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3 16:13
The Climb of Mount McKinley, Alaska South (Kahiltna) to North (Muldrow) Traverse 그 당시 의예과는 문리대에 속해있었고, 따라서 나는 문리대 산악회의 일원이었다. 1961 년경 어느 주말 서울근교 산행 중 해외원정등반 얘기가 나왔었다. 그때 마침 처음으로 동국대 (아니면 경희대) 산악회에서 대만의 옥산을 처음 해외원정으로 등반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을 때였다. 그때 문리대 산악회 우리에게는 일전한 푼 없었던 주제에 국립학교에서의 해외원정 등반에 대한 보조는 꿈도 못 꾸는 때였다. 그때 문리대 선배 한 사람이 "그러면 우리는 언제고 Mount McKinley of Alaska를 해보자!" 했다. 그때 상황은 해외로 나간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했었거니와, 겨우 설악산이나 지리산 동기등반의 미비한 경험으로는 Mt. McKinley의 極地 高山 등반은 아주 감감하기 짝이 없는 얘기였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분수에 넘친 희망을 토로했던 山 友들은 아마 다음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을 McKinley였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몰라도, 내 기억에서는 잊히지 않고 살어 있었다. 문리대를 떠난 후 의대에서 그동안 끊어졌던 의대 산악부를 다시 시작했고, 문리대 산악회와는 더 접촉이 없었지만, 맘속 어디엔가 McKinley의 꿈을 언제 실현할 수 있을가 생각해 본적은 있었지만, 전혀 엄두도 못 낸 채 졸업했다. 그러나 뜻밖의 渡美와 함께, 나에게는 잊히지 않았던 Mount McKinley가 자유롭게 가까이 되자, 옛날 생각이 가끔 떠오르곤 했다. 미국에서의 바쁜 training을 끝내고 난 후, 시골구석에 틀어박혀서 외과 개업에 몰두하던 어느 날, 문득 나는 40 고개를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10년이면 50세, 또 한 번 10년이면 60세가 아닌가? 소년 시절의 꿈은 다 어디로 가고, 인생이 겨우 이걸로 끝나는것일가? 한번 지나간 시간과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느끼면서, 1977년, 그 즉시 Mount McKinley 등반계획을 구체적인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막연했던 한 가닥의 잊혔던 희망이 하나의 견고한 執念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 아주 바빴던 의사생활에 대한 일종의 반발, 아니면 나에게 mid-life crisis가 다가왔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예비등반으로 Mount Rainier (14,411 feet, 4,392m)를 목표로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계획이 유산되었고 1978년에 다시 계획했었는데 동반할 친구들의 사정으로 다시 좌절되었다. 학교 다닐 때와는 달러 모두 결혼하고 의사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등반팀을 만든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고, 결국 어려운 꿈은 혼자서 꾸는 게 첩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혼자 가기로 결정한다. Talkeetna, Alaska에서 McKinley 등반 안내를 하던 Ray Genet Expedition과 American Alpine Club을 통해 연결되어 1978년 가을에 구체적인 계획이 시작되었고, 집에서와 Colorado에서의 Training을 시작했다. 1979년 2월 말에 Colorado Outward Bound School의 훈련을 받으며 Ten Mile Range의 Pacific Peak (13,950 ft / 4,252 m) 동기등반을 하며 겨울 雪山등산기술과 겨울기본생존훈련(Winter survival training)을 맞추었다. Colorado의 13,000 feet 고지에서 일주일을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견뎌보며, 나의 집념과 신념이 흔들리기를 은근히 바랬지만, 산에서 내려왔을 때 McKinley의 꿈에는 변함이 없었고, 그해 6월 초에 McKinley 등반이 확정되었다. Alaska로 떠나기 불과 10일 전, 1979년 5월 29일에 한국 산악회의 고상돈 씨 팀 (3명)이 성공적으로 한국인 최초의 Mount McKinley 정상에 올랐다. 1978에 일 년 더 기다린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곧바로 고상돈 씨 팀의 조난사고가 보도되고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산에서 죽는다. 이 사건이 나 자신과 가족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놨지만, 내친김에 이미 결정된 계획대로 계속하기로 작정한다.
