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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思婦曲 - SNU Medical 동문의 모든 아내들에게

2011.07.20 23:50

오세윤*65 Views:5306






            등받이

                                                                        오세윤

                                     


     아내와 나는 고향이 같은데다 생일도 한 달이다. 졸업시즌인 2월, 아내가 나보다 아흐레 빠르다. 탓에 아내는 거의 자기생일을 챙기지 못한다. 그냥 건너 뛰어 내 생일에 덧붙여 곁다리로 치른다. 번거롭다는 핑계지만 매번 미안하다.

     올해도 다름없어 딸과 전화통화를 끝낸 아내가 다음 토요일로 날을 잡았다고 심상하게 전한다. 듣다보니 또 미안하다. 속으론 섭섭하지 않을까.

     꽃다발로라도 아내의 생일을 보상하고 싶었다. 근처 화원을 찾았다.

     장미 한 송이 삼천 원을 달란다. 한창 졸업시즌이라 그것도 없어 못 판다는 빙퉁그러진 대꾸, 나이를 곱하니 만만찮은 거금이다. 선뜻 지갑 열 엄두가 안 난다. 특별히 잘 보여야할 것도 없는 나이에 이건 좀 과하다는 생각, 뭐 다른 방도는 없을까 머뭇거리는 참에 언뜻 연천의 비빔국수집이 떠오른다. 그래, 둘이 다 좋아하는 비빔국수를 먹으러 가자!


     편도 53km, 소요시간 1시간 36분, 꽃값의 반만 가지고도 휘발유 값이랑 음식 값이랑 뒤집어쓰고도 남을 판. 토스트 한 조각으로 간단하게 요기하고 10시 조금 넘겨 집을 나섰다. 아내 얼굴이 환하게 핀다. 일석 삼조다.

     20년도 훨씬 전, 임진강 상류 군남면으로 견지낚시를 갔다 오던 길에 알게 된 비빔국수집. 3번 국도에서 한탄교를 지나 재인폭포 가는 길로 접어들어 5km쯤, 군부대 앞 들판 가운데 홀로 덩그런 식당. 곡물저장창고였을 건물 한쪽을 합판으로 막고 옆과 뒤, 지붕은 슬레이트 그대로인 채 길가 쪽을 헐어내 유리문을 단 어설픈 음식점. 오로지 비빔국수만을 팔았다.
     

     20평이 될까싶은 홀에 4인조 포마이카 식탁 여남은 개, 투박하게 생긴 초로의 주인부부는 손님이 들면 그때서야 꿈적꿈적 움직여 비빔국수를 비벼냈다. 황해도 피란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식이라곤 벽거울 하나뿐인 허름한 집에서 버무려내는 국수가 여간 감칠맛 나는 게 아니었다. 식당 곁 너른 밭에서 가꾼 채소를 곁들여 무친 비빔국수는 혀가 얼얼하게 매우면서도 뒷맛이 깊었다. 38도선 바로 위, 고향 해주의 언덕너머 마을과 모양새마저 흡사한, 익은 듯 낯선 곳에서 우리는 고향사람이 만든 고향 맛을 걸신들린 듯 먹었다.  

     그 첫 방문 뒤로 이 집의 비빔국수는 청계천의 회냉면과 더불어 아내가 최우선으로 즐기는 기호음식이 됐고, 우리는 일 년에 너 댓 차례는 꼬박꼬박 찾아가 먹고 오고는 했다.


     채 12시가 안 돼 도착했다. 길 건너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섰다. 홀이 지난번 왔을 때보다 근 배는 되게 넓어졌다. 손님이 갈수록 많아진다 했더니 장사가 보통 잘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서름했다. 80평이 됨직 넓은 세면바닥 홀에 40여개의 생목식탁을 줄을 맞춰 늘어놓아 꼭 군부대의 막사 같은 느낌이었다. 

     간신히 두자 넓이가 될까 싶은, 둘이 마주 앉아 먹다보면 서로 이마가 부딪칠 정도로 얌통맞게 좁은 4인용 식탁이 영 생경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언짢게 한 건 등받이가 없는 남색의 둥근 플라스틱 의자였다. 손님을 많이 앉히기 위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라고는 해도 그 속셈이 너무 빤하다싶게 얍삽했다. 먹었으면 뭉긋대지 말고 어서 일어나 나가라는 그 속내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이전 포마이카 식탁일 때만해도 싸구려이긴 할망정 등받이가 있는 철제의자여서 그런대로 앉았기는 편했었다.
     

     국수를 시키고 앉아 나는 처음 왔던 날을 떠올리며 주인내외가 둘 다 참 황해도사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인사라야 싱긋 웃는 것이 고작인 붙임성 없는 사람들, 꾸밀 줄도 속을 감출 줄도 모르는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투박한 사람들. 끈기 있고 근면하며 인내심이 강하다고 도민의 특질을 풀이한 석전경우石田耕牛. 그들은 말수 적고 남 눈치 안보며 그저 제 할 일들만 한다. 온순한 성품 속엔 또 성마르게 성깔부터 내는 미욱한 면도 있다. 뒤가 무르면서도 단기短氣인 이 황해도 사람들이 나는 대체로 팔도에서 가장 사교성과 미적 감각이 뒤떨어지지 않을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맛이 있으면 그만이지 꾸미는 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식당주인의 의식을 나는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도, 장인 장모님도 다 마찬가지였으니까 -.
     

