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1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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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家傲 范仲淹 어가오 범중엄 塞下秋來風景異,衡陽雁去無留意。 새하추래풍경이, 형양안거무류의, 四面邊聲連角起。 사면변성연각기. 千嶂裏,長煙落日孤城閉。 천장리, 장연낙일고성폐 濁酒一杯家萬里,燕然未勒歸無計。 탁주일배가만리, 연년미륵귀무계. 羌管悠悠霜滿地。 강관유유상만지. 人不寐,將軍白髮征夫淚。 인불매, 장군백발정부루. |
어가오: 가을 생각 송대 범중엄 변방지역 가을이 옴에 풍경이 다르니, 형양 기러기 떠나 머물 생각이 없도다. 사면에 변방소리 연이은 뿔피리 소리 일어나네. 천개 산봉우리, 긴연기 떨어지는해 외로운 성은 닫혔네 탁주 한잔에 집은 만리 밖이니, 연연에 새기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으리. 강족의 피리소리는 유유하며 서리는 땅에 가득하도다, 잠 못 드니, 장군의 흰머리요 병사의 눈물이로다. |
譯文(번역글) Kwan Ho Chung - June 21, 2017 |
2017.06.22 02:11
2017.06.23 04:36
Dr. 조 감사합니다.
덕택에 이문열 선생에 관하여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변방시가 한대와 당대에 대단히 인기 있고 애호된 Topic이었지요.
남아라면 나라를 위해, 또 출세를 위해 한번 변방에 나가서 흉노족을 물리치겠다는 그 의기가 가장 애호를 받았던 시절입니다.
2017.06.23 20:13
제가 2-3 일전 올린 글 " 인왕산 계곡 옥인동"에 겸재 정선의 집이 있었고
그 그림 이 간송 전형필 미술관에 남아 있읍니다.
어쩐지 선배님 앞에 올리신 그림과 분위기가 비슷 하네요.
2017.06.24 06:17
여기 올린 인곡유거도를 잘 보았습니다. 참으로 그윽한 선비의 삶을 보는군요.
그런데 전영필 선생님의 미술관 이야기를 들으니, 나로서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내가 1950년 육이오 났던 해 초에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고, 몇 달 후에 전쟁이 일어났지요. 전영필 선생님은 보성학교의 교주였습니다. 구이팔 수복후 이제는 전쟁이 끝난 줄 알았고, 다시 개교를 해야겠는데, 보성학교는 어떤 미군부대가 사용하였기에 당분간 학교를 다시 찾을 때까지 전교주 댁에서 수업을 시작하였지요. 나는 돈암동 삼선교에 살았기에 보성학교 옆 언덕길로 성북동으로 들어가서 냇갈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깊숙한 곳에 그 댁이 나왔고, 거기서 우리는 어떤 방에 들어가 앉아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지 한달 남짓한 기간에 전황이 악화되어 다시 교장선생님께서 전황이 호전될때까지 당분간 휴교를 선언하셨어요. 그 후 상황은 Bad에서 Worse로 되어 결국 서울 철수가 되었고 우리 모두 피란을 갔습니다. 그런데 간송 미술관 주소 성북구 성북동 97-1로 되어있으니, 아마 이 자리가 교주님 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교주님 아드님이 나의 몇 년차 선배님인데 보성중고등학교 교장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만감이 떠오르는군요.
이건 여담이지만, Dr. 조는 국내에 계시지요? 내가 다음에 귀국방문할 때에는 한번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럼 좋은 날 가지세요.
2017.06.24 12:47
몇년 전에. 간송 전형필 선생 의 평전(이야기식 전기)를 읽었읍니다.(작자는 이 충렬이란 재미교포)
아직 안 읽으셨다면, 정 선배님 께서 읽어 보셔야될 책일 듯 합니다. 그책을 보면
1) 간송이 위기에 처한 보성학원을 인수하게된 배경/이야기
2) 한국 최고의 거부로써 많은 재산을 수많은 국보 ,한국 문화재 보전,구입에 쓰게 되는 이야기(훈민정음,
기와집 30채 값을 주고 일본인으로 부터 청자 운학 문매병 을 구입하는 이야기,
3) 6-25 ---9-28 후퇴시 보화각(간송박물관) 소장품들을 후퇴하는 공산당 문화인들로 부터 지켜낸 일화
4) 매국노 송병준의 집. 하인들 이 겨울날 마당에서 불쏘시개로 쓰던 "겸재의 화첩을" 간신히 현장에서 맊고 구입,보전하게된 일화등. 흥미진잔한 이야기가 넘쳐 납니다.
얼마전까지 간송 의 자제분이 보성고교 교장/이사장으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여담 한가지....얼마전 국랍미술관 서울관(소격동) 에서 신소장품 전시가 있었는데 선배님이 이야기한
묵로 이용우의 대작이 한편 전시되어 있었읍니다. 선배님 글에서 처음 배운 화가인데 ,좋은 그림이니 서울오시면 연락 주세요.
