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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6, 의대 1,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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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동 골목에서 가까운 미 문화원 근처 어느 나즈막한 건물, 1층의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였다.

1학년에는 해부학이 머리를 가득 메운 과목이었고, 생리학 생화학 의사학 등이 수업 과목이었다.

 

생화학은 이진순교수께서 가르치셨다.

엄격한 표정이셨지만 다정한 분이신 것 같다.  벤졸의 구조 그림으로 거북이 달린 여러 구조물들, 드려다 보면 머리가 혼잡해진다. 의예과 끝날 봄 무렵부터 생화학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저자 赤松,あかまつ)을 언니가 해방 후 군정시대 농림부의 미국고문관, Mr. Tom 이란 분 밑에서 일할 때 일본에서 주문하여 구해주어 연필로 공부한 흔적을 남겨가며 남보다 조금 앞서 공부해둔 덕에 꾀 여러 명이 걸리는 재시험을  면할 수가 있었다.

공부란 언제나 친구들보다 조금만 앞서면 더욱 재미있어지고 조금씩 뒤떨어지기 시작하면 늘 질질 끌려가는 기분으로 짜증난다.

 

해부학은 암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 더구나 두개골에 대해서는 그 명칭들이 너무 많다. 특히 신경에 관해서 그러하고 이름만 외울 것이 아니고 어디서 시작하고(Origo) 어디에서 끝나는 것인가(Insertio)까지 외우려니 머리가 뻐개지는 것 같다. 두개골 실물 가진 친구가 어쩌다가 하나씩 있으면 그것을 하루밤 빌려다가 여러 친구가 합숙하며 밤 새우고 공부하고 돌려주곤 한다. 차츰 세월이 가니 후에는 두개골 모형이 제조되어 판매되고 있어 의대생에게 편리해진 것을 알았다.

예습해서 시험을 매일 아침 치루는데 틀리는 답은 -3점 감점 점수로 되어 어느날에는 -12점 점수를 받기도 하였다. 서울의대 이명복교수의 유창하신 강의를 생각하게 된다, 나복영교수께서 여의대(고려의대의 당시의 호칭)에 재직하시면서 달필로 흑판 앞에 스셔서 강의하셨다.

성기준, 김제남 교수께서 조교로 계셨는데 미국에 살고 계시다가 고인이 되신 김제남 교수는 나의 고교동창, 이대출신 소아과의사, 김은경의 부군이 되셨다.

 

이화의대, 여의대와 서울의대가 합동으로 대신동에서 더 멀리 가는 ‘괴정’이란 장소, 나무로 된 가건물이 세워져 있는 데서 해부학실습을 하면서 강의도 함께 들었다.

Cadaver는 전시이어서 行旅患者들도 많았을 것이고 하여 현재보다도 오히려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엄숙히 몸을 제공해 주신 그분들께 감사 드린다.

12 구의 시신이 table 마다 회색 – 국방색 담요가 덮어져 엎드려 있었다. table 12 13 명이 한 실습조로 구성된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table에서 담요를 걷는 순간 나는 숙연히 바라보았다.

열 두-세 살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한참 씩씩하게 자라다가 어찌하여 이렇게 우리들 앞에 엎디어 있는지. 자연사인지 피난통에 부모와 헤어져 우여곡절 끝에 이런 몸으로 되었는지.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다면 이 일을 알고 계시는지. 일찍이 하늘나라로 가셔서 이 장면을 내려다 보실까. 아마도 천국에 온 아드님을 반갑다고 껴 안고 계시는지. 후자라면 가장 좋은 일이다.

노출되어 있는 순서에 따라 근육부터 공부가 시작되었다. 사람의 몸의 살덩어리인줄만 느끼던 , 근육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무색하게 해부학은 그것들이 그곳에 붙은 이유, 기능 등 한량없는 뜻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면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리고 두개골 안에 담긴, 뇌는 물론 그를 지배하는 신경, 거기에 분포된 靜,動脈 등 하느님께서 일일이 이룩하시는 신비체임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어느 무엇 하나라도 털끝만치라도 잘못되면 일생이 불편하게 되는 장애자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생리학은 김철, 남기용, 이종완 교수께서 가르쳐주셨다.

김철교수님은 강의실에 들어오시면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시며 시종일관 조용한 목소리로 열띤 강의를 하시어 강의 내용도 풍부하시다. 따라서 시험 때가 되면 공부할 분량이 많아진다. 후에 가톨릭의대로 가셨다.

