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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시인의 고향, 소주 항주 여행

2011.05.28 11:10

김창현#70 Views:5375

시인의 고향,소주 항주 여행

중국에는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땅에는 소주 항주가 있다'(上有天堂,下有蘇杭)는 말이 있다.도대채 소주 항주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길래 이럴까?시인 소동파 백락천이 바다같이 넓은 서호(西湖)에서 연잎과 연꽃 적시는 봄비 속에,매화꽃 조각된 유람선의 둥그런 창가에 미인을 앉히고 시와 풍류를 즐겼다는 그 서호는 살아생전 내눈으로 꼭 한번은 봐두고싶었다.

그런데 마침 동창 부부 10명이 소주 항주로 3박4일 여행계획을 세웠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꽃을 즐기는 데는 마음 푸근한 벗이 있지않으면 않된다.청루(靑樓)에 가서 가기(歌妓) 얼굴 보는 데는 재미있고 멋있는 친구를 얻지않으면 않된다.높은 산 오르는 데는 로맨틱한 벗을 얻지않으면 않된다.뱃놀이에는 기우광활(氣宇廣闊)한 친구가 없어서는 않된다.달을 감상하는 데는 냉철한 철학 가진 벗을 가리지 않으면 않된다.눈 내리는 풍경을 기다리는 데는 미모의 벗을 얻지 않으면 않된다.술자리는 아회(雅懷)와 매력있는 벗이 없으면 않된다.’
여행에 동기동창보다 좋은 친구 어디 있겠는가?

상해(上海)

상해 공항에 내리니,가이드 나온 사람은 연변방송 아나운서 출신 미스 안(安)이다.얼굴 곱상하고 한국 여대생처럼 등에 달랑 가방을 메었다.
‘스물 일곱 노처녑니다.혹시 아들 있으시면 며느리감으로 어떠세요?’
첫마듸가 애교있다.화장끼 없는 청순한 얼굴에 목소리가 해방 전 여가수 이난영과 이애리수 음색처럼 맑다.문득 서양 째즈풍 영향 때문에 목소리가 갈라진 서울 아가씨들이 떠오른다.‘한국과 교류 후 중국 교포들이 잘사는 모국 덕 많이 본다’고 깍듯이 인사 차리는 법도도 백의민족 유풍이 엿보인다.

상해는 위도가 제주도보다 남쪽이라 가로에 유도화(油桃花)와 야자수가 섰다.도로는 차가 사람을 피해가는데,차는 아무데서나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 우회전 하지만,서울보다 교통사고는 적다고 한다.중국인의 ‘만만띠’사상 때문인듯하다.서울처럼 승용차만 타면 행인을 쌀쌀맞게 내려다보는 운전자나,자동차끼리 머리 서로 먼저 디밀고 노려보는 사람 없다.

상해시는 양자강 하류라 평야지대고,인구는 서울보다 300만 많고,넓이는 서울의 열배다.황포강 건너 포동지구에는 에펠탑 18배나 된다는 4백68미터의 TV 수신탑이 있고,강변에는 프랑스 영국풍 석조건물이 숲처럼 나열되어,한 때 구미열강 점령시 ‘동방의 진주’‘동방의 파리’란 명칭과 함께 아편과 매음 때문에 ‘동방의 창녀’라는 곱지않은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 거기였음을 알려준다.

새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치솟는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서 상해임정 건물이 있던 구 프랑스 조계(租界)구역 마당로(馬當路)를 찾아갔다.
'마담!내 이번에 홍콩서 배만 들어오면 다이야반지 하나는 문제없어.' 능글맞은 허장강의 대사,박노식의 '돌아온 샹하이 박'같은 액션영화가 생각나는 샹하이다.홍콩 마카오와 함께 상해는 오래동안 동양의 무역 금융 중심지였다.
빌딍과 아파트가 서울보다 많은 이곳에서,그러나 우리가 찾아간 마당로는 지저분하기 그지없다.60년대 서울 달동네같다.따뜻한 남방이라 겨울에 집 난방 안하고 사는 것은 봐준다치고,개인집에 화장실도 없어 골목의 공동화장실 쓰고,수도가 골목에 나있어 빨래를 거기서 하고 골목 위에 만국기인양 빨래가 너덕너덕 흔들리게 해놓은 모습은 좀 그렇다.

그 속에 게딱지만한 건물 낡은 목조 2층,바닥 면적 한 15평 정도 되나싶은 임정청사가 있다.방문객이 찾으니,가난하던 일정시대 생각나는 검은 치마 흰 저고리 한복 차림 교포처녀가 손님들을 작난감처럼 작은 나무 의자에 앉으라하고,태극기에 묵념 올리게 한 후,화면에서 비가 쏟아지는 골동품 흑백비디오로 어슬픈 화면 몇개를 보여준다.이거 뭐 아프리카 이름없는 나라라도 이렇게 해놓지 않겠다.필름은,윤봉길 안중근 이봉창열사 의거 장면들이다.
아무 것도 없는 실내 정면 양편에 ‘양심건국’(良心建國),‘독립정신’(獨立精神)이라 쓴 김구선생 가로글씨 액자만 횡하니 걸려있다.
삐걱거리는 좁은 나무 계단을 딛고 이층 임정 집무실로 올라가니,거기 김구선생님 가족사진과 선생이 기거한 초라한 나무침대가 있다.

