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1 03:56
신들의 도시에 가다, 그리스 아테네 아테네의 인상 아테네는 하늘과 에게해(그리스 쪽 지중해를 이름)만이 짙푸름을 보이고 숲이 없는 도시였다. 아테네인들은 무엇을 보고 사색과 명상에 잠겼으며, 깊고 성숙된 영혼으로 그리스문명을 탄생시켰을까. 나무는 인간의 마음을 치하고 영혼을 맑게 만들어 깨달음을 얻게 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석가모니도 보리수나무 밑에서 참선하여 각正覺에 이르지 않았던가. 숲이 없는 도시는 황량하고 삭막하다. 동양의 ‘나무문화’는 인간과 나무가 조화를 이뤄 힘을 발휘한 것이라면 그리스의 ‘돌문화’는 인간과 돌이 조화를 뤄 힘을 솟구치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돌에는 명세의 위대함, 불멸의 영원성, 침묵의 지혜, 과장하지 않는 진실, 허물어지지 않는 힘이 깃들어 있다. 네인들은 돌을 이용하여 문화를 가꾸기 시작했다. 주택이며, 파르테논 신전, 올림픽경기장 등이 모두 돌로 된것들이다. 이 돌에서 단단함, 정밀함과 함께 ‘소박함’을 얻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소박함’은 어쩌면 문화적인 세련과 성숙의 깊이에서 길들여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의문이 떠오른다. 어째서 숲이 없는 황량함과 소박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의 신화와 그리스 문명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소박함에서 일탈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신화’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스 문명은 2800년 전에 피어났다. 그리스 남단 크레타 섬에서 발아했다. 섬 한 끝에서 발생, 강이 아닌 해양 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크레타 섬에서 발생?발전한 미노아 문명의 흔적으로 기원전 3000년 전 동 거울, 유리, 황금 잔 등이 발굴되었다. 아틀란티스 문명도 미노아 문명이 화산으로 묻혀 사라진 것이 발견된 게 아니냐 는 고고학자의 해석도 있다. 아테네 문화유적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신전이다. 높이 6.3m, 가로 33.7m, 72.2m의 거대하고 신비한 대리석 조형 구조물이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제우스의 딸이었다. 그녀는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성장한 모습으로, 그것도 완전 무장한 습으로 튀어나왔다고 전해진다. 아테네의 최초의 왕 케크롭스가 치세할 때, 아테나와 포세이돈 두 신이 그 도시를 각기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하였다. 신들은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선물을 준 자에게 그 도시를 주겠노라고 선언하였다. 포세이돈은 인간에게 샘을 주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주었다. 신들은 올리브나무가 좀 유용하다고 판정하고 그 도시를 아테나에게 주었다. 그래서 그 도시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아테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을 눈앞에서 바라본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이 하늘로 치솟아 지붕을 떠받들고있는 모습인데, 지붕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다열주실처럼 보이는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은 기둥과 기둥 간의 비례미와 조화에 있지 않을까 한다. 많은 기둥들이 하나같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전체적으로 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파르테논의 기둥은 지붕에서 잇닿은 부분에서 수직으로 땅으로 내려오는 원형이 가장 각적으로 보기 좋은 양감(볼륨)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간 부분에선 조금 통통하게 부풀려 만든 기법이 탁월하다. 이 기법은 우리나라 무량수전의 배흘림의 기둥에서 사용했던 것인데, 여기선 나무가 아닌 돌기둥에다 구사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돌기둥 하나를 만드는 데도 높이에 따라 양감이 일정해야 함은 물론 정확한 비례 기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수많은 돌기둥들이 일정한 비례에 따라 세워져야만 조금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완벽한 조화미를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제일 양쪽 끝 기둥은 수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세우는 기법을 구사하여 건축물 자체가 안정감을 갖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서양을 대표하는 최고의 돌 조각품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석굴암은 동양 최고의 돌조각품이 아닐 수 없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석굴암은 모두 신앙적 차원에서 지어진 것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 최고의 미감美感, 기능, 역량을 총동원하여 피워 놓은 예술의 금자탑이다. 아테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인과 그리스 문명이 피워낸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꽃이다. 하얀 돌기둥들이 정성스럽게 지붕을 떠받고 있는 모습과 그 위로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은 평화와 미美의 극치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하늘 높이 치솟지 않으면 안 된다. 신전과 교회당이 모두 큰 구조물로 서 있는 것이라든지, 기독교회의 종탑, 이슬람 교회의 모스코는 뾰족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큰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둥이 필요하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면서 아름다운 기둥… 중심을 받치고 건축물의 힘과 아름다움의 조화를 창출하여 기둥과 기둥들로 새로운 공간과 이미지를 창출시킨다. 파르테논 신전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기둥들의 곡선들과 천장의 선들이 수평을 이룬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선율로 뻗어나가 전체가 우아하게 모든 선들이 조화의 일체감을 얻은 것을 발견한다. 