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06:17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60322
*태극기를 최초로 도안한 사람은 역관 이응준이다. 박영효가 아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1882.5.22.) 140주년을 앞두고 수교 당시에 고안된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 도안 2점이 공개됩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조미수교 당시 고안된 가장 오래된 태극기 도안 2점 등을 전시하는 <조미수교와 태극기> 특별전을 13일(금)부터 박물관 1층 로비에서 연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공개되는 태극기 도안 2점은 박물관 소장 도서 『해양국가의 깃발 Flags of Maritime Nations』(1882년) 속에 나오는 태극기 도안과 2017년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미국 의회도서관 슈펠트(R. Shufeldt, 수교 당시 미국 전권대사) 문서에서 찾은 원 도안입니다.
그동안 최초로 태극기를 고안하고 사용한 이는 박영효로 알려져 있었지만, 2008년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새로 찾은 태극기 도안 2점을 집중 연구하는 과정에서 학계는 『해양국가의 깃발』(1882년) 속에 실린 태극기 도안이 박영효 태극기보다 넉 달 앞서며 조미수교 당시 고안된 태극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습니다.
이후 2017년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슈펠트 문서 1882년 6월 11일 자 보고서에서 『해양국가의 깃발』(1882년)에 실린 태극기의 원 도안을 찾았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태진 교수의 인터뷰 영상, 미 해군부가 간행한 『해양국가의 깃발』 복제본과 번역본, 태극기 변천 과정 연표도 나란히 선보입니다.
2022.05.23 06:32
2022.05.23 06:35
1882년(고종 18)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선은 국기가 없었다. 그때까지도 정식 국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해 5월 14일,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Schufeldt) 제독은 만약 조선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깃발을 게양한다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는 자신의 정책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생각해, 조선 대표인 신헌과 김홍집에게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 때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제정할 것을 명했고, 이응준은 5월 14일에서 22일 사이에 미국 함정인 스와타라(Swatara)호 안에서 국기를 만들었다.[2] 이 ‘국기’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인식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
이는 1882년(고종 18) 9월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됐던 박영효가 만든 것보다 4개월 앞선 것이다.
5월 15일 의정부에서 작년 별행(別行)의 수역관인 이응준과 재차관 오경연(吳慶然), 수역관 현제보(玄濟普), 당상역관(堂上譯官) 고영희(高永喜), 당하역관(堂下譯官) 조한용(趙漢容) 등이 노고를 바친 것이 많았다 하여 시상을 건의하였고, 8월 17일 다시 의정부에서 공로를 바친 것이 이미 많으니 특별 가자(加資)를 고종에게 건의하여 승락받았다.
논란이 일자, 2008년 5월 27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한시준) 주최로 서울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린 〈국기 원형 자료 분석 보고회〉에서는 한철호 동국대 교수,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 이태진 서울대 교수 등이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4시간 넘게 격론을 이어 간 끝에 태극기의 창안자는 이응준이었으며, 박영효는 ‘이응준 태극기’ 중 4괘(卦)의 좌·우를 바꾼 뒤 국기로 공식 제정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3]
2022.05.23 06:4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3315
슈펠트 도안은 1882년 5월 22일 태극기의 탄생을 공식화했다. 태극기의 생일이라 부를 만하다. 조미조약 미국 측 대표가 직접 보고 그린 것을 미 해군에 보냈기 때문이다. 그해 9월 일본 수신사로 파견된 박영효가 선상에서 처음 태극기를 그렸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본문에서)
조선의 사정도 급박했다. 중국·일본·러시아의 포박에서 벗어날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과거 중국과의 책봉-조공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 독립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미국과 손을 잡게 됐다. 조선이 제3국으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미국이 즉각 개입하고, 조선도 수출입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관세 자주권을 인정받았다. 이후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구 열강과 잇따라 체결한 조약의 모델이 됐다.(본문에서)
*윗글쓴이는 "쉬벨트 도안"이란 말을 쓰지 말았어야 한다. 쉬벨트가 최초로 태극기
를 도안 한 인물로 오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 청과의 조공 관계를 청산하려고 했다는 서술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조선은 청나라 황준언이 제시한 조선책략에 준하여 청나라
를 통해서 미국과 통상조약 교섭을 하고 있었다.