상해 아파트 가격이 서울보다 싸다고 한다.서울서 잘난체 오륙십평 대궐같은 아파트 짓고 사는 후손들이 자기 근본을 이렇게 해놓고도 중국만 오면 돈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모습 보는 중국사람 시선은 어떨까?이 무슨 망신이고 챙피랴 싶다.보긴 보았으나 뭔가 죄지은 느낌이 든다.다행히 삼성그룹이 그래도 정신이 박혔는지 여기다 30만불을 기증했다고 한다.

상해사변 승리를 자축하던 일본 최고사령관 시라카와 대장을 폭살한 윤봉길 의사의 순교지,홍구(虹口)공원을 천천히 둘러본 후,출출한 상태로 그동안 기대하던 본토 중화요리를 먹기 위해 미리 예약해놓은 근처 요리점에 갔다.

요리는 여덟가지 코스로 나오는데,탁자 가운데 둥근 유리판에 차례로 놓여지고,손님은 유리판을 돌려가며 자기 접시에 음식을 옮겨 먹는다.
나오는 순서는 처음은 전채(前菜)니 주로 채소나 스프 등 차그운 요리고,중간이 본격요리,오리 돼지 소고기가 삶기고 튀기고 졸이고 뜨겁게 별미로 변해 나오고,끝에 가서 국수와 밥 등이 나온다.술은 ‘공부가주’(公俯家酒)로 독하면서도 미각은 순하다.공자 모신 사당에서 만든 그 집 전통술이란다.

취흥이 일자 남의 부인보고,
‘좀 살살 돌려주시겠읍니까?’
‘반대로 좀 돌려주세요.’
남자들이 남의 부인보고 자꾸 돌려달란다.
돌려달란 것은 음식판이다.그런데 부인들은 입들 가리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여행 중 중국요리 나오면 이래서 항시 웃음판 벌어졌다.꽃처럼 곱고 수줍던 친구 부인들이 오십 넘자,농담 따먹기도 잘한다.

상해는 원래 양자강 하구에서 잡히는 게발의 밑부분에 부드럽고 까만 털이 빽빽한 ‘털게’로 만든 요리가 제일 유명하다.살아있는 게를 술에 담아먹는 ‘취해’(醉蟹),껍질 채 푹 졸인 장초청해(醬炒靑蟹),게 껍질에 게살과 알을 채워 쪄먹는 부용해투(芙蓉蟹鬪),게살과 두부를 졸인 해분두부(蟹粉豆腐) 등 다양한 게요리법이 있다.
그 밖에도 뱀장어 찜 홍소하만(紅燒河鰻),해삼을 삶아 만든 하자대오삼(蝦子大烏參),자라를 간장에 졸인 홍소빙당갑어(紅燒氷糖甲魚),작은 새우 젓갈 청초하인(淸炒蝦仁)과 비옥한 삼각주 곡창지대서 나는 기름진 쌀을 이용하여 빵가루 치즈 버터 등을 쏘스로 양념하여 새우를 얹은 하인과파(蝦仁鍋巴),여러 고물을 얹은 십금과파(什錦鍋巴) 등이 유명하다.그 밖에도 상해 사람들이 침을 삼키는 작은 고기만두 소롱포(小籠包)가 있지만 아쉽게도 게나 뱀장어 자라는 전문음식점이 따로 있다.

거나하게 취해서 기차 타고 소주(蘇州)로 갔다.파란 제복에 모자 쓴 여자 승무원이 커피와 홍차를 판다.
이층 열차의 윗칸에서 창밖을 보니 가도 가도 넓은 들판에 뛰엄뛰엄 2층 농가가 있다.소주 항주가 풍년이면 11억 인구 전체가 굶지않는다는 곡창지대다.빈부 격차 없는 공산사회 농가라 집 크기가 다 비슷하다.지층에는 가축 기르고 사람은 이층에 사는데,집집마다 집 앞에 논처럼 생긴 사각 연못을 만들어놓고,거기에 자라와 새우를 기른다.끝없는 지평선상의 평야라 생선을 구하기 어려워 이렇게 양식 생선으로 자급자족하는 모양이다.
상해서 소주는 한시간 거리다.

소주(蘇州)

소주역에는 남자 가이드가 나와있다.중국은 시마다 역사와 고적이 달라 가이드 시험이 다르고 자격증도 따로 받는다고 한다.중국 가이드는 안내 나올 때마다 협회에 관광객 1인당 하루 20위안(元.한화 2800원) 내고나오는데,관광객 팁을 수입으로 삼는 그들 월수입은 그곳 대학교수보다 높다한다.고수입 직업은 여행가이드와 택시운전사라 한다.

이튿날 호텔에서 6시 30분 모닝콜 받고 일어나,침대 머리에 10위안(元)씩 팁 놓고,7시 30분에 조반,9시에 가이드 따라 버스로 한산사(寒山寺)로 갔다.

‘동방 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가 ‘동방의 베니스’라 칭찬한 곳이 소주다.그러나 베니스가 아직 황무지에 불과하던 때에 이미 수로에 배가 다닌 오랜 역사 지닌 곳이 소주다.소주는 ‘물의 도시’다.수 양제 때 북경서 여기까지 운하를 파서 장사꾼이 물자를 나른 그 거리가 한반도 최북단 신의주서 남단 목포까지 거리의 두배나 된다.
시내 가운데 운하가 지나가고,중국대륙에서 동정호(洞定湖) 다음가는 태호(太湖)가 서쪽에 있고,그 물은 양자강(長江)으로 흘러간다.소주는 쌀과 차 비단 물고기가 풍부해서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일컬어왔으니 소주 항주 비단이 서역 거쳐 서양으로 간 길이 실크로드다.여기가 실크로드 출발지다.