     왜 처음부터 이 집 국수가 우리 입맛에 그리도 딱 맞았을까. 고향사람이 만든 고향음식이라서 그랬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아내가 여섯 살 내가 여덟 살이던 광복 이듬해 함께 월남했으니 고향에서 그 어린 나이에 매운 비빔국수를 먹어봤을 리도 없고 설령 먹었다 해도 그 맛을 기억할리 만무할 터. 더구나 처음 서울에 와 배급밀가루로 끼니의 반을 때우던 근 두해 동안도 어머니는 한사코 수제비만을 고집했던 탓에 나는 중년나이가 되기까지 비빔국수의 참맛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

     비빔국수를 먹을 때마다 나는 고향음식에 대한 미감은 그 고장 사람들의 몸속에 유전인자화하여 면면이 전해 내려지는 게 아닌 가 신기해하고는 했다. 약혼 전 처음 아내의 집에 가 먹게 된 음식이 오래 익숙했던 듯 입에 맞았던 것도 다 그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처음 비빔국수를 먹고 온 주말, 아내가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해냈었다. 솜씨 좋은 아내가 딴에 정성을 다했을 맛이 연천집의 반에도 못 미쳤다. 그렇다하여 어찌 바른말을 하랴.

     “히야, 맛이 꼭 망향집이네! 이젠 그 먼데까지 갈 필요두 없게 됐네그랴.”

     “정말?”

     “그러~엄”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아내가 못미더운 듯 쳐다봤다.

     “그럴게 아니라·······.”

     내친 김에 나는 한 술을 더 떴다.

     “이럴게 아니라 우리 비빔국수집을 하나 차리면 어떨까. 간판도 ‘고향비빔국수’라고 달고 말야.”

     그제야 아내는 피식 웃으며 풀린 속을 내보였다. “아주 맛이 없지는 않았나보네.”

     말이 아니고도 서로의 속을 훤히 꿰뚫는 임의로운 사이, 때로 거짓말도 필요한 무촌지간. 불일이 불이不一而不二, 그 모순과 배려의 부부라는 관계.
     

     한 달 뒤, 아내가 돌연 나에게 연천엘 다시 가자고 졸랐다. 뭣 뭣이 들어갔는지 좀 제대로 보고 와야겠다는 게 이유였다. 만사제치고 그길로 바로 갔다. 그리고 또 -. 그 뒤로 아내의 비빔국수 맛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연천을 찾는다.

     망향집의 사업이 번창해 서울과 수도권에 여러 군데 분점이 생겨나면서 집에서 20분 거리에 체인점도 하나 들어섰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우리는 전처럼 본점을 찾아 먼 길을 오른다. 그곳에 가야만 비빔국수가 제 맛을 냈다. 매큼하고 달큼하고 시원하고 깊은······.

     오늘도 맛은 여전해 곱빼기로 나온 국수를 오이 한 쪽 안 남기고 말끔하게 해치웠다. 아내도 맛있게 먹어줬다. 하지만 먹고 나오는 내 속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의자에게서 받은 불편한 감정 때문인 듯 했다. 등받이도 없는 그따위 의자는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차를 몰고 오면서 나는 등받이가 편한 내 오래된 의자를 생각했다. 척추관협착증으로 허리가 비틀어질 정도로 아프던 때, 아내가 온 장안을 뒤져 구한 이태리제 팔걸이 안락의자. 국산 고급의자의 근 세배는 되게 비싼 걸 왜 샀느냐고 아내에게 무지스럽게 지청구를 줬던 그 의자 덕분에 그래도 나는 그때 허리고생을 훨씬 덜했었다.

     하 오래 써 등받이가 힘을 못 받고 뒤로 맥없이 젖혀지는 바람에 지금은 피복된 굵은 구리철사로 고정시켜 쓰긴 하지만 앉으면 여전히 편하다. 진료를 하던 때처럼 지금도 나는 글을 쓰다 피곤해지면 그 등받이에 지긋이 기대어 쉰다. 쉬다보면 간간이 그때의 일이 떠오르고, 그럴 때면 아내의 이 저런 수고들이 새삼 고마워지고는 한다.
     

     문득 아내는 나에게 등받이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족의, 아내의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어깨를 으쓱대며 살아왔지만 정작 아플 때 확실하게 등받이가 되어준 건 오히려 아내였다.

     지금도 아내는 고장 난 의자처럼 완벽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아내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은 나에게 참 많이도 힘들고 막막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 나이 들면서 점차 더 저들 부부나 진배없이 무덤덤해져가는 아내와 나, 그래도 좋으니 부디 오래도록 함께 건강했으면 좋겠다. 큰길로 나서는 네거리 정지선에 멈춰 서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며 슬며시, 아내의 마른 등을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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