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rning sunlight
Shines on the Qin mansion
Whose pride is the lady
The lady Luofu.
For the silkworms she tendeth
She strippeth th mulberries
Which grow to the south;
From the cassia her basket
Hangs by a silk ribbon.
She has hair neatly braided,
Pearl earrings like moonbeams,
Silk petticoat yellow
And apron of purple.
When a wayfarer sees her
He sets down his burden
A while, strokes his beard.
A youth when he sees her
Doffs cap and salutes.
The ploughman leaves ploughing,
The hoer his hoeing,
And back in their houses
Find fault with their wives,
Having gazed on Luofu.
From the south comes a lording
In carriage with five horses;
Surprised, halts and sends one
To make an inquiry,
"Who is that beauty,
And who are her kin?"
"She is one of the Qins,
And her name is Luofu."
"And what may her age be?"
"Her summers not twenty,
Yet more than fifteen."
Then he, condescending,
Says, "Luofu, will't please you
To enter my carriage?"
She faces him boldly,
And thus makes reply:
"What nonsense you talk, sir!
You have your own wife,
And I my own husband.
From the east ride a thousand
With him at their head.
And how shall you know him?
By the white horse he rides,
By the black colt that follows,
Their silk-braided tails
And their gold-braided halters;
By the sword at his side,
With its hilt of jade fashioned,
For which he paid millions.
At the age of fifteen
He kept prefecture minutes,
A scribe in his twenties,
At thirty a minister;
Now, being forty,
He governs a district.
His skin is so fair
And he wears a long beard.
He moves in the yamen
With step slow and stately;
He sits among thousands
Who own him their best."
羅敷采桑
五馬立踟躕
五馬立踟躕 畫幅
注釋
陌上桑(맥상상):陌(맥):田間的路。밭사이의 길. 桑(상):桑林。뽕나무숲.
東南隅(동남우):指東方偏南。동쪽에서 남으로 치우침. 隅,方位、角落。中國在北半球,夏至以後日漸偏南,所以說日出東南隅。
喜蠶桑(희잠상):喜歡采桑。뽕잎 따기를 좋아하다. 喜,有的本子作“善”(善於、擅長)。 青絲為籠系(청사위롱계):用黑色的絲做籃子上的絡繩。籠,籃子(대바구니)。系,絡繩(纏繞籃子的繩子)。흑색 실로 대바구니의 그물을 만들었다. 籠鉤(농구):一種工具。采桑用來鉤桑枝,行時用來挑竹筐。연장으로 뽕잎 딸 때 가지를 잡은 갈구리
倭墮髻:即墮馬髻,發髻偏在一邊,呈墜落狀。즉 한 편에 있는 긴머리결로 떨어지는 모습
緗綺(상:有花紋的淺黃色的絲織品。담황색 비단
帩頭(초두):帩頭,古代男子束發的頭巾。모자 혹은 두건
少年(소년):古義(10-20歲)男
但(단):只是。坐:因為,由於。오로지
寧(영): would rather, to prefer.
使君(사군):漢代對太守、刺史的通稱。태수 혹 자사
姝(주):美麗的女子。아름다운 여자
謝(사):這裡是“請問”的意思。청컨대 묻나니
不(불):通假字,通“否”音也為“否”的音。부정적 뜻
居上頭(거상두):在行列的前端。意思是地位高,受人尊重。행렬의 앞
鹿盧劍(녹로검):劍把用絲絛纏繞起來,像鹿盧的樣子。鹿盧,即轆轤,井上汲水的用具。寶劍,荊軻刺秦王 時帶的就是鹿盧劍。보검
侍中郎(시중랑):出入宮禁的侍衛官。궁궐에 출입하는 시위관
盈盈(영영):儀態端莊美好。단정하고 씩씩하다.
冉冉(염염):走路緩慢。[2] 완만히 길을 달리다.
下擔捋髭須(하담날자수):放下擔子,撫摩胡子: 짐을 내리고 수염을 쓰다듬다.
羅敷(나부)
맥상상이란 대로가의 뽕나무인데, 이 고사는 바로 여기서 발생하였다. 여주인공은 하나의 나이가 젊고 미모의 진나부로서 그때 길가에서 뽕잎을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망한 “사군”의 괴롭힘을 당하여 그 권리와 귀함에 맛서 기지를 발휘해 응대하여, 자신의 남편의 재능을 과시하는 방식을 써서 상대방의 요구를 끊었다. 진나부의 신상은 전통여성의 굳건한 정숙을 체현하였으니, 수천년의 인간의 마음속 이상적인 여성형상을 이루었다. 맥상상이 악부명편에 들어가게 된 소이는 예술상 대단히 높은 성취 때문이다.