소주는 BC 514년에 오나라 왕 합려(闔閭)가 여기 성벽을 쌓았으니,2천5백년 세계 유수의 고도(古都)로 천년 사직 자랑하는 경주시 형뻘되는 곳이다.
중국의 문필가 '위치우위(余秋雨)가 물은 너무나 맑고,복사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먹거리는 너무나 달고,여인은 너무나 곱다는 소주다.시내 곳곳을 그물처럼 운하가 연결되어있어,한산사 곁에도 운하가 있다.한산사는 양(梁)나라 때인 519년에 세운,천오백년 전 절이다.중국서는 시(詩)도 상품이다.한산사는 멋들어진 시 한편으로 더 유명한 절이다.

달 지고 까마귀 울음 울고 하늘엔 서리만 가득한데,
강가 단풍 숲 고기잡이 불빛 수심에 찬 내 눈에 비치네.
고소성 밖 한산사 야반의 종소리 나그네 뱃전에 들려오는데...

(月落烏啼霜滿天.江楓漁火對愁眼.
姑蘇城外寒山寺.夜半鐘聲到客船)

이 시를 고금의 명필들이 한산사 방문 기념으로 저마다 일필휘지 써놓아 전각 안 비석에는 수많은게 보물급 글씨다.이 유명한 시 원작자가 누군고 알아보니,엉뚱하게도 장계(張繼)라는 평범한 사람이다.그는 당나라 때 수만리 떨어진 장안에 가서 세번이나 과거에 낙방하고 수심 찬 얼굴로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한밤에 ‘단풍나무 다리’(楓橋) 근처 뱃전에서 한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시 한편을 썼다.그 시제(詩題)가 ‘풍교에서 자는 밤’이란 뜻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한방에 끝낸다’는 말이 있다.장계는 주자 만루 역전 홈럼 날리듯 이 시 한방으로 인생역전을 이뤘다.이후 그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영원히 남은 것이다.만약 장계가 과거에 붙었다고 치자.평범한 관리로 끝났을 것이다.

중국사람들은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이다.일본이 대륙 점령시 청나라 때 주조한 한산사 종은 약탈해가고 최근에 사과하는 뜻에서 다른 종을 만들어 보내 대웅보전에 안치했다고 한다.안내판에 그 내력이 다 있는데,그 범종이 뭐 신통할 것인가?그런데도 눈도 깜짝 않고 그 종 안에 지장보살이 있어,한번 치면 10년 젊어지고 행운이 온다며,5위안(元)씩 내고 세 번 쳐보고 가라고 장사속 밝힌다.

내가 장계의 시 탑본 하나를 사려고했더니,족자로 표구된 것이 2백 위안(元),그냥 한지에 탑본만 해놓은 것이 백위안 이란다.너무 비싸다싶어 포기하고 절을 나와 절 밖의 가게에 들어가니,어랴!여기는 족자로 표구된 것이 20위안이다.상술 세계최고 중국에서 물건 살 때는 항상 이런 불가사의한 일 자주 있는 점을 잊지말아야한다.

실크로드의 출발지에 와서 비단(SILK) 구경 아니할 수 없다.
소주자수연구소에 가서 2천년간 전수된 중국 비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면(兩面) 자수(刺繡)를 구경했다.아가씨들이 한뜸한뜸 자수를 놓고있는데,작품 하나 제작에 6개월도 걸리고,대작은 한사람이 6년도 걸린다고 한다.그 긴 시간 동안 수천만 수억번 오고 간 실 한오라기도 한 뜸도 방향이 틀리지않다.
'어쩌면 사람이 이럴수가?'
양면(兩面) 자수(刺繡)는 유리에 넣어 앞 뒤에서 자수가 보이도록 병풍을 만들었는데,소재인 산수화나 개나 고양이,장미나 복숭아꽃이 어찌나 정교히 보이는지 자수 그림이 실물보다 더한 극사실화다.거실에 놓으면 보물일시 분명하나,가격은 한화로 수천만원이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도읍지인 소주는 남송 때는 전국 각지 상인이 모인 중국 굴지 상업도시였다.부유한 소주 사람들이 온화한 기후 속에 시내 곳곳으로 흐르는 운하에 아취형의 운치있는 다리를 만들어놓아 세월에 푸른 이끼 낀 다리 아래로 배가 떠다닌다.
소주에선 인근 태호에서 태호석(太湖石)을 가져와 거리 곳곳에서 태호석을 볼 수 있다.태호석 석질은 석회암이라 수석으로 견고치못한 흠은 있지만,물을 만나 기괴한 구멍이 뻥뻥 뚫어진 괴석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기괴하기 천하제일 태호석 못보고 수석 논할 자격 없겠다.

