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4 17:28
1.
운영자 님:
1953 년인가
우리 아버님이 철도 관게로 미국 여러 곳의 기차 공장을
일년 동안 여기 저기 견습 다니신 일이있엇다.
미국에서 중고 기차 마구 한국에 보내 주어서 그거 수리해서 쓰게 훈련시키는 과정.
그때 들은 얘기로 남부지방에서 흑인이 뻐스 뒤칸에 타는데,
동양인 칸이 없으니
뒤 흑인있는데 올라갔는데, 앞에있는 백인이 아버님더러 거기 있지 말고
백인칸으로 오라고 성화를 내드란 얘기가 기억나는데,
당시의 규정으로선
동양인 아랍인 인도인 ..수많은 타인종은 어디에 타야햇는지 궁금
2.
북미에 사는 우리동문 일생 얘기라면, 백인나라에와서 생존해온 역사가 아니가하는데.
그 고충의 하나가, 언어 관습 용모가 다른데서오는 인종차별이란 이란 문제가
중요 난관이엿고, 인종에대한 편견은 우리 인간 본능속에 깊이 밖혀진 본능인가함.
책에 읽어 보니 로마시대에는 노랑 머리 개르만 족을 아주 야만민족으로 보고
깔보았다고 합디다. 로마의 황제가된다는생각은 불가.
영국사람이 아일랜드사람 우습게 여기고 천대한 역사의 후유증이 아직도 문제가 되고있고
한국에서 중국사람 옛날에 우습게 알고
일본사람이 1900 년 초기 한국사람 우습게알고 괄시
구라파사람은 천여년간 유태인 천대햇고
더구나 미국 백인들이 중국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은게 100 년전인데..
또 몽고족이 중국 침략한후엔 중국사람을 우습게 치고 서역사람은 2 급으로 쳐서 관리로 등용 중국인 통치를 않햇나,
일본인이 중국사람을 개처럼 취급해 상해 공원에 개와 중국인은 들어오지 말라고
써 놓칠 않나..
자기의 언어와 관습이 다른 사람을 보고,
적대시하든지, 자기보다 열등한 족속으로 치는 습관이 본능적이아닌가함.
6.25 때 미군병사가 신을 신고 방에들어오는것을 보고
한국 사람이 "이런 쌍놈이 있나" 햇든 우리들의 조상들의 편견.
내가 실제로 체험한 사실로 저희가 외국사람과 결혼하다고
양쪽 집에서 말이 많앗든 걸 역역히 기억..
상대방집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차이도 모르고
"어덯게 중국놈한테 시집을 가는냐" 고 아우성을 친 모양.
38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애들 셋 모두 대학원까지 공부시킨집은 우리집 밖에
없는데, 도대체 가정과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찌
인종 편견가진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싶음.
과거 40 년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엇고
다음 40 년 동안 계속 더 바뀔것이라 믿음.
우리 자식 세대만 해도 타민족 계통과 결혼할
확율이 50% 정도인가 하는데.
2011.01.24 21:01
2011.01.24 22:09
It's a great Reply, Min sun-bae-nim.
Do you study about Racism/or Racial Difference?
I took a glimpse of history, thank you.
Korea Today, Now, has one million foreigners living
in the country.
One Nation-country is Old Concept, I think.
We are One and Only One Human Race on this planet.
That's what I believe except one, those bastards living
in the North.
They need to be Educated about what Human Race is.
2011.01.24 22:32
방선배님.
정말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제가 85년부터 일년간 호주 멜본에 가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남, 북한을 혼동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은 대머리 대통령이 사열을 하는데 머리로 벽돌을 격파하는 특전사 군인들.
이북은 인자한 김주석이 손을 흔들고 어린애들이 매쓰게임을 운동장에서 하니까
어느쪽이 부드러운 체제로 알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예를 들었지요.
여행을 좋아하는 국민들이라 남한사람은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그때는 다만 이북만 빼고.
그러나 이북애들은 자기네 고향도 통행증이 없으면 쉽게 다닐 수 없다. 하면 이해를 하더라구요.
2011.01.25 02:21
누가 그러던데 Racism 이란 공기중에 있는 습도 같은 것이라 항상 존재 하며 어디 던지 있고
정도가 심해지거나 좀 덜해 지거나 하지 절대로 없어지지는 않는 답니다.
하긴 인류의 가장 원초적 본능 중의 하나가 Xenophobia* 이니까요.
*Xenophobia is defined as the "hatred or fear of foreigners or strangers or of their politics or culture".
It comes from the Greek words ξένος (xenos), meaning "stranger," "foreigner"
and φόβος (phobos), meaning "fear." (from Wikipedia)
2011.01.25 16:32
벌써 3 년이 됏는데
저도 카나다 몬트리올에 도착하자 맞은
씁쓸한 기억을 징검다리란 제목으로 여기 써놧읍니다.
