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3 21:03
온기철*71 Views: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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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철; 김구의 김립 암살사건; 박진순, 한형권, 김립은 누구
2023.08.05 08:34
나라가 없는 민족이 된지 9년 째 되던 해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발표는 조선사람들에게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차대전 패전국의 식민지를 독립시켜 그들의
힘을 약화 시키고자 하는 계략에 불과 했다. 승전국의 식민지는 요지
부동이었다.
아무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발표 후 3.1운동이 일어나고 상해임시정
부가 탄생 했다. 그러나 민족자결주의의 발상지인 미국과 영국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은 조선사람들의 독립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
었을 뿐더러 일본과 한 통속이 이었다.
임시정부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미국내 에서 모금한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거의 보내지 않았다. 따라서 임시정부은 자금난에
시달렸다.
이 때 레닌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버금 가는 약소국 독립을 위해서
적극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 했다. 물론 서방 제국주의 국가를 약화
시키고 공산주의 확장을 위한 전략적 정책이었다.
볼세비키 혁명은 코민테른을 만들게 했고 중국내에 공산주의는 빠른
속도로 중국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내고 있었다. 파리 평화 협상에서
일본을 우대하고 중국을 홀대한 미국과 유롭국가들의 행위는 중국에
5.4운동을 불러 일으켰고 중국 공산당을 창당 하게 했다.
이러한 국제정세하에서 상해임시정부내의 좌파세력은 점점 강해져
갔다. 대통령은 우파 이승만, 국무총리는 좌파 이동휘로 되어 있는
임시정부는 자연히 죄파 세력이 우세한 구도로 변해 갔다. 이승만이
미국에 있고 자금을 보내지 않는 마당에 우파가 설자리는 점점
좁혀져 갔다.
임정내의 우파는 원로급의 연장자들이었고 죄파는 주로 소장파 들이
었다. 경무국장 김구는 극우 강경파였다. 죄파들은 레닌의 자금으로
자신들만의 임정을 만들려고 했다. 자금이 고갈된 상해 임정은 자신들이
나가면 파산할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좌파는 우르크추파 고려공산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으로
갈라지고 김립 암살사건 이후 레닌은 고려공산당에 대한 원조를 중
단 했다. 그 이유는 조선 공산당은 아직 혁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상해임시정부가 망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김구는 윤봉길의사 헝커
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을 성공 시켜 장개석의 원조를 확보 하여 임
시정부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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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없는 민족이 된지 9년 째 되던 해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발표는 조선사람들에게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차대전 패전국의 식민지를 독립시켜 그들의
힘을 약화 시키고자 하는 계략에 불과 했다. 승전국의 식민지는 요지
부동이었다.
아무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발표 후 3.1운동이 일어나고 상해임시정
부가 탄생 했다. 그러나 민족자결주의의 발상지인 미국과 영국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은 조선사람들의 독립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
었을 뿐더러 일본과 한 통속이 이었다.
임시정부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미국내 에서 모금한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거의 보내지 않았다. 따라서 임시정부은 자금난에
시달렸다.
이 때 레닌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버금 가는 약소국 독립을 위해서
적극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 했다. 물론 서방 제국주의 국가를 약화
시키고 공산주의 확장을 위한 전략적 정책이었다.
볼세비키 혁명은 코민테른을 만들게 했고 중국내에 공산주의는 빠른
속도로 중국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내고 있었다. 파리 평화 협상에서
일본을 우대하고 중국을 홀대한 미국과 유롭국가들의 행위는 중국에
5.4운동을 불러 일으켰고 중국 공산당을 창당 하게 했다.
이러한 국제정세하에서 상해임시정부내의 좌파세력은 점점 강해져
갔다. 대통령은 우파 이승만, 국무총리는 좌파 이동휘로 되어 있는
임시정부는 자연히 죄파 세력이 우세한 구도로 변해 갔다. 이승만이
미국에 있고 자금을 보내지 않는 마당에 우파가 설자리는 점점
좁혀져 갔다.
임정내의 우파는 원로급의 연장자들이었고 죄파는 주로 소장파 들이
었다. 경무국장 김구는 극우 강경파였다. 죄파들은 레닌의 자금으로
자신들만의 임정을 만들려고 했다. 자금이 고갈된 상해 임정은 자신들이
나가면 파산할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좌파는 우르크추파 고려공산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으로
갈라지고 김립 암살사건 이후 레닌은 고려공산당에 대한 원조를 중
단 했다. 그 이유는 조선 공산당은 아직 혁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상해임시정부가 망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김구는 윤봉길의사 헝커
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을 성공 시켜 장개석의 원조를 확보 하여 임
시정부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