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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9 - 벽절

2011.08.17 18:40

이기우*71문리대 Views:5810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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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벽절


오늘은 벽절에 가는 날이다.
여름도 끝자락 곡식 영그는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엄마와 외숙모는 아침 후에 서둘러 채비를 했고 작은댁 아주머니
홍천댁도 조그만 쌀자루 하나 끼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안방에 계신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식구들 모두 심난하니
서로 안부 주고 받은 후 세 여자들은 앞서 걷고 내가 뒤에 따랐다.
지금 나들이로 벽절에 놀러 가는것이 아니고 작은댁 아저씨
돌아가신 후 칠칠인 사십구재 드리려 간다고 한다.

홍천댁은 시주할 조그만 쌀자루 하나 외숙모도 조그만 쌀자루 같은 것
하나 머리에 이고 엄마는 빈손이 어색해서 그랬는지 홍천댁의 쌀자루를
받아 주겠다고 하다가 안 뺏기려는 외숙모의 쌀자루를 뺏기도 하다가
나를 불러 손을 잡기도 했다.
얼마 안되는 곡식 보따리라서 머리에 이고 휘적휘적 걷는 것을 보니
딸린 갖난쟁이도 집에 두고 빈 손으로 걷는 것 보다 삼십 전후의
젊은 여자들한테 차라지 든든해 보인다.

벽절은 여기서 동쪽으로 삼십리 밖에 있다.
엄마는 삼십리 되는 북내면 당모루(당우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벽절은 학교와 비슷한 거리에 있는데 학교는 우마차 길을 따라 가다가
고개를 넘어 동네에 있고 절은 동네에서 우측으로 돌아서 강가로 가야 한다.
곧장 절로 가려면 논틀밭틀 지나 길도 아닌 모래사장도 걸어야 하니까
우선 학교를 향해서 걸어간다.
세 여자 모두 샛길은 알지도 못한다.
엄마는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 벽절에 몇 번 가보았고 외숙모는 시집
오시고 십수년에 두번 인가 홍천댁은 언젠가 초파일에 한번 가보았다고 한다.
그 시대 여인들은 나들이 하기가 일년에 한번도 어려웠던 것 같았다.
친정에 다니러 가는 여자들도 못 보았다.
홍천댁은 홍천에서 왔다면 얼마나 먼 곳인지 가까운 곳인지 친정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별로 할 말도 없이 침울한 분위기의 앞선 세여자의 대화는 돌아가신 분
성품이 온화해서 날씨가 좋다는 날씨 이야기와 엄마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는 똑같은 이야기 이었다.

야산을 끼고 있는 동네라서 그런지 이 근처에는 절이라고는
벽절 이외에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조그만 암자 하나도 없었다.
교회나 성당도 없었다.
그래도 천주교가 들어 왔었다는 흔적은 있었다.
벽절 근처 새말에 있는 이모 친구들 이름이 마리아도 있고 막달래도 있었다.
외갓집 동네에 마태오빠는 맏이고 둘째 아들은 요셉인데 나보다 어린
셋째 아들 이름은 창수다.
그러니까 10년전 까지는 이 동네에 세례명을 줄 정도로 천주교가
있었는데 오히려 해방후 부터는 애석하게도 종적을 감춘 것이다.
동네 사람 대부분이 천주교에 물들지 않고 차례봉사 제대로 했다고
자부심을 나타낼 정도이다.

홍천댁 외숙모 엄마가 절하며 재를 올리는 동안 나도 엄마 따라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돌아가신 아저씨를 생각했고 불도를 위하셨던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6.25 나던 해 내 생일인 음력 정월에 돌아 가셨다.
그때도 나는 여주 외갓집에 놀러와 있었다.
큰외숙께서 엄마의 상제 깃옷을 준비해 가지고 서울 우리집으로 가시면서
추운데 애 고생시킨다고 나를 안 데리고 가시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얼떨결에 큰외숙을 따라서 집에 못가고
할아버지 장례에 불참 한 것이 후회가 된다.

절을 몇 번이나 해야 되는지 마루의 짜임새를 세다가 지루해서 밖으로 나갔다.
독경소리는 들어도 무슨 소리인줄 모르니 똑 똑 똑 또르르르 하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심신(心身)이 공명해서 울리는 듯한 독경 소리는 밖에서 들으니 더 좋았다.
강가의 벽절은 크고 뜰도 넓고 좋았다.
이쪽 저쪽 건물을 들여다 보면 부처님 모양도 다르고 마루의 짜임새와
기둥들도 달랐다.
나는 절에 가면 대웅전의 둥그런 큰 기둥들을 무척 좋아했다.
서울에서 할아버지를 따라서 여러 번 가보았던 인사동에 있는
태고사(조계사)의 둥그런 기둥들도 좋았다.
그러나 동네 한옥들 사이로 좁은 골목을 가다보면 문득 절의 앞마당이
되는 태고사는 대웅전만 크지 뜰이 너무 좁고 볼거리들이 없었다.
6.25 전 초파일 이었는데 온 집안 식구들과 같이 갔던 태고사는 마당에
매달아논 우리 식구들의 이름을 써서 붙였다는 연등은 찾을 수도
없었고 사람들이 많아서 대웅전 마루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옆으로 들어 왔는지 앞으로 들어 왔는지도 모르게 넓고 앞이 탁 트인
벽절은 태고사에 비해 경치가 좋았고 볼거리가 많았다.
절벽같은 강가에는 무서워서 갈수도 없었지만 조포 나루라고 하는 건너다
보이는 강변 경치가 좋았다.
정자도 좋고 탑도 있고 보신각 인경 보다는 적은 종이 있는 종각도 있었다.
서울의 보신각은 내가 많이 지나다니던 곳이었는데 언젠가 둥글고 긴
통나무 같은 것으로 타종(打鐘) 하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둘러서서 보았는데
나무 창살속의 종치는 사람을 쳐다보는 내 마음에 갑자기 창경원의 호랑이나
사자같이 울타리에 갇힌 인간 같구나 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벽절의 여러 가지 볼거리 중에서 제일 내 눈을 끈 것은 색채도 없는
통나무로 투박하게 깎아 매달아논 물고기 이었다.
내가 보기에 내 키만큼 커다란 물고기인 것 같았다.
이후부터 나는 절에 가면 먼저 목어(木魚)가 어디에 있는가 하고 찾아보게 되었다.

