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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지리산 종주를 회고하며

2011.05.28 14:52

운영자 Views:5487

지리산 능선위에서 석양이 진후 내려다 보이는 소백산맥의 첩첩 산줄기. 낮의 비 바람의 격심한 기후가 차분히 가라앉은채 저녁 운무가 대지를 천천히 덮는다. 세상에서 보기 드믄 아름다운 장관의 하나 아닌가. 한번 거기에 서봤던 사람이면 아마 오래 오래 잊지못하고 살리라. 조금있으면 하늘에 별이 총총히 나타나고, 싸늘한 밤공기가 몸을 감싸온다. 산에서의 하룻날이 조용히 막을 내리고 내일 새벽의 먼동이 트면, 잠자리 걷어메고 정상을 찾어간다. (Photo from the Internet)


지리산 종주 - 1963



지난주 우리 홈피에서 지리산 등반 얘기가 나왔고, 우리 동문 한사람이 옛날 지리산 등반때의 사진을 올리려다 실패했기에, 오랬만에 옛날 사진 알범을 뒤져서, 지리산 사진을 찾어냈다. 낡게 바래진 종이 사진들을 scanner에 넣어서 digital photo로 만든다. 그때 여행 일지를 써서 보관했지만, 한국에서 모두 없어져 버리고 남은것은 몇장의 사진뿐이다. 옛날 얘기라 기억이 아주 희미하지만 사진을 봐가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려합니다.

여기 우리 일행중의 한 사람이였던 조광호(趙光鎬, 1939-2008, 서울사대부고-1958, 서울의대-1965) 동문은 불과 몇년전에 타계했지요. 만일 오늘 여기에 그가 옆에있어서 이 글과 사진을 본다면, 분명히 입가에 쓴웃음, 단웃음을 지으며, 다시 올수없는 한때의 옛 생각에 잠겼겠지요. 지나간 지리산의 추억을 다시 그와 함께 돌이켜 보지 못함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옛날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가치 나누었던 때를 생각하니 더욱 애석하게 생각되는군요.  이 글과 함께, 광호 兄을 다시 기억해보며, 兄의 명복을 다시 비는 바입니다.


지금부터 48년전 여름... Then, we were young, poor, humble, and brave...


아득한 옛날, 우리 나이 20대 초반, 1963년 의과대학 본과 3학년 올라갔을때였다. 그해 여름방학에 전라남도 완도로 무의촌 진료 나가게 되었다. 3학년때 무의촌 가는것이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의과대학 전통이였던것 같었다. 마침 우리가 지리산에 가까이 갈수있는 기회였기에, 돌아오는 길에 여름철 지리산 등반을 하기로했다.

그때만해도 지리산 등반은 잘 알려지지 않었고, 정보도 부족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가기를 두려워했다.
지리산 종주를 한다면, 화엄사 동네부터 천왕봉 밑의 마을까지 장장 140리 길에, 도중에 대피소는 커녕 민가하나 없는 산속이였고, 그때 아직도 빨치산 공비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문리대 산악회에서 다녀오고 그들로부터 좋은소리 나쁜소리 다 듣고난후에 흥미가 돋구기 시작했다. 요점은 "지리산 종주기 쉽지않다" 였다. 그것이 바로 "한번 해볼만하다" 라는 매력이였다. 같이 갈 사람들을 구했는데, 결국은 네 사람의 골수분자들이 "지금 안가면 언제 가느냐"는 철학으로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한다.

정확한 날자는 잊었지만, 아마 7월이나 8월초의 어느날 서울역에서 밤 기차를타고, 그때만해도 고속 급행기차는 없었으니, 하루밤을 꼬박 새우면서 밤새 달려서 목포에 아침에 도착한다. 그 다음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에 없지만 완도 건너편까지 간후에, 무의촌 진료반이라고 특별대우로 조그만 한국 해양경비정에 태워주어 완도로 건너갔다. 지금은 다리가 놔있지만, 그때는 생각보다는 먼거리를 배를타고가서 무의촌 진료하는 마을 가까이에서 내렸다. 기억하기로 완도의 동쪽 해안 어느 마을인것 같었다. 한 일주일인가 조그만 동네의 국민학교 교사에서 묵으면서 거기에 진료소를 설치하고 며칠을 보낸다. 무의촌 진료가 끝난후, 우리 네명은 서울로 돌아가는 구릅과 떨어져 지리산으로 향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무의촌 진료가 끝난후, 완도에서 순천으로 아마 배를타고 온것같다. 부둣가 장터에서 당장 갈데없어 어물거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해서 장터에 있는 빈 움막 가개 지붕밑으로 도피해서 비가 끄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다행히도 우리만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 몇명도 같이 피신해서 앉어있다. 젊었던 우리는 고난중에서도 장난기를 잃지 않었다. 그 장면을 재빠르게 사진으로 찍었으니...