2017.06.24 13:43
현재 계획으로는 2019년 5월 초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늦은 봄 과히 더웁지 않고 미처 장마도 시작하기 전쯤 이지요. 이제는 남은 친척도 고교 동창도 몇 명 안됩니다. 1963년부터 1967년중에 잠시 생리학교실에 조교로 있었던 때도 있었지요. 그때 삼년간 군의관 복무할 때였습니다. 도미하기 전에 이상돈 교수님께서, "정관호, 미국 가지 말고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지?" 하셨지만, "저는 임상을 해보겠습니다."하고 떠났지요. 그후에도 겨우 몇 차례 귀국하면 생리학 교실에 꼭 들렸는데, 그 당시 교수님은 말할것도 없이 오래전에 타계하셨고, 나의 후배 김기환 교수도 은퇴한지 오래되었다고 믿습니다. 나의 젊었던 시절에 보낸 생리학 교실은 본관 뒤 7층(?) 건물로 이사를 갔고, 올라가자면 Elevator안에 Password를 넣어야 한다니, 참 이렇게까지 변한 세월을 한탄합니다. 비교적 사소한 집안 문제도 있고 해서 꼭 가려고 합니다. 그 때 연락하지요. 감사합니다.
2017.06.24 22:59
며칠전 제가 올린 인왕산 이야기 중, 김환기 미술관 옆모습 사진의 제 동기 엄대용 교수가 생리학 이상돈 선생의 수제자입니다.
중앙대--삼성/성균관 의대 창립 , 생리학 교실 ,학장을 지내고 은퇴...저희들 남산 walking group 의. 대장입니다.
남산 가지고는 성이 안차서, 현재 히말라야 등반중임.
야구선수 출신 김기환 선배는 저도 뵈온지 수십년 지났으나, 얼마전 서울의대 미술전에서 경지에 오른 서예작품을
보았읍니다.
이상돈 교수의 장남 이정렬 군이 소아 흉부외과 교수로 있어 간혹 만납니다.
삼대가 서울대에 교수가된 드문. 케이스 라 하겠지요. 요즈음엔 국립 보훈 병원 원장으로 나가 있고요,
80 년대 초 중반 제가 모교에 나가 몇번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당시 레지덴트로 제 조수를 서 준 추억이
있읍니다.
2017.06.25 13:00
우리 이야기가 끝이 없겠습니다. 여기에 이 모두 쓸 수 없습니다. 이상돈 선생님께서 한 번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사모님, 따님, 서랑, 그리고 손녀도 보았습니다. 김기환 교수와는 함께 선생님 삼선교 댁에 세배도 갔을 때, 이 두 악동 즉 장난꾸러기 들이 대동했던 이대 약대 출신 아가씨 두 분도 함께 갔는데, 두 아가씨중 누가 더 이쁘냐고 하며 놀려서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당황하여서 이 둘을 잡아 다른 방으로 가두기 까지 한 적도 있지요. 그 후 아드님 하나가 이곳 University of Rochester에 교환교수로 왔을때 우리와 저녁을 함께 하였고, 또 선생님 가족을 모시고 우리 집에서 Niagara Falls을 관람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 그곳에서 내가 가장 가까이 모셨던 분이 김우겸 선생님이었지요. 도저히 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낼 수 없으니, 반드시 서울서 한번 만나야겠군요. 시간은 정할 수 없어도 장소는 혜화역 근방에 낙산 가든에서 식사하고 맞은 편 학림다방에서 차 한잔하면 꼭 좋겠습니다. 그럼 Dr. 조, 편히 쉬세요.
2017.07.08 22:09
Dear WM:
Please open my past writing of "宋詞(송사) 漁家傲 秋思(어가오 추사): 가을 생각" dated June 21, 2017.
I believe I have finally mastered the art of utilizing Flickr.com, and naturally feel proud of myself
after having expressed my heart-felt thanks following so many exchanges with you.
Have a great day.
2017.07.09 14:44
I am glad you got it !!
It seems that you have found your own way.
As always, there are many different ways you can achieve your goal.
Generally, I can figure things out when I run into a strange problem that I face for the first time.
I am sure you will gradually get to the point when you can do the same.
I guess it was a good excercise for you.
Please feel free to discuss anything with me when you hit a brick wall and can not go any fur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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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변방 병영의 가을을 노래하기에는 조금 이른 초 여름의 더위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서리내린 가을 밤에 잠 못 이루나 여름 더위에 잠 못
이루나 잠 못 자는 것은 마찬가지 인듯 합니다.
제가 塞下曲(새하곡)이란 말을 처음 접한 것은 1979 년 신동아 잡지에
같은 제목으로 발표된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작 제목에서 였읍니다.
경상도 영양 양반 출신 무명의 문학 청년이었던 이문열은 6.25 공산치하 서울대
농대학장을 하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불운한 청소년기를 보내며 문학의 길을
걸었지요.
당시 이 생소한 소설 제목의 유래(몇가지 다른 시인들의 한시 새하곡)를 찾아본
추억이 있고, 당시 계급사회 군대 내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여러종류의
군인들 사이의 사건, 심리묘사가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몇 년전 시카고의 의대 후배 박종희 교수가 주관하는 세종문화회 행사 ‘
미국 고교생 대상 “영역 한국소설 독후감 모집”에 그의 영역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topic으로 정한 계기로, 이문열 씨의
시카고 방문 시 같이 앉아 그의 등단작 “새하곡”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여러 작품들, 특히 서울대 입시에도 논술
문제로 몇번 나왔던 그의 “이문열 삼국지” 등으로 성공한 준 재벌의 경지에
도달했고 또 극우 논객이 되었지요.
그 날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30 여년의 신동아 collection중 등단작이 실린
그 호를 가지고 나가, 그의 등단 소감 앞에 그의 싸인을 받아 놓았지요.
지금도 제 시카고 집 서재에 먼지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이 올린 한시 추사중 “塞下”(새하)란 구절을 읽고 잡소리를 늘어놓게
되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