괴석 많고 아름다운 정원도 많다.소주 사람들은 옛날부터 ‘강남 정원은 중국 제일이요,소주 정원은 강남 제일’이라 말해왔다 한다.
창랑정(滄浪亭),사자림(獅子林),졸정원(捽政園),유원(留園) 등 소주4대 정원 이외에도 4백여개 정원이 있었고,현재도 40여 정원이 남아있다고 한다.가난은 시를 만들지만,부(富)도 예술을 낳는다.

소주 최고 정원인 ‘졸정원’(捽政園)에 들렀다.
북경의 이화원(梨花園),청도의 피서산장(避西山莊),소주 유원(留園)과 더불어 중국 4대 명원(名園)의 하나로 손꼽히는 정원이다.
넓이는 1만5천평 서울 비원 크기인데,이게 개인 정원이다.
졸정원이란 진(晉)나라 반악(潘岳)의 시에 ‘채소밭에 물주고 채소 팔아 끼니 마련하고,부모님께 효도,형제 우애 있는 것,이것이 못난 사람의 일’이라는 데서 따온 말이다.
명나라 어사 왕헌신(王獻臣)이 관직에서 나와 조성한 것이다.

정원의 반 이상이 호수다.도영루(倒影樓)는 물 속 나무 그림자를 감상하는 누각이다.향원당(香遠堂)은 호수의 연꽃 향기 맡는 누각 이름이다.‘향기가 멀다’는 향원(香遠)의 뜻은 주무숙의 ‘연꽃은 멀수록 향기가 맑다(香遠益淸)’는 데서 따온 것이다.견산루(見山樓)는 앞 산을 보는 누각이다.원앙관(鴛鴦館)은 손님 대접하던 곳이다.원앙관 남색 유리는 명나라 때 천산(天山) 남북로 실크로드를 통과해서 이태리서 수입한 오랜 유리다.
숱한 누각 이름 뜻만 적어나가도 선비들의 그윽한 운치를 배울 수 있을 정도다.

백향목(白木香) 나무숲 사이 자갈길 따라가면,계수나무는 꽃을 피우고 태산목은 푸른 잎으로 태산처럼 하늘을 가리고,작은 오솔길은 정자와 누각 사이에 이어지거나 회랑으로 연결되고,정자는 꽃무뉘 새겨진 화창(花窓) 통해서 경치 더 아름답게 조망토록 되어있다.

대(臺)는 멀리 조망하기 위한 축조물이다.첨성대 서장대 수어장대 등이 그것이다.누(樓)는 대 위에 사방 탁 트이게 지은 건물을 말한다.경희루 영남루 광한루가 이것이다.정(亭)은 경치 좋은 곳에 휴식하기 위해 건립한 집이다.포석정 백제 왕궁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이 이것이다.각(閣)은 2층 이상 집을 말한다.창덕궁 후원의 서향각(書香閣)이 이것이다.이 밖에 당(堂),헌(軒),재(齋)의 건물은 선비의 거처나 공부하는 곳의 일반 명칭이다.

이런 다양한 수십개 건물들이 호수와 지형에 따라 예술적 배치의 극을 달리고 있다.중국 일개 성(省)이 한국보다 땅도 넚고 인구도 많은건 알지만,개인이 우리 비원같은 정원을 조성한 그 안목,그 재력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왕 합려(闔閭)라면 당시 천하를 호령한 왕이다.그의 아들 부차(夫差)는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하나로 불리우는 서시(西施) 데불고 소주 석공산(石公山)에서 놀아 한량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그러나,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故事) 주인공이니,부차는 아버지 합려를 패망시킨 월(越)왕 구천(勾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며 힘을 길러 구천을 항복시켰다.그러자 구천은 매일 쓰디쓴 쓸개를 햟으며 복수를 다짐,미인 서시를 부차에게 바쳐 음란과 방탕한 생활을 하도록 해서 끝내 다시 부차를 멸망시켰다.
이에 유래한 고사(故事),‘오월동주’(吳越同舟)는 부차 구천 두사람처럼 한 배를 탈 수 없는 나쁜 사이를 표현한다.

오왕 합려의 무덤이 조성된 ‘호구’(虎丘)를 가보니,30미터 남짓 나지막한 언덕이다.호구란 이름은 합려를 장사 지낸지 3일째 되던 날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소동파가 ‘소주에 와서 호구에서 놀아보지 않으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到蘇州不遊虎丘,乃是憾事)라고 말했다고 한다.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호구 입구에도 작은 운하가 지나가고,꽃과 기념품 파는 행상이 많다.언덕 오르는 길에 ‘쿠리’가 메고가는 가마가 있어,고관이 된 듯 관광객은 웃으며 재미삼아 가마 타고간다.

처음 만나는 ‘시검석’(試劍石)은 합려왕이 제(齊)나라와 싸우기 위해 검 제작 명인 간장(干將)과 막사(莫邪) 부부에게 명하여 다섯자루 검을 만들어,이 검의 성능을 시험한 바위다.길이 2미터의 바위가 두동강 나있다.
그 위의 ‘천인석’(千人石)은 합려왕의 무덤을 만든 후 무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아들 부차가 공사에 동원한 인부 천명을 독살한 너럭바위다.돌에 붉은 기운이 서렸는데,흘린 피자국이라한다.아버지 무덤에 보물 묻은 것은 효심이나 참 무자비한 임금이다.
그 아래 바위 사이에 물이 고인 검지(劍池)는 3천개의 칼과 아버지의 시신을 묻은 곳이라고 한다.
검지 안쪽에 제삼천(第三泉) 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다.진강(鎭江) 무석(無錫)의 샘물에 이어 천하 세번째로 물맛이 좋아 제삼천인데,아쉽게도 관광객들은 기념촬영한다고 이 물맛은 보지 않는다.

