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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준재가 가는 길, 내가 가는 길

2011.05.04 10:34

김창현#70 Views:6302

고희를 앞두고 존경하는 준재는 뭔가 뜻있는 일을 착수할 모양이다.
그래서 무능거사인 내가 시작한 일 생각나서 여기 옮겨본다.


    <무릉도원의 꿈>

내가 주에 두어번 가는 광교산 약수터에 山中好友林間鳥 世外淸音石上泉란 대련이 붙어있다. '산중의 좋은 친구는 숲속의 새요, 세상 밖의 가장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라는 귀절이다. 이 귀절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한다. 도대채 어떤 분이 이런 멋진 한시를 읊은 분일까. 또 그걸 목각하여 기둥에 매단 뜻있는 분은 누구일까. 매번 궁금해진다. 산은 이 정도 경지라야 비로서 산을 사랑한다는 말을 해도 어울리는 경지인 것 같다.

  속세에 허다한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숲속의 새가 가장 좋은 친구라는 말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또 세상 밖의 맑은 물소리란 뭣인가. 세상 밖의 신선 세계일 것이다. 난마처럼 얽힌 속세를 버리고 돌 위에 흘러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고요한 경지는 도대채 어떤 경지일까. 황제 자리를 양도하겠다는 요임금의 제안에 자신이 귀를 더럽혔다며 영수에 귀를 씻고 기산에 들어가 숨은 許由의 경지일까. 전에 靑鶴集에서 한국의 신선 족보를 본 적 있다. 그 속의 채하자 편운자 같은 신선이, 연꽃 모양의 등잔에 관솔불 밝히고, 파초잎 술잔에 竹瀝酒 마시는 경지인가. 옥향로에 향을 피우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玉爐祭天形 풍수, 선녀가 춤추는 소매 모양의 仙女舞袖形 풍수, 일곱송이 연꽃이 물에 떠있는 七蓮浮水形 풍수, 선인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仙人對碁形 풍수를 찾아다니는 달인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그분들에 비하면 그저 비취빛 물 흐르는 맑은 계곡 곁에 비바람 가릴 띠집 하나 세우고,원없이 맑은 공기 맑은 물 마시고 살고싶은 나의 꿈은 소박한 꿈에 불과할 것이다. 자식들이 성장해서 분가해 나간 후, 나는 고향 근처에 있는 지리산에 들어갈 궁리를 자주 한다. 마침 년전에 시카고서 귀국한 친구가 중산리에 자리잡고 살고있기 때문이다. 중산리는 남쪽에서 지리산 들어가는 입구다. 집채만한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바로 '신선의 산' 方丈山에서 흘러내린 약수다. 전에 중산리 다녀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戊子年 7월 거사는 혜근 홍열과 함께 지리산에 올랐다. 天臧地秘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로 해둔 명혈에 吉星이 비쳤기 때문이다.땅은 높은 곳에 있는데, 地靈인 岩石 뿌리가 군데군데 밖으로 들어나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북에 등지고 도로에 접했으며, 向은 남동이었다. 물은 바위 사이로 흐르고, 큰 고로쇠나무가 많았다. 노년에 산을 사랑하고 산림에 의탁해 살고싶은 세 마음을 지리산 마고선녀께서 맺어주셨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여기 가시덤불을 헤치고, 차나무와 춘란 인삼 장뇌를 심고, 巖穴의 초막은 바람과 비를 가릴 정도로 예정하였다. 南宋 시대 주자가 白鹿洞서원을 개설한 것처럼 洞을 열자고 약속하였다. 봄이면 산나물 뜯고, 여름이면 계곡 물가에서 바둑 두고, 가을이면 茯笭 地骨皮 오가피 등 약초 캐러다니고, 겨울이면 백설 만건곤한 고요한 산 속에서 밤 고구마 구워먹고 살자고 약속하였다.

