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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또 한번 년말을 보내며

2011.12.27 11:53

김창현#70 Views:6186















     또 한번 년말을 보내며

 두보는 '가는 곳마다 외상 술값은 항시 있는데, 인생은 옛부터 칠십을 살기 드물었네(酒債尋常行處有,人生七十古來稀)' 라고 읊었다. 고래희(古來稀)란 말은 그의 '곡강시(曲江詩)'에서 나왔다. 며칠 전 친구가 '우리 고희가 내년이냐 후내년이냐'고 물어, 속으로 뜨금했다. 일흔 넘으면 팔십 바라보는 망팔(望八)이요, 여든 넘으면 망구(望九)요, 백세 바라보면 망백(望百) 이다.   

  년말에 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한 친구는 자동차 사고로 입원했고, 한 친구는 몸무게가 갑자기 20킬로나 빠졌다고 한다. 첫 친구는 '국산 차 한 70년 정도 탔으면 이제 고물이다. 부속 바꿀 때 되었다.'고 웃으며 위로하였고, 두번째 친구는 '몸무게 갑자기 빠지면 심각한 일이다. 즉시 종합병원에 가라'고 충고했다. 그래놓고 혼자 집에 앉아 있으려니, 소년 때 그렇게 마음 들뜨던 하이트 크리스마스도, 직장시절 의무적으로 하던 년말 망년회도 이젠 다 옛 일이다. 두보의 '강촌(江村)'이란 시에 나오는 것처럼 '노년에 오직 필요한 것은 낚시할 바늘과 바둑판과 약물(葯藥) 뿐'이다.   

 요즘 나 역시 척추협착증으로 병원엘 다녔다. 병원 복도에 들어서면, 세상 사람 전부가 환자 같다. 휠체어 탄 사람, 지팡이 짚은 사람, 얼굴에 붕대 감은 사람, 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으로 북적인다. 복잡한 인체의 어느 한 구석만 고장나도 우리는 견딜 수 없어 병원에 간다. 인간은 갈대보다 가날픈 존재다. 

 나에게 척추 주사를 주어 낫게 한 서울대 통증센터 여자 의사는 풀각시처럼 애처럽게 작은 체구였다. 꼭 딸애 친구와 비슷했다. 딸애 친구도 풀각시처럼 체구가 애처럽도록 작은 여학생이었다. 그는 내가 늦은 밤 딸아이 데리러 경기여고에 가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내 차 뒷좌석에 타곤했다. 집이 같은 은마아파트였기 때문이다. 부친이 서울의대 교수였는데, 그 여학생도 그 뒤 서울대 의사선생님이 되었다. 한번은 아내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찾아갔을 때 였다. '어머님 어머님' 하며 그가 아내에게 친절하고 싹싹하게 어떻게 대처할지 잘 알려주었다. 대견했다. 벌써 20년 세월은 간 것이다.

   나이 들면 이렇게 어디 조금씩 아프다 결국 죽음에 다다르겠지 싶다. 왕년에 타계한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대학에서 사귄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도봉산 아래 흙으로 만든 움집에 살았고, 집이 기운 나는 등록금 대기가 어려웠다. 둘다 가난해서 였을까. 둘이 포장마차에서 안주 없이 마신 쏘주가 그렇게 달았다. 밤깊은 도서관 앞 벤치에서 철학과 복학생다운 개똥철학 나누며 피우던 백양담배가 그리 맛있었다. 그는 희랍에 가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같이 간 애인도 문학박사를 받았다. 그러나 젊어 너무 고생을 해서 그랬을까. 고려대에서 강의하던 중 뇌종양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가망이 없다는 거였다. 저 세상 가기 전에 뭐라도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친구와 성금 모아 전달한게 나의 마지막 우정이었다. 얼마 후 그가 나에게 밥을 한번 샀으면 했다. 그는 소주를 따라 나와 잔을 부딪쳤다. 내 담배를 한 대 얻어 맛있게  피웠다. 그리고 며칠 뒤 타계했다. 이별주 나누고 간 것이다. 마지막 담배 피우고 간 것이다. 그는 지금 파주 쪽 희랍정교회 묘지에 묻혀 있다. 

 사회에서 사귄 가장 가깝던 후배의 죽음도 생각난다. 바둑 유단자요, 골프 싱글이었다. 붙임성도 좋았다. 내가 데리고 있던 비서실 여직원을 하도 따라다녀, '미스 리! 그 친구 한번 사무실로 데려와라. 내가 선을 봐주겠다.' 이래서 미스 리와 결혼한 총각이었다. 명절마다 둘이  선물 들고 집에 찾아와 '형님, 형수님!'  타령 하던 그는 10여년 뒤 직장 그만 두고, 속초에 콘도를 세웠다. 그리고 내 전용 방을 정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5년간 매주 강의하러 속초 갈 때마다 그의 신세를 졌다. 그런데, 그는 젊은 나이에 의욕이 지나쳤던 모양이다. 건설회사와 룸싸롱까지 운영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간암으로 떠났다. 그가 묻히던 날 장지에 휘날리던 눈보라만 잊히지 않는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한 오백년' 가사같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만 두고 몸은 가니  눈물만 나네'다. 올해도 년말에 눈이 두번 왔다. 그와 함께 다닌 설악동엔 눈이 얼마나 쌓였으며, 영랑호엔 얼마나 쌓였을까. 척추에  병이 나서 두문불출하는 날 보면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이승과 저승이 지척이다. 이런저런 생각 하면 슬프기도 하고 애닯기도 하다. 또한편 희비애락이 공존하는 세상, 참회하고 감사할 일도 많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 잊고 살아온 죄, 이웃과 주위에 있는 모든 인연들의 감사함 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고, 성냄, 모진 말, 교만, 탐욕, 시기심, 인색, 무시, 이간질로 인해 악연이 된 인연들에게 참회해야 할 것이다.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한 어리석음. 내 눈으로 본 것만 옳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고집스런 사람에 대한 자비심이 부족한 것도 참회해야 할 것이다,

 한편 감사할 일도 많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새소리의 맑음을 알게 되어, 시냇물 소리의 시원함을 알게 되어, 자연에 순응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축복이 자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가장 큰 재앙이 미움, 원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가장 큰 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몸은 추풍낙엽이요 풍전등화지만, 최근 나의 메일을 보면, 시를 보내주신 분, 음악을 보내주신 분, 국내외  풍경사진을 보내주신 분도 있다. 미국서 일부러 화개에 연락해서 귀한 달빛차(茶)를 보내주신 여류도, 당뇨에 좋다는 지리산 산죽 뿌리와 주독을 푼다는 칡과 홍시 쫀득쫀득한 고향의 단성감을 보내준 친구도 있다. 불가에서는 화중연(火中蓮)을 이야기 한다. 유황불 이글이글 피는 속에서 연꽃이 핀다는 것이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곳이 '사바'다. 나는 은은한 한지를 통해서 비치는 달빛 같은 그 인연들에게 오직, '감사 합니다.' '사랑 합니다'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만약 내가 한 그루 나무라면, 나의 수관 속에도 푸른 연꽃 봉오리 하나 벌써 힘차게 망울져 올라오고 있어야 한다.

( 2011년 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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