2022.05.23 07:12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B1%85%EB%9E%B5
황준현 조선이 러시아를 경계하여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지 않다
“ | 러시아가 서양 공략을 이미 할 수 없게 되자, 이에 번연히 계획을 바꾸어 그 동쪽의 땅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였다. 십여년 이래로 화태주(사할린)를 일본에게서 얻고, 중국에게서 흑룡강 동쪽을 얻었으며, 또한 도문강 입구에 주둔하여 지켜서 높은 집에서 물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형세이고, 그 경영하여 여력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시아에서 뜻을 얻고자 함이다. 조선 땅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에 자리잡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싸우는 바가 되니 조선이 위태로우면 즉 중동의 형세가 날로 급해질 것이다. 러시아가 땅을 공략하고자 하면 반드시 조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 ” |
그리하여 황준헌은 조선책략을 통해 다음과 같은 조선이 선택해야 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 | 아! 러시아가 이리 같은 진나라처럼 정벌에 힘을 쓴 지, 3백여년, 그 처음이 구라파에 있었고, 다음에는 중아시아였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 조선이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즉,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과 같은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 ” |
러시아를 막는 책략으로 제시한 전략은 세가지로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라는 용어로 정리된다. 구체적인 의미로 황쭌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국이 나라를 세운 시초는 영국의 혹독한 학정으로 말미암아 발분하여 일어났으므로 고로 항상 아시아와 친하고 유럽과는 항상 소원하였다. 조선으로서는 마땅히 항상 만리 대양에 사절을 보내서 그들과 더불어 수호해야 할 것이다. 미국도 조선과 수교를 원한다. 우방의 나라로 끌어들이면 가히 구원을 얻고, 가히 화를 풀 수 있다. 이것이 미국에 연결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1880년 고종 17년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가져와서 고종에게 바쳤다.[5] 이 책은 조선의 보수적인 유생들에게 심각한 반발을 유발하여 1881년 〈영남 만인소 사건〉 등이 일으났으며, 개화를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들에게는 당시의 국제 정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또한 고종 19년 1882년 5월 22일 청나라의 주선으로 미국과의 수교(《조미수호통상조약》)를 맺는데에도 조선책략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현재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이 책의 내용 중 "일본의 바다에서 종횡한다면(縱橫於日本海中)"에 섞인 '일본해'(日本海)라는 말이 동해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다.[6] 해당 사이트에서는 한국인이 일본해란 이름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 이 책은 청국인이 쓴 책이다.
2022.05.23 07:21
고종은 미국을 믿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미국의 영사는 일본를 위한 스파이가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도왔다. 두 나라는 러시아의 적이었다. 러시아가
가 태평양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일본을 키워 주었다.
2022.05.24 08:29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01/12/MEANH7FET5FJTPTBJ2JMZQTSYI/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조약과 무관해야 마땅한 청나라 관리 마건충(馬建忠)이 그 체결 현장에 있었으며, 그가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이다. ‘조선 대관 신헌과 김굉집이 먼저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先行三跪九叩頭禮·선행삼궤구고두례).’(마건충, ‘동행초록’, 소방호재여지총초 조선편, 인하대한국학연구소, 2010, p203) 병자호란 직후 조선국왕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행했던 그 삼궤구고두례를 200년 뒤 바로 이 땅에서, 제3국 조약 체결 현장에서 중국에게 행한 그 이야기.
2022.05.25 09:20
https://pgr21.com/freedom/89332
마건충이 이르기를,
“지금 한 가지 일을 알리니 귀 국은 먼 곳의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국기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지난 번 이응준(李應浚)이 국기의 형식을 소매에 넣고 도착하였는데 일본과 귀 국의 국기 형식이 서로 섞였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지난번에 황(黄) 참찬(參贊)이 귀 국하여 당연히 중국의 용기(龍旗)를 사용해야 한다고 저에게 보여 주었으니 역시 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건충이 이르기를,
“내가 생각건대 귀 국의 기는 백색 바탕에 푸른 구름과 붉은 용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직 용은 네 개의 손톱을 사용한 것으로 구획을 암시하였으니 어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네 개의 손톱과 다섯 개의 손톱의 (차이만) 있을 따름입니다. 푸른 구름이라는 것 역시 구름을 취하느냐 용을 따르느냐로 군신이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이유로 바탕을 백색을 사용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건충과 태극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태극기를 마건충이 제안 했다는 설은
근거 없는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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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하였고,[6] 9월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에도 일본의 증기선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였다.[7][8] 1882년에 고종의 명을 받아 처음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태극기는 1883년 3월 6일(고종 20년 음력 1월 27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되었다.(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