 세 사람 중 누가 촌장인지 아직 정하지 않았으나, 이미 洞을 열기로 한 이상, 洞規는 미리 정하였다. 동규는 자리 위치로 방향을 제시하였다. 小食 斷食 기도하는 사람은 上席이요, 채소와 차의 진미를 아는 사람은 상석이요, 달빛을 즐기고 단소를 부는 사람은 상석이요, 술이나 김치를 잘 담고 청소 잘 하는 사람은 상석이요, 노인끼리 안마 잘해주는 사람은 상석이요, 시서화를 알고 명상을 즐기는 사람이 상석이다. 반면 이재나 타산에 밝으면 末席 근처고, 육류나 젓갈을 즐기면 下席 근처요, 속세에 돈 많은 사람도 하석이요, 너무 이름 났거나 유식한 사람도 하석이요, 고스톱이나 포카 즐기면 당연히 말석이었다.

 허허허! 이번에 남쪽에 내려가 이러고 올라왔다.

 마침 친구 소유인 산속에 좋은 곳이 있었다. 높이가 사람 키 두배나 되는 넓적한 바위가 둘 있었다. 그 가운데에 초막 지으라고 양 옆에 적당한 간격을 벌리고 선 모양새였다. 딱 안성맞춤이었다. 바위 위엔 머루 다래 넝쿨을 올렸으면 싶었다. 겨울엔 창을 통해서 양쪽 바위에 쌓인 눈 풍경을 보며 명상만해도 좋을듯 싶었다. 솜씨 좋은 각자를 데려와 내가 쓴 한시를 하나 새겨놓고 싶었다. 바위 아래는 춘란을 심기 딱 좋았다. 사람이 산 흔적인지 오래된 감나무가 하나 있었다. 밑둥이 사람 다리통만하여 몇년 거름만 잘하면 가을철 붉은 홍시의 운치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성 한 잎새 아래는 대평상 깔고 바둑 두기 딱 좋았다. 뒤로는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멀리 보이고, 아래로는 꼬불꼬불 계곡이 내려다 보였다. 땅 끝에는 넓적한 반석이 있었다. 근처에 야생복숭아 심으면, 봄밤엔 향 피우고 달빛 아래 복숭아꽃 감상하기 딱 좋을법 했다. 여름에는 신선의 과일이 익어감을 지켜보는 줄거움도 누릴 수 있다 싶었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으랴. 주로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고 싶었다.

 집은 울퉁불퉁한 생나무 기둥 몇개 세운 작은 황토방이면 충분하다 싶었다. 처음에는 스페인풍의 하얀 회칠 바른 집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가 어디 지중해인가. 지리산인 것이다. 지리산 황토가 얼마나 순하고 영험한 흙인가. 벽에는 주렁주렁 약재 봉지를 달아두고 싶었다. 약초꾼들 따라다니며 산에서 채취할 예정이었다. 수시로 허준의 동의보감 읽으며 당귀 천궁 오가피 마가목차를 즐길 것이다. 거실에는 불상을 모셔둘 예정이다. 인사동에서 목탁과 가장 예쁜 소리 내는 풍경도 사올 예정이다. 아침 저녂 향 피우고 목탁 치며 예불도 올릴 것이다. 풍경은 고요한 산속의 바람소리를 수시로 전할 것이다. 오도자가 그린 공자님 초상화 밑에 노장과 불가의 책 몇권 한의학 책 몇권 놓아둘 것이다. 그리고 산채나물에 입맛 들일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지리산은 수많은 절경을 간직한 영산이다. 10경인 노고단의 구름바다, 직전의 단풍, 반야봉의 낙조, 벽소령의 밝은 달, 최치원이 찾았던 불일폭포. 세석고원에 피는 철쭉, 안개낀 연하봉, 천왕봉의 일출, 한국의 3대 계곡으로 꼽히는 함양 칠선계곡, 섬진강의 비단같이 맑은 물을 품고있다. 이 모든 절경 하나하나가 내 수필의 소재가 될 것이다. 그 속에서 피고지는 수많은 꽃과 단풍이 수필 소재가 될 것이다. 소나무와 바위와 흘러가는 흰구름, 수많은 폭포, 산속에 쌓인 백설, 밝은 달빛이 내 수필 소재로 충분하다. 화개동천에서 차를 만드는 사람, 섬진강에서 은어를 잡는 사람, 산사에서 수도하는 스님, 지리산 아래 동네에 열리는 오일장에 나오는 촌사람들, 그리고 그들 손에 들고나온 산채나 약재가 내 수필의 소재가 될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노년을 지리산 품에 놀면서 오로지 지리산을 소재로한 수많은 수필을 쓰며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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