남기용교수께서는 미소띠우시며 강의를 하시면서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후에 인연이 되어 지금 내가 30여년 살고 있는 아파트 2층에 거주하셨는데 어느 해에 내가 외국여행에서 돌아와 교수님께서 돌아가신 비보를 들었다.

醫史學은 김두종 교수께서 재미있게 강의 해 주셨다.

의학발전의 역사도 중요한데 우리들 의사들은 바쁜 생활에 골몰하느라고 미쳐 그 분야에 기여를 많이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2학년 되어 장진효교수께서 강의하신 조직학, 강의를 듣고 현미경아래 정상조직을 보는데 현미경을 제대로 다룰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몇 사람이 함께 단안(單眼))현미경을 쓰게 된다.

 

또한 많이 암기해야 하는 과목이 약리학인데 오진섭교수, 그리고 홍사악교수께서 담당하셨다. 하얗고 예쁘신 林定圭교수께서 조교로 계셨다. 강의실은 환도하여 현재에도 동숭동거리에 정문이 있는, 연건동 28번지, 서울대학병원 구내이다. 풀이 우거진 함춘원에 3,4학년 임상교실 외에 의대 본관 건물 옆에 벽돌건물에 기초과목을 위한 강의실이 있었다.

게으름 피다가, 사실은 실제로 암기하는 것이 너무 안되고 싫어서 어느 때의 약리학 재시험 치른 일이 있다.
 

병리학은 이제구, 이성수교수께서 담당하신 과목으로,

이제구교수님께서는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앞으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듣기 좋은 tone으로 한 시간 강의를 원만히 마치시곤 하셨다.

이성수교수께서는 한 쪽 고개를 더욱 아래로 내리시어 뭔가 깊이 생각하시는 어조로 강의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젊은 엘리트 교수님으로 수재인 학생들의 섬망의 대상이 된 학자이신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애석하게도 너무 일찍이 세상을 뜨셨다.

 

미생물학은 기용숙, 박진영교수께서 강의하셨고

기용숙교수님은 강의교재를 많이 푸린트 하셔서 내어주셨다.

시꺼먼 것 손에 뭍혀가며 수동으로 sticky ink로 찐득거리는 roller를 팔에 힘을 주어 밀면서 조교 선생님들이 오직 애쓰셨을까? 그 잉크도 알맞게 적당량 묻게 하는 그것도 기술이었겠지.

강의실 들어오셔서 기용숙교수님은 질문하신다. 출석번호 1번부터 끝까지(당시 120명 입학동기 + 40 ---선배들이 군복무하고 제대 후에 아랫 반으로 내려오신 학생들) 호명해서 물어보시지만 그 중 한 사람도 정답이 없다고 하신다.

드이어 알려주시는 정답도 학생들 아무도 정답으로 생각 안 되는 것, 그것이 참으로 정답이겠지만.

철저하게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교육을 교수님께로부텨 철저히 받았고 Streptococcus, Staphylococcus 등 균도 심어 보고 배양해 보고 하여 한번 본 것이 백번 들은 것보다 낫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탄 Virus를 발견하신 이호왕교수께서 조교로 계셨는데 기용숙교수님의 애제자이셨을 것이다.

 

예방의학은 심상황교수, 김인달교수님께서 강의를 해주셨다.

심상황교수께로부터 실제로 유용한 질병방지 내지 사고방지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

내가 나이 들어 계단 내려가다가 끝나는 시점에서 계단과 평지의 구별의 색깔이 확실하면 몹시 고맙고 희미하여 나도 더듬거리다가 발길이 안정되면 그때 그래서 그 교수님이 그 강의를 하셨는데—하고 늘 생각난다.

김인달 교수께서는 강의실에 들어 오시면 약 5분간은 오-케스트라, 음악 얘기 등 꺼내신다. 영화구경에 대한 얘기도 조조 활인되는데--- “ 하고 조조부터 강의 열심히 듣는 학생들 앞에서---. 좀 강의를 빼먹어도 취미생활도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 보다. 각박한 의대생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시니 좋았다.

하루는 “김성심 군”이 누구냐고 앞에 앉아있는데 뒷자리를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신다. 깜짝 놀랐는데 report 잘 썼다고 칭찬하시어 잠시 어깨가 으쓱했다. 예나 지금이나 칭찬 받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점심 시간이라고 있기는 하였는데 그 시간이 짧았는지, 그 앞 동숭동 거리 어느 식당을 왔다 갔다 한 생각이 전혀 없다. 사실 식당이 많지 않은 중에 후에 산부인과 수련 때도 중국집 배달이 기억나는 진아춘이란 이름의 식당만을 알고 있다. 지금도 그와 똑 같은 중국집은 바로 그 자리가 아닌 곳에 있던데, 대대손손이 하는지 주인은 벌써 바뀌었는지 알 도리 없다.

