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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그 때 - 1 영도 경기여중 천막교사
*내가 다닐 때는 경기여중이란 교명으로 6학년 수학후 졸업하였다.

1.4후퇴로 큰언니 가족과 대전 근처 구만리에 있다가 부산에서 학교가 열렸다고 하여
구포에 내려와 외무부에 근무하는 큰 오빠와 한동안 같이 있었고
피난지, 전주에서 부산으로 오신 부모와 함께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곳은 거제리, 기차 철도건너 저쪽 하늘 아래 콘센트집 포로수용소가 보이는 곳,
철도관사의 창고방, 방으로 썼으니 방이다.
한 칸 남짓한 흙 바닥에 가마니를 짤라 한 겹으로 서너 개 깔으니 꽉 찼던 기억이다.
1951년 세는 내 나이 18세, 어린 두 동생과 아버지, 어머니 함께 가로 세로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이부자리 비슷한 것을 깔고 잤다.
여름철이지만 더위요, 모기요 등 불평하면 정말 스스로 자책감을 느끼는 전쟁이 한참이던 때, 낙동강을 사이에 놓고 오래 끌어가는 전쟁에서 이미 얼마나 많은 남, 북의 병사들이 이슬로 사라졌던가.
끝도 없이 많이도 행렬해온 중공군의 희생인들 없었을 리 없을 것.

누군가가 팔을 잡아올려야 겨우 올라타는 곳간차,
민첩한 거동으로 짧은 치마의 몸의 구석구석을 넉넉히 잘 간수할 수 있었는가 보다.
기차로 서면 (지금의 부전), 부산진, 초량 역을 지나 네번 째가 종착역 부산역이다.
기차로 몇 역밖에 안 가지만, 전시에 더 급한 차를 우선으로 보내는 탓인지
연착도 빈번하여 뛰어도 까딱하면 영도다리가 들려 지각을 하게 된다.

영도의 경기여중(당시 교명은 경기여중으로 1학년에서 6학년까지) 가교사 역시 텐트 밑,
흙 땅에 가마니 깔은 간단한 교실들. 물론 필수인 까만 칠판과 백목은 준비되어 있었다.
무릎 위에 놓고 노트필기가 고작, 물론 교과서는 없었다.
어쩌다가 인쇄물 한장씩이라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럴 수밖에. 선생님들께서도 마찬가지 피난민이시니 이제 생각해봐도
생계도 어렵게 가족들을 거느리시고 불편한 자리에서 수면이라도 제대로 취하셨을까 헤아리게 된다.

6학년초 학제 변동이 있어 6월이 학년 시작이었는데 이 해에는 다시 9월초가 학년의 시작이 된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을 하기는 해야할테니 난감하여 어느날 대신동에 어느 학원에 가서 입시준비로 등록을 하고 왔다.

그 때 -2避難

1.4 후퇴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본다.

9.15 상륙작전으로 대포소리가 연일 쿵-, 쿵 하더니 9. 28에는 서울을 수복하였다.
6.25에 피난 못 간 우리 가족은 상도동에서 저 앞에 바라 보이는 나무없는 벌거숭이 산을
행렬하는 UN군으로 가득 메운 것을 아침 눈뜨니 보게 되었다.
수 없는 피난민도 다시 돌아와 나름대로 와중에 평온을 차츰 되찾았다.
국군과 UN군은 북으로 빠른 속도로 올라가서 평양에도 입성하였단다.
그리고 더 북으로 진격한다.

그러나 한파가 닥쳐온 어느 겨울날 서울은 다시 술렁거리는 동요가 일어났다.
손에 등에 들고 질머지고 머리에 얹은 짐보따리,
요즘 노숙자가 한군데서 기거하며 챙기고 서 있는 짐은 그래도 평화 속의 것이지만,
기약없이, 목표 없이, 돈도 못 가진 사람들의 무리는 처량하여 겨울공기는 차기만 하다.

