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3 13:08
https://m.youtube.com/watch?v=gjyHltBSJ24
(첸널 A: 평양 공산당 vs 함흥 공산당)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 북한이 제법 해빙 무드가 조성 되고 있다. 이달 27일에는 문제인과
김정은이 만나고 다음 달 말경이나 6월 초에는 트럼프-김정은 담판이 이루러 질 모양이다.
김정은은 베트남 식의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중요한 정상들의 만남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남과 북의 왕래가 빈번 해질 것으로 예상 된다.
조선 시대에 평안도와 함경도는 소외 지역이었다. 건국 초기에 인구가 적은 이 지방 농토를 개간
하기 위해서 남쪽 사람들을 이주 시켜야 했다. 그 방법으로 노비가 그곳에 가서 살면 양민 신분으로
해 주었다. 죄인이 그곳에 살겠다고 하면 죄를 면 할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관서 지방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고 교시를 내려, 양반(사대부) 계급이 형성 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개화 시기-일제 강점기에는 교육, 예수교, 상공업이 쉽게 발달 할 수 있었다. 신 교육에 비교적
빨리 노출 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한 중요 한 인물들 또한 이북 사람들이 많다. 안창호, 김구, 안중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양반-상놈이 없는 평등 한 나라를 새우기 위해서 일제에 저항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국경을
마주 하고 있는 쏘련과 중국에서 스며들어오는 빨간 물에 젖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철천지 원수로 만 생각 했던 북한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아무래도 피는 못속이는 모양이다.
2018.04.14 05:34
2018.04.14 13:04
조선 말기의 개화파 인사였던 윤치호는 1921년6월4일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이조500년동안 서북인들은 정치적박대와 모욕적인 차별을 받아 왔다. 서북인들이 ... 기호인들을
증오하는 건 당연 하다. 그러나 지금은 .... 복수심을 실천에 옮길 때인 가? 조선인 모두가 자기의 적에게
앙갚음 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언제 쯤 단결된 민족이 되겠 는가?”
- 강준만 한국근대사 산책 제9권 에서
남북이 갈라지기 전 일제 강점기에는 서북 파와 기호파의 지역 감정이 대단 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서북 지방 차별에 그 원인이 있었음 을 알 수 있다.
2018.04.15 00:03
이조 시대에 서북인이 부당하게 차별대우와 박해를 받았음은 기정사실이지요.
그런데 Dr. 온, 왜 하필 윤치호를 인용하세요? 물론 그는 지식인이고 또 지도자였겠지만,
1920년도 이후에 친일파가 되었지요.
우리나라 민초 즉 백성이야 워낙 힘이 없고 또 지식을 별로 갖지 못했으니,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당시 지식인으로서, 지도자로서 친일을 한 행위는 마땅히 규탄받아야 할 게 아닌가요?
나의 비 전문적인 소견입니다.
2018.04.15 00:28
조선 말기의 개화파들은 “일본의 힘을 빌려서 개화를 추진하여 외세를 물리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
따라서 갑신정변, 갑오경장들- 참여 했던 개화파 정객들은 대부분이 친일파 라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서재필이 좋은 예입니다.
일제 말기에는 초기에 항일 하던 인사들 중 대부분이 친일로 반전 했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 동아일보
까지 천황 숭배에 적극 나섭니다.
윤치호는 갑신정변에 직접 가담 하지 않 았고 정변에 반대 했 습니다. 그러나 김옥균둥 개화파 인사'
들과 교류가 잦 아서 크게 의심을 받아서 10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다가 1895년 갑오 경장 중에 다시
귀국 했 습니다. 그는 매일 일기를 썼는 데, 아주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윤치호는 “이조” 500년이라고 적고 있는 데 “이씨조선”의 줄인 말입니다. 우리나라 조선 왕실의 기록이나 역사 기술에서는 이조 라는 말을 쓰지 않 습니다. 일본이 조선 침략을 시작 하면 서 조선 앞에 “이씨”를 붙여서 쓰기 시작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 조선, 기자 조선등과 구분 하기 위해서 라는 설, 조선을 비하하기 위한 기술 이라는 설이 분분 합니다.
좋은 질문 감사 합니다. 정 선배님!
2018.04.16 02:26
일제 강점기, 해방 직후까지 한국내 공산주의 운동사를 보면 북한 보다는
남한(남노당)이 특히 대구를 중심으로한 경북 지역이 아닌가 합니다.
한때 대구는 "동양의 모스코바" 라고 불리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구 폭동, 여수 순천 사태 ,6.25때 죽거나, 전향하거나,
월북 하여 한국 전란후 북한에서 김일성에게 숙청당하고 사라져 버리게 되지만--
.
약간 좌파적 역사가 들이 쓴 현대 역사책은 물론, 당시 신문 기사, 5.16 주체 김종필의 회고록 같은 것을
보면 후에 한국 정치사, 경제사,에서 보수 의 거물이 된 정객중 몇사람은 ( 김XX, 백 XX--)
남노당의 key memeber, 로써 해방후 대구 폭동, 전국 철도 파업에서 주도적 역활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한국이 좁은 나라라 정계, 경제계에는 이분들과 관련있는 분들이 아직 많이 활동하고 계시니 이름을
밝히는 것은 좀 그렇고, ----한국 근대사에 관심이 있 는 사람들은 쉽게 그 객관적 자료를 볼 수 있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법적인 연좌제가 없어 졌다고 하지만, 관습적 taboo같이 이런 과거사에 종교적으로 집착 물고늘어지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북한 공산당 vs. 남한 공산당 ??
이북 사람들은 본인이 보기에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호전적 같이 보였읍니다.
그들이야 말로 De Facto "고구려"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Damn "de facto 고구려" ! 그들은, Trump도 이제 우러러 보는, 이미 핵보유국이 아닌가 !!
(They are going to meet face to face now. Please don't ask me about the damn Moon-eeey....)
Now, Back to the stupid trivial thing... 따라서 이런 "도시 : 도시"의 경쟁이 생기지 않었나 합니다.
이것이 아마 김가족 정권 (평안도)이 한때 많은
함경도 사람들을 굶어 죽이지 않었나 하는데 정말 그런지?
남한의 "이씨 조선 왕조"는 원래 허약한 약골들, "좀도둑질에 허구헛날 Sex가 Main job"이였는데
때로는 지금 남한이 이런거 그대로 물려받지 안었나 합니다.
북한이 굶어가면서 핵보유국으로 갈때, 남한 정치인들은 "좀 도둑질"에 정신 없었지요.
(박정희 빼고 말이요.) 그러니 하긴 남한에서는 "시:시, 도:도"의 건전한 경쟁은 없었지요.
이런 얘기 끄내기 싫지만 어느 지방(?)에서 나온 김대중이 생각에 입에 신물이 납니다.
"믿는 나무에 곰이 핀다"라는 말에 "다시는 믿지않기"로 한다면 말이 될가?
더구나 한국좌파의 주동세력이 이 동네 사람들이 아닌지?
또 한가지... 쪼끄만 나라에 웬, hell, 끊임없는 문제...
만일 북한이 남한을 통일한다면 누가 괄세를 받을가? 역사적 예는 없으니 모르겠지만, 크게 염려됩니다.
만일 남한이 북한을 통일한다면 누가 괄세를 받을가? 이조시대 식 타락? 아니면 오히려 잡아먹혀??
하여간 이역만리의 A Korean American이기에 큰 걱정은 아니합니다만,
I don't have much hope. "18, 될대로 되라" 하지요.
Excuse me. Sorry about my 잡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