엄마가 절 마당으로 내려 서는 것을 보고 따라갔다.
엄마는 절 부엌 찬방으로 갔다.
외숙모님은 벌써 찬방에 계시면서 누이님 왜 나오셨냐고 물었다.
엄마는 찬방에 뭐 도울일 없느냐고 물었지만 찬방 보살님들도
별로 손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쪼르르르 홍천댁 마저 부엌으로 들어 왔다.
엄마와 외숙모가 똑같이 물었다.
자네는 절 더하지 왜 벌써 나왔는가.
잽싸고 솔직한 홍천댁은 붉어진 눈에 볼까지 붉어지며 더 놓을 불전도
떨어지고... 하며 난색을 표했다.
나는 얼마나 절을 해야 재가 끝나는지 모르지만 절하면서 불전을 놓아야
떳떳할 수 있는가 보다 생각하니 좀 슬펐다.
사실은 세여자 모두 불전을 더 놓을 수 없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법당에서 나온 것 같았다.

우리는 절에서 차려준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어른들은 항상 절밥과 나물이 얼마나 맛있는가 이야기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양념도 없는 절 반찬이 맛있는 줄을 몰랐다.

우리는 강변을 따라 좀 걸으면서 동네를 지나 큰길을 찾아 가기로 했다.
아무리 샛길을 모른다 하여도 집 찾아 가는 길이야 잃어버릴 리가 있겠나.
농가들은 작년에는 6.25 난리 통에 농사를 반타작도 못했고 올해 역시 농사란
겨울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데 피난 다니다 보니 씨앗까지 헤쳐 먹어도
굶주렸고 아직도 전쟁 중이니 장정들의 노동력은 아예 없었으니 이제
추수할 기쁨 보다는 앞으로 굶지 않고 살아갈 걱정들이 앞섰다.
그래도 아름다운 황금 물결의 들판에는 일찍 쌀이 되는 올벼를 논 한떼기에
심어 벌써 낫으로 베어 논바닥에서 펴서 말리고 있었다.
빈손에 어설프게 손차양까지 해가며 걸어가는 그림 같은 여인들의 초가을
정경은 행복에 가득 찬 인생의 절정에 있어야 할 터인데 지금은 그 반대인
저 강물 밑바닥에 있는 듯 했다.
한창 따갑던 해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갑자기 강물이 빨리 흐르는 듯 했다.

강물은 언제나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즐거울 때는 가볍게 찰랑이며 춤추고 노래하고 놀자하며
외로울 때는 쓸쓸히 처량하게 뒤퉁맞게 비껴가고
화날 때는 강물도 출렁출렁 나를 조롱하며 비웃는 것 같았다.
그래도 슬프고 외로울 때 가만히 앉아 생각하면
괜찮아 ‚I찮아 참고 기다려 하는 다정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맑은 물이란 언제 어디서나 몸과 마음을 씻어 주는 것 같았다.

모두들 강물이 보이는 미루나무 아래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
엄마와 외숙모가 혼자된 동생댁에게 위로와 당부의 말을 하시는 것 같았다.
울어도 울어도 끝이 없을 홍천댁도 흘러가는 강물에 슬픔을 다 흘려보내고
옛날 이야기처럼 열녀전처럼 열심히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지금이 강물 맨 밑바닥이라고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해 겨울 어느 춥던 날 몹시 추워 움쩍하기도 싫던 날 안방 윗목에서
애들 등살에 깨져 금이 간 질화로를 끼고 여나 명의 애들이 코를 훌쩍이며
자리싸움을 하던 날 나의 동생뻘 되는 홍천댁의 큰아이가 죽었다.
며칠전 까지도 같이 눈에서 딩굴고 누룽지 나누어 먹으며 같이 코 흘리고
같이 콜록대기도 했던 아이가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끼고 산다는 감기가 이렇게 무섭기도 하다고들 했다.
기가 막히고 필설(筆舌)로 다 표현 할수 없다는 말이 모두의 마음 이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여주 신륵사(神勒寺)가 많이 알려지면서 벽돌로 쌓은 전탑이 있어서 벽절 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알려 질 때 나는 벽절이 신륵사라는 것을 알았다.

2010.9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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