그러나 어느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지방에서 온 하숙생도 많았고 6,25 전쟁 停戰 후, 서울에 환도하고 미쳐 이것 저것 질서도 안 잡히고 일반적 우리들의 생활이 화려할 수가 없었던 시대이었던 것은 확실한 일이다.

 

 

 그 때-  7      3, 4 학년, 임상 소감 ()

 

2학년까지는 고교 6년 동안과 다름 없이 하로 종일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학생이 함께 강의를 들었다

3한년과 4학년에는 하루에 반 정도는 강의실에서 강의 듣고 반은 임상실습으로 환자들을 대하였다.

 

흰 까운을 입고 청진기도 준비하고 학생신분이지만 사회에 나가 일하는  입장이다.

우선 환자에게 병에 대한 병력을 청취(history taking)한다.

chart에 대략 하기 좋게 묻는 항목이 있지만 교수님들에게는 쓰는  것에 따라 만족 못하시는 일도 있을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쓰지 않으면 환자 진료에 차질마저 생길 수도 있다.

 

내과의 경우 나는 청진기로 청진하는 것이 어려웠다.

폐에 이상이 있어 변화가 있을 때도 그렇지만 심장질환에서의 비정상적인 음은 더욱 그러하였다.

더구나 울음을 그치지 않는 소아환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소아과의사들에게 더욱 존경심이 갔다.

 

각과 병실을 도는 중에 산부인과 병동에서 산과에서 아기가 탄생하는 일은 너무도 즐겁고 신기하였다.

빨간 아기가 나와서 아-ㅇ 아하며 바르르, 때로 혀도 떨리듯 움직이며 입 버리고 우는 모양은 웃는 것보다 더 예쁘다.

재빠르게 양수를 빨아내고 탯줄 양쪽을 단단히 차단하고 제대를 실로 묶어서 양수, 피 등을 닦고 방포에 쌓여 신생아실로 갈 무렵에는 아기는 눈을 감고 조용해진다.

 

내과병동에서 복수가 찬 간경변 환자들, 복수를 빼도 또 차고 원인을 알고도 잘 치료가 안 되는  장기 입원환자는 안타깝다.

 

소아에서 삶에 희망이 없는 희귀한 질병에 시한부로 모자가 얼싸 앉고 정겹게 병실 생활을 하고 있는 정경은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응급실에 급하게 도착하여 여러 의료진에 둘러 쌓여 응급처치 받고 병실에 올라가는 경우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보람도 없이 흰 홑 이불을 덮어 영안실로 가는 장면은 유가족과 함께 눈물 흐른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의사가 되려고 한 것이니 더 눈 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몸과 함께 마음과 정신도 무력해져 병원을 의지하고 오는 환자들, 온갖 지식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여 그 생명의 연장까지라도 해야 한다.

 

1957 3 28 졸업식.(서울대 11), 쌀쌀한 봄 날씨이지만 하늘은 快晴하였다.

동숭동 문리과대학 교정에서 서울대 전체의 졸업식.

6.25동란 후 안정되지 않아 졸업 까운은 입지 않았다.

맹시선(장기간 보건소장으로 근무)의 남편이 되신 김종환(교수, 서울의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특대생으로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았다. 맹시선은 남편 다음의 2등이라고 한다.

 

나는 졸업식 가던 날 아침, 첫 태동으로 뱃속의 아기가 엄마 아빠에게 졸업축하를 하였다.

이 아이의 임신의 입덧으로 두부장수의 외침만 들어도(개와 같이 conditional reflex: Pavlov의 종을 연상하면서먹은 것도 없는 쓴 구토, 공책들은 머리맡에 놓고 벼개에 침을 질질 흘리며 잠을 자면 남편은 공부 안 한다고 야단친다. 졸업 시험을 엉망진창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날 이때까지 의학에 대한 일들을 남편과 더불어 미약하지만 손 놓은 적이 없다. 신세대의 의사들을 비록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

 

결혼식은 1956년 11월, 흑석동천주교회에서 나자로마을에서 오래 나병환자와 함께 계시던 故 李庚宰, Alexander 신부님의 집전 혼배미사를 하였다. 주례신부님께서는 어느 노래의 가사에 있던 것 같이
"사노라면 흐린 날도 있으리라." 고 하셨다.  -끝-
 
2009년 1월 하순 김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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