6월 13일, 며칠 동안 바람으로 비행기가 뜨지 못하다가 드디어 Single-engine Cessna 경비행기로 Talkeetna를 떠나 Mount McKinley의 base camp가 되는 Kahiltna Glacier (6,000 feet)의 빙하 위에 착륙한다. 비행기에서 짐을 꺼내고 있다. 그때는 이름도 없는 빙하 위의 Landing strip이었지만, 후세의 Climber들이 KIA (Kahiltna International Airport)라는 애칭을 부쳤다. 일단 착륙하면 비행기의 스키가 눈에 박혀서, 이륙할 때는 승객들이 비행기를 한참 밀고 가다가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잽싸게올라타야 된다. 앞에 보이는 산이 Alaska Range에서 두 번째, 미국에서 4번째 높은, Mount Foraker (17,400 ft - 5,304 m). Base camp는 그 바로 동쪽 밑의 Kahiltna 빙하에 있다. Alaska Range의 주축인 Mount McKinley (20,320 feet - 6,194 m)는 누구나 알겠지만 북미대륙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 등반해야 할 고도로 치면 세계에서 제일 높이 올라가야 하는 산이다. Everest의 11,000 feet 등반보다, 여기는 base camp에서부터 14,000 feet을 올라가야 된다. 더구나 북극권에 가까운 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추운 산이기도 하다. Mount Everest에서는 만년설이 18,000 feet에서 시작하지만, 여기에서는 불과 3,000 feet에서 시작된다. 흙이 보이지 않는 곳... 눈, 바위, 얼음뿐이다. 드디어 雪山의 생활이 시작된다. Tent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 그 바로 뒤에 Mount Foraker의 위용이 보인다. 산밑에 깊은 골짜기에 있는 우리에게는 McKinley 정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곧, 그날그날의 어려움과 등반에 대한 정신집중에, 모든 속세의 혼란한 생각이 점차 없어지고, 정상에 대한 목표만이 맘에 남게 된다. Tent 안에서 밖앗의 모진 바람 소리를 들을 때 가끔 집 생각이 나곤 했다. 나 자신은 아무런 염려 없이 안전하게 생각되는데, 집에 있는 두 아이와 아내가 오히려 모진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하게 생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McKinley 남쪽의 Kahiltna Glacier. 여기는 빙하의 하류로서 아주 넓은 계곡을 이룬다. Base camp에서 출발해서 천천히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빙하 위를 걸어가는데 빙하 자체는 갈라진 얼음덩어리이고 그 위에 눈이 사붓이 덮인 것이다. 가끔 눈 속에 숨겨진 얼음의 균열 (Crevasse)이 있고 거기는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멍이기 때문에 이미 밟아진 tract만을 따라가는데, 혼자서는 갈 수 없고 Rope로 서로 맨 채 앞뒤 한 줄로 전진한다. 이때 눈다리 (雪橋)가 무너져 한 사람이 빠져 들어가도, 다른 rope member와 줄로 연결되어서 빠지다가 매달리게 된다. 위 사진에서 제일 마지막 사람이 짐을 썰매에 싣고 끌고 간다. 이게 두 배 고된 일인데 교대로 끌게 된다. 이때는 내가 Rope leader인 모양 Rope의 제일 앞에 서 있다. 나는 거기에 한 가닥의 희망을 걸게 된다. 그때 우리 팀 중의 8명이 나를 포함해서 종주(Traverse)를 하게 되어 있다. 과연 할 수 있을가? 올해에는Seattle 산악회 팀이 얼마 전에 처음으로 종주에 성공하고, 우리가 두 번째, 그리고 올해 마지막의 종주팀이 된다. 종주의 경우, 돌아오는 길이 달러서 식량과 장비를 모두 가지고 올라가야 된다. 따라서 종주하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었다. 다음이 West Butress인데 "Head Wall"이라고 부른다. Head Wall을 올라가기 전에 여기에서 고도적응도 할 겸 다시 하루를 완전히 쉰다. 우리 팀 중에서도 환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4,000 feet의 고도와 그동안의 과로가 겹친 모양이었다. 다행히 우리 팀에는 나까지 3명의 의사가 있어서 돌아가면서 돌보아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나 자신은 여기까지는 건전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급경사 6,000 feet (정상은 20,320 feet)이 걱정되었다. 6월 29일 (위 사진), 여기는 West Butress의 능선을 지나 Denali Pass로 올라오는 길이다. 고도는 이미 16,000 feet를 능선 위에서 보내고, 지금 Denali Pass 의 18,000 feet로 올라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 당하는 고도로서 눈 속에서의 등반전진이 한 걸음마다 아프고 힘들었다. 여기에서처럼 앉아서 쉬다가 뒷 팀이 도달하면 다시 일어나 올라가기 시작한다. 