특수층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가 물론 여의치 않아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등으로 몰려간다.
우리는 1월 23일로 기억되는데, 용산역에 낮에 나갔는데 밤 늦게서야 뚜껑없는 화물차가 차례가 되었다.
형부는 따로 떨어져있게 되어 큰언니와 네살 나이에까지 이르는 조카들 세 명,
그리고 나의 네 살 위 언니와 나, 그리고 여러 해를 큰 언니를 도웁고 살아온 '부교'라는 나 보다 한 살 위 언니, 일곱 식구는 구사일생을 각오한 한 식구로 편성된 것이다.

캄캄한 겨울 밤, 기차는 남으로 남으로. 이제는 살았나보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편안하다.
그림에서나 보듯 화물차에서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하는 인구밀도는
달리는 기차가 아무리 흔들리더라도 추락할 위험성이 거이 없는 고마운 것이었다.
옷깃도 여미고 중무장을 하여도 노천기차가 밤길을 달리니 찬바람이 강하게도 뺨을 때린다.
그래도 잠이 와서 꾸뻑꾸뻑 졸다 깨다, 옆사람과 박치기를 해도 충분히 이해하며
운명을 같이한 길손은 잠시나마 우애가 돈독하다.

가다 서고 또 가다 서는 것은 비상시에 정상적인 일이었었을 수 밖에.
戰時이니 군수품 수송 내지 군인 수송 위주의 철도를 민간인이 이용하는 것도 감지덕지한 일.
그 중 더욱 한참 차가 서있다. 조치원역이다.
얼마 안 가면 대전인데 계획없는 하차 목적지이다.

대전, 下車, 우리들 가족은 어느새 어슴푸레 앞이 보이기 사작하는 새벽길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정처없이 뚫려있는 시골길을 걸었다.

그 때 – 3, 避難處

대전에서 한참을 논밭을 눈에 가득 바라보며 구비구비 길을 돌아 걸어가니 ‘구만리’ 라는 한적한 마을이 있었다.
마을주민들과의 대화와 어느 곳에 머무르도록 교섭을 하는 몫은 인솔자, 나의 14세 연상인 큰 언니이었다.
인물도 훤하고 키도 크고 시원스럽게 살아온 연륜만큼의 경험과 생활의 지혜로 그 어려울 때에 어느 집의 방 한 칸을 성공리에 빌렸다. 그러나 겨우 33세의 나이에 어려운 일을 그렇게 잘 할 수가 있었을까 의아하다.

넓직한 방은 일곱 식구가 넉넉히 뒹굴 수 있는 공간이다.
불 때는 아궁이에 큰 재래식 가마솥이 걸려있어 장작불로 밥을 하고 누룽지까지 구수하게 먹을 수 있는 나의 어린 시절의 부엌을 떠올리는 환경이다. 양 옆 선반에 그릇들도 아쉽지 않게 엎어놓을 수도 있었다.

흰 옥양목으로 아래 위 바지 저고리에 회색 또는 옥색 조끼를 입고 양말에 대님을 매신 중년보다 나이 드신 혈색 좋으신 분이 그곳의 주인아저씨이다.
뜨내기 서울 피난민에게 아쉽지 않을 배려와 소위 그 집에서의 생활의 안내를 해주셨다.
수돗물은 아니고 어느 우물이었을텐데 아직까지도 그 중요한 우물이 어디 있는지 생각 안 나는 것을 보니 그 부교언니가 물도 다 길어 붓고 나는 쓰기만 했다라는 염치 없었음을 생각한다.

