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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re] 박완서 선생님 영전에 / 신경숙

2011.01.23 04:32

황규정*65 Views:7967



박완서 선생님 영전에…신경숙 소설가 추모사




새봄에 봄바람으로 다시 오시길 -신경숙저녁 무렵에 예정에 없는 산보를 나가 찬바람 속을 걸어 다니다가 저녁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아주 미안한 목소리로 기자가 당신 소식을 전했을 때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습니다. 아니요.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 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한참 후에야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인 것을 알고는 수저를 내려놓았 습니다. 독백인지 뭔지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의 옹알이 같은 말이 제 입에서 튀어나오더군요. 안 되는데! 죄송해서 어쩌나, 어어… 무슨… 응… 안돼요… 눈앞은 하얗고 폭격 맞은 것 같이 마음이 펑 터져버린 것 같았어요.

식당 안이 시끄러워 거리로 나와서도 한마디를 못하고 수화기를 귀에 대고만 있었네요. 나중에 전화하자며 끊고는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네요. 모국어와 너무나 떨어져 있는 낯선 나라의 밤거리에서 모국어로 전해 듣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만 하루가 지난 다음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밤에는 내내 잠을 못자고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주옥같은, 당신이 쓴 작품속의 문장들이 통째로 떠오르기도 했고, 당신이 내게 베풀어준 사랑들이 구슬들처럼 내 잠자리를 굴러다니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여기 올 때 당신을 뵙지 못하고 전화 통화만 하고 온 것(정말이지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이 절통하게 후회스러워 돌아눕고 돌아눕고 했습니다.

오늘 낮에는 어디를 다녀와야 했는데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서 저도 알 수 없는 곳에 잘못 내려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왔습니다.당신은 참! 당신답게 더는 미련 없다는 듯이 이런 사람 눈엔 매몰차 보일 정도로 갑자기 이쪽 세상일들을 탁 접어 버리셨군요. 뒤도 안돌아보셨을 것 같이 느껴지는 건 제 마음만일까요. 나이 들어 잘 걷지를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당신 어머니를 보며 알았다시며 늙어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면 제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도 떠오릅니다.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읽다가…라고 하시던 말씀도. 그 누구도 당신 건강을 염려하지 않게 믿음을 주시더니, 막상 아프시고는 구질구질한 모습은 보여주기 싫다는 듯이 잠깐 홀로 계시더니 그렇게 훌쩍 가셨군요.

선생님이 가셨다는 전언을 받아들인 후에 맨 처음 든 생각은 참 당신답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작품 속에서 속속들이 까뒤집어 보여주시던 삶의 비루함들 속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못하고 들러붙어 살고 있는 이런 사람은 당신이 가셨다는 소식에 낯선 나라의 길거리에 서서 훌쩍였습니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 때문에 훌쩍였던 일은 지난날에도 세 번 있었네요.

첫 번째는 당신이 청대 같은 아드님을 잃으시고 쓰신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었을 때, 두 번째는 당신이 아치울의 노란 집 마당에 심고 가꾸던 꽃과 나무들이 지금은 당신이 갈 수 없는 개성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마당에서 본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세 번째는 박경리 선생님이 가셨을 때 장례위원장을 맡아 일을 치르던 당신 얼굴에 이따금 드리워지던 우수 때문이었죠.

그때 당신은 문득문득 오늘 같은 날을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장례식장을 오가는 당신을 보며 저러시다 아프시겠다 싶어 선생님! 하고 안아드리고 싶을 만큼 당신의 작은 얼굴은 더욱 작아져 있었지요.

그때까지는 이 삶에 생각이 많으신 모습이셨는데 막상 당신에게 그날이 닥쳤을 땐 그렇게 아쉬움 없이 단호히 돌아서지던가요. 그렇게 붙들고 싶은 게 없으시던가요.당신은 드러내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을 껴안는 분으로서도 표본이셨고, 어디에도 휘둘리는 법 없이 굳건하신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계셔 주시는 것 자체로 수많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 주셨으며, 팔순 가까이 천의무봉이라 불리는 필력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후배작가들에게 큰 본이 되어주셨습니다.

마지막이 된 병상에서도 한 출판사의 젊은 작가상에 올라온 작품 15편을 읽으셨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이처럼 작가로서의 당신의 삶은 강건했고 품위 있으셨습니다. 가실 때까지 쓰셨고 읽으셨으니 어찌 보면 작가로서의 당신의 삶은 더할 나위 없는 삶이기도 했다 여겨집니다. 다만 그리 홀연히 가버리실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 남은 이들은 이리 허전하고 외롭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을 모르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자주 당신을 찾아가 새로 배우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한치 앞을 못 보는 미물이 인간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부디 당신이 가신 곳에서도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하시기를.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립고 보고 싶어 했던 분들을 어서 만나시길. 그곳에서도 이곳에서처럼 사랑하고 사랑받으시길. 매해 새 봄이 와 당신의 아치울 노란 집 마당에 새싹이 돋고 나무에 움이 트고 꽃들이 만발하면 당신도 다시 봄바람으로 오셔서 남은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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