빤히 보이는 Denali Pass의 고개가 한없이 멀리 보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sleeping bag만 가지고 갔지만, 우리 종주팀은 장비와 식량을 다 가지고 가기에 짐은 계속 무거웠다. 한 반쯤 더 지나서 편편한 곳에 왔을 때 우리 중의 첫 번 팀이 정상을 들려 내려왔다. "바로 저쪽 위라고" 하지만 믿기 어려운 얘기... 하지만, 여기에 힘이 나서, 힘들고 숨찼지만 계속 올라간다. 정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스듬히 정상 능선처럼 보이는 언덕을 땅만 보면서 올라간다. 조금 후 땅이 평평해지는 것 같기에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약 30 meter 앞에 정상이 보이지 않는가 !! 두번 째 팀이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6월 30일 오후 2:30 (위 사진)에 내 일생 이정표 중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의 하나가 왔다. 정상에서 내려와 Denali Pass에서 Tent를 거두고, McKinley의 북쪽 사면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처음에 만난 것이 Harper Glacier였는데 여기는 남쪽사면보다 훨씬 길이 험하고 급했고 여러 번 Ice piton과 Rope로 내려와야 했다. 결국 앞에 가린 산 뒤의 Harper Falls 밑에서 하루 자고 Muldrow Glacier로 내려온다. 여기부터 Rod가 약 20 meter 내려갈 때까지 내가 위에서 belay 해주고 앞에서는 다른 Rope mate가 잡아준다. 사진 오른쪽 밑으로 좀 더 완만한 칼날 ridge가 보인다. 계속 ridge를 타고 가다가 사진 윗중간 지점에서 왼쪽 Muldrow Glacier로 줄을 타고 내려오게 된다. 밑의 세 사람 그림자 밑에 보이는 것이 MuldrowGlacier 이다. 사진에 자세히 보면 편편한 빙하를 가로지르는 선들이 많이 보인다. 이것들이 살짝 눈이 덮인 Crevasse (균열된 얼음)들이다. McKinley의 여러 빙하 중에서 가장 크고 빠르게 흐르는 위험한 빙하로 알려졌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이 빙하에서 내 Rope team 중의 하나가 Crevasse로 빠지게 된다.
본인이 아는 바로는 이것이 한국인으로서는 제일 처음 Mount McKinley의 성공적 종주(縱走, Traverse)가 된다. 故고상돈씨의 한국인 최초등반 한달 후에 일어난 일이다. 이 한 달 안에 한국인 11명이 처음으로 여기를 지나갔고 나를 포함해서 6명이 정상에 도달했고, 나는 McKinley 종주에 성공했다. 그날 저녁 McKinley Park Hotel에서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더운물에 shower를 했다. 그동안 밀린 때가 속옷을 벗자마자 저절로 굴러떨어져 나왔다. 얼굴에 두꺼운 가죽처럼 덮였던 Sun-block lotion, Mosquito repellant를 밀어냈더니 그 속에서 흰 피부가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그날 저녁, National Park Ranger의 초대로 호텔 부근 큰 텐트에서 열린 방문자를 위한 모임에서 Mount McKinley에 대한 안내 강연이 끝나고, "여기 지금 막 산을 넘어 내려온 Climber" 가 있다고 소개를 주었다. 그러자 관객 중의 한 사람이 나에게 물어 볼 것이 있다고 요청을 했다. 그의 질문은, "Why did you climb the McKinley?" 그런 후 McKinley에서의 정신적 상처가 아물자, 나는 부지런히 세계의 이름 난 정상들을 찾아다녔다. Mont Blanc (France, 1988), Monte Rosa (Swiss, 1988), Mt. Kilmanjaro (Tanzania, 1988), Mt. Elbrus (Russia, 1990), Cero Aconcagua (Argentina, 1990)를 하나씩 성공적으로 등반하고, 1992년의 남극의 Mount Vinson (1991) 정상을 마지막으로 정상에 대한 집념을 거두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Mt. Everest의 기회가 4번 왔었고 마지막 기회는 대한산악회의 서기 2000년 기념등반에 초청받았는데, 그때는 이미 내 나이 60에 Everest는 무리라는 생각에 며칠밤 잠을 못 자고 고민하다가 못 가겠다고 알려주었다. 그 것으로 "Seven Summit"의 꿈도 끝이 났다. 또 한가지 애석하게 오르지 못한 정상은 Mongolian Altai Range의 최고봉인 Khuiten peak of the Altai Tavan Bogd Mountain (4,374m, 14,350 feet)이었다. 우리의 아주 먼 조상이 한반도로 이주하기 전에 그 밑에서 쳐다보며 살았었을지 모른다는 원초 고향의 정상이다. 우연히 Mount Elbrus에서 만났던 Mongolian Alpine club 사람들과 연결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쉽지 않았던 logistics에 끝내 실현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쉬워졌지만). 요새는 틈나는 대로 가끔 Colorado의 Fourteeners (14000 feet 정상들) 를 등반하지만, 지금도 누가 나에게 "Why do you climb?" 