저녁밥을 끝내면 의례히 노크 한번으로 자동적으로 쪽문이 열리면서 주인아저씨는 거의 하루도 안 빼놓고 마슬 오신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그 아저씨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시키신다. 그 아저씨 노래는 기억에 전혀 없다.
일번 타자는 나영이란 다섯살 조카가 산키스도의 종소리를 쨍쨍한 목소리로 뽑는다. 자주 울다가도 노래 하라고 하면 똑 바로 서서 이렇게 한 곡씩 빼는 것이 퍽 신기하였다. 지금은 65세를 바라보는 노인으로 Chicago에서 세탁소를 하며 손님들에게 하느님을 전교하는데 바쁘고 재미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남자 조카 두 명의 차례. 그리고 나이 한참 때인 우리 언니와 부교언니, 나의 순으로.
그러나 나는 노래를 썩 잘 못하지만 성의껏 고은 목소리를 뽑아 올리는 열정을 내기에는 어쩐지 어색한 무대이어서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계다가 그 주인아저씨는 우리 세 명 한참 나이 처녀들의 인물 평을 하신다.
부교언니가 제일 인물이 좋다나 해가면서 가끔 그 언니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그 아저씨 얼굴을 보니 나는 속이 느글거린다.“그래 인물이 좋으면 어쩌자는거야.” 한번도 아니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니 말이다.

노래가 나름대로 그의 귀와 마음을 만족시키면 그 조끼주머니에서 삶은 밤 한 톨씩 賞品으로 꺼내신다. “앗따! 시구지다!" 하시면서. 불룩하지도 않은 그 주머니에서 때로 엄청 많이 나오는 걸 보면 퍽 큰 주머니인가보다. 상품용호주머니를 마나님께 특별히 주문하셨는지. 그 부인은 얌전하신 현모양처형이셨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뭐하러 처녀들 많은 그 방에 밤마다 놀러가느냐"고 바가지도 일체 안 긁으셨나보다.
티끌 모아 태산으로 그것도 아저씨 기분이 좋아 자꾸 나오면 솔치 않게 간식거리로 배마저 부른다.
내 스스로 상품 받은 기억은 없지만 피난생활에서 모든 것이 공동의 소유로 배급 받게 되니 말이지.

4살 위 언니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한 달을 모 여고교사로 취직하고 월급 받은 날에 6.25전쟁이 일어났는데 이것도 7-8 개월이 지난 시점 그 월급을 아직도 좀 지니고 있었는지.
그리고 큰 언니는 얼마큼의 경제력으로 조마조마하게 버텨나갔는지 나는 그런 저런 걱정 없이 의식주만큼은 편안한 하루하루였다.
우리들 방에 놀러 오시는 주인아저씨 모시고 노래하는 안방극장 문화생활도 하고 있으니 그저 만족스러웠던 것이었다.

한 시간 이상 두 시간도 걸리는지 대전시내까지 나가면 그곳 형편은 어떤지 알 필요도 없고 아랑곳 없다. 지금이 전시인지 아닌지 인식한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생활형편도 아닌 시점에서 말이다.
이곳서 몇 달을 지냈는데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내려갔다는 것은 라디오로도 듣는 것이 아닌 인편 소식이었다.
그런지 저런지 그 시골마을은 변함없이 조용하기만 하였는데.

늦은 봄에인가, 우리 학교가 부산에서 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나는 구포에서 부산으로 통근하고 있는 큰 오빠집 한칸 방에 올케언니도 있는데 끼어 자기로 하고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무슨 교통편으로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급급하게 긴장되었던 일이 아니니 이렇게 기억이 희미한가보다. 1.4 후퇴 무렵 결혼한 비교적 신혼부부 오빠내외가 사는 단칸방에, 공부가 아무리 좋아도 얼마나 영치없는 일인가 생각된다.

친한 친구 오복근과의 구포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퍽 신기한 것이었다. 매일 등교 하교를 기차통학으로 함께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전주에서의 피난생활을 거두고 부산으로 오신 보모에게 가게 된 것이 가장 적합한 나의 피난지 보금자리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가 11세에 돌아가시고 새로 오셔서 여러 남매를 보살펴주신 분이시다.
처음에 말 했던 거제리 철도관사의 창고 방, 이것은 작은 오빠 -현재 Chicago에 거주- 가 당시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일하기 전에 잠깐 교편 잡았던 교통고등학교가 인연이 되어 거처를 얻을 수가 있던 것이다. 얼마후에는 철도 관사 2층에 넓은 마루방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2009. 01 하순 김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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