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除夜:指公元1281年(元朝至元十八年)除夕。
(2)乾坤:指天地,即空間。
(3)空落落:空洞無物。
(4)歲月:時間。
(5)堂堂:跨步行走的樣子。
(6)末路:指自己被俘囚,不望生還,走上了生命的最後一段路。
(7)驚風雨:指有感於當年戰鬥生活的疾風暴雨。
(8)窮邊:極遠的邊地。此就南宋的轄區而言,稱燕京 為窮邊。
(9)風霜:指囚居生活的艱難困苦。
(10)屠蘇夢:舊歷新年,有合家喝“屠蘇酒”的習慣。
(11)夜未央:夜已深而未盡。曹丕《燕歌行》“明月皎皎照我床,星漢西流夜未央。”
(12) 衝淡 : modest; humble. 元旦: New Year Day. 恰恰: exactly, just, precisely.
(13) 反襯; set off by contrast. 勃勃; 기세가 오르다. 牽扯; to involve, 脆弱; Weak.
(14) 雕琢; carve cut and polish a jade, write in an ornate style. 瑣碎; trifling;trivial, 零碎细小
(15) 可是; 不過、然而、但是. 、然則. 震撼; to shake, to shock. 嬗變; 사세(事勢)가 변하여 달라짐
(16) 圖騰; totem, 像征圖形. 一輩; 세대.
文學賞析
이 시에서 시구는 겸손하며 평화로우니, 호매하고 강개함이 없고, 오로지 대영웅이 가족과 도소주를 즐기며 정월 초하루를 보내는 바램을 표현하였고, 글줄과 글줄사이에 한가닥 적막감과 비창한 정서를 노출하였다.
강철의 남아가 마치 부드러운 정의 순간과 반대로 발발한 강철의지아래에 육신의 진실성, 그리고 가족의 정으로 싹트는 취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심각한 체미로 하여금 위대한 인성과 쟁쟁한 남아의 인격을 알게 된다.
이 시는 수식어도, 사소한 구절도, 높이 부르짖는 읊음과 탄식도 없다. 단지 우리는 심령에 이르는 강렬한 전률을 일찌기 느꼈다.
시광이 변함도, 민족의 구성을 확대할 것도, 도덕과 시비의 관렴이 변할 것도 논하지 않고, 문천상은 우리민족의 정신적상징을 만들고, 충효절의의 인격적 상징도현을 만들었으니, 만세에 썩지 않고, 전복해도 멸하지 않고, 이리하여 후세에 무수한 세대의 도덕전범을 이룩할 것이다.
作者簡介
문천상은(1236년 - 1283년)은 한족으로 길주여릉인이며, 남송의 민족영웅이다.
그는 충렬로써 이름이 후세에 전했고, 포로가 된 기간에 원세조가 고권과 후록으로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죽음을 택하고 굴하지 아니하여 처형을 받았다. 육수부, 장세걸과 함계 송말삼걸로 칭한다.
쿠빌라이는 그 재능을 아깝게 여겨 마음을 돌려 보도록 계속 설득했는데, 이때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망국을 향한 자신의 충절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피력했다. 정기가는 진짜 위엄이 넘치는 명문으로 심지어는 제갈량의 출사표에 비견되기도 할 정도이다.
거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쿠빌라이는 처형을 주저하며 시일을 끌었고, 신료들도 문천상에게 호의적인 여론이었으나 문천상이 살아있어 남송의 잔병들이 소요를 그치지 않는 것이 밝혀지자 어쩔 수 없이 처형하기로 중론을 모았다.
투옥 5년여만인 1283년 남쪽을 바라보고 연경(燕京)의 시시(柴市)에서 참형되니 향년 47세였다. 이때 쿠빌라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얼마 안 있어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사자가 이르렀으나, 문천상은 이미 처형되어 죽어 있었다. 처형 후에도 쿠빌라이는 '그야말로 진정한 사내 대장부였다' 라며 애석해했다고 한다.
文天祥(1236年6月6日-1283年1月9日),漢族,吉州廬陵(今江西青原區)人,南宋民族英雄,初名雲孫,字天祥。選中貢士後,換以天祥為名,改字履善。寶祐四年(1256年)中狀元後再改字宋瑞,後因住過文山,而號文山,又有號浮休道人。文天祥以忠烈名傳後世,受俘期間,元世祖以高官厚祿勸降,文天祥寧死不屈,從容赴義,生平事跡被後世稱許,與陸秀夫、張世傑被稱為“宋末三傑
섣달 그믐 밤에는 가족, 친척이 모여 떡을 먹고 논다. 중국인은 도소주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번에는 시와 작자를 바꾸어 실었다.
작자 문천상의 남송의 시인이었으며, 마지막 충신으로서, 군사를 거느려 원군과 싸웠으나,
나약한 송나라 말년에 진격하는 세계의 최강 원군을 당할 도리가 없어
패배하다가 포로가 되어 원나라 서울에 잡혀가서 몇 해 감옥에 있엇는데,
원 황제 쿠빌라이 칸이 향복을 권유해도 듣지 않고 죽음을 택하였다.
나는 문천상 글을 읽을 때 안중근의사의 옥중 시와 글을 생각한다.
여러분, 기해년 맞이하여 건강하고 가내에 평안이 깃들기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