곁에 정자가 하나 있다.‘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유명한 손자를 기념하는 손무정(孫武亭)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병법의 대가 손자가 오나라 임금 합려의 초빙을 밭았다.
‘그대가 지은 병서 13편은 다 읽어보았소,어디 실제로 군대를 훈련시켜 보일 수 있겠소?’
‘좋습니다.’
‘여자라도 상관 없을지?’
‘상관 없습니다.’
합려는 궁중 미녀 180명을 불렀다.손자는 그들을 두편으로 나누고,합려의 총희 두명을 대장으로 삼았다.그들 미녀들에게 창을 주며 명령을 하달했다.
‘너희들은 ‘왼쪽’이라고 명령하면 왼손을,‘오른쪽’이라 명령하면 오른손을 보여야한다.’
이렇게 군령을 설명하고 ‘오른쪽!’ 하고 호령했다.여자들은 웃어대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손자는 군령이 분명히 전달되지 않은 것이라하고는 세 번 군령을 설명한 다음,북을 치며,
‘오른쪽!’
하고 다시 명령했다.그러자 미녀들은 여전히 웃어대기만 했다.손자가 이렇게 말했다.
‘군령이 분명치 못하고 전달이 불충분한 것은 장수의 죄이지만,이미 군령이 분명히 전달됐는데도 병졸이 규정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은 대장된 자의 죄다.’
그리고 군령대로 대장 격인 총희 두 사람의 목을 베려고 했다.
깜짝 놀란 합려가
‘과인에게 그 두 여자가 없다면 밤을 먹어도 맛을 알 수 없을 정도이니 부디 용서해주기 바라오.’
간곡히 부탁했지만,손자는 둘의 목을 베었다.그리고 임금의 다음 총희 두사람을 대장으로 세우고,다시 북을 울리고 군령을 내렸다.그러자 여자들은 ‘왼쪽!’하면 왼쪽,‘오른쪽!’하면 오른쪽,모두 구령대로 따랐다.웃기는커녕 기침소리 한번 없었다.
합려는 손자가 용병 뛰어난 것을 인정하고 장군으로 임명했다.
손자는 초나라를 무찔러 서울을 점령했고,제나라 진나라를 위협해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천하명필 왕희지 안진경 같은 사람도 여길 다녀간 모양이다.암벽에 그들 친필 시가 새겨져있는데,근처엔 너절한 기념품만 팔고 보물같은 두 천재의 글씨 탑본은 살려고 찾아봐도 없다.
호구 정상 위엔 9세기에 세운 호구사탑(虎丘斜塔)이 있다.서양은 피사 사탑이고,동양은 호구 사탑이다.높이 47미터 탑이 15도 기울러져 탑 상하의 중심이 2.3미터 차이가 난다.

중국여행 별미는 첫째 요리,둘째 유적,셋째 미인이다.나는 양자강 하구 분포구(盆浦口)란 곳에서 비파 타는 여인을 만나 읊은 백락천의 ‘비파행’(琵琶行)이란 시를 제대로 음미할려면 꼭 이곳 소주 미인을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안복(眼福)이 있었다.

백락천은 양자강 희미한 달빛 속 등불 밝힌 배에서 여인을 만났다고 한다.여인은 비파로 얼굴을 반쯤 가려 은근한 멋을 풍기며 손가락으로 비파를 타는데,곡조는 소리를 이루기도 전에 정이 담겨있었다고 한다.한 소리 한소리에 슬픔이 서려,평생 불우한 정을 하소연하는 듯,아미를 약간 숙이고,심중의 무한한 사정을 말하는 듯 한데,배는 소리에 취한 듯 조용하고,다만 강물 위에 가을달이 유난히 희게 보이더라고 했것다?

마침 또다른 비단공장 패션쑈에 가니,1천2백년 전 시인이 만난 미인의 후예가 화려한 비단을 몸에 감고,옥같이 흰 피부에 구슬처럼 맑은 눈,조용한 미소를 띄고 내 앞에 오간다.이게 꿈인가 생신가?서양 여인과 미의 기준이 다른 오리지널 동양적 미인을 여기서 보았다.
여인은 눈빛이 천량인데,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빛이다.그 순결한 눈빛을 글로 어떻게 표현하랴!하오!(好-좋다) 띙하오!(頂好-최고로 좋다) 속으로 수십번 외쳤다.백락천은 미인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연에 소매가 축축히 다 젖도록 울었다고 한다.나는 기념으로 비단 마후라를 네개나 샀다.

항주(杭州)

평야를 기차로 3시간 달려 항주에 닿아 ‘오주대주점’(五洲大酒店)에 짐을 풀었다.서울 리베라호텔 수준이다.중국선 호텔을 ‘따지우젠’(大酒店),‘따판젠’(大飯店),‘따샤아’(大廈)라고 부른다.
저녁을 먹고 택시 기본요금 10위안을 내고 골동품 시장에 나갔다.시장 안은 청계천 7가 골동상가 같다.상품은 몇백년 된 듯한 도자기,실크,남방의 돌처럼 단단한 흑단(黑檀) 자단(紫檀) 조각품,옥과 대리석 조각,용 거북 조각된 각종 인재(印材)들이다.