무의촌까지는 걱정없이 신나게 잘 다녔는데, 막상 등반이 시작되어 낯설은 땅에서 우리끼리 가는길에는 고난이 닥치기 시작한다. 비가 끝난후 어디로가서 무엇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안는다. 아마 어느 여관을 찾아가서 하룻 밤을 잤거나,  아니면 기차정거장으로 향했었을것 같다.



그날 오후인지, 다음날 아침인지 모르지만, 비는 더 오지 안는다. 타향에서 갈곳없을때 비오는것처럼 한심한 일은 없다.  하여간 순천역에 서있는 우리들. 아마 구례쪽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때 시골에서의 여행은 무척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구례 화엄사에 도착, 정문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아마 그날밤은 화엄사 안에서 잔것으로 기억한다. 절문을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꺽어져서있는 절방에 짐을 풀고 하루밤을 보낸다. 스님에게 숙박료를 낸것같다. 절밥을 먹었는지 밖에 나가서 사먹었는지 기억에 없다.



다음날 아침 화엄사를 떠나서 노고단으로 향해서 올라간다. 서울에서 백운대 오르는것보다 더 멀고 높은것 같었다. 약 일주일분의 식량, 텐트, 침구를 잔뜩 짊어지고 (배낭의 크기를 보면 알겠지), 화엄사 골짜기에서부터 급경사를 타면서 노고단 앞의 지리산 능선까지 올라 오느라고 진땀 뺐다. 서울부근의 북한산, 도봉산에서 수련한 다리 실력은 여기에서는 턱도 없었던것 같었다. "이건 정말 큰 산이구나..." 했다.

아마 이 사진은 지리산 능선으로 올라온후에, 능선을타고 노고단으로 향해 올라가는 길 같다. 골짜기를 벗어 나오자 마자 옛 선교사들의 허물어진 집들을 지나면서 능선을 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경사는 완만했지만, 계속 한참 올라가는 길이, 이미 지친 몸이라 무척 힘들었던걸로 생각된다.
첫날의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던 등산이였다. 지금은 노고단 밑 근처까지 차가 들어 온다고 하지만 그때는 화엄사를 거치는 길밖에는 없었다.
 


저녁이 가까워 어둑어둑해질때 노고단 (1507 m)에 도착한다. 하루종일 약 1300 meter의 등반에 기운 빠진 모습들. 이제부터 텐트치고 밥해먹어야된다. 멀리 등산가면, 첫날 저녁이 언제나 제일 힘드는 날이고 일단 다음날부터는 금방 습관이 되어 맘과 몸이 편해진다. 이 돌탑은 1963때의 것. 요새 사진에도 나와있는것을 보지만 그때의 모습이 아니다.  그때는 돌탑 하나뿐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안내판 이정표도 없었고 사람도 없는 황량한 산꼭대기 였었다. 지도를 보고 노고단이라고 짐작했을뿐이다.



여름철이라 비가 자주왔다. 아마 반야봉 (1752 m)을 지나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 비를 맞으며 주저 앉어있다.
모두 첫번 만나는 비에 암담한 마음으로 피곤한 모습이다. 그래도 누가 기분이 나서 사진이래도 찍었으니...
그때는 우비가 따로 없이 군용 판초를 썼는데 사실 배낭까지 다 뒤집어 씨우니까, 비록 무겁고 부피가 컸지만, 산에서 이것처럼 좋은 우비는 더 없는것 같다.



능선위로 부는 强風에 판초를 말리려 물을터는 모습. 가끔 이런 갈대밭이 나온다.

..

우리는 문리대 산악회로부터 들은 정보로 찾어 온것이였는데, 지도, 나침판, 시야에 의존해서 갔다. 가장 중요한 시야가 안개로 막히니 길찾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였다. 산길은 분명치 않었고, 더구나 산 능선이 하도 넓어서 제대로 가기가 힘들었는데, 나침판의 방향이 유일한 지침이였을때가 많었다.
여기 사진 처럼 등산길을 깊은 나무와 풀속을 헤쳐가면서 찾어야했다. 주 목적은 능선위에 머물며 가는것이지만, 그것이 이론처럼 지도처럼 쉽지는 않었다. 때로는 길 같은곳으로 잘못들어 가다가 막혀서, 돌아와서 다시 길을 찾은적도 몇번있었다. 



1960년대의 꾸밈없는 스타일 없는 등산객 모습이다. 우리끼리만 외롭게 가다가 갑자기 숲이 열린곳에서 먼저온 등산객들을 만난다. 텐트 칠 자리가 따로 없었다. 그냥 길 옆에 대강 자리잡고 바위를 바닥으로해서 하룻밤을 보낸다. 깊은 안개에 전망이 없으니 우리가 제대로 가는지도 모를때가 많었다. 딴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가 제대로 간다는것을 그때서야 확인할수있었다.