첫째 이 시의 완전한 구성으로, 수미가 서로 접하여 단숨에 지어냈다,
둘째로 서사를 위주로 하여 서정을 잡아 묘사하였기에, 서술이 융합하여 하나를 이루었다. 인물형상의 새긴 그림으로, 혹은 진한 묵을 거듭 칠해서 부하고 아름다움이 증가하였고; 혹은 수묵으로 가볍게 쓸어서 그 미묘함이 생동하고 있다. 특별히 측면묘사를 써서 나부의 아름다움의 배경을 보여서 후세에 영향이 대단히 크다.
셋째로 전편이 오언이라 독특한 풍격이 유창하고 언어가 질박하다.
제1단, 진나부의 미모를 그렸다. 우선 환경의 아름다움과 기물의 아름다움이 와서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였다. 그 후 그녀의 복장과 장식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최후에 측면묘사를 통과하여 그녀의 미모를 생동하게 그렸으니, 행인과 소년을 말할 것도 없고, 밭가는 자와 김매는 자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독자의 상상을 대단히 일으킨다. 그녀의 외표는 아름답고, 아래에 심령의 아름다움을 펴서 가까이 한다: 즉 노동인민이 나부에 대한 건강한 감정을 그리고, 더불어 후문에 사군이 호의를 갖지 않음을 대조하여 형성한다.
제2단, 사군은 니부의 미색을 엿보고, 그녀를 향하여 무리한 요구를 제출한다. 우선 사군의 말은 배회하며 가지 않고, 사군은 나부를 향하여 침을 흘리며, 계속하여 말을 건다. 성명을 묻고 나이를 듣고 최후에 “나부와 더불어 함께 수레를 탈것”을 요구하니, 이는 사군의 추악한 영혼을 폭로함이다. 사군의 언어와 행위는 점차 깊이 들어감을 그렸다.
제3단, 나부가 사군을 거절하며, 아울러 그녀 신랑이 이 사람을 압도함을 풍부히 자랑하며 그렸다.
본단은 전부 나부의 답언으로 구성되어서, 사군의 무리에 회답함이다.
사군의 어리석고 꾸물거림을 견책하고 풍자하며, 자기는 이미 장부가 있고, 장부의 위풍은 혁혁하며, 벼슬길에 통달하였고, 품모는 겸하여 우수함을 성명하였다.
나부의 대단한 영리는 자기 신분이 혁혁하고, 사군은 오로지 점차 수치하고 더러운 모습이 되었으며, 나부는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감히 권세에 대항하여 감히 투쟁적정신을 충분히 체현하였고 또 그녀의 인격적 매력을 표현하였다.
나의 소감: 使君從南來,五馬立踟躕。
여기서 “태수가 남쪽으로부터 오니, 다섯 필 말이 서서 멈추었네.”에 관하여:
그런데 태수가 탔던 수레는 다섯 필 말이 끌고 있었겠으니, 그 길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이 간다.
최근에 SNUMA Website에서 읽었던 온기철선생이 만주국에서 다음 글이 나온다.
한일합방시절에 “고작 세사람이 나란히 걸을 넓이의 도로가 가장 큰 길이었던 조선은 네 바퀴달린 교통수단이 들어오면서 넓은 신작로를 가지게 되었다.”
첫 번째 시는 후한시절 작품이니 연도가 AD 25-220 이었고.두 번째 상황의 연도는 대략 19세기 말이 아니면 20세기 초였을 것이다.
하긴 역사연속극을 볼 때 대신이 대궐과 집 사이를 통과할 떼 주로 二人轎에 앉고 하인이 그 가마를 어깨에 올려서 다녔던 상황을 볼 때 중국에 비해서 정말 좁은 길에서 예전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겠다.
그런데 나의 어리석은 상상은 넓고 넓은 중원대로에서 마치 오늘날 Kentucky Derby나 Belmont Stakes에서 보는 말을 생각하였으니 오해치고 너무나 큰 오해다. 그러나 그건 2000년전 일이 아닌가?
오늘 싣는 맥상상은 바로 최근 Dr. Ohn의 보부상에 관련된 글에 연관하여 올렸습니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오로지 중국 후한시절 AD 25-220 년도에 나온 작품 내용에서.
길거리에 뽕잎을 따던 미녀에게 수작을 걸었던 지방장관 태수가
다섯 필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왔다는 내용을 실었지요.
그 옛날 한나라 시절 큰 길이 얼마나 넓었으면 다섯필 말이 이끌던 수레를 탔을까하고
그 이미지도 실어서 한번 여러분께 보이고 싶어서 여기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조시절 한양 대로는 겨우 남자 셋이 횡렬하여 걸어 갈 정도라고 하니,
이조 오백년이 이렇게 초라했던가하고 놀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