나는 청동으로된 관운장 좌상 조각품을 샀다.청룡도 칼날과 가슴 흉배(胸背)의 용무뉘는 말할 것도 없고,수염이 아름다워 미렴공(美鬑公)이라 부른 관운장의 긴 수염 한올 한올이 세밀하게 조각된 것이다.
상인은 용머리의 여의주와 용수염 용비늘 조각의 세밀함 좀 보란다.중국인 조각 솜씨는 고궁박물관에 가보면 쌀 한알에 불경 전문을 새겨넣을 정도라,레오날드 다빈치의 이태리 조각과 함께 세계 최고다.
가격은 어떤 집은 4백위안이고,어떤 집은 3백위안,어떤 집은 2백위안 등 제맘대로라 시장을 한바퀴 다 돌았다.처음에는 ‘뚸샤오첸’(多少錢)? 중국말 연습도 할겸 중국말로 흥정하다 나중에는 서투른 말로 손해볼 것 같아 전자계산기 디지털 숫자로 흥정했다.
3백5십.3백.2백5십.2백.숫자가 자꾸 내려간다.
‘뿌야오’(不要) 안산다고 돌아서면 팔을 잡고,그러면 또 내리기를 계속하니,주변에 중국 상인들이 길을 막고 쭈욱 둘러선다.중국상인들이 둘러싸니 겁도 나는데,함께 간 여행사 이선권 부사장이 귓속말로 계산기에 70위안(元)을 때려보란다.
초보로선 양심에 꺼림칙하지만,깍아도 깍아도 내려가는 그 재미가 중국 쇼핑 재미다.스릴 있는 흥정 끝에 결국 작은 담배곽 모양의 오래된 청화백자 하나 더 얹어 1백위안(元)에 샀다.
청화백자도 처음에는 진품이라고 60위안 내라는 것이었다.나는 젊잔은 백자 뚜껑 안쪽에 수호지의 반금련이 서문경과 재미보는 그림 있음을 눈여겨 보았다.오래된 백자인냥 자기(瓷器) 색깔을 누렇게 변색시켜놓았지만 그런 속된 그림 있는 것은 당연히 모조품이다.

의기양양해서 5위안 내고 인력거 타고 자전거꾼이 밤거리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죽어라고 페달 밟는 것을 내려보면서,나는 ‘모정’에서 월리엄홀덴이 제니퍼죤스를 옆에 앉히고 그랬던 것처럼 담배를 피우며 호텔로 돌아왔다.
쇼핑 후 일행은 호텔 로비에 모였다.값을 품평하니,관운장 좌상은 인사동서 20만원 하는데.여기선 한화로 1만4천원에 샀다.전춘식 사장이 150위안 주고 산 실크넥타이를 15위안에 사온 것은 제약회사 박홍식 전무다.부인들은 바가지 쓴 전사장 때문에 웃고,내 청화백자 반금련 서문경 그 짓 하는 것 보고 다 웃었다.

그날 밤 딴사람들은 주점 탐방하는 시간에 나는 여행사 이부사장과 호젓히 시흥에 젖었다.그는 ‘풍교야박’(楓橋夜泊)을 읊고,중국 선종(禪宗) 사찰들과 돈황 계림 풍경을 이야기하고,나는 육우(陸羽)의 ‘다경’(茶經)과 초의선사(草衣禪師)의 ‘동다송’(東茶頌)의 관계,두보(杜甫) 이백(李白)의 시를 읊어보였다.

이튿날 새벽 샤워로 목욕재개한 한 후 서호(西湖) 구경을 나섰다.시인묵객의 고향인 서호에 버스로 도착하니,숲에 쌓인 야트막한 섬들이 물 속에 잠겨있고,아침 안개 속에 시민들이 태극권을 하고있다.24개 동작을 한번에 10분 쯤 걸려 하고나면,몸에 땀이 촉촉히 배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배로 호수를 유람하니,가이드 가로되,서호 둘레는 40리,물 깊이는 평균 1미터,호수 절반이 연꽃으로 덮힌다고 한다.남송시대 부자들이 용머리에 불 밝힌 등용선(燈龍船),누각 올린 누선(樓船) 타고 술마시며,기생들 태운 유람선 불빛을 물에 수놓던 서호 밤풍경은 지금 볼 수 없다고 한다.그러나 ‘맑은 날 서호보다는 비 내리는 서호가 좋고,비 내리는 서호보다는 눈 내리는 서호가 좋고,눈 내리는 서호보다는 밤의 서호가 좋다’는 풍류 가득한 말은 남아있다.가이드가 서호에 관한 시를 소개하기에,나는 미스 안(安)을 시켜 미리 준비한 두보(杜甫)의 ‘강남춘’(江南春)으로 화답했다.

천리 꾀꼬리 울음 속에 푸른 숲에 붉은 꽃 비치고
강촌 성곽의 술집 깃발은 나부끼는데
남조시절 4백80개의 절
수많은 누대가 실비 속에 젖고있네

(千里鶯啼綠暎紅 水村山郭酒旗風
南朝四白八十寺  多少樓臺煙雨中)

객 사이에 시심이 발동,누가 가이드에 충고를 한다.
‘여보!이런 분위기로 시 읊어주고 고량주 팔면,한잔에 10위안씩 받아도 다 사먹겠소.’