..

고도가 높아지면서 시야가 트인다. 지리산의 거대함이 여기에서 보인다. 이렇게 능선위로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하며 나흘을간다. 일단 능선위에 올라서면 식수를 찾을수있는곳이 서너군데 밖에는 없었다. 거기에서 자야하는데 물은 조금 골짜기쪽으로 내려가야했다. 하여간 재수좋게 그럭저럭 잘 찾어가면서 간다.
맑은 날씨보다는, 흐리고 비오는 날씨가 대부분이였다. 한 중간쯤부터는 갈대밭이 나오기 시작했고 길도 잘보이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얼마가지 안어서 다시 숲이 나왔다.



가벼운 작은 배낭을 진것을 보면, 저녁에 능선위에 짐 내려놓고, 물찾으러 골짜기 쪽으로 내려가는 모양.
배낭속에는 물통이 들어있다. 보통 한 20-30분 내려가면 샘이나 물흐름이 있었다. 



능선위에서 골짜기 밑을 보면서.



어느날은 구름과 안개를 벗으로 삼으면서...



때로는 깊은 숲으로 다시 들어가고...



나무 가지를 헤치며 일보 일보 전진해서 갈때가 많었다. 그때 등산로는 이런 상태였었다.



가도 가도 끝이없는 지리산 능선. 사람조차 보기 힘든곳에서 죽은 고목만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름들은 다 잊었지만, 가는 길에 여러 봉우리들를 옆으로 끼고 지난다.
그때는 능선을 타지 않기때문에, 제일 길 잃어먹기 쉬울때다.



가다가 쉬면서... 하, 그때는 쉴때마다 담배한대씩 물었었지.



여기는 세석평전, 빨치산들의 훈련장이였다는 곳이다. 넓은 평지에 다행히도 군데 군데 평평한 풀밭이 있어 푸근한 풀위에 텐트 칠 자리도 좋았다. 그동안은 울퉁불퉁한 바윗돌위에서 잤었다. 언제나 지도를 보면서 그날 갈길을 연구한다. 정상 오르기 마지막 저녁을 여기서 보낸다. 그때의 등산화, Army walker (목긴군화)가 사진에 보인다.



A-frame 군용텐트안에서, 아마 저녁을 끓이는지 아침을 해먹는것인지...



정상부근에서 나무는 없어지고 시야가 다시 트인다. 이때는 우리들 허리가 무척 가늘었을때다.



안개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가 하면 또 사라지고...



마지막 날, 천왕봉 가는길에 잠시 쉬면서... 잠간 햇볓이 난다.

..

여름철이라 노란색의 산나리가 여기 저기 피어있다. 지금도 그 꽃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리산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첩첩히 겹쳐지는 산능선들.




아무도 없는 천왕봉 정상 (1915 m)에 선 우리들... 영원한 하늘을 배경으로 찍혀진 한순간, 잊지 못하리라.
담배한대 피여무는 모습... 山友의 友情인양, 누군가가 다른 누구에게 라이터 불을 붙혀준다.
아 ! 이것으로 지리산 종주 (노고단-천왕봉 능선) 42 kilometer, 100리 길이 여기서 끝난다.
한국에서 이산 저산 다녀봤지만 지리산보다 큰산은 아마 없을거다. 다행히 무사히 끝낸다.

정상에서 우리는 남쪽 사면으로 (경상남도) 하루종일 걸어 내려와 산골 농가에서 하루밤 자고, 지나가는 화물추럭위에 올라타서 진주로간다. 진주의 한 여관에서 하룻저녁보내고 다음날 해인사를 방문하러간다.

그때는 우리 인생여로중에서 배고팠던 시절이였지. 그러나 지리산 종주를 해낼수있었던 축복된 시절이기도 했다. 쭈그리고 앉아서 항고밥 끓여서 나누어 먹으며, 모르는 길 찾어가면서, 용기있고 순진한 마음으로 같이한 遠征등산은 이것이 마지막이였던것 같다.
그후 얼마 머지않어 졸업이 오고, 졸업후 뿔뿔이 헤여졌다가, 한 사람은 한국에 남아있었지만, 나머지는 결국  미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오랫동안 같이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벌써 한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고... 

지리산의 정상 능선에는 아직도...
깊은 갈대밭사이로 사나운 비 바람이 거침없이 파도를 치며 지나가고,
골짜기 저쪽으로 아침마다 짙은 안개가 피어났다가 사라지며,
천왕봉 정상부근의 능선 바위사이에는 산나리꽃이 여전히 피어나겠지... 

옛날에 젊어서 한번 지나갔던 나그네가, 이제 늙으막에 다시 돌아가 볼수있을가?

PS: 이글은 우선 미완성으로 올리고, 앞으로 생각나는대로 더 수정할 예정입니다.


Photo and Text by SNUMA WM - May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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