이건일형의 Xenophobia 얘기도 거기 써져있군요.
어릴적에 받은 상처가 아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문제인가 해서지요.
운영자 주: 민박사의 "징검다리"를 아래 comment에 옮겼읍니다.
2011.01.25 16:58
징검다리 (민경탁)
때가 1950 년 이니 벌써 반 세기도 더 지난 옛 날 기억이다.
6.25 전쟁이 벌어져 충남 대덕군 고향에 피난을 가서
초가집 할아버지 댁에서 삼년을 살은 적이 있다.
대전에 북한군이 들어오기 얼마 전에,
흑석리 오리꼴이란 깊은 山中 일가 댁으로 한번 더 피난을 갔다.
몇 집 않되는 그 마을에는 팔촌이 되는 내 나이 또래 애들이 몇명이 있엇고
한방에서 모두 잠을 자곤햇다.
해가 뜨면 산속으로 개울로 헤매며, 가재도 잡고, 칭 넝쿨 뿌리도 캐오고,
서을서 노랑 참외만 먹어보다, 시퍼런 개똥 참외도 먹어보고,..
하여간 학교를 않가니, 매일 신나게 노는 것 뿐이엇고,
처음 보고 듯는 것이 많어, 참으로 즐거운 하루 하루 였다.
유엔군이 대전을 수복한후에는 시골 학교도 개학이 돼서,
나는 그 곳 가수원 국민학교 4학년에 편입을 하게 되엇다.
학교 교사는 피난민 수용소가되어 잠시 근처 야산 소나무 아래서 공부를 시작햇다,
각 학년에 학생이 7 명 내지 15 명이 고작이엇고
매일 학교에 가니, 말투도 충청도 사투리로 조금씩 변하고,
나도 같은 나이 또래의 토백이 아이들로 동화되어 가는가 싶엇는데,
문제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엇든 모양이었다.
가끔 낫 설은 애들이 나에게 와서는 "서울 까투리" 놈이 왓다고,
공연히 한 마디씩 찝쩍 찝적하고, 지나가는 둥 어린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기 시작햇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담임 선생이,
내가 토백이 얘들 축에 완전히 흡수가 안된 상태를 알아서 엿든지,
학교가 끝나면 나를 교실에 남겨두고,
다른 학생 시험답안지나 숙제 해온것에 정답을 골라서 표시하게 하는 과외작업을 시키게 된다.
그 당시 내 말투도 달랏지만
서울서 입든 주머니가 있는 양복을 입엇고,
다른 애들은 힌 바지저고리를 입든 시절,
그러니 피난온 이상한 "서울 까투리" 놈이 고요한 호수에 파도를 일으키고 있엇든 모양이엇다.
하루는 학교가 파한 후 선생님을 돕는 과외 일을 마치고,
혼자서 징검 다리가 있는 냇물을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그런데, 냇물 가에서,몇 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돌맹이를 물에 계속 던져, 물벼락을 마치는 일이 버러젓다.
어덯게 분햇든지 울음을 참으며, 홈빡 물에 젖은 옷을 걸치고,
십여리 길을 걸어 집에 와서는
할아버지한테 이제는 학교에 않 가겟다고
울며 떼를 쓴 기억이 있다.
결국 할아버지와 같이 교장 선생님 사무실까지 찾아가는 일로 진전이 된다.
잘 기억은 않나지만, 할아버지가 대단히 항의를 하신 모양이엇다.
다음날 운동장에서 조회 시간에 이 사건에 대해 교장선생님이
전 교생에게 훈시를 하시는데, 나는 난처함과 두려움속에서
고통의 10 여분간을 지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학교에 3 년을 다니다, 대전에 있는 피난국민학교로 전학 할때까지
같은 동네사는 몇 친구 빼놓고는, 나는 항상 물 위에 떠있는 기름같이
취급당하는 기분으로 살아갔다.
그후 18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대학을 마치고 해군/해병대 삼년 복무후,
카나다 쾨백주 몬트리올 佛語 쓰는 병원에
인턴 자리가 생겨 취직을 하고
일본동경에 며칠 묵다가 생소한 몬트리올에 도착한다.
첫번 할일이 하숙방을 찾는 일이엿다.
출국 수속이 여기 저기 뇌물을 뜯으려는 관리들의 늑장으로
한달이나 지연되어 도착 햇으니
병원 일에 오리엔테이숀도 못받고,
말도 잘 안통하고, 긴장감이 이만 저만 한것이 아니엿다.
하숙 집 찾는데 고충이 많다고 도움을 청하니
병원장 여비서가 여기 저기 전화를 하드니 좋은 곳을 찾앗다고
주소를 적어 주어, 그 집을 바로 찾아 갔다.