하면, 나는 아직도, "I don't know" 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긴 알았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된다. 18년 전에 문리대 산악회 山友, 선배, OB들과 잠깐 꾸었던 꿈을 잊지 않고 이루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켜야 될 약속은 아니였지만 나에게 꿈을 안겨준 그들에게 감사한다. 아마 그 중의 상당수가 미국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언제 어느 산에서 만나서 힌 머리의 노년생들이 그 동안의 회포를 풀어 봤으면 한다. Epilogue: 30년 전의 옛날 얘기... 1. Ray Genet (The captain of the McKinley expedition)은 같은 해 1979년 9월에 Mount Everest Expedition에 갔다가 정상등정 후에 독일여자를 구조해서 데리고 내려오다가 같이 정상능선에서 사망했다. Ray는 McKinley Expedition 동안 나를 특별히 친절하게 대접해주고 잘 돌보아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자기의 산 친구 하나가 맥박이 아주 늦게 뛰는데 심장 Pacemaker가 정말 필요한지 진지하게 자꾸 뭇곤 했다. 내가 Pacemaker가 필요할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그 친구의 자존심이 Pacemaker를 원하지 않을 거라고했다. 그는 내가 Pacemaker 전문의사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친구라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얘기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결국, 그것이 그의 Everest에서의 사망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만일 Pacemaker를 달고 갔더라면 거기에서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내가 그때 왜 더 강력하게 Pacemaker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는지 후회된다. Ray 자신이 거의 Super-athlete 로 맥박이 낮은 사람이었기 아주 쉽다. 왜 그의 자존심이 Pacemaker를 원하지 않았을가? 내가 Everest에 발을 못 디딘 이유의 하나는 믿을 만한 Expedition leader 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 등반 후 한 10년이 지난 어느 날 신문에서 우연히 McKinley 최연소자 등반 기사를 보았다. 나이 13살에 정상에 오른 어느 소년의 얘기였는데 자세히 이름을 보니, 바로 Ray Genet의 아들이 아닌가! 그때 Talkeetna에서 땅 위로 코 흘리며기어 다니던 유아가 바로 그 소년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Ray의 미국 wife인 Kathy는 Ray의 죽음 후에 계속 Talkeetna에 남아서 Ray의 McKinley 등반 사업을 계속했고, 그 어린아이가 자라서 最年少者 정상인이 된 것이였다. 인생과 직업의 끊임없는 흐름에 내 마음이 숙연해짐을 금할 수 없었다. 3. 나와 같이 그 당시의 최연소자로, 같은 Rope team으로 등반했던 Mark Edwards는 그 후 커서 의사가 되었고, 그의 아버지 Dr. Edwards는 치매에 걸려 Anchorage, Alaska 에서의 정형외과 개업을 닫고 Arizona로 이사 갔다고 들었다. Dr. Edwards 는 1979년 고상돈 씨 조난 때 그때 살아남은 한국인 한 명의 동상을 치료했던 의사였고, McKinley 등반 후에 나를 Talkeetna에서 Anchorage로 데려다 준 사람이었다. 4. 그때 같이 등반했었던 많은 사람과 2-3년 연락이 있었다가 결국은 모두 잊히기 시작했다. 한가지 기억에 생생한 것은 정상직전에서 등반을 기권하고 자기에게 남아 있던 Film 한통을 나에게 주었던 Leon Oregard 와는 오래 연락을 주고받다가 몇 년 후 그의 재혼 결혼 청첩장을 받았다. 불가피한 일로 못 갔지만 결혼 후 잘사는 모양이었다. 필자 註: 사진에 맞추어 간단히 줄여서 쓴 한글판 등반기로 형식에 매달리지 않고 맘 내키는 대로 썼습니다.
Photo and Climb Journal by SNUMA WM - Original journal written in 1979, modified in June, 2011 |
2011.07.13 17:10
2011.07.13 18:18
본인이 떠나기전에 Colorado 등반훈련에서 고산병에대한것을 배웠고 체험했고,
이 원정중에는 Expedition leader 인 Ray Genet이 이미 잘알아서 우리를 거기에 맞추어 움직였기때문에
고산병에 크게 걸린 사람은 없었지요. (예: 하루에 고도 1000 feet 이상 올라가지 않었다는것 등등).
문제는 잘아는 leader를 만나는것입니다.
피곤하지 않다고 계속 서둘러 올라가다가 죽거나 실패하는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고산병은 자기도 모르게와서 갑자기 하룻밤에 나타납니다.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경우가 많지요.
