다. 누구도 정확하게 진보와 보수의 가치, 이념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어떤 분은 진영 논리, 흑백논리 싸움의 본질은 권력 투쟁,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김 전 부총리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지적했다. “어떤 사회 수준은 그 사회의 논쟁거리가 무엇인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논쟁거리는 무엇인가? 특정 고위 관료 자녀의 입시, 최근 불거진 역사에 대한 해석 문제 등이다. 공통점은 전부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김 전 부총리의 쓴소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입시 문제, 그리고 여야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미 점령군 논쟁을 꼬집은 것으로 보였다. 최근 이 지사가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국을 ‘점령군’으로 규정하자 윤 전 총장이 “셀프 역사 왜곡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김동연의 한국 진보와 보수에 대한 관점)
2021.12.26 20:21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 김동연이 직접 '본인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표현한 말이다.
1957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고 한다.
11세(1967년) 때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소년 가장 역할을 했다. 무허가 판자집에서 살고,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채석장에서 일하고, 산에서 나물을 캔 후 파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의 가족이 살던 판자촌마저 도시정비 사업으로 헐리면서, 허허벌판이었던 경기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로 강제 이주돼, 한동안 천막을 치고 살았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망해도 그렇게 망할 수가 없었다. 학업은 물론 때로는 끼니가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5월에 쓴 칼럼에선 "세 끼를 온전히 챙겨먹기 어려웠던 시절, 끼니로 자주 먹던 수제비, 외상 달고 됫박으로 샀던 쌀, 몇 장씩 사다 쓰던 연탄"이란 표현으로, 본인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했다.
맏아들로서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덕수상업고등학교(63회)에 진학했다. 고교 졸업 4개월 전인 1974년 11월, 17세의 나이로 한국신탁은행(現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2011년 9월에 쓴 칼럼에서 "어린 나이에 은행에 들어갔을 땐 우쭐했지만, 고졸 출신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았고 100m 달리기 경주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1977년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일과 병행할 수 있는 국제대학 법학과에 진학했다. 같은 해에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병역의무와 대학 학업을 병행했다.
이상 나무위키 김동연 생애 에서
2021.12.26 20:26
야간학부를 다니는 동안, 은행 합숙소에서 옆방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 잡지'를 보고 관료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전까지는 고시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이후 직장과 병행하면서 주경야독한 끝에, 1982년 제6회 입법고시[1]와 제26회 행정고시에 모두 합격하는 영예를 얻었다.[2] 훗날 이때를 회고하며 "직장에 충실하면서 공직에 뜻을 두고 준비했다.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문제는 내 시간 만들기였다. 잠을 줄이고 15분 이상의 조각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1983년 '행정공무원'으로는 총무처(現 행정안전부)와 경제기획원(現 기획재정부)[3]에서, '입법공무원'으로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게 됐다. 사무관 수습을 받을 때, 행정고시 동기들은 대부분 서울 근무를 원했지만, 고향인 충북도청 근무를 자원했다. 당시 충북도청 지방과에서 일했는데, 음성군청 근무를 지원한 뒤 그곳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 사무관과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을 거친 뒤,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과 재정경제원 과장을 역임했다.
1988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것도 직장과 병행하면서 얻은 것이다. 그 후에도 자기의 학력을 두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 미시간 대학교 유학의 길에 올랐다. 발령 이후 선배들이 대학교를 물어, 야간대를 나왔다고 하고 돌아나오는데 뒤에서 말하기를 "요즘은 희한한 대학 나와서 고시 붙어 여기까지 오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장실에서 일을 맡기게 한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직속상사가, 자기와 고시 기수가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사회 경험이라고는 없는 서울대 출신 동료와 은행에서 8년 동안 일한 경력이 있는 야간대학 출신의 자신을 비교하며 서울대 출신 동료를 추천했다는 말을 당연스럽게 자신 앞에서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엘리트주의가 강한 관계, 그것도 서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당시 경제관료계에서 '국제대 출신'이었던 김동연이 겪었을 고충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공직에 입문하기 전에도 학력과 관련해 많은 고충을 겪었다.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이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한 직장상사가 바둑을 두는 것을 보고 훈수를 두었다가 뺨을 맞은 일화가 있었다. 그리고 꽤 친하다고 여겼던 직장 동료와 상사와 술을 마시면서, 술주정으로 '야간대학 밖에 못 다니는 놈' 운운을 하며 비하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3년, 3년 9개월이라는 '최단 기간'으로 미시간 대학교에서 정책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해 미시간 대학교 기록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때 국가장학금과 풀브라이트 장학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2002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 2002년부터 2003년까지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대학원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활동했다. 또한, 2005년까지 세계은행(WB) 선임정책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5년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 돌아온 뒤,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과 재정정책기획관 등을 역임했다. 이때 참여정부에서 발표한 국정마스터플랜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한국을 삶의 질 세계 10위로 올려놓고, 전체 예산의 40%를 복지분야에 편성해, 전체 육아비용에서 부모의 부담을 37%로 축소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때문에 김동연이 국가에서 복지를 책임지는, 이른바 ‘큰 정부’를 선호한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김동연은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높여 사회적 거래비용을 낮추는 ‘사회적 자본’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비전 2030'을 짤 때도, 정부 공식보고서에 사회적 자본 확충을 핵심전략으로 넣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이 당선인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을 맡았다. 같은 해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에서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았고, '경제·재정·통화·금융' 분야를 총괄했다. 경기 침체에 적극적 정책으로 맞서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조직 개편에 따라,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공기업 선진화와 규제 개편 등 주요 정책과제를 수행했다.
2010년 8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4]에 임명되었다. 당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줄이는 등, 이명박 정부의 기조에 맞춰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산실장으로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 차례나 직언을 하면서, '영유아예방접종 지원 확대' 등 다섯 가지 재정사업을 관철한 일화가 있다. 또 예산실장으로 일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예산 정책기조를 다시 점검할 것을 주문하자 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예산안 검토에 집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외계층인 차상위 이하 가정의 우수 고등학교 졸업생 해외 유학 사업인 '드림장학생'이 당시 예산실장이었던 김동연의 작품이다. 사업의 제안부터 예산 편성까지 직접 주도했다. 예산실장으로 있으면서 2조 5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교육희망사다리' 사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상 나무위키 김동연 생애에서
2021.12.26 20:35
2002.10. IBRD 프로젝트 매니저 (2002.10.3. ~ 2005.8.9.)
2005.8.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 (2005.8.10 ~ 2006.6.29.)
2006.6.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2006.6.29. ~ 2007.3.5.)
2007.03.05 - 2007.11.20 : IBRD 대한민국 정부 파견관
2007.11.22 - 2008.02.22 :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
2008.02.22 - 2008.06.24 : 청와대 재정경제1비서관
2008.6.24.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2008.6.24. ~ 2009.1.20.)
2009.1.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 (2009.1.20. ~ 2010.8.16.)
2010.8. 기획재정부 예산실 실장 (2010.8.16. ~ 2012.1.8.)
2012.1. 제4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 (2012.1.8 ~ 2013.3.1.)
2013.3. 초대국무조정실장 (2013.3.2. ~ 2014.7.22.)
2015.2. 아주대학교 총장 (2015.2.4 ~ 2017.6.6.)
2017.6. 제4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17.6.9. ~ 2018.12.10.)
I hope 김동연 is as good as you said.
The other two seem to be very poor presidential candid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