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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망우리 산보기(하)

2011.08.20 13:59

김창현#70 Views:5207


망우리 산보기 [下] 

김창현

 만해스님 묘소를 지나면, 독립운동가 서병호 선생 묘소, 그 옆에 3.1운동 때 33인 민족대표였던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과 호암(湖巖) 문일평(文一平) 선생 묘소가 나란히 있다.

 오세창 선생은, 비석글을 명필 김응현이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식민지 조선 화단의 방향을 결정한 전예(篆隸)의 대가요, 추사 이후 유일한 금석(金石)학자이다. 후세의 어떤 학자는 그의 서예를,  '금석문(金石文)에서 비인위적인 치졸과 천진스런 자연스러움을 추구했고, 와당문(瓦當文)에서 질박과 전아(典雅)의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며, 전서(篆書)에서는 규율을 지키는 자체(字體), 굳건하고 묵직하며 짜임새가 엄밀하면서도 변화있는 필획(筆劃), 그리고 유려(流麗), 단아함을 추구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 듣고 누가 선생의 보물같은 금석문(金石文)과 와당문(瓦當文)과 전서(篆書)를 욕심 내지않겠는가. 선생은 약관 20살 때 한강변 정자에서 박영효 윤치호 등의 눈내리는 풍경을 즐기는 모임에 참석할 정도였고,  서재필 윤치호 등과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운동에 참여했으며, 조석진 안중식 같은 근현대 미술의 중심축으로 볼 수 있는 거장들과 탑골공원에서 자주 어울렸으며, 천도교 교주 손병희가 창간한 '만세보(萬歲報)'사장을 역임했다.
3.1운동 후 옥살이에서 풀려나자 해방 때까지 서화에 몰두하셨다. 해방 후는 건국준비위원회 고문, 한국민주당 고문, 대한민보 서울신문 사장 등 서예가 독립운동가 언론인으로서 활동한 분이다. 6,25 동란 중 대구서 서거하니, 국회는 일분 묵념을 올리고 세비 일할을 거출하여 조의금을 전달하여 국가 규모의 조의를 표하였다.

묘소 위치가 높아 우측 용마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인데, 다만 정면의 나무들 키가 높아 그걸 가린게 좀 험이었다.

 오세창 선생 묘소 조금 아래 진단학회(震檀學會) 발기인 중 한사람인 호암(湖巖) 문일평(文一平) 선생 묘소가 있다. 진단학회는 일제 식민사학에 맞서 우리 학자들 민족사관에 입각한 역사를 연구한 학회다. 선생은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평양 대성학교 교사를 하다가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부로 들어가, 일본 내 조선인 유학생들의 비밀결사 조직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동제사는 시민적 민족주의와 대동(大同)사상을 지향하고 국혼(國婚)을 중시한 민족주의 역사관 대종교(大倧敎) 신앙을 공통이념으로 하였다. 중앙 중동 배재학교 교사와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역임하고.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신간회'를 발기하고, 이은상 이희승 최현배 선생과 진단학회를 발기한 분이다. 묘기(墓記)는 정인보(鄭寅普) 선생 글이었다.

 좀 더 가자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선생 묘소가 나온다. 묘소에 올라가면 한글로 '소파 방정환 선생의 비'라고 새긴 비석이 있고, 묘는 돌과 시멘트로 만든 특이한 것인데, 돌에 '어린이의 동무' '동심여선(童心如仙)'이라고 쓰여있다.

손병희 선생의 사위 방정환은, 아동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라는 존칭어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로  '어린이 날'을 제정하여 어린이 인권 선언을 한 분이다. 아동잡지 '어린이'를 만들어 동요 동화 창작을 싣고, '개벽''유심''신청년' 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들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있는 이 어린이날 노래는 윤석중 선생 작사다. 곡은 '색동회' 4대 회장(73년) 윤극영 선생 작곡이다. 소파 방정환이 작사한 원조 노래말은 이렇다.

'기쁘다 오늘날 오월오일은 우리들 어린이의 명절날일세.
복된 목슴 깊이 품고 뛰어노는 날. 오늘이 어린이의 날.
(후렴)
만세 만세를 같이 부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시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기쁜 맘으로 노래 부르며 가세.

 조금 더 가서 '동락천'이라는 약수터 옆에, 세브란스 의학전문 초대 교장 오긍선선생과 독립운동가 문명훤 유상규선생 묘소가 나란히 있다. 이 근처 정자에 올라보니, 아래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하다. 여류작가 박완서씨가 사는 아천리와 구리 먹골배 배밭이 보인다.

 끝에 종두법의 창시자 송촌(松村) 지석영(池錫永) 선생 묘소가 나온다. 마마로 알려진 천연두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하면, 인류 역사상 전쟁과 다른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 숫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희생자를 낸 병이 마마 였다고 한다. 천연두는 5억여명 희생자를 낸 인류 최대의 재앙이었다. 기원 전 1160년 이집트에서 파라오 람세스5세가 천연두로 사망했고, 남미의 잉카와 아즈텍 문명도 천연두로 붕괴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는 군사용 생화학 무기로 북한과 이락이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애틀란타시의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러시아의 '시베리아 바이러스 생명공학 연구센터'가 이 가공할 바이러스를 키우고 있다.

 종두법(種痘法)은 송촌이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가서 배워와 서울에 우두국을 설치, 1879년  소의 질병인 우두(牛痘)를 주사놓아 이 땅에 처음으로 실시한 것이다. 송촌은 후에 관립의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으며, 주시경 선생과 한글 가로쓰기를 주장하고, 한글로 한자를 해석한 '자전석요(字典釋要)'를 펴내어, 고종이 그의 공을 인정하여 태극장 팔괘장을 내렸다. 그러나 재승덕박(才勝德薄)인가? 이런 이력에도 불구하고, 2003년 과학기술부에서 고려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혁혁한 과학기술 업적을 쌓은 분들의 생애와 업적. 유품을 전시하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을 개관 할 때. 최무선(崔茂宣) 장영실(蔣英實) 허준(許浚) 등 14명만 선정하고, 송촌은 제외시켜 버렸다. 친일행적이 문제시 되었던 것이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疎而不失)'이라는 말이 명언이다. '하늘의 그물은 넉넉하고 성근듯하여도 하나도 빠트리지 않는다.'

나는 5킬로 망우리 공동묘지를 산책하며 주변에 향기로운 풀냄새를 풍기며 어디서 왜애앵! 벌초기 돌리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물론 이름없는 민초(民草)들 무덤에서다. 어떤 묘는 잘 관리되었고, 어떤 묘는 떼가 말라 흙만 들어난 황량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후(死後) 커다란 돌에 어록을 새긴 사람이나, 초라한 봉분의 민초나, 죽어서 지하의 한 줌 흙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군 내무반에선 사회의 지위가 필요없고, 망우리선 생전의 모든 것이 필요없다. 옥같은 이쁜 얼굴 단장한 아름다운 숙녀나, 만권서를 가슴에 넣은 천하문장이나, 민족 위해 목슴을 버린
지사(志士)나, 천금을 쌓은 재력가나, 가난한 민초나 사후(死後)엔 다 한 줌 흙이다. 죽음은 모든 걸 평등으로 되돌려 놓는다. 생전의 이러쿵 저러쿵은 바람 타고 날라가고, 시비(是非) 고하(高下)없는 평화만 망우리에 있다. 

(끝)

 




김영임 성주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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