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0 03:57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 큰딸과 사위에게 아이들을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열한살, 아홉살, 여섯살, 어린 아이들끼리 비행기 여행을 시키는것이 부모로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단이 아니기에 강요는 않으마라고 했다. 큰딸과 사위가 쾌히 응낙했다. 날이 가까이 올수록 마음은 두근 반 세근 반이다. 행여나 비행기 운항에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나면 어쩌나? 딸이 거금을 들여 비행기표를 구입한 후에 그런 말을 꺼낸다는 건 비겁하다. 구더기 생길가봐 장 못 담그랴,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나쁜 생각일랑 떠오르지 못하게 마음을 다지고 입을 꾹 다물고 달력만 쳐다 본다. 살면서 모험을 통해 아이들이 체득하는 경험이 후에 저희들 삶에 거름이 될것인 즉, 속으로만 벙어리 냉가슴 앓이를 했다. 드디어 아이들이 오는 8월 11일, 딸의 지시대로 도착시간보다 한시간 반 전에 할미, 할아비가 소풍가는 아이들 심정으로 비행장엘 나갔다. Minor age의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여행할 때에는 지정받은 보호자가 비행기 타랍에서 아이들을 양도받아야 하는데 마중하는 보호자는 단 한사람에 제한하여 Security Pass를 발급한단다. 사정해도 규칙이 그러하니 두 사람에게 줄 수 없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만 들여 보내고 우두커니 출구만 눈이 빠지게 노리고 있었다. 비행회사의 규정대로 보호자없이 여행하는 어린이들은 다른 승객이 다 내린 다음에 승무원이 데리고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신분증을 검토한 후 아이들을 양도한다. 드디어 만면에 장원 급제라도 한 듯한 웃음을 띄운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트로피처럼 거느리고 나타났다. 기다렸던 마음에 비하면 시간이 너무 짧고 빨리 지나갔다. 아이들과 함께 평소에 하고 싶었던 오만가지 프로그램을 궁리해 놓았으나 어림도 없었다. 우선 수영풀에서 첨벙거리는 놀이가 으뜸가는 여름 놀이 아닌가. 다행히 한결같이 아름다운 여름 날씨였다. 곱게들 여름 빛갈로 익었다. 약속한 데로 COSI(Center Of Science and Industry)에 데리고 가니 호기심으로 이것 저것 실험도 해 보고 작난도 하며 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런 과학실험 놀이터에서 컷으면 지금쯤 나도 큐리부인만은 못해도 딸들 만큼은 됐을가, 실없는 망상에 빠진다. 오는길에 Easton Town Mall에 새로 개장한 Lego Shop엘 들리기로 했다. 눈이 현혹되는 Lego들을 보니 특히 둘째 녀석의 손끝이 근질 근질하지 않을 수 없지. 참을성 없는 사람은 할미다. 액수에 한계를 주면서 셋이 합동으로 큰 것을 사거나 각자 자기것을 사거나 민주주의로 결정하고 선택하라고 했다. 구경하러 오는 줄 알았는데 왠 떡이냐는 얼굴로 만면에 웃음을 쏟아내며 반짝이는 눈과 머리를 굴리며 협정하는 그 모습들, 그야말로 priceless다. 나 자신이 갑자기 능력있는 할머니라는 착각마저 준다. 비행기를 발명한 Wright Brother들의 출생지인 Dayton, Ohio에 설립되어 있는 US AIR FORCE MUSEUM에 데리고 갔다. 한시간 반 운전 거리인데 세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조용하다. 도착 하자 마자 준비해 가지고 간 피크닠 점심을 폇는데 마음들이 급하다. 전시된 비행기에 호기심과 관심이 할아버지의 흥미에 지지 않는다. 지난 번 할머니 생일 카드에 촛불을 34개를 그려 놓고 할머니 나이의 꼭 반만큼만 그렸노라고 설명을 써 놓았던 아홉살짜리 아티스트인 둘째 녀석은 한 비행기 앞에 퍼질러 앉아 가지고 온 스켓치 붘을 연다. 할아버지는 1953년에 이북의 조종사 노금석씨가 타고 망명한 쏘련제 미그 15 앞에서 손자들에게 이야기가 끝이 없다. 할머니 역시 거대한 B-29앞에 서서 내 머리위로 지나가며 폭탄 떨어 뜨리는거 내 눈으로 봤노라고 거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희들 만한 나이였노라고만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은 속으로 “Cool!”하고 외쳤을게다. 우선은 그만큼만 알고 있게 하고 싶었다. 마침 콜럼버스에서 공연하는 Cirque de Soleil Show에 데리고 갔다. 온갖 흥미 진진한 연기와 아슬 아슬한 재주 넘기로 두 손에 땀을 베이게 하는 두시간 여의 공연에 눈도 깜빡않고 시종일관 즐긴다. 