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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이


오세윤 *65

요사이 부쩍 고향 꿈을 꾼다. 간밤에도 그랬다.
꿈에서 내가 탄 배는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똑딱선 뱃전에 앉아 뒤를 돌아보는 나에게 곁의 누군가가 그곳이
‘개머리’라고 말했다. 연평도를 포격한 북한군 포진지가 있는 곳,
바다는 어둑어둑 어두워가고 있었다.

고향 용당포는 해주만 안쪽 깊숙이 용당반도 끝에 있는 작은 어촌으로
해주항 서북쪽 경계에 곁눈처럼 붙어 있었다.
한적한 작은 포구, 인근에서는 마을을 ‘용대이’라고 불렀다.
마을 아랫녘, 만의 입구에 위치한 ‘개머리’는 바다 건너 연평도와 마주하고 있었다.
삼태기처럼 휘어져 들어간 포구에는 유람보트를 운영하는 광서네 집을 중심으로
20호쯤 되는 집들이 바다를 향해 안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집들 앞으로 난
폭 3~4미터의 길을 겸한 둔치 아래로 모래톱이 펼쳐지고, 모래톱 끝에서
바다가 파도소리를 냈다.
마을 앞 반 마장 설핏 넘는 바다 한가운데에 모란섬이 있었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포구에 닿기 훨씬 전에 그 사나운 기세를 한껏
누그러뜨렸다. 거칠게 달려온 파도는 모란섬을 돌아 마을 앞에 오면 기운이 다한
눈까풀을 졸린 듯 내려감으며 낮게 코고는 소리를 냈다.

썰물이 빠져나가고 나면 폭 3,40미터의 모래밭 끝으로 질퍽이는 개펄의 매끈둥한
검회색 모습이 널따랗게 드러났다.
태풍이 오거나 장마철이 아니고는 바다는 거의 언제나 잔잔하고 친근했다. 햇살이
평화로운 한낮이면 바다는 양지바른 담벼락아래 졸고 있는 게으른 고양이의 복실 거리는
등덜미처럼, 가르랑 가르랑 파도소리를 여리게 내거나 아니면 수평선위로 뿌옇게 해무를
피워 올리는 걸로 심심한 낮 시간을 느즈러지게 보냈다.

눈부신 한낮의 태양이 이울고 서늘한 저녁바람이 불어들면 빈 듯 고즈넉하기만 하던
마을이 슬금슬금 깨어나 은밀하게 술렁였다. 기대와 긴장으로 야릇하게 들뜬 바람이
이집 저집에서 사람들을 불러냈다. 저녁준비를 마친 마을 여자 어른들 모두 모래톱에
나와 배들을 마중했다. 노을 지는 수평선 멀리 바다의 아스라한 끝 희읍한 구름사이에서
어선들은 두서너 개의 검은 점들로 나타나 조금씩 조금씩 몸집을 불려가며 포구를 향해
새끼고래들처럼 다가왔다.

어른들은 떨어지는 해의 빛나는 눈부심과 노을을 마주해 서서 손 가리개 아래로 돛대에
매달린 깃발을 살폈다. 만선인가 아닌가를 색으로 가렸다. 여인들은 들어오는 배를
치마폭으로 맞았다. 조기 철이면 연평도에 나가있던 배들이 예외 없이 만선으로 들어와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누런 황새기(황석어)들을 모래밭 위에 가득 부려놓았다.
누런빛은 언제까지나 살아서 펄떡거리는 황홀한 생명감으로 노을 지는 풍성한 바다와
함께 한 폭 그림이 됐다.
때로 배들은 장어를 한가득 싣고 들어와 마을을 온통 시끌벅적 장바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저녁이면 모래밭에선 늦게까지 떠들썩하게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모래밭 여기저기에 풍로 불을 피워놓고 집집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장어를 구웠다. 나이든 할머니들이 미리 준비한 양념장을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들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넉넉하게 나누어 주었다.

맞바람에 부풀은 돛폭만큼이나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면 우리들은 하나씩 둘씩 모래밭에
벌렁벌렁 드러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헤었다. 하늘 가득 떠있는 별들이
쏟아질 듯 머리위에 내려와 함께 웃으며 우리들과 친구가 됐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나씩 하나씩 우리들은 스르르 잠 속으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파도소리도 별도 모두 아련하게 꿈으로
잦아들었다.
하루 종일 놀아도 바다는 심심하지 않았다. 놀 거리는 어디나 있었다. 물이 빠져나간
개펄을 따라가며 돌들을 뒤집으면 거의 예외 없이 꽃게새끼나 방게가 잡혔다.

물이 빠져나간 모래밭에 우리들은 작은 구덩이를 파고 하얗고 매끈매끈한 차돌맹이와
함께 깨진 사금파리를 몇 조각씩 쌓아놓아 ‘별 집’을 만들었다. 갈색 병 쪼가리,
초록색, 남색- . 막내고모와 친구하여 지내던 동네의 누나가 그렇게 하면 밤에
별들이 내려와 잠을 잔다고 했다. 하지만 아침에 나가보면 그곳에 별은 없었다.
늦게 떠오른 해의 햇살만 눈부시게 빛났다. 무슨 뜻으로 누나는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면 우리들이 사금파리들을 잘못 쌓아놓은 걸까. 누나는 우리가
늦잠꾸러기라서 별을 못 만다고 했다. 별들은 사람들보다 아주 많이 부지런해서 새벽
일찍 일어나 하늘나라 자기들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꿈같다고 한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라고 곧잘 말한다.
나에도 고향은 특별하다.
잔잔하고 푸른 바다와 커다랗게 수평선 위로 떨어져 내리는 불덩이 같은 해와
핏빛 노을과 누런 황새기와 개펄위에 버려진 폐선에서의 전쟁놀이.
그 꿈의 고향 바다위에 다시 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두꺼비집 대신 포대가 지어지고 별똥별대신 포화가 날고 있다.
개머리 진지 뒷산 너머에서 다시 폭발음이 나고 포연이 솟아올랐다는 뉴스가
꿈속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가슴을 다시 전율케 한다.

용대이는, 내 고향은 정녕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꿈속의 고향으로만 남고 말 것인가.
일본의 종군위안부차출을 피해 광복 전해에 부랴부랴 이웃 가막개로 시집간 막내고모는
끝내 못 만나고 마는 건가.

부서진 연평도. TV화면에 언뜻 비치는 바다 위 하늘에는 흰 구름이 여전히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다.


from 조선일보, bugoUSA.org.
Webpage Sungja Cho, December 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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