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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0 - 내고무신

2011.08.18 23:57

이기우*71문리대 Views:6058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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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고무신


어느날
그러니까 추석도 건성으로 지낸 1951년 가을 엄마가 나에게
새 고무신을 주셨다.

지금이야 신발 이라는 것이 좋으면 또 사고 싫으면 버리는 것이지만
6.25 전쟁 당시의 신발이라는 것은 먹을 것 입을 것 다음가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귀한 물건이었다.
꿈 해몽마저도 신발을 잃어버리면 가족을 잃는 것처럼 풀이 되었다.

나는 6.25 나던 해 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학교 갈 때는 엄마가
만들어준 분홍색 간단호크(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등에 란도셀(가방)을 메고 다녔는데
6.25 나면서 학교도 못가고 있다가 9.28 서울 수복 할 때 집에
불이나니 엉겁결에 고무신 꿰어 신고 원족 가방을 등에 메고 피난을 갔다.

서울에서 여주 외갓집도 걸어서 갔고 1.4 후퇴 눈길도 걸어서 다녔고
논틀밭틀 쏘다니면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 나무 그루터기에
걸리기도 하니 고무신창은 닳아 헤지고 고무신 코도 찢어져서
실로 꿰매기도 하고 신고 새끼줄로 동여매기도 했지만 더 이상
신을 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나와 동네 아이들이 전부 맨발 이었던 것 같았다.
동네 전체가 빨간 진흙 길이었고 산 귀퉁이나 땅을 파면 빨간 황토가
나왔으니 춥지만 않으면 맨발로 다녀도 불편 한 줄을 몰랐다.
동네 사람들은 검정 고무신이나 짚신을 신었는데 난리통에 물자가
점점 귀해지니 나무를 깍아 게다를 만들어서 애들 한테 주었다.
게다를 꼭 맞지도 않고 헐렁하게 크게 만들어 주니 애들은 차라리
맨발로 뛰어 다니는 것이 편했다.

엄마는 여름내내 맨발로 다니는 나를 못 본 척 했지만 이제 날씨가
추워지니 내게 새 고무신을 마련해 주었는가 보다.
나같은 어린 계집아이들이 신는 꽃신도 있었지만 내 고무신은 흰색도
옥색도 검정색도 아닌 갈색이었다.
아마 재생 고무로 나온 값싼 색갈인 것 같았다.

그래도 고무신 코에는 하얀 가름마 같이 선을 쳤고 내발에 꼭 맞았다.
나는 뛸 듯이 좋아서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별로 자랑 할 곳이 없었다.
섣불리 고무신도 없는 동네 애들한테 자랑하기는 쑥스럽고
외갓집 언니 오빠들도 새 신발을 받았는가 눈치를 보아야 했다.

아침에 작은댁 홍천댁 아주머니 한테로 갔다.
돌아가신 아저씨 상청을 마루에 차려놓은 작은댁은 썰렁 했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아침 상식 지낸 설거지를 하시며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나는 수줍어 말도 못하고 부엌문을 가로 막고 서서 한발씩 들어서
새 고무신을 보여 드렸다.
아주머니는 밝은 음성으로 새 고무신 예쁘다 좋겠다 하시며
나에게 잘 신으라고 당부도 하셨다.

나는 새지 않는 고무신을 신으니 너무 좋아서 논두렁을 걷기도 하다가
그루터기에 걸리지 않게 뒷동산에 조심조심 올라가 보고 고무신에 흙이
묻었을가 동네 우물에 가서 씻어 가지고 집으로 와서 댓돌위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외증조모님을 비롯해서 집안 여자들은 다 있는 것 같았다.
외숙모 엄마 이모 옥이 아줌마 사촌 언니들 동생들 우리처럼
피난 온 외숙모의 여동생인 영애엄마와 두남매 등.
영애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외숙모의 조카딸이다.
나는 방에서 잠간 놀다가 새 고무신을 또 신고 싶어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영애도 나를 따라 마루로 나왔다.

내가 내 고무신을 신으려고 하는데 영애가 자기 고무신이라고
신으려고 했다.
나는 내 고무신을 영애가 신으려고 하는 것이 너무 무례하게 생각되어
영애를 밀치고 고무신을 주워들었다.
영애도 지지않고 내 고무신을 뺏으려고 몸싸움을 했다.
나는 고무신을 두 손으로 가슴에 움켜쥐고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고함이라기 보다 마치 칼 맞은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았을 거다.
내 생전에 이렇게 큰 괴성을 낸 일은 또 없었을 것이다.
방안의 사람들이 놀래서 모두 나왔다.
마침 홍천댁도 쪽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무슨 일인가 의아해 했다.

