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계비의 내용 [편집] 설립 배경과 과정 [편집] 이에 조선 조정은 영고탑 회귀설[3] 등 대청 위기의식 등의 불안감으로 이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다가 1712년에 강희제가 황명으로 이를 공식적으로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4] 1712년(숙종 38) 이에 청나라는 목극동을 사신으로 파견하고, 조선 측에서는 참판 박권이 접반사로 맞이하여 이의복·조태상 등과 함께 음력 5월 15일 백두산에 올랐다가 정상인 천지에서 내려와 수원을 찾아내고, 산정의 남동쪽으로 4킬로미터 지점인 해발 2150미터 지점의 분수령에 비를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사계를 한 이후에 경계에 따라 설책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 측은 목극등이 정한 수계가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북평사는 설책 공사를 중지하라고 하였지만, 정계에 참여한 이들이 정계를 잘못 정한 책임이 두려워 목극등이 지정한 수원에서 남쪽으로 20리를 떨어진 곳에 새롭게 설책하였다.[5] 조정은 이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를 청나라가 알게 되면 목극등이 견책 받고 다른 청나라 사신이 와서 강토가 축소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이를 묵인하였다. 정계비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 [편집] 또한 사계 당시의 실록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조선의 입장은 압록강과 토문강을 경계로 삼아 토문강의 이남을 조선의 경내로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6] 더불어 정계비 수립 당시에 청나라 사신 목극동이 역관 김지남에게 경계에 대해서 묻고 김지남이 토문강 이남을 조선의 경내로 주장함에 목극동이 이를 크게 다투거나 힐책하지 아니하자 접반사 박권이 기뻐하며 이를 조정에 보고하였다.[7] 즉 당시의 조선으로서는 토문강의 이남, 즉 압록강과 토문강을 경계로 삼아서 이를 조선의 경내로 하는 데 합의한 것을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설립 이후의 사정 변화 [편집] 이에 조선은 1883년에 어윤중·김우식을 보내어 정계비를 조사하게 하였고, 간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침탈에 항의하였다. 즉 정계비 설립 이후 170여 년 동안에도 계속 간도는 조선땅으로 양국간에 인식되었으나, 간도에 중국인들이 몰래들어와 조선인들에 빌붙어 살고, 또한 일제에 의해 조선의 힘이 많이 약해진 사실을 알게 된 청나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토문강이 두만강을 뜻한다며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동위토문”의 해석을 왜곡 날조하고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8] 토문 혹은 두만의 의미를 둘러싼 최근의 연구 [편집] |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193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347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923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839 |
» | 백두산 정계비 [1] | 2009.08.13 | 운영자 | 2009.08.13 | 6006 |
8622 | 간도 땅의 역사 [1] | 2009.08.13 | 운영자 | 2009.08.13 | 7460 |
8621 | 간도 땅 다시 찾기운동 [1] | 2009.08.13 | 운영자 | 2009.08.13 | 8184 |
8620 | 밀양 신불산 능선 [4] | 2009.08.15 | 유석희*72 | 2009.08.15 | 7051 |
8619 | [광화문 광장 (光化門 廣場)] [6] | 2009.08.15 | 심영보*61 | 2009.08.15 | 7427 |
8618 | 2009 년 PGA Championship을 보면서 [2] | 2009.08.16 | 운영자 | 2009.08.16 | 6550 |
8617 | 양용은, Tiger와의 결전에서 PGA 우승 !! [2] | 2009.08.16 | 운영자 | 2009.08.16 | 7180 |
8616 | [re] 양용은 선수에게 드리고 싶은말 [2] | 2009.08.17 | 황규정*65 | 2009.08.17 | 8473 |
8615 | 양용은, PGA챔피언십 우승 [6] | 2009.08.16 | 황규정*65 | 2009.08.16 | 6659 |
8614 | 서울의대 산악반 OB 북악산 성곽 산행 [6] | 2009.08.16 | 유석희*72 | 2009.08.16 | 6524 |
8613 | 訃告 - 노병림*47 동문 별세 [4] | 2009.08.17 | 운영자 | 2009.08.17 | 7932 |
8612 | ♥ 뇌졸증-2 [1] | 2009.08.17 | 이종구*57 | 2009.08.17 | 9474 |
8611 | 며루치젓과 남북 통일 [4] | 2009.08.17 | K. Minn | 2009.08.17 | 6089 |
8610 | Card Magic or Dumb Joke ?? [9] | 2009.08.18 | Rover | 2009.08.18 | 6458 |
8609 | 옛날 조선 사람들 그림들 (1867년) [3] | 2009.08.18 | Rover | 2009.08.18 | 6439 |
8608 |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하고 [5] | 2009.08.19 | 이종구 | 2009.08.19 | 8018 |
8607 | 아이들에게서 받은 훈장 [4] | 2009.08.20 | Sungja Cho#65 | 2009.08.20 | 5843 |
8606 | “중국 山東半島 유람”[赤山, 泰山, 曲阜(孔廟.孔府.孔林)] [4] | 2009.08.21 | 심영보*61 | 2009.08.21 | 7451 |
8605 | Northern Lights - Aurora Borealis (from E-Mail) [1] | 2009.08.22 | 홍수웅*65 | 2009.08.22 | 8641 |
8604 | 여름의 설악산 [3] | 2009.08.23 | 유석희*72 | 2009.08.23 | 7246 |
물론 어는정도 我田引水식의 주장이지만 이세상의 모든 영토분쟁은
어차피 다 이런식이 아닐가? 영토주장은 다 이런 요지경이겠지요.
언젠가 읽은바에 의하면 북한은 원래 백두산 천지 전체를 영토화 했다가
625후에 김일성이 중국이 자기를 살려준 댓가로 천지의 반을 떼어주었다했는데
이건 무슨 얘기인지, 정확한 얘기인지 모를일입니다.
이 경우에 백두산 정계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이 되죠 (?).
또 백두산 정상이 분수령이지 어찌해서 정상 동남쪽 4 킬로지점의 낮은땅이 분수령이 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