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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해설: 김원호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집필 의도 및 감상

이 시는 김영랑의 ‘순수시’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순수시’는 언어 본연의 아름다움을 갈고 닦아서 쓰는 시로 음악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순수시’는 시대나 역사,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요소와는 전혀 관계 없이 인간 내면의 섬세한 서정적 정감을 표출하기 마련이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게 되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보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에는 당시 시대적 요소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과 염원이 잘 암시되었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좌절 속에 기다리는 보람.
갈래 : 순수시, 낭만시, 유미시(唯美詩).
성격 : 낭만적, 유미적, 상징적.
운율 : 각운[-ㄴ, -ㄹ, -요]의 사용.
어조 : 여성적 어조.
구성 : 대칭적 구성. [상승 → 하강 → 상승].
단락 구성 :
    제1단락(제1,2행) ㅡ 모란이 피는 봄을 기다림.
    제2단락(제3~10행) ㅡ 모란을 상실한 슬픔.
    제3단락(제11,12행) ㅡ 모란이 피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림.

출전 : <문학> 3호 (1934. 4.)

시어 및 구절 풀이

모란 ㅡ 동양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며 ‘부요미(富饒美)’를 나타낸다. 옛날 시집갈 때 ‘모란꽃’을 수놓아 가는 일이 흔했다. 이 시에서 ‘모란’은 ‘보람’을 상징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ㅡ 시적 자아는 모란이 피는 그날을 인생의 보람이 성취되는 때로 생각하고 있다.

나의 봄 ㅡ 시적 자아가 생각하는 주관적 시간으로, 모란이 피어서 질 때까지의 기간을 나타낸다. 시적 자아에게 있어 이 기간은 일 년 중 가장 보람 있는 시간이 된다.

기다리고 ㅡ 작품 원문에는 ‘기둘리고’로 되었는데, ‘ㄹ’음의 중첩과 음성모음 ‘ㅜ’의 사용이 ‘마음 속에 간절히’ 기다린다는 음악적 효과를 자아낸다. 특히 음악성의 효과가 큰 김영랑의 시 표기를 표준어로 바꾸면 그 효과가 반감된다는 사실을 이 경우 분명히 알 수 있다.

있을 테요 ㅡ ‘ ~어요’의 여성적 어조를 사용하여 간절하고 미묘한 심정을 잘 드러낸다.

뚝뚝 ㅡ 모란은 다른 꽃에 비해 꽃잎이 비교적 크고 넓적하다. ‘뚝뚝’이라는 음성 상징어를 사용하여 모란꽃이 시간적 사이를 두고 한 잎 한 잎 소리 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듯 현실감과 함께 사실적으로 느끼게 표현하였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ㅡ 모란이 떨어지는 것은 소망의 상실을 뜻한다. 제3, 4행으로 보아 시인은 이 시를 모란이 떨어진 직후에 썼으리라 추리할 수 있다.

비로소 ㅡ ‘설움’이란 정서가 표출되는 것은 모란이 지고 나서부터이다.

여읜 ㅡ 사별한.   [* 다른 뜻으로 ‘딸자식을 시집보내다’가 있다.]

설움 ㅡ ‘상실’에서 연유한 정서.

오월 어느 날 ㅡ 객관적인 시간.

그 하루 무덥던 날 ㅡ 모란이 피는 오월(음력)은 무더운 계절이 아니다. 그럼에도 모란이 지던 그 날을 무더운 날로 특정하게 설정한 것은 떨어진 꽃잎이 시들어 버리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떨어져 누운 ~ 시들어 버리고는 ㅡ 모란을 아름답게 보는 것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태도와 관점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란이 떨어져 시들어 버릴 때 그것은 한갓 쓰레기와 같은 추(醜)한 물질적 존재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적 자아는 실망감과 분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ㅡ 시적 자아에게 있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상실했을 때 느끼는 절대 절명(絶對絶命)의 심정을 나타낸다.

보람 ㅡ ‘모란’의 상징적 의미.

서운케 ㅡ ‘허전함’에서 연유한 정서.

뻗쳐 오르던 ~ 무너졌느니 ㅡ ‘모란’이 활짝 필 때까지 상승(上昇)하던 심정이 ‘모란’이 떨어짐으로써 하강(下降)의 심정으로 바뀌어 ‘좌절감’에 빠지게 만든다.

오월 어느 날 ~ 무너졌느니 ㅡ 이 시를 5묶음으로 나누어[1,2 / 3,4 / 5,6,7,8 / 9,10 / 11,12행] 낭송할 때, 심정을 단계적으로 점점 고조(高調)시키면서 낭송할 수 있는 부분은 셋째 묶음(‘오월 어느 날 ~ 무너졌느니’)이다. 그 이유는 된소리와 거센소리[‘떨어져·꽃잎·천지·자취·뻗쳐·서운케’]의 시어들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음악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ㅡ 모든 것이 끝나, 더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허망감’의 심정을 말한다.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ㅡ 시적 자아에 있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은 ‘모란이 피어서 질 때까지의 기간’이다. 따라서 모란이 존재하지 않은 남은 시간은 무가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섭섭해 ㅡ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 정서.

삼백 예순 날 ~ 우옵내다 ㅡ 1) 모란을 상실한 ‘비애감’을 나타낸다.  2) 과장법과 역설법의 문장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찬란한 슬픔의 봄을 ㅡ 이 시가 1920년대 초의 감상적 낭만주의 시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이 시의 마지막 2행인 이 구절 때문이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ㅡ 1) 이 구절은 유미적(唯美的) 태도가 잘 나타난 구절로, 이 시 전체의 핵심 구절이 된다.  2) 앞에 나오는 ‘설움·서운케·섭섭해’ 등의 정서가 노출된 시어들은 ‘슬픔’에 유도되어 연결된다.  3) ‘찬란한 슬픔’은 모순 형용으로 된 역설법에 속한다. 그리고 이 슬픔은 밝고 아름다운 비장미(悲壯美)를 나타낸 승화(昇華)된 슬픔이다.

[참고] ‘슬픔’에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밝고 명랑한 성격의 ‘승화(昇華)된 슬픔’과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어둡고 우울한 성격의 ‘저회(低徊)의 슬픔’으로 나눌 수 있다. 예술 작품에 나타난 슬픔은 ‘승화된 슬픔’으로 이것을 흔히 ‘비장미’라 부른다. 그러나 ‘저회의 슬픔’은 일상 생활의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으로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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