서호 속에 물에 잠길 듯 말듯한 두개 제방을 쌓고,그 위에 운치있게 버들과 복숭아를 가득 심었으니 시인 백낙천이 만든 백제(白提),소동파가 만든 소제(蘇提)가 그것이다.이 제방을 거닐면 낮에는 햇살 반짝이는  물결에 늘어진 푸른 버들,밤이면 물에 비친 달과 불 밝힌 은은한 누각 경치.주변 산은 봄 가을 병풍처럼 둘러싼 신록과 단풍이 물에 어린다.

여기서 잠시 곱고 문학적 재능을 지녔던,서호에 살았던 명기(名妓) 소소소(蘇小小)와 산책하는 기분으로 ‘서호 10경’을 둘러보자.

첫째는 백락천이 만든 물 위에 걸친 아취형 돌다리에 눈 쌓인 모습.
둘째는 호수 안에 외로히 떠있는 고산(孤山)의 누대에 뜬 가을 달.
세째는 연꽃 활짝 피는 5월 술집 뜨락에서 피어난 술 향내가 정원의 연꽃 향기와 함께 바람에 떠다니는 기막힌 분위기.
네째는 소동파가 만든 여섯 개의 아름다운 다리 아래로 봄날 물안개 피는 새벽,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가운데 하얀 북숭아 꽃잎이 살짝 물 위에 떠 있는 경치.
다섯번째 추석날 배를 띄우고 달과 인공섬인 소영주(小瀛洲) 석등에 켜진 불이 셋으로 보이는 모습.
여섯번째 서호 남쪽 호반의 정원에 모란꽃이 활짝 피고,화려한 색 뽑내는 비단잉어 노니는 모습.
일곱번째 남녂 골짜기에 운무가 끼어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꽃혀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
여덟번째 석양의 남병산(南幷山) 정자사(淨慈寺)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아홉번째 우뚝 솟은 영봉산(靈峰山) 뇌봉탑(雷峰塔) 너머로 지는 저녁 노을.
열번째 물 오른 버들잎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꾀꼬리 울음소리.

목석인들 반하지 않으랴.

호수 속 높이 38미터 섬 고산(孤山)은 북송 때 가난한 시인 임화정(林和靖)이 20년 동안 은둔한 곳이다.'성긴 그림자 기울어 얕은 물가 더욱 맑은데,그윽한 향기 살포시 황혼 무렵 달에 걸렸네‘라고 읊은 그의 시는 매화를 노래한 시 중에서 천하 절창으로 꼽힌다.그가 매처학자(梅妻鶴子),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고 고산에 살았다는 고사 때문에,상인들은 임화정이 학을 부를 때 불었다는 작은 풀피리를 1위안에 팔고 있다.
내가 돈을 지불하자,
‘일 위안 양꺼!’
어느새 제약회사 박전무 부인이 애교있게 중국말 하면서 자기도 한 개 집어든다.장사군은 웃고만 있다.이후 두사람은 학을 부르느라 호수가에서 연신 피리를 불고 다녔다.까닭 모르는 동행들은 우리가 애들같다고 웃는다.

호수 남쪽 사고전서(四庫全書) 보관하는 문란각(文灡閣)에는 3천년간의 철학 의약 문학 과학 서적 3만6천권 있고,북동쪽에는 유명한 용천요(龍泉窯)의 오래된 청자를 보관한 절강성박물관이 있다.  

시와 낭만의 호수가 서호다.일정이 바빠 1백50년 역사를 지닌 주가(酒家)인 ‘누외누’(樓外樓),‘산외산’(山外山),‘천외천’(天外天)에 들어가,풍로에 닭을 연꽃잎과 함께 증기로 찐 규화계(叫化鷄)나 단 맛 나도록 양념한 돼지고기 요리 ‘동파육’(東坡肉)이나 달고 신 양념장 얹어먹는 별미의 서호초어(西湖醋魚)를 맛 보고,독하고 부드러운 소홍주(紹興酒)와 용정차(龍井茶) 마시며 항주 풍광에 잠기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내 당장 서울 가서 집 팔아 여기 항주로 이사 올란다’
아쉬움 토로하니,전춘식사장이
‘김교수 우리 내년 봄,꽃 필 때 한번 더 오자’
달래준다.

임어당의 소설에 등장하는 전당강(錢塘江)에 가서,육화탑(六和塔)을 구경했다.이 탑은 월래 음력 8월 18일 만조 때마다 바다물이 넓이 10킬로에 달하는 깔대기 모양의 항주만 꼭지 부분으로 시속 25킬로 높이 3미터로 밀려오는 역류현상을 막기 위해서 9세기에 오월왕(吳越王) 전홍숙(錢弘淑)이 세운 것이라 한다.탑 높이는 60미터,벽돌과 나무로 쌓은 전탑(塼塔)이다.
12월인데 뜰에는 개나리꽃이 피고 파초잎이 푸르다.         

서기 326년 동진(東晋) 때 인도 승려 혜리(慧理)가 창시한 영은사(靈隱寺)는 중국 선종(禪宗) 10대 사찰 중 하나다.
한 때는 3천명 승려를 거느린 대찰로서  현관의 운림선사(雲林禪寺)란 현판은 청 강희제의 글씨라한다.대웅보전에는 19미터 높이의 향나무에 금도금한 석가모니불이 계시는데,입술과 눈동자가 여인의 그것처럼 고혹적이다.그렇게 이쁘고 큰 부처님 처음 보았다.