Viagra가 도움이 된다는것은 절대로 "다행"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로도"들이 믿는거지요.
오히려 Viagra를 믿고 Proper acclimatization을 않한다면 아주 더 위험하게 됩니다.
여기 일지에서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14000 feet 올라가는데 약 20일 걸려서 올라가지요.
이건 우리가 4-5일에 얼마던지 올라갈수있었지만 일부러 시간을 끌어 고도적용을 한 것이지요.
이것이 훌륭한 leader의 성공적 산행이지요.
지난번 석희님의 Shang-ri-la 여행기에서 중국가이드들이 자기네는 이미 고도적응이되어서
문제없었지만, 금방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끌고 14000 feet로 직진시킨것은 사실상
"범죄" 나 "살인"과 같은짓이지요. 그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게 참 다행이였죠.
앞으로 이런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Kilimanjaro에서의 서울대 동문의 죽엄도 마찬가지였지요.
2011.07.13 18:56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우리들과 share해주신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Talkeetna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Mt.McKinley를 보러갈때에도
등반팀이 경비행기를타고 떠나는것을 보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마침 등반하는 2사람을 볼수있었고 14000ft?에 설치한
base camp도 볼수있었고요, 규정
2011.07.13 23:05
2011.07.14 00:16
2011.07.14 03:29
2011.07.14 13:58
2011.07.14 14:26
It was fascinating story and photos.
Vicariously I could perhaps understand a little
why mountain climbers do what they do at the risk of even their lives.
What a feeling you must have had after you reached the peak!
I am surprised that this kind of story was not told to us long time ago at our friends getherings.
Thank you for sharing this photos belately and I ask you a slide show of your collections
at one our events in the future.
I am so grateful to you for introducing me into the joy of hiking trips
although those were a baby trips compared to what you have done.
Bravo, Stephen!
조성구
2011.07.14 17:47
2011.07.14 18:09
Even today, I still don't know and have no answer for that question.
It's either because I've never tried to find the answer, or there may be no true answer.
In the course of living, we do a lot of things that we don't know why we do.
We always assume that there has to be a good reason for doing something
that is very challenging, dangerous, and difficult. But not necessarily.
우리 일반 사회와 사람들에게는 이런일은 "미친짓"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간단히 얘기했거나, 필요한 경우에만 얘기하고,
한번도 이것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었지요.
끄내냈자, 정말 흥미롭게 보거나 잘 이해할 사람은 없을것 같었지요.
사실은 혼자 가슴에 둔채, 기억해보는것도 충분히 흐믓하고 만족스러웠지요.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우리 대학 동문들과 고교동문들 사이에 Alaska 바람이 불어서,
이 사람 저사람 Alaska에가고, 일부분은 Mount McKinley부근을 지나고 와서 여행기를 쓰더군요.
다시 말해서 옛날같으면 전혀 이해못할 사람들이 은퇴와 함께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트여,
이제는 왼만한 여행도 모험도 이해할수있는 사람들처럼 되어가더라구요.
흠, "이렇다면 이 사람들한테 한번 얘기해볼만하구나" 해서
옛날 32년전의 사진첩과 일기장을 끄내서 처음으로 쓴것입니다.
2011.07.15 02:18
Years ago, I remember reading a story of a mountain climber.
After he had done very challenging cilmbing,
he was asked the same question by a reporter.
"Why did you climb?"
His answer; " Because it's there."
I thought that was a brilliant answer saying it all.
I am still hoping that you will open your album
and give us a slide presentation of all the pictures.
Seong Koo
2011.07.15 05:59
"Because it's there..." is supposed to be the most famous three words in Mountaineering.
George Mallory is known to have said the phrase first when he was asked
"Why do you want to climb Mt. Everest?"
Mallory and his partner, Andrew Irvine, died later at near the summit of Mount Everest in 1924.
It's still not known for sure if they were the first to have reached the summit then.
Then, later, after Edmund Hillary successfully made the first(?) climb of Everest in 1953,
he was asked, "Why did you climb Everest?" (please compare two questions here.),
Hillary said the same thing, "Because it's there."
As you all may know, afterwards, Edmund had become a saint for the Sherpa people in Nepal.
I came close to meet Edmund Hillary before but never actually met him.
But later, in December, 1991, I climbed Mount Vinson in Antarctica with his son, Peter Hillary.
Peter was almost the exact copy of his father, another good person with very similar appearance.
That almost sufficed my desire to meet Edmund who died i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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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선배님.
흥미진진, 아니 너무나 고생스러웠던 등정기를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고산병에 대한 이야기는 안 나와있던데 어땠지요.
요즈음은 viagra가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하니까 다행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