어른들이 사건을 해결하고 마무리를 해주어야 했다.
영애도 나와 똑같은 고무신이 있다고 하니 또 한결레의 같은
고무신이 있나 집안을 찾아 보았으나 허탕이었다.
강아지도 없는 외갓집에서 혹시 강아지가 신발을 물어 갔나
마루 밑창도 들여다 보았다.
곁방 툇마루 뒤쥐속도 열어 보았다.
뒷간 똥독에 빠졌나 들여다 보았다.

한옥 집구조가 사방이 툭 티어서 물건 찾기로 말하자면
어렵지도 않은데 여러 사람들이 돌아보아도 찾지 못했다.
영애엄마가 사방을 둘러 보더니 나에게 “너 가져라” 하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사방에 둘러서 있는 사람들은 내편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보다 나는 당연히 내꺼니까 내가 갖는 것이라 생각 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편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도 아무 말을 안했다.
엄마는 새 고무신을 내주면 아깝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내 기세등등한
것을 보고 양보 하라고 못 했을 것 같다.
입빠른 홍천댁만이 한마디 했다.
“조금전에 나한테 와서 새 고무신 자랑을 하던데 그 고무신이 맞네.” 하며.
나는 홍천댁이 고마웠다.

한편 너무 쉽게 양보한 영애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며 내가 지나치게
큰소리를 낸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도 불쌍한 영애네 식구들한테 평소에 잘하려고 했었다.

영애엄마는 외숙모 여동생인데 여주읍에서 제일 부자집에 시집가서
나보다 한 살 아래 영애와 다음으로 아들이 있다.
영애 아버지는 인물좋고 학식좋은 부자집 청년으로 엄마와 혼담이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엄마를 서울로 시집보내는 바람에
그 댁에서 무척 서운해 하셨고 외갓집에서도 훌륭한 신랑감이라고
놓치기 아깝다고 외숙모의 여동생을 시집 보냈다고 한다.

영애 아버지는 좌익운동을 해서 9.28 이후 숨어 있다가 엎치락
뒷치락하는 난리통에 처형당해서 지금 영애네가 잠시 우리 외갓집으로
피신을 온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영애도 나같이 똑같은 고무신을 가졌는지 몰랐었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나와 영애에게 똑같이 고무신을 사주셨던 것 같았다.

그리고 10 여 년이 흐른뒤 모두 서울에 살게 되면서 내가 대학생 시절
뾰족 구두를 신고 외갓집에 놀러 갔을 때 영애네를 만났다.
영애와 더 사귈 기회는 없었지만 사촌 언니들한테 소식은 가끔 들어서
항상 친근한 느낌이 있었다.
외갓집에서 잘 놀다 인사하고 나오는 나에게 영애엄마가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사돈처녀 그때 그 고무신은 우리 영애 것이 맞아.
우리 영애 고무신에 긁힌 자국이 있었거든. 내가 알아 볼 수 있었어.”
하신다.

이게 뭐 내 뒷통수 때리는 말인가.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에서 방망이질을 하고
내 귀에는 그때 내가 지르던 고함소리가 울리며 현기증이 난다.

얼떨결에 아무변명도 못하고 나온 내 머리에 영애엄마 말소리가 맴돈다.
그러면 내가 남의 신발을 내 것처럼 빼앗았단 말인가.
차라리 그때 끝까지 싸우지 왜 이제 그이야기를 하실가.
그때 우리는 다같이 피난살이 이었지만 엄마는 친정 텃세가 컷고
영애네는 사돈이라고 약세라고 생각하셨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남편이 좌익이라
마음놓고 숨도 못쉬고 살던 시절이라 그랬는가.
내가 차라리 그때 고무신을 양보 했었더라면 좋았었을 것을 후회가 된다.

다른 한 켤레의 고무신은 지금까지 영영 못 찾았다.
사건의 진상을 따진다면 제3의 인물이 있었다는 추정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신은 고무신이 내 것이라는 과학적 증명이 없는
한 내 것이라는 확률은 50% 밖에 안된다.
세상에는 판사가 잘못 판단해서 사형도 받고 종신형도 받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서로 다툴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한발 양보 할수 있을가.
내가 옳고 내가 잘했다고 믿고 한 일이 정말 옳고 잘 했는가.

2010.11 강민숙


이제 연재수필 '홍천댁' 제 10편을 게재하며
'홍천댁'의 저자 강민숙(姜敏淑) 님을 간단히 소개하여 드립니다.
우선 강민숙님은 저의 고등학교, 경기여고 선배님이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강민숙(姜敏淑) 선배님은 :
1963년에 경기여고 졸업
1967년에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졸업
1973년에 도미, 간호원으로 병원에서 근무
2001년에 은퇴를 하셨습니다.

6.25 전쟁 피난을 여주 외갓집에서 지낸 추억담을 쓰기 시작하여
2009년에 '옥이 아줌마'를, 2010년에 '홍천댁'을 쓰셨습니다.

이곳 서울의대동문홈피에 '홍천댁'을 게재하도록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꽃신 한켤래를 준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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