신도들이 빗자루처럼 길다란 향다발에 불을 부쳐 다녀 도량이 온통 향연기에 쌓여있다.법당 뒤엔 관음보살이 안치되었는데,관음보살 머리 위에 신라 왕족 김교각스님 등신불(等身佛) 불상이 있다.왕족 형제 중 한사람 출가하던 것이 신라 풍습이다.발군의 인물이었을 것이다.경주서 해로(海路)로 항주에 온 듯하다. 

영은사와 작은 시내물을 사이에 두고 비래봉(飛來峰)이 있다.인도 스님 혜리가 ‘인도 천축 영취산(靈鷲山) 봉우리가 언제 이곳에 날아왔는가?’해서 ‘날아온 봉우리’란 뜻의 비래봉이다.
혜리스님은 머리 깍고 속세 인연 등지고 수륙만리 중국에 와서 혹시 홈씩에 걸렸던가?나도 힘든 서울살이 하면서 고향 진주의 비봉산(飛鳳山)을 꿈에 본 적이 있다.

해발 168미터 높이나 기묘한 석회암 봉우리로 된 비래봉은 모두 3백 존이 넘는 부처님과 나한상이 조각되었으니,산 전체가 불국토다.
절 앞에는 대나무와 자단(紫檀)으로 만든 끝이 둥근 젓가락 천축쾌(天竺筷)와 백단향으로 만든 부채 항선(杭扇)을 팔고 있어,천축쾌 한 세트를 샀다.

절 근처는 용정차(龍井茶) 본고장이다.길가에 다원(茶園)이 많다.
다원 입구에 희고 붉은 산다화가 피어있다.나는 전남 보성 다원의 차나무를 집에서 기르면서 매년 차꽃을 감상해왔지만,지금껒 김춘수 시인의 봄비에 젖는 ‘산다화’가 차꽃인줄 알았다.그런데 여기서 보니 차꽃은 산다화보다 훨씬 크다.
용정은 중국 최고 품질의 차를 생산하는 곳이다.우전차(雨前茶)는 최고 상품으로 곡우 전에 딴 것이며,우후차(雨後茶)는 후에 딴 것으로 하품이다.이 지방 용정차 중에서 상품은 국가 귀빈 접대용이고,타지방서 파는 용정차는 전부 가짜란다. 

차 마시는 법을 들어보았다.마시는 법이 지방마다 다른데,여기서는 물은 80도로 끓인다.
처음에 찻물을 4분지 1만 붓고 잠시 코로 향기만 음미한다.이걸 문차(問茶)라 한다. 
다음은 물을 컵에 다 채우고 차맛을 음미한다.맛은 상긋하고 은은하며 옅고 끝에 가서 풍미가 무궁하다.이걸 품차(品茶)라 한다.
다음 단계는 차잎이 물속에서 펴지는 모양을 보며 마시는데,이걸 관차(觀茶)라 한다.
마지막 단계는 차를 마시고 남는 차잎은 씹어먹는 것이다.

차는 시력을 증진하고,코레스토롤을 방지하며,체내 대사산물을 배출하며,소변을 순조롭게 하고,오래 마시면 피부가 어린애처럼 맑아진다해서
나는 항시 차만 마신다.커피는 한달에 한잔 정도.상대가 물어보지도않고 내놓을 때만 마신다.
우후차를 좀 샀다.차맛의 진정한 경지를 몰라 비싼 차는 사봤자 딜리게이트한 묘미 모른다.용정차 3개와 재스민차와 국화차도 샀는데,초보는 꽃차(花茶)부터 맛 들여야하기 때문이다.녹차와 발효차인 홍차 중간인 우룡차는 아예 팔지 않는다.그런데 일행들은 평소 서울에서는 커피만 마시던 친구들이 전부 비싼 우전차만 산다.여행심리다.

여행사 잘 만난 덕에 이번 여행은,상해서 정통 중국요리에다 독하면서 순한 ‘공부가주’(孔府家酒) 맛을 알았다.중국술 하면 ‘마오타이’만 논하는 그런 사람은 여행사가 아무데나 데리고 다니면서 바가지 씌워버린다.옵션이라면서 강제로 기념품점 끌고 다니고,기름 둥둥 뜬 음식으로 입맛 잃게하고,싸구려 비행기 태우려고 공항 바닥에 몇시간씩 쭈구리고 앉아 기다리게 하고,공항이용료라고 추가경비 받아 흥을 싹 깨버린다.그런 여행 하고나면,중국 호텔은 바퀴벌레 나오고,음식은 형편없고 영 못갈 곳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좋은 안내자 만나 알뜰 쇼핑하고 별미 얻어먹었겠다.시(詩)를 논하며 서호(西湖)에서 놀았겠다.소주 미인을 보고 원 풀었겠다.가방 속에는 그 가격 흥정하던 생각만하면 미소가 절로 나오는 청동제 관운장 좌상 묵직하게 들었겠다.마음 끝없이 흐믓한데,아시아나 항공기가 내맘을 아는 것처럼 창공 끝 구름 위로 한없이 올라가더니 고도(高度)를 달린다.

                                          1998년 12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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