나는 순진한 생각으로,
집 주인이 멀리서 온 사람이라고,
말도 가리켜 주고, 한 식구 처럼 대해 줄
친절한 하숙집 주인이기를 고대하고 있엇다.
지도를 들고, 겨우 찾은 하숙 집에 도착해서
문에 녹크를 하니, 중년의 백인 아주머니가 안에서 나오드니,
대문에 달린 조그만 창으로 나를 한참 처다 보고, 누구냐고 뭊는다.
병원에서 조금전에 소개받고 온 "아무개" 라고 대답하니
"방이 금방 나가서" 내게 세 줄 방이 없다고 하면서
문도 열어 보지않고 그냥 안으로 돌아 서는 것이엇다.
가슴이 뭉쿨해져서 다시 병원장 비서실로 와서 자초지종을 얘기 햇드니
"아직도 몬트리올은 시골이라 속이 좁은 사람이 많으니" 이해하라고 위로를 한다.
나는 바로 이것이 "인종 차별이구나!" 하는 첫 경험을 한다
****
그후 몇군데 다시 전화를 해서, 병원 정문앞에 있는 두프랙스 이층,
중년 아주머니 아파트에의 골방 같은 곳을 빌리게 되엇다.
그 방에서 모텔같이 잠만 자고, 밥은 병원 식당에서 3 식을 사 먹으면서
처음 6 개월을 지냇다.
每 四日 마다 24 시간 불침 근무를 하는 힘든 일이엿다.
지금생각하면, 서독에간 광부나 다름 없엇지만,
본 토백이 의사도 같은 처지니 불평할처지는 못되엇다.
이 하숙집의 기억으론,
한 밤 중에 집 아주머니가 자주 흐느껴 우는 난처한 경험을 한다.
알고보니, 몇년 전에 금실이 좋앗든 구두 수선공 남편을 잃은후
우울중에 시달리는 아주머니라는 사실을 알앗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나라에서 온사람으로 여겨
자기 일가 친척들에게 연락을 해서, 사람들이 오면, 나에게 많을 질문을 하고
그들은 신기한 듣이 얘기를 듣고 가곤햇다.
그당시 유일한 정신적인 위로라면, 그곳에 이미 정착한
고교 동창 두 친구와 대학교 선배 두분을 찾어 뵈는 즐거움 뿐이엿다
18 년전 고향, 냇 물 가에서 당한 서러움 같은 느낌을 자주 느끼며
첫해를 후딱 보낸 기억이 있다.
*****
요새 내가 일하는 북가주 중범자 감옥에서도
자주 패싸움이 일어나 부상자가 생기는데
그 주원인이, 그들의 구룹이 백인, 흑인, 영어하는 히스패닉, 스페인어하는 히스패닉들로
구성되어, 자기 패가 얻어 맞으면 복수, 또 복수,..끝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역시 인간에게는
자기와 다른 집단에 대한 기피증이
어린애들 마음속에나
교육밭은 어른들 마음속에도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바 있다.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본능이 존재하기 때문에 ,
소위 Xenophobia (외부인 기피증) 라고 부르는
단어까지 생긴것이 닌가 ?
그런가 하면 반대로
Xenophilia (외부인 기호증) 이란 희귀한 단어가 있지만,
잘 쓰여지도 않고, 인간 대부분은 날 때부터
선사시대부터 개체 생존을 위해
배타적인 Xenophobia (외부인 기피증)가 보편적인 본능으로
우리 머리속에뿌리 깊이 밖혀 있지 않은가 한다
인류의 역사가 변해가고 지구가 매일처럼 좁아져가는
이세상에, 우리가 물려 받은 배타적인 Xenophobia 의 본능을 극복하는 일은
현대인의 과제인가 한다
그러나, 현실은 나이, 성별, 인종, 종교, 국적, 학연, 이해관계, 인종 편견등으로
차별, 증오, 탄압, 폭력, 살인, 테러, 심지어는 전쟁도 불사하는 실태이고
바로 그런 현상이 매일 같이 신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걸 보면
우리들이 조상으로 물려 받은
머리속 세포들 유전자 속에 깊이 뿌리 박힌
本能의 강인 함을 다시 한번 느껴 본다.
2011.01.25 22:28
아이구, 선배님.
서울애들 지방출신 괄시하는 것은 어떡하고요.
그래도 3번째 큰 도시 대구출신인 나을 보고 시골도 아니고 "시굴서 왔니. 소위 서울 사투리로.
그래서 예과때부터 동기애들 군기를 잡았지요.
지금은 나보고 시비거는 대학동기들은 하나도 없고
오히러 제가 동기들 데리고 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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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배님.
모두가 선입견과 무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영남이니 호남이니 하며 싸우는 걸 보면 한심하지요.
얼마전 교육받은 동남아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자기를 욕하는 것을 보고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자기와 다른 문화와 언어, 습관같은 것을 과감하게 수용하여야
소위 Glovalization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