비록 파르테논 신전보다는 작은 규모이나 석굴암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문화재답게, 신라 문화가 꽃피운 수로서 세계적인 걸작품이 틀림없다. 파르테논 신전은 피라미드, 석굴암과 함께 인류가 피워낸 돌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파르테논 신전은 남성다운 힘과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절묘하게 조화의 미美를 얻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석굴암은 직선과 직선의 만남이 존재하지 않고 곡면과 곡면이 만나서 원만하고 부족함이 없는 양감量感을 느끼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파르테논의 지붕 양식은 기와 모양의 대리석들로 이어놓은 것이었는데, 수키와와 암키와가 이용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라진 지붕과 기둥들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세계 고고학회의 도움을 받아 돌 하나를 올리는데도 학회의 연구와 검증을 받고 있으나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게 공통된 견해이다. 문화재 복원에는 오랜 검토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아무리 시일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시공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파르테논신전 곁에 두세 개의 신전이 있다. 한 곳에 卍, 田字 문양이 돌에 새겨져 있어서 동?서 문화의 교류가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알렉산더대왕은 그리스 문명 전파에 힘을 쏟아 인도까지 전파되었기에 동?서 문화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다. 헤라클레스의 전투 장면이 벽에 새겨져 있다. 또 거대한 사자상이 사람들을 압도하고있다. 사자가 말을 잡아 발 아래 깔고 있는 장면을 조각한, BC 13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적나라한 사실적 표현이 인상적이다. ‘여인의 방’이라 명명된 곳엔 BC 6세기경의 여인들의 머리모양, 장식, 귀걸이, 옷차림 등을 볼 수 있었다. 길게 따 늘어뜨린 머리가 가슴께까지 내려왔으며, 발가락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었고 옷차림이 화려해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수준이 상당하였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신전의 천장은 일정하게 홈을 파 놓았다. 제사장의 목소리를 어디서나 잘 들을 수 있게 소리의 공명을 위해 이런 지혜를 동원하였다. 현재도 음악당 건축 기법에 공명을 위해 이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13년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인간과 신의 무한 상상력 위에 건축된 것으로 미의 본질, 상상력의 꽃을 보여주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 있는 벌로빠비스 언덕으로 가 본다. 파르테논 신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소크라테스 독방 감옥이 보인다. 바위 속에 철창이 쳐져 있는 작은 감옥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전해지고 있으나 아폴로 신전 천장에 적혀 있는 말이었던 것을 소크라테스가 쓴 것이다. 글 | 사진·정목일 여행작가,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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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1 09:18
2012.10.01 10:02
Welcome on Board, Prof. Jeong !
PS; Prof. Jeong is class of 63 - Jinju High School
and one of the greatest Essayists in Korea today.
Probably some of you read his essay book.
I hope he comes on board of our site more often.
2012.10.01 15:29
그냥 지니고있으신 상식으로 쓰셨는지, 공부를 많이 하셨는지,
흥미있는 여행기에, 뜻 깊은 관찰기입니다.
유럽 여행의 제일 큰 문제는, 역사책을 다시 들어다보아야 구경한것들의 의미가 살아온다는것이지요.
더구나 한국처럼 간단한 한가지의 (One tract) 역사/문명이 아니고 여러 문명이 부딭히는 多線의 역사이기에
더 알아들을려면 무척 공부를 해야지요. 본인에게 제일 여행기 글쓰기 어려웠던 곳이 Ephesus, Turkey 관광때였지요.
이 글과는 직접 상관없지만 얘기가 나온김에 본인의 생각을 적습니다.
한가지 Greece의 Parthenon과 신라의 석글암을 동등한 자격으로 비교한다는것은
한국인의 열정에 넘치는 애국심과, 분에 넘치는 자존심이라 할수있을런지요.
하나는 438 BC의 작품 (Parthenon), 다른 하나는 무려 약 1,200년후인 751 AD의 작품(석굴암) 이지요.
본인이 Europe을 보며 느낀것의 가장 중요한 사실이 서구의 문명이 얼마나 앞섰었고 우리의 문명이
얼마나 후졌었다는 것 입니다. 한국인들이 그 사실을 못 느끼는것 같지요.
Greece에서 Parthenon 신전을 지을때, 한반도에서는 고조선이 겨우 희미하게 중국 역사책에 기록될때였지요.
물론 그때의 우리자신의 기록은 전혀 자취도 없었고....
수학과 철학의 존재는 커녕, 우리가 얼마나 미개했다는것을 알수있지요.
Greece인들은 이미 1200년전에 석굴암의 정교성을 수십배 능가하는 조각품을 남긴것입니다.
석굴암의 조각은 대리석을 굵은 못으로 대각대강 쫘서 겨우 상상적인 형태를 만든것이고,
그리스의 조각은 이미 1,200년전에 대리석을 빤질빤질하게 갈아서 인간의 현실적 정확한 초상화를 만든것이지요.
예술적인 면에서 이 둘을 비교할수 없는것이지요. 설사 같은 시기에 창조되었다고 가정해도...
Socrates와 Aristotle가 과학적인 철학을 논하고 민주적 정신의 인생관을 가르칠때,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가 어떻게 백성들이 봉건주에 복종하고 잘 모셔야 하는 유치한 예절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이런것들은 도무지 비교조차 할수없는 가소로운 것 입니다.
하여간 우리는 "오늘 현재" 세계를 능가할수있는 과학적 technological 문명을 이루고 있기에,
우리의 과거는 그런대로 덮어두고 어리석게 자랑하지 않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자랑함은 우리 얼굴에 침뱃기나 다름없지요.
본인이 이런것을 들쳐내어서 구태여 여기에서 얘기를 끄내는 이유는,
정목일 님께서 인용하셨듯이, Socrates의 "자기를 알아라"는 교훈이 오늘날에도 명언이라는데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