코밐한 Mime 연기에 여섯살 짜리 손녀는 아리송하여 할아버지 무릎으로 기어 오르며 “What did he do?”하고 묻는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할아버지와 세 손주들이 한 부대를 이루어 동네 주변으로 자전거 Tour를 다녔다. 물병과 과자를 싸서 할아버지 자전거에 매 달고 가서 동네 놀이터에 앉아 간식을 먹이는게 할아버지의 낙중에 하나였다. 또한 오하이오의 명물인 Graeter’s Ice Cream Shop으로 저녁마다 개근이다. 우스개 소리인지 큰사위는 조만간 미네아폴리스에 Graeter’s Ice Cream 분점을 내고 의사로서는 은퇴하는게 꿈이란다. 장모보고 동업하잔다. 11살 된 큰 손자는 어느새 컴퓨터 expert가 다 되어 있다. 우리 컴퓨터에 있는 말썽은 다 해결해 놓고 새 프로그램까지 올려 놓았다. 몇달동안 미루어 놓았던 Wireless Device도 연결해 놓고 Lap top 에도 E-mail이 들어 오도록 해 놓았다. 컴퓨터엔 ID-10T(ID10T)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이 손자는 컴퓨터 천재다. 8월 15일, 떠나는 날 새벽, 큰 손자는 마지막까지 동생들의 옷가방까지 챙긴다. 혹시 뒤에 떨어트린 물건이 없나 방방이 찾아 다니며 검토한다. 동생들은 형, 오빠의 말에 고분 고분 잘도 따른다. 집안이 되는 징조다. 신통하고 착하게 잘 크고 있는 손주들과의 며칠은 우리에게는 훈장받은 날들이다. 딸, 사위가 우리 두 늙은이를 믿고 아이들을 선듯 보내 준 것은 우리로서는 가믐할 수 없는 영광이였고 우리를 믿고 부모가 있는 안락한 집을 떠나 온 어린 아이들의 용기 역시 우리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월계관이다. 둘째녀석은 이 다음에 저를 일본에 데려가 달라고 할아버지에게 부탁한다. 막내는 코리아에 데리고 가 달란다. 그때는 엄마, 아빠랑 같이 가고 싶단다. 큰 녀석은 싱긋이 웃기만 한다. 2005년에 이미 한국엘 갔다 왔다는 자랑스러움이 눈빛에 가득하다. 세 손자를 태운 비행기가 예정보다 삼분 일찍 푸르른 여름 하늘로 떳다. 활주로를 따라 하늘 높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슴이 풍선처럼 부푼다. 딸과 사위는 그 시간에 미네아폴리스 비행장으로 가는 차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게 바로 이것일게다. |
2009.08.20 09:48
2009.08.20 10:06
우리 website은 대학신문, 동창회보, 시계탑등에 보이는 엄숙하고 심각한
관료적 사무적 기사보다는, 이런 가족의 소개, 개인적 이야기, 인간적인 스토리등을
쉽게 취급할수있는곳입니다.
여기는 "Formality"가 없는 아주 "casual" 한 곳이며,
(만일 formality, business가 주 목적이였다면 이 website은 벌써 죽었지요)
신문처럼 제한된 공간이 아니고 무진장한 Space가 있는곳입니다.
따라서 꼭 "중요한 것", "심각한 것" 만 쓰는곳이 아니지요.
다른 동문들께서도 서슴치 마시고, 많은 가족 사진들과 가족들의 이야기,
또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위에있는 webpage가 좋은 예가되겠지요.
한국에서는 "팔불출"이라하여 집안 얘기는 않끄내는게 양반노릇하는것이고
젊잔은 사람의 도리라고 믿고있는 재래식 관습으로 살지만,
여기는 첫째 한국이 아니고, 잘 아시다 싶히 그런 관슴에 매달려 사는곳이 아니지요.
2009.08.20 10:10
2009.08.20 15:48
1960-1970년대에 대개의 우리 동문들이 미국으로 넘어왔지요.
그때 상당수는 신혼부부, 아니면 총각, 처녀, 아니면 한두명 어린 애기의 젊은 부모로 건너와서,
낯설은곳에서 바쁘게 일하며 것잡을수없이 지나간 세월...
검었던 머리가 흰머리가 될때까지...
그러면서 異國땅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보람을, 이제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맞이하게 되는군요.
2세들을 부지런히 키우고 교육시켜서 대개 다들 자리 잘잡게하고, 이제 3세들을 마지합니다.
3세들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즐길수있다는것이 그동안 고생했던 보람이고 축복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보람의 훈장"이겠죠.
이제 한숨 놓으시고 많이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긴 긴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눈시울이 뜨거워질려합니다.
승자님, 소개해주신 손자, 손녀들에게 좋은 앞날과 행복이 